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444화 (444/917)

1.

아멜리아가 낙인을 계승받은 그날.

스승님은 유언도 끝까지 남기지 못한 채 아멜리아 메리골드에 의해 살해당했다.

적어도 아멜리아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잔인한 운명의 비틀림 속에서 아멜리아는 울고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찾는 이 몇 없는 장례식을 외로이 지키던 아멜리아.

유해도 없는 스승의 장례식을 끝났을 무렵.

아멜리아는 더 이상 빛나지 않았다.

그녀의 빛을 받아 발하던 몽환적인 자연풍경과 따스한 오두막의 나날도 다만 깊은 어둠 속에 침잠했다.

심해보다 깊은 심연 속에, 수렁보다 컴컴한 고독 속에서.

그녀는 테이블에 앉아 마법 서류를 껴안고 한없이 한없이 마법을 연구했다.

그것이 오직 그녀가 존재하는 이유인 것처럼.

단 한마디의 말도 꺼내지 않고, 수면도, 식사도 하지 않은 채 이따금 헛구역질만을 반복하며 끝도 없이 매진했다.

어두컴컴한 공간 속.

시간이 흘렀다.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고, 또다시 봄이 와도.

그게 몇 번이고 반복되어도 오직 마법만이 제 사명이자 유일한 도피처인 것처럼. 아멜리아는 그저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그녀의 절망을 시우는 감히 이해한다 말할 수 없었다.

아멜리아는 묵묵하게 자신의 감정을 깎아냈다.

믿었기에 배신당했고, 사랑했기에 원망스럽다.

따라서 더는 슬프지 않을 정도로, 더는 아프지 않을 정도로 스스로를 마취시키며 혼자만의 세상에 파고든 것이다.

안타까움에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 위에 얹어도 허깨비처럼 흐려졌다 다시 재구성될 뿐.

알고 있다.

이곳은 이미 지나가 버린 기억의 흔적일 뿐이라는 것을.

아무리 안타까워해 봐야 시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도.

그렇게 아주아주 긴 시간이 흘렀다.

아멜리아의 부교수 재직 기간과 그녀의 실제 나이를 견주어본다면 100년을 훌쩍 넘기는 세월 동안 그녀는 혼자였을 것이다.

이윽고 소피아가 찾아왔다.

아멜리아를 발견하자마자 끌어안고 눈물을 쏟던 소피아의 손에 이끌려 아멜리아는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부교수가 되었다.

2.

사실 아멜리아는 부교수에 재임하게 되었다고 해서 딱히 바뀌지 않았다.

소피아가 찾아와 연구를 훼방을 놓는 행위가 빈번해졌고, 그녀의 공방이 아카데미에서 제공하는 공용 시설로 바뀌었을 뿐.

초창기에는 쌍둥이의 교육도 도맡지 않았기에 아멜리아의 일상은 그다지 다를 바 없었다.여전히 어두컴컴한 자신만의 세계에 틀어박혀 있었을 뿐이다.

이후로는 시우가 알고 있던 일들이었다

시우를 불러내어 달달 볶아대던 아멜리아와 그에 정신없이 시달리던 시우.

그 과정에서 소피아가 아멜리아를 도발했고, 아멜리아의 서툰 유혹을 시우가 거절했기에 사달이 났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때 당시 시우가 느끼기엔 집요한 괴롭힘이었다.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가져다 붙인다고 해도 그 행동을 정당화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멜리아의 과거와 불완전함을 알게 된 시우에겐 같은 기억이 달리 보였다.

아멜리아는 그저 서툴렀을 뿐이다.

누군가에게 다가가 본 적이 없었기에 그 방법을 몰랐고, 타인에게 마음을 주는 것을 본능적으로 꺾어냈다.

또다시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서.

또 혼자 남겨지는 것이 두려워서.

무의미하게 겉돌기만 하는 그녀의 행동이 애잔한 몸짓으로 느껴지는 것은 지나친 착각일까.

여느 때처럼 무의미한 심부름을 지시한 아멜리아.

시우는 그녀가 줄곧 마법 연구에만 몰두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3년가량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부터 그녀의 시선은 시우가 등을 돌릴 때마다 쉴 새 없이 그 자취를 힐끗거리고 있었다.

주위의 사물 따위는 보이지 않는 어둠만이 가득했던 공간.

시우와의 인연이 길어짐에 따라 아멜리아의 주변에 반딧불의 것처럼 미약한 불빛이 피어난다.

하지만 그런 불빛이 피어나려 할 때면 아멜리아는 항상 그것을 제 의지로 억누른다.

고개를 휘휘 젓거나, 시선을 조용히 마법 연구지로 돌리며.

두려웠을 것이다.

자신이 지닌 감정을 어찌 다뤄야 할지도 모르는 어설프기만 한 처세에 본인이 더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다.

또다시 기억이 흐릿해지며 한참을 가로 지른다.

조금 더 보고 싶다고 해서 마음껏 들여볼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다시 뒤바뀐 풍경.

마치 아멜리아가 어린 시절이었을 때처럼 환하게 보이기 시작한 풍경에 시우는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야생 보리 군총이 빽빽이 덮인 야트막한 언덕과 이름 모를 나무.

유리조각처럼 날카롭게 깨졌음에도 억지로 구깃구깃 쑤셔 넣었던 기억의 파편이 다시 튀어나온다.

시우에게 있어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날 시우는 기억을 되찾았다.

아멜리아 역시 평소와는 다른 시우의 모습을 보고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짧은 대답만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시우 앞에서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떠오르는 말을 곧장 주워섬긴다.

기억 속 신시우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불안한 표정으로 다가온 아멜리아의 손을 손등으로 후려쳤다.

내팽개쳤다.

기억 속 신시우는 소리친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고함을 내며 우스꽝스럽게도 머리를 쥐어뜯으며 아멜리아를 힐난하고 비난한다.

아멜리아는 그저 눈물을 흘리고, 애원하는 것밖에 하지 않았다.두 사람의 풍경이 아주 멀리서 보는 것처럼 멀어져 간다.

이후 시우는 냉정하게 아멜리아를 떠났다.

제대로 붙잡지도 못하고 멀거니 남겨진 아멜리아는 모처럼 빛나던 세상을 다시 빼앗겼다.

스승님이 떠난 이후로 마음을 열었던 첫 번째 사람인 신시우에게마저 버림받았다.

아멜리아는 여행을 떠났다.

케테르는 시우의 목숨을 살려주는 대가로 살생부의 이행을 요구했다.

텅 비어버린 인형처럼 다시 고독한 어둠 속에 남겨진 아멜리아는 그저 모든 것을 이행한다.

스승님이 돌아갔을 적 마법에만 몰두했던 것처럼.

시우가 떠났을 때는 오직 사냥에만 미친 듯이 몰두했다.

그토록 매몰차게 버리고 떠난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걸고 사냥에 나섰고, 이후에는 공적을 죽이며 홀로 죄악감에 시달렸다.

시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를 답답하게 여길 자격이 없었다.

왜 저렇게 바보처럼, 쪽지도 제대로 펼쳐보지 않고 고문에 가까운 행보를 반복하는지.

어째서 저렇게 어리석게 구는지.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스승님이 세상을 떠난 이후 홀로 틀어박힌 시간이 너무 긴 탓에 다른 모든 감정에 대해 서툴렀던 아멜리아지만,하지만 그녀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감정이 있었다.

애증 (愛僧).

아멜리아는 이미 가장 믿고 사랑했던 사람의 거짓말로 인한 아픔을 혼자만의 고독 속에서 곱씹었다.시우의 일생보다 몇 배는 긴 세월 동안 스승님을 원망하고, 사랑하고 따라서 괴로워했다.

선의와 사랑에서 기인한 행위가 언제나 받아 들여지리라 믿는 것이 독선에 불과함을 알고 있었다.

일방적인 마음이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씻지 못할 상처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멜리아는 누구보다 시우를 이해해주고 있던 것이다.

그렇기에 바보처럼 언젠가 시우가 되돌아봐 주길 기다리며, 눈에 보이지도 않는 곳에 혼자 숨어 괴로워하며 속죄를 이어나갔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속삭임의 마녀의 꾐에 넘어가 타로 타운에 커다란 마법을 펼치게 되는 그 순간까지.

그녀는 끝내 시우를 원망하지 않았다.

오직 자기 자신만을 원망하고 미워했다.

시우는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아멜리아의 기억과 지나쳐 온 길 끝에는 문이 있었다.

검고 검은 문.

시우는 떨리는 손으로 그 문고리를 비틀어 열었다.

겨우 두어 사람이 들어설 수 있는 비좁은 공간 속에 아멜리아는 틀어박혀 있었다.머리에는 어린 시절 시우가 만들어주었던 화관을 쓴 채.

제 무릎을 끌어안고 태아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느낀다.

껴안을 수도, 人;%할 수도 없던 기억 속의 아멜리아가 아니다.

이것은 그녀가 품고 있는 심상 그 자체다.

난해하게만 느껴졌던 그녀가, 흐린 초점으로 찍힌 피사체처럼 보이던 그녀가 이제는 뚜렷이 보인다.어쩔 도리도 없이 연약하고, 사랑을 원하지만 다가설 용기가 없는 겁 많고 작은 소녀.

그게 너구나.

아멜리아.

다가가도 되는 걸까?

그녀의 고통조차 모른 채 평온한 생활을 보내던 시우가 이제 와서 그녀의 손을 잡을 자격이 있는 걸까?

“아멜리아 님.”

시우가 손을 뻗자.

굉장히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보라색 뱀.

여태 아멜리아의 모습에 정신이 팔려 눈치채지 못했던 어둠의 한구석에서.

혀를 날름이는 기다란 뱀이 나타나 아멜리아의 몸을 휘감는다.

“그만둬!”

저 뱀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다만 당장 멈춰 세워야 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지척에 있지만, 바로 앞에 있는 듯하지만 실은 둘 사이에 까마득한 간극이 있다고 말하듯.

시우가 휘두른 창이 허무하게 허공을 가로질렀다.

놀란 눈을 치켜뜨고 주위를 둘러보자 아멜리아의 심상 풍경, 기억의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었다.

건물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 대신 들려오는 것은….

밉잖아. 실은 괴롭잖아. 포기하자. 나와 함께 더 떨어지는 거야.

속삭임

눌렸을 때 들려오는 이해할 수 없는 음성 개중 몇 개만을 제대로 들을 수 있다.

사위에 반향을 남기고 뭉개지는 달콤한 누군가의 목소리.

시우는 떨리는 눈동자로 아멜리아를 보았다.

붕괴하는 어둠 속.

무너지는 기억의 파편 속에서 아멜리아와 시우는 아주 잠깐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은 놀랍도록 투명하고 차가워 마치 감정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윽고 마침내.

아멜리아의 심상은 연극이 끝난 무대처럼 모든 불빛이 사라졌다.

끝도 없는 인력이 발끝을 잡아끄는 감각을 끝으로 시우의 의식은 한없이 밑으로 빨려들어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