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멜리아와 스승님의 행복한 나날은 계속되었다.
인적없는 오두막집이 두 사람의 존재만로 완성되는 것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듯한 모습은 행복이라는 단어를 형상화한 듯했다.
어느덧 사춘기를 넘기고 제법 지금과 비슷한 모습이 될 때까지.
아멜리아의 회고를 엿보며 느끼게 된 점이랄까, 알게 된 점은 무수히 많았다.
견습마녀 시절 아멜리아는 마녀가 된 이후의 아멜리아와는 모든 것이 달랐다.
견습마녀란 마녀의 핏줄 즉, 예언기관에 의해 낙인의 승계가 점지된 소녀를 뜻한다.
이들은 총명하고 재기 넘치는 두뇌와 학습능력을 지녔을뿐더러, 예술적 소양과 아름다움까지 받고 태어난.그야말로 신의 편애를 받은 존재이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예외가 있는 법이다.
견습마녀 시절의 아멜리아는 아름다웠고 바이올린 같은 것은 아주 쉽게 다루었으면서도 마법에 있어선 그렇지 못했다.쌍둥이에 이어 디아나까지 지켜봐 왔고 시우 자신부터가 바닥부터 마법을 공부했기에 쉽게 알 수 있다.
아멜리아는 아주 기초적인 마법 공식을 위해 며칠 밤낮을 지세야 했고,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일 때면 기존의 정보와 혼합되어 눈이 핑핑 도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냥저냥 재능이 없다는 수준이라기보다는 실로 절망적이었다.
아멜리아는 20살의 생일이 지날 때까지 마력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 ‘영창’을 정하지도 못했다.
어릴 적 아멜리아가 그토록 마법 공부를 싫어하며 도망치던 이유도 짐작이 간다.
누구든 자신이 없는 것을 억지로 해야 하는 것은 힘든 일이니 말이다.
마법이 얼마나 혹독한 학문인지 시우는 알고 있다.
마법은 재능이 없는 자에겐 시작할 권리조차 주지 않는 잔혹한 학문이다.
그럼에도 아멜리아는 마법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며 철이 들수록 아멜리아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았다.
숙제를 냅다 벽난로에 던지지도 않았고, 수업 시간에 딴짓을 하며 농땡이를 피우지도 않았다.
책상 앞에 꾸역꾸역 앉아 공부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밤을 세우는 시간도, 놀러 가는 것도 마다코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꾸벅이며 마법 서적을 들여보는 시간도 점점 길어졌다.
아멜리아의 변화는 학구열 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오랜 지병은 성장과 함께 악화되었다.
어렸을 때는 그저 빈혈 기가 돌거나 갑작스러운 열로 쓰러지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각혈하거나 일 년의 반절 이상을 침상에서 보내는 지경에 이르렀고 안색은 뽀얀 정도를 넘어 핏기가 사라져 갔다.
하지만 쓰러져 병상에 누운 순간조차 아멜리아는 책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그 이유는 ‘스승님과 영원히 함께하기 위함’이었다.
모든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라는 통념처럼,
모든 마5는 계승을 하면 죽는다라는 건 A녀와 관계된 사람이면 누구라도 아는 사실이다.
따라서 아멜리아가 읊조리는 ‘언젠가 계승하게 되면 스승님과 영원히 함께’라는 말은 명백히 모순된 말이었다.
선대 메리골드가 그것을 몰랐을 리 없다.
오히려 알고 있었기에 아멜리아를 세상과 격리하고 굴피나무 숲에만 두었다.
이따금 함께 장을 보러 갈 때에도 볼일만 끝낸 채 곧장 돌아올 뿐.
종종 놀러 오는 소피아와 선대 아베느가를 제외하면 그 누구도 숲 안에 들이지 않았으며, 아멜리아와 다른 마녀가 만나는 일에도 신중함을 기했다.
이유를 짐작할 것도 없다
재능이 없£ A멜리아가 병증으로 인해 죽기 전에 낙인을 물려주기 위해서였다.
아멜리아가 진실을 알게 된다면 낙인을 물려 받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완강히 거부했겠지.
반대로 진실을 알고 설득한다 해도 재능이 없는 아멜리아가 정신을 다잡고 계승 받을 준비를 끝낼 때까지는 그녀의 몸이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선대 메리골드는 진실의 은폐를 택했다.
물론 이건 시우가 제삼자의 입장에서 은폐한 진실을 알기에 깨달을 수 있는 장면이다.아멜리아는 그런 스승님의 태도에 아무런 의구심을 품지 않았다.
시우의 시야에 창틀에 턱을 괸 채 가을비가 쏟아지는 창밖을 내다보는 아멜리아가 보인다.병상에 누운 그녀는 이렇듯 같은 자리에 앉아 선대 메리골드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렸다.
“언제 오시나요…. 매일 저한텐 숙제만 남기시고 놀러 다니시다니….”
입술을 삐죽이며 부루퉁하게 내민 아멜리아는 입맛을 다시며 서운함을 표했다.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도저히 알 수가 없어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그때.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으세요?”
아멜리아의 하늘빛 눈동자가 시우와 마주친다.
시우는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그녀의 과거와 상처를 허락받지도 않고 훔쳐 보고 있다.
그리고 잔인한 진실의 열쇠를 지니고 있다.
이걸 그녀에게 전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다.
이 순간이 흩어진 과거의 조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몸이 움츠러들었다.
“아… 그... ”
입이 떨어지지 않아 말문이 막혔을 때.
아멜리아는 침대에서 벗어나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시우를 스쳐 지나갔다.
“빨리 들어오셔요. 또 우산도 없이 비 다 맞고 오셨네요.”
아멜리아는 오두막으로 돌아온 선대 메리골드를 보며 반가운 듯이 웃음을 띠었다.그제야 시우는 그저 선대 메리골드의 환영과 자신이 겹쳐 서 있었음을 깨닫는다.
가을이 달력의 끝자락에 매달린 날.
선대 메리골드는 모자부터 망토까지 듬뿍 빗물에 젖은 채 레노먼드 타운에서 돌아왔다.잠깐 아무 말 없이 아멜리아를 바라보던 그녀가 말한다.
“아멜리아.”
“네, 스승님.”
“내일이란다.”
갑작스러운 말에 아멜리아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얼떨떨하게 제 스승의 얼굴을 바라보던 아멜리아는 스프링처럼 튀어나와 선대 메리골드에게 안긴다.차가운 빗물에 잠옷이 젖는 것도, 으슬으슬한 한기가 품속을 파고드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내일’이라는 의미가 무엇인지는 굳이 설명해 줄 필요도 없었다.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계승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안 그래도 몸이 너무 안 좋아지는 바람에 걱정하고 있었다.
행여나 계승을 받기도 전에 요절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정말이신가요? 거짓말 아니시죠?”
“물론이지, 지금의 너라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거야.”
“거짓말! 그럴 리가 없어요! 그럴 리가…! 저는 아직 영창도 제대로 정하지 않았는걸요?”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밝히며 제 뺨을 꼬집어보는 아멜리아.
멈칫했던 스승님은 다정하게 아멜리아의 어깨를 쓸어담으며 이마에 키스해주었다.
“계승식은 지금까지 열심히 연습했잖니? 영창 정도야 내가 쓰던 것을 물려받아도 되고, 우선 낙인을 계승 받고 사색해보는 것도 좋을 거란다.”“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어쩌죠 스승님…? 너무, 너무 기뻐요…. 꿈 같아요….”
아멜리아는 결국 눈물을 흘렸다.
그간의 고생이, 고난이, 노력이 커다란 보상으로 다가왔기에 너무너무 벅찬 기쁨을 전부 표현하지 못해 울어버리고 말았다.
“스승님…. 지금까지 속썩여서 죄송해요…. 마녀가 되면 분명 저도 스승님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정말 사랑해요. 사랑해요. 스승님….”
비에 젖은 아기 새가 어미의 품을 파고들 듯 아멜리아는 자꾸만 스승님께 안겼다.
“...안돼.”
들리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건 너무 잔혹한 이야기다.
너무도 잔혹한 이야기다.
2.
시우와 선대 메리골드만이 깨닫고 있는 마지막 시간은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흘렀다.
아멜리아가 어느 정도 자라난 이후에는 다른 침대를 쓰던 두 사람이지만 그날 밤만큼은 침대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을 감았다.
다음 날에는 아침을 함께 먹었다.
아멜리아는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밤새 잠을 설치느라 눈이 따끔거리는 데도 병마도 거뜬히 이겨낸 것처럼 온종일 웃었다.
“이제 저도 병이 나을테니까. 스승님과 함께 외출할 수 있겠네요? 스승님, 저 현세에도 가보고 싶어요. 레노먼드 타운도 아르스 마그나 타운도 궁금해요.”“…여행은 좋은 거지.”
이후엔 함께 빨래를 널고/ 피아노와 바이올린으로 합주를 하고r 같이 음식을 만들고 화목한 시간을 이어나갔다.평;와 다를 것 없는 일상이 끔찍한 비극으로 느껴지는 것은, 이 비극의 결말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으
오후 내내 번갈아가며 오븐에서 구운 칠면조를 메인 요리로 만찬을 끝낸 두 사람.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다.
“아멜리아.”
"네, 스승님.”
아멜리아의 뺨에는 주체할 수 없는 행복한 미소가 맴돌고 있었다.그것을 본 스승님은 간신히 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계승의 방법은 기억하고 있니?”
“물론이죠!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데요!”
“그럼 그럼, 우리 아멜리아가 얼마나 성실하고 기특한 지 누구보다 내가 잘 알지' 암암 ”
“헤…헤헤-,스승의 품에 안겨 배시시 웃는 그녀의 눈가에는 그렁그렁 이슬이 맺히고 있었다.
두 사람은 미리 준비한 마법진이 그려진 숲의 공터로 향했다.
특수 향수와 잉크를 섞어 그려낸 마법진에서는 향긋한 라일락 향이 올라왔다.
아멜리아와 선대 메리골드는 두 손을 맞잡은 채 그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그리고는 서로의 이마를 맞댄다.
‘뼈2°!섧갋 :뢦벌:2:1짜버:쳐 주셨잖아요. 저도 이제 보답할 수 있어서 매우 기뻐요”
“그래 그거면 된 거란다.”
두 사람의 몸에 은은한 입자가 퍼지며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입자의 회오리가 아멜리아와 스승님의 몸을 감싼다.선대 메리골드에서 흘러나온 모든 것을 아멜리아의 몸이 빨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만….”
바꿀 수 없음을 알면서도.
눈을 감아도, 귀를 막아도 선연히 보이고 선연히 들리는 과거의 회상 앞에서.시우는 무너질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해냈어요 스승님! 저를 보세요!”
낙인은 성공적으로 계승되었다.
아멜리아는 기쁜 듯이 폴짝 폴짝 뛰며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마력의 입자를 보았다
혼자서는 절대로 해내지 못했을 신비의 영역에 감탄하며 새로이 얻은 힘을 손바닥 위에 피어 올린다
그런 아멜리아의 눈에 들어온 것은.
부서지듯 손끝부터 부서져 가는 선대 메리골드였다.
그 순간, 낙인 속에 기재되어 있는 정보와 지식이 아멜리아의 머릿속에서 조합된다.
견습마녀 시절 아멜리아는 이해하지도 못할 수준의 마법식이라 달달 외우기만 했던 계승식.
그 의미와 결과물이 머리에 직접 입력된 것처럼 ‘알고 있던 정보’가 되어버린다.
“아….”
환희로 가득 찼던 아멜리아의 얼굴이 무너져 내리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표정보다도 짧은 찰나였다.허무하고 탁한 탄식이 아멜리아의 충격을 대신 말해줄 뿐이다.
“아멜리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아멜리아는 털썩 제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허망하게 치켜떠진 눈가에서 눈물이 흐른다.
그 뒤로 들려오는 것은 고함과 비명에 가까운 절규였다.시우는 차마 그것을 볼 수 없어 등을 돌렸다.
“스승님! 왜, 왜 말해주지 않으셨어요...! 저는...저는... 제가 마녀가 되면... 스승님과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 줄 알고…”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거란다. 어머, 유언으로 남기기에는 너무 진부한 말인가?”
“비겁해요... 저는 인정 못해요 이런 게 어디있어요… 비겁하다구요... 가지 마요... 가지 말아요...”
“아멜리아, 사랑하는 내 제자, 나의 딸아, 나의 거울아. 네가 메리골드라는 이름을 이어주어 나는 참 기쁘단다.”
“이런 이름 따위 필요 없어요! 왜...왜 제 이야기는 들어보지 않으신 거예요...”
“너는 따뜻한 아이야.”
“싫어요! 싫어요...! 도로 가져가세요... 스승님이 없으면 전... 아무것도 아니에요...!”
울고, 머리를 쥐어뜯고, 고함을 지르고, 고개를 내젓고, 기도를 올려도.갑작스레 찾아온 잔혹한 이별의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마녀답게, 귀족답게 살아가렴. 그리고...”
등 뒤로 들려오는 것은 오로지 일방적인 독백이었다.
또한 시체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진 스승님을 찾으며 숲을 뒤지는,
스승을 죽인 마녀의 울부짖는 소리뿐이었다.
3.
시동어라고도 불리는 영창은 부정형의 마력을 술자 개인이 수용하기 쉬운 이미지로 재정의하는 과정이다.
의식의 개편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가령 시우의 영창이 ‘피어라’ 인 것은 손끝에 맺혔던 액화 형태의 마력수가 기화하는 모습이 꼭 꽃이 피는 모습처럼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이다.
아멜리아의 영창이 ‘울어라’로 정해진 이유는.
희뿌옇게 흩어지는 마력의 모습이 눈물이 흐르는 것처럼 서글퍼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