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렸을 적 충격적인 영상을 봤던 기억이 있다.
아2 인&넷』1규1대으& 규;!가 마;되슈않아 온갖 것들을 구글링할 수 있던 시기, 이름도 잊어버린 친구가 보여준 영상이었다.
넓게 펼쳐진 대지에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EF5급 토네이도에 휘말린 사람의 영상을 멀리서 촬영한 것이었다.
동영상 속 토네이도는 건물 잔해와 차량과 더불어 인간을 잡초처럼 뽑아든 채 휘두르고 있었다.
그 안에 휘말렸던 사람은 어떻게 됐을까?
낮은 기압의 저산소 혈증으로 기절했다면 불행 중 행운.
자갈과 함께 믹서기에 들어간 토마토처럼 으깨져 비;’리거나 수백 미터 상공에서 내팽개쳐 바닥의 얼룩이 되었다면 불행 중 최악이겠지.
아무튼 이런 불온한 상상력과 대자연의 힘이 보여주는 인간의 무력함에 며칠 동안 잠자리도 설쳤던 기억이 있다.
한국에는 그렇게 거대한 토네이도가 형성될 지형이 없기에 안전하다는 것을 찾아보고 안심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 이유는 별거 없다.
I”
급작스레 팽창한 입자의 폭풍과 기울어진 세계.
개미지옥의 구덩이 속 불쌍한 개미처럼 휘말린 심정이, 꼭 그 토네이도의 휩쓸린 사람의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비명을 내지를 새도 없다.
상하좌우를 가리지 않고 모든 곳에서 몸을 감싸는 입자.
왜곡장은 0.2초도 지나지 않아 박살 났다.
갑옷은 그나마 10초는 버텼을까?
바닥이 없는 지옥 끝까지 추락하는 어둠 속.
공간과 몸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듯하다.
입자는 모든 방어요소가 사라진 시우의 몸을 마음껏 헤집었고 스며드는 독처럼 젖어들어 갔다.
시야는 애진즉 까마득하게 변했고, 기포가 터지는 기이한 소리마저 가라앉듯 사라진다.
그 외 후각도, 감각도 모조리 사라진 가운데 끝없이 끝없이 가라앉는 시우에게 느껴지는 것.
공포가 아니었다.
이가 시릴 정도로 서늘하게 심장을 움켜쥐는 고독함이었다.
- 화아아악!
마침내 가느다랗게 이어진 의식이 끊어지는 것을 끝으로.시우는 입자의 바다에 집어 삼켜졌다.
2.
아까의 소란이 거짓말 같았다.
귓가를 찢을 듯 보글거리던 기포소리는 어디 가고 다시 숨 막힐 듯한 정적뿐이다.마치 모든 것이 꿈이었던 양 시우는 어두컴컴한 공간 속에 멀쩡히 서 있었다.
“뭐야....”
마지막 유언이 ‘이런 시발’이었다는 점에서 내심 씁쓸해하고 있던 차였다.
아무리 목숨을 걸고 왔다지만 얼굴도 못 보고 죽어버리면 이게 무슨 개죽음이란 말인가.
그러나 끝없이 낙하하던 추락감도, 왜곡장을 2초 만에 부숴 버리던 입자의 폭풍도, 마법이 깨지는 피드백으로 파열해가던 마력 회로의 촉감도 선연하게남아 있는데….
“어디지?”
그렇다.
어둠이다.
처음에는 일전처럼 ‘자율방어’가 발동한 것으로 생각했다.
아인에 깊이 잠겨 또 다른 의식에게 육체의 제어권을 넘겼을 당시처럼 말이다.
근데 그건 또 아니었다.
왜냐하면 시우의 발치에는 분명 단단한 땅이 밟히고 있었고, 이 어둠 속에는 커다란 마법 구조물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무지는 인간을 두렵게 만든다.
난수화된 공간은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블랙박스와 같다.
이 칠흑 같은 공간의 목적과 의도를 알 수 없는 이상….
그때, 한 소녀가 시우의 옆을 달려나갔다.
시우는 금세 그 정체를 알아차렸다.
아까 봤던 그 소녀처럼 황금빛을 뿜뿜 내뿜고 있진 않았지만 체형이나 키, 실루엣이 데칼코마니처럼 겹친다.
“꼬마야! 여기는 위험해!”
어떻게 여기에 있는지, 도대체 누구인지, 여기는 또 어딘지 이런 사정보다는, 이 정체불명의 장소에 휘말린 피해자가 또 있을지도 모름에 식겁했다.우선 이름을 부르며 어깨에 손을 얹으려 했지만….
-우다다다다!
손날을 바르게 펴고 육상선수 저리 가라 할 기세와 속력으로 멀어지는 금빛 소녀의 모습.
어찌나 빠른지 옆모습 밖에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어쩐지 눈에 익다.
“애야!”
폭주열차처럼 멀어지는 소녀의 뒤를 시우는 망연히 바라보았다.하나부터 열까지 도대체 뭐가 뭔지….
그러던 중 무언가 발견한다.
소녀가 뛰어간 길에 발자국이 남아있다.
숲 속으로 난 오솔길처럼 잡초와 풀꽃이 발에 밟혀 다져졌을 뿐 전혀 길들지 않은 길.
시우는 붉은가지를 움켜쥐고 신중하게 소녀의 뒤를 쫓았다.
소녀의 발자국을 좇아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둠 속에 개화하는 숲.
태초의 신이 공허를 빚어 천지를 창조하였든 어둠을 여명처럼 걷어내며 눈이 아플 정도로 화려한 빛이 피어난다.
으… I”
지나친 광량.
형형색색의 풍경화를 덮어낸 검은 크레파스를 긁어내는 것처럼 소녀가 발하는 빛은 이 세계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어쩐지 익숙한 모습의 숲이 보였다.
손수건을 흔드는 귀부인처럼 뾰족한 입새를 바람결에 나부끼는 굴피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숲이다.
짙푸른 신록의 상쾌함이 기분 좋게 비강을 채우며, 즐거이 노래하는 산새의 지저귐이 귀가 아프도록 들려오는 어느 여름날이었다.
“후우… 후우… 후우….”
그와중.
나무 밑동 사이에 몸을 웅크리고 들짐승처럼 번뜩이는 눈빛으로 주위를 경계하는 소녀의 모습이 보인다.
“진정해 헤치려는 게….”
영문은 모르겠으나 소녀를 진정시키고 상황을 물으려던 시우는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는 충격을 느꼈다.
한쪽 옆머리를 새끼줄처럼 꼬아놓은 금발.
쾌청한 한여름 천공보다 아름답게 빛나는 하늘빛 눈동자.
체구에 비해 지나치게 커 보이는 마녀 모자까지.
“아멜…리아…?”
오똑한 콧날과 긴장감과 거친 호흡 탓에 말처럼 부루룹 거리는 입술.
한 번 보면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는 아멜리아의 미모를 어린 시절로 당겨 놓은 모습이었다.
다시 헝클어지는 사고.
왜 아멜리아가, 이런 어린 모습으로 여기에?
게다가 이쪽을 극도로 경계하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 중 마지막 단락이 잘못되었음을 시우는 머지않아 깨닫는다.
“아멜리아! 어디 있니!”
소녀가 지나쳐 온 숲길 뒤에서 고상한 목소리가 시우의 추측에 의심할 여지 없는 확신을 더 한다.
그와 동시에 커다란 나무 밑동 아래로 두더지처럼 숨어드는 미니 아멜리아.
커다란 모자 탓에 전부 가리지 않려지지 않음에도 어떻게든 숨으려는 모습이다.
“어휴, 아멜리아. 언제까지 숨바꼭질만 할 거니? 몸도 좋지 않은 녀석이.”
시우의 어깨를 스치듯 지나가 숨어있던 아멜리아를 발견한 인물은 마녀였다.
아멜리아와 같은 금발벽안.
다만 아멜리아가 워낙 아름답게 세공된 탓에 말을 걸기 어려운 미모라면, 이쪽은 한결 다가가기 쉬운 푸근함을 보인다.
더군다나 그녀의 어깨에 둘린 망토는 너무나도 눈에 익은 것이었기에 시우는 어렵지 않게 그녀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선대 메리골드.
이름은 모르지만 아멜리아의 스승님이다.
시우를 없는 사람인 것처럼 지나쳐간 선대 메리골드가 아멜리아 앞에 시자 그녀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몸을 웅크리며 웅얼거린다.
“싫어요. 공부 따위 안 해요.”
“지금까지 잘해 왔잖니. 이리 오렴, 오늘 공부만 끝나면 맛있는 코코아를 타줄게.”
“...싫어요.”
“마시멜로도 넣어줄 건데?”
시우의 기억 속 가장 깊게 남은 아멜리아의 인상을 되짚어 보자면 그녀는 굉장히 차갑고 까다로운 인물이었다.고작 코코아 따위로 회유될 만한 위인이 아니었을 터.
“…다섯 개.”
그렇다고 어린 시절부터 그랬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나무 밑동 위로 쑥 고개를 치켜든 아멜리아.
그녀의 입가에는 숨길 수 없는 군침이 고여있었고 눈은 벌써 환희에 가까운 기쁨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럼, 마시멜로 다섯 개에 생강 쿠키까지 두 개. 어떠니?”
“새...생강 쿠키까지요?”
“그럼~ 내가 언제 거짓말하는 거 봤니?”
“흠흠, 좋아요 사실 저 공부 엄청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래그래, 이리 오렴 우리 아기.”
아멜리아는 오도도 짧은 발걸음으로 볼을 발갛게 상기시킨 채 스승님의 품에 안겼다.
어둠 속에서 반딧불처럼 점멸하는 이 풍경이.
아멜리아가 지닌 추억의 단락임을 시우는 알아차렸다.
“우리 아멜리아는 어쩜 그리 뜀박질이 빠를까? 다람쥐보다도 빠르다니까?”
사랑스럽다는 듯이 아멜리아의 머리를 쓰다듬고 숲길을 따라 사라지는 사제의 모습을 보던 시우는 조용히 뒤를 쫓았다.
3.
어째서 아멜리아의 기억 속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인지는 시우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저 아멜리아의 마력과 유착된 입자와 시우의 자성마법인 기억의 궁전이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초청권을 받았겠거니 추측할 뿐이다.
급박한 상황이다.
밖에서는 몸이 너덜너덜 걸레짝이 되고 있을지도 모르고, 이 끝에 무엇이 있는지 또한 알지 못한다.
어쩌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덧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일수도 있다.
하지만 막연한 확신이 생겼다.
지금 눈앞에 이 장면은.
아멜리아가 ‘추억’이라며 소중히 여겼을 일련의 풍경은 중요한 것이라고.
범람하는 과거의 기억은 일정치 않았다.
잘못 보관된 비디오테이프를 재생하듯 맥락 없이 끊기는 부분이 있었고, 때로는 뒤엉킨 그림처럼 불친절한 영상만을 상영해주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어떤 풍경 속에서도 아멜리아는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때로는 스승님의 품에 안겨, 때로는 함께 요리하며, 숲 속의 동물들을 상대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예쁜 꽃을 꺾어 머리에 꽂고, 머리를 쥐어 뜯다 숙제를벽난로에 던져버리고, 쫓아오는 선대 메리골드를 피해 전력질주를 할 때 마저도.
아멜리아는 빛났다.
어둠을 밝히는 빛무리는 따뜻한 벽난로의 불길처럼 적막한 어둠을 걷어내고, 빛나는 추억으로 빈 어둠을 채워간다.
시우는 우두커니 서서 그것들을 지켜보았다.
선대 메리골드는 좋은 스승이었다.
쉴 틈 없이 흘러가는 추억의 상영회에서 실로 어머니처럼 아멜리아를 아끼는 것이 보였다.
그녀가 아멜리아의 둥그런 이마에 키스할 때면, 아멜리아는 미소가 만개한 얼굴로 스승의 품을 파고들었다.
그나저나 처음 만났을 때 아멜리아를 떠올리면 참 거리감이 있는 모습이었다.
절대 꺼지지 않는 에너자이저처럼 어마어마한 활동량을 지닌 아멜리아라니.
마법 공부가 서툴고 싫어서 도망치는 아멜리아라니.
하루의 절반을 웃음 짓는 얼굴로 지내는 아멜리아라니.
이게 어디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자연스레 웃음으로 번져가던 시우의 미소가 어느 샌가부터 일그러진다.
아멜리아와 선대 메리골드가 보내는 모든 순간에 강렬한 기시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둘은 일어나면 함께 아침을 먹는다.
아침 식사가 끝나면 점심이 되기 전까지 도시락을 싸고 어디로든 나들이를 나갔다.
마치 하루에 하나씩 추억을 쌓겠다는 양.
끈끈한 사랑과 유&로 구득으S계가 2나기 전에, 앨범에 한 장의 소중한 사진이라도 더 끼워 넣겠다는 양.
어떤 날에는 이젤과 캔버스, 그리고 연필을 챙겨 들고 관리되지 않아 삐뚤빼뚤 자라난 보리밭 언덕에 앉아 함께 그림을 그렸다.
어떤 날에는 바이올린을 켜며 스승님만을 위한 연주회를 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에는 근처 호수에서 함께 낚시를 하거나 헤엄을 쳤다.
지붕 위에 올라가 나란히 드러누워 함께 별을 보거나,
거품이 가득한 대야 안에서 침대 시트를 발로 밟으며 열심히 세탁하거나,
가끔은 재료를 사와 별채의 오븐에서 함께 사과 파이를 만들어 먹었다.
익숙할밖에.
요정처럼 빛나는 아멜리아가 가장 빛나던 순간은 모두 시우에게도 남아있는 것이다.어려진 시우에게 아멜리아가 해주었던 것이니까.
문득 타카쇼와의 짧은 문답이 떠올랐다.
사랑이란 게 내 기쁨을 상대방에게도 나눠주고 싶은 것.
순간의 분노와 배신감에 기만이라고 느꼈던 따뜻한 나날들은 아멜리아에게 있어 더없이 소중한 추억을 나누어주던 것이었다.서툰 손길로 한 장 한 장 고른 앨범 속의 풍경을 시우와 함께 보내고 싶었던 것뿐이라고.
시우는 말문이 막혔다.
뜨거운 것을 삼키기라도 한 것처럼 턱 막혀오는 숨.
순간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모진 말을 내뱉던 순간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격렬한 감정을 토해내는 시우의 앞에서.
아멜리아는 어떤 말이 하고 싶었을까?
어떤 말을 주고받지 못했을까.
멍하니 굳어 있던 시우는 자신이 지독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음을 깨달았다.
수백 장의 그림을 그려서라도 모두 보관하고 싶을 단란한 생활 속에 무언가 쏙 빠져 있었다.
아멜리아는 침상에 누워 있었다.
언제나 활달하고 건강한 그녀였지만 이따금 격렬한 기침과 함께 침대에 누워 손가락 하나 까딱 못 하는 때가 있었다.선대 메리골드는 그런 아멜리아의 머리맡에 앉아 손수건으로 진땀에 전 몸을 닦아주었고 말이다.
초췌한 안색의 아멜리아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이마를 쓸어주는 스승님.아멜리아는 몇 번의 잔기침을 하더니 물었다.
“스승님, 저는 언제쯤 마녀가 될 수 있을까요?”
“음~ 글쎄? 성인식이 지나고 한두 해가 지난 뒤려나?”
“빨리 계승 받고 싶어요. 그럼 이렇게 아프지도 않고, 스승님이랑 함께 영원히 행복할 수 있을 텐데.”
“...그럼. 그러려면 빨리 일어나서 공부해야겠네?”
“힝…. 공부는 싫은데….”
모든 마녀가 상식처럼 받아들이는 비극.
선대 메리골드는 진실을 아멜리아에게 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