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441화 (441/917)

1.

타로 타운의 경계를 알리는 을씨년스럽게 기울어진 푯말.

어지럽혀진 공간을 헤치고 나아간 시우는 벌써 온몸이 땀으로 가득했다.

“돌겠네.”

주변에는 둥그런 왜곡장이 윙윙거리며 흐릿한 원을 그리고 있었다.

서로 다른 두 성질의 ‘왜곡’이 맞닿으며 물과 기름처럼 층이 나뉘게 된다.

본디 육안으로 관찰할 수 없는 붉은가지의 왜곡장은 기형적인 공간에 들어서며 선명한 경계를 보이게 되었다.

-기익… 기익…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그 왜곡장이 최고 잠항심도 이하로 무리하게 잠수한 잠수함처럼 불길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경계를 넘어서자마자 몸의 적응을 끝낸 시우는 중앙으로 내달렸다.

이곳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시계가 있을 리 없으므로 시간을 유추할 수 있는 것 생체시계뿐.

대충 5분 정도가 지났으리라 예상 중이다.

5분 만에 목적지의 절반까지 도달했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자.

아직 방해가 심각한 수준이 아니다.

고작 갑옷을 걸치고 이 만큼의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 6분의 1에 해당하는 시간이 흘렀다.

저 멀리 태풍의 핵이 지상에 도달한 것처럼 휘몰아치는 입자의 폭풍이 보였다.

그건 마법으로 발생한 현상이라기보다는 화산이나 지진과 같이 하나의 커다란 자연재해로 보였다.

그 안으로 발걸음을 들이며 어떤 위기가 기다리고 있을지 감히 짐작할 수도 없었다.

등 뒤를 돌아보면 여태껏 걸어온 길이 보였다.

공간이 지나치게 꼬인 곳을 피하고 안전한 지대를 골라 걸은 탓에 구불구불하게 찍힌 발자국.

그 발자국을 되짚어간다면 손쉽게 빠져나갈 수 있다.

무수히 많은 타협책이 떠올랐다.

어쩌면 아멜리아가 자력으로 폭주를 멈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난수 공간 속에서 마법을 파훼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설령 우여곡절 끝에 그녀의 앞에 도달해도 에렐림 공작의 포격에 맞고 객사할지 모른다.

시우는 불사신도 아니고, 목숨을 여벌로 챙기고 다니는 슈퍼마리오도 아니다.

아멜리아를 구해내겠다는 것은 책임지지 못 할 과욕이오, 만용이었다.

그 위대하다는 마녀들도 손사래 치며 피하려는 재난을 무슨 깡이 있다고 기어들어 가려고 했던 걸까?

아멜리아와 헤어진 이후 둘은 한 번도 다시 만나지 않았다.

처음엔 몸의 절반이 뜯겨 나간 듯 괴로웠지만, 이별의 슬픔을 토사처럼 덮은 시간 위로 삶은 피어났다.

회자정리 (會者定離)라.

소중했던 사람과 어긋나고 남남이 되는 것은, 그리 대단치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본디 만남이란 먼 훗날의 헤어짐을 기약하는 행위인 것이다.

아멜리아가 없어도 세계는 돌고, 시우의 일상도 돌겠지.

조금만 포기하면 스승님이, 샤론이, 쌍둥이가 기다리고 있는 아늑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여느 때와 같은 평안을 누릴 기회, 편안하고 달콤한 선택지가 남아있다.

“아니.”

고개를 저었다.

어깨너머로 기어오르던 망설임이 가벼운 몸짓에 잘려나갔다.

비슷한 경험은 많았다.

시우를 아는 많이 이들이 묻곤 했다.

왜 매번 남을 위해 목숨을 거느냐고, 어떻게 그렇게 무모할 수 있냐고.

걱정 어린 꾸지람을소중한 사람들에게 들어왔다.

더러는 겉으로 보이는 용기와 이타심에 찬사를 보내왔던 적도 있다.

그러나 시우는 그때마다 멋쩍게 머리나 긁적였다.

왜냐하면 일련의 행위는 이타심이나, 정의심에서 기인한 자기희생 따위가 아니었던 까닭이다.

신시우는 불가능한 싸움을 가능케 하는 영웅도 하물며 속리를 초월해 만민을 이끄는 성자의 재목 아니다.

그저, 알고 있을 뿐이다.

언뜻 보이는 눈앞의 위기가 두려워 도망치고 포기한다면 미래는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아무런 결함이 없는 공예품 같아 보여도 어딘가 치명적으로 일그러져 있겠지.

평안한 일상을 보이더라도 문득문득 떠오르며 후회에 잠길 것이 분명하다.

‘그때 좀 더 용기를 내볼걸’ 따위의 질척한 아쉬움을 읊조리며 말이다.

시우는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

회한에 젖고, 후회를 남기며, 불완전한 미래에서 쓰게 웃을 바에 팔을 뻗어 잡을 수 있는 손이 있다면 끌어올려 주고 싶다는.

순전한 이기심일 뿐이다.

-기익! 기익! 기익!

“이번만 말 좀 잘 들어주라. 무사히 돌아가면 기름칠해줄 테니까.”

밖으로는 난수 공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안으로는 붉은가지를 통제하기 위해 실로 진땀 나는 한 걸음을 내딛자마자 아까부터 불길한 붉은가지가 아예발광을 시작했다.

시우는 몸을 스쳐 지나가는 벽을 느꼈다.

대기의 질이 바뀐 것처럼 단숨에 왜곡장에 전해져오는 압박감.고작 한 걸음을 더 내디뎠을 뿐인데 세상의 모습이 뒤바뀐다.

분명 시우는 같은 지점을 바라보고 있었을 터이다.

하지만 고작 한 걸음을 경계로 타로 타운은 뒤바뀌어 있었다.

모래밭에서 두어 번 굴린 그래픽카드로 게임을 실행한 것처럼 세계가 부서져 있었으니까.

2.

조감도를 받아보고 목적지를 정했을 때 내심 걱정했었다.

타로 타운이 어디 영어 마을도 아니고 손바닥만 한 규모 인 것도 아니다.

엄연히 게헨나에서 두 번째로 큰 지부를 자랑하는 타운이다.

더군다나 난수 공간 내부에서 탐색하는 것은 아멜리아가 어디 있는지 찾는 것부터 고역일 것이라고 비관하고 있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그녀가 어디 있는지 아주 직관적으로 세계가 알려주고 있다.

-쿠우우우!

그것은 마치 초현실주의 작가가 환각계열 마약을 거하게 들이‘빨고 그려낸 그림 같았다.

두둥실 떠오른 석조 주택이 보인다. 뒤집힌 마차가, 뾰족뾰족하게 치솟은 지반이, 허리가 휘어 자란 나무처럼 둥글게 꺾여있는 종탑이.

왜곡된 것은 비 단 사물에 국한되지 않았다.

하늘이 이상하다.

누더기를 조각조각 기워낸 것처럼 온통 녹빛으로 빛나는 세상 속에서 어떤 부분은 새벽의 여명이, 어떤 부분은 오후의 쾌청함이, 어떤 부분은 불타오르는황혼이, 어떤 부분은 파르스름한 별빛이.

누덕누덕해진 옷자락을 누덕누덕 기워 넣은 것처럼 불길하게 빛난다.

땅이 이상하다.

누군가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니?’ 라고 묻는다면 얼추 묘사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래서 땅은 어떻게 됐는데?’라는 질문이 추가로 들어온다면 말문이 턱 막힐 것 같았다.

펼쳐진 것은 분명 평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시우의 뇌는 그것을 아주 깊게 파인 분화구라고 인식했다.

그런데 잠깐 눈을 떴다가 감으면 그랬냐는 듯 평평해 보이기도 한다.

눈으로 보이는 것과 인지하는 것 사이의 괴리감.

마력의 흐름을 꿰뚫어보는 왼쪽 눈조차 이 공간을 정의할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건 소리 없이 휘몰아치는 검은 미립자 폭풍의 핵, 움푹 패 들어간 정중앙에 아멜리아가 있으리라는 것이다.

시우는 시험 삼아 최대한 커다란 목소리로 외쳐보았다.

대답이 돌아오길 바라며 말이다.

“아멜리아님!”

돌아오는 것은 적막뿐.

이 빌어먹을 공간은 메아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무분별하게 퍼져나가는 독버섯의 군종처럼 범위를 넓혀가는 입자의 폭풍이 출렁일 뿐.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눈을 딱 감고 숨을 푸우 내쉬었다.

더 구경하고 있을 시간 따위는 없다.

시우는 왜곡장이 망가지지 않게 주의하며 신중하게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겼다.

-기긱! 기기긱! 기기기긱!

이곳이 방사능 오염지대라면 지금 왜곡장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방사능 측정기가 내는 경고음이나 다름없다.

굳이 경고를 들을 것도 없이 이미 머리에 열이 오른다.

심해에 가라앉는 깡통처럼 찌그러지려는 왜곡장을 유지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순발력을 요구했다.

“어?”

시우는 아연실색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보였던 까닭이 다.

“여자아이?”

마치 요정처럼 찬연한 금빛으로 빛나는 실루엣.

원근감마저 기이하게 뒤틀린 탓에 확실하진 않지만, 시우의 허리에 간신히 올 듯한 아이가 내달렸다.

그리고 눈을 두어 번 끔뻑이는 사이 사라져 버렸다.

환상처럼.

지나친 긴장감에 정신마저 이상해지기 시작한 건가.이런 곳을 나돌아다닐 수 있는 소녀가 존재할 리 없는데.애석하지만 우물쭈물할 시간도 여유도 없다.

그리고 마침내.

시우는 움푹 파인 분화구 근처에 닿았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 현실감 없는 풍경이었다.

마을 전체가 안으로 말려들어 간 것처럼 어두컴컴한 구덩이.

그 주위로는 허리케인에 철가루가 휘날리는 것처럼 작은 입자들이 툭툭 왜곡장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키잉! 키잉! 키잉!

언뜻 보면 화산분출 이후 낙진으로도 보이는 그것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놈들이 아니었다.

셀 수 없이 작고 미세한 입자가 왜곡장에 부딪칠 때마다 섬뜩한 불똥이 튀며 계산에 착오가 생긴다.고작 흩날린 몇 쪽이 부딪치는 것만으로 이 지경이다.

뜨거운 머리를 부여잡고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압박이 강해진다.

쉬운 일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저항이 강할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다.‘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벌이고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이 저절로 아른거릴 정도로.

-파칙!

그때 왜곡장을 뚫고 들어온 단 하나의 입자가 손끝에 닿았다.엄밀히 말하면 직접 닿은 것도 아니다.

“큭!”

검은 갑주의 건틀렛에 닿았을 뿐인데도 견고하게 직조되었던 그림자의 갑옷 전체가 크게 출렁인다.

통제를 벗어나 울룩불룩 튀어나오려 하는 그림자를 시우는 가까스로 다잡았다.

샤론의 강화가 아니었다면 단숨에 형체를 잃고 흩어져 버렸을 통제력.

이대로는 무리다.

저 안에 들어간다면 죽는다.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좋아. 괜찮아.”

불안해지려는 마음을 다독이며 시우는 의도적으로 왜곡장에 아주 조그마한 틈새를 만들었다.

몇 개의 입자를 의도적으로 받아들이고 즉각 갑옷으로 쳐낸다.

-끼이이이익!

이를테면 예방접종이나 다름없는 행위지만 갑옷은 고압 프레스기에 말려 들어간 것처럼 울부짖는다.뭔가 말을 하거나 생각할 틈도 없었다.

그저 갑옷에 일어나는 영향을 역산하고 추론해 이 입자의 성질을 알아내는 것.

오직 그것만이 저 죽음의 구덩이에 몸을 던지고 살아남는 방법이다.

-기이이이익!

날뛰는 말을 진정시키듯 갑옷의 구조를 다잡으며 입자의 영향력을 역산했다.

“이건….”

그 결과 발견해 낸 한가지.

이건 놀랍도록 자율방어의 체계와 닮아 있었다.

누구의 존재도 접근을 용서치 않고 스스로를 유폐하는 기형적인 자율방어.

그녀는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밀어내려 하고 있었다.

왜?

치솟는 의문은 잠시 내려놓는다.

눈S 감고 정신을 집중해 1H옷 구석구석 뻗은 회로에 접촉한다.

튀어 오르는 스파크.

제어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 발악하는 시우의 갑옷과 그것을 암세포처럼 잠식하려 드는 검은 입자와의 싸움.

눈이 아플 정도로 현묘하게 피어오르는 불길은 만화경 안에 펼쳐진 끝 없는 기하학적 문양을 연상시킨다.

언뜻 불규칙의 연속으로 보이는 것이지만 규칙이 있다.

달아오른 채 길게 이어진 뇌 신경이 불타오르는 작열감 속에서 시우는 그 규칙을 따라 잇는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마법적 지식과 경험, 그리고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영감을 이어 새로운 규칙을 만들려 했다.

머릿속에 펼쳐지는 면적 수 헥타르에 달하는 거대한 칠판.

프린터기보다 빠르게 쓰이는 마법적 수식과 공식을 폐기하고, 써내려가고, 검증하고, 폐기하고, 써내려가고, 폐기한다.

“아….”

뇌를 혹사시키는 것과 다름 없는 연산 끝에 시우는 깨달았다.

이 시도는 크리스탈 잔이 바닥에 떨어지고 나서 3초 뒤 모습을 정확하게 그려내려는 것과 다름없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수십 개의 잔을 동시에, 촉박한 시간제한을 두고서.

라플라스의 악마라도 데려오지 않는 한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다.

눈을 뜨고, 지나친 사고의 가속에 협소해졌던 시야가 트이자.입자의 폭풍은 어느새 시우의 목전까지 치닫고 있었다.

얼얼해진 코에서 흘러나오는 짙은 쇳내.

깨달았다.

막아내는 것은 무리다.

시우의 능력으로 역산도 방어도 어느 쪽도 불가능하다.

-끼이이익! 끼이이익!

이제는 사위를 새까맣게 물들이고 있는 입자가 사납게 왜곡장을 물어뜯길 시작한다.붉은가지가 미친 듯이 진동하며 결계와 왜곡장을 사방으로 뻗쳤지만 무의미해 보였다.머지않아, 빠른 시간 내에 시우는 입자에 휩쓸릴 것이다.

일단은 몸을 빼자.

이대로 안에 진입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연산을 끝낸 이후, 혹은 다른 방법을 찾은 이후 시도해야 한다.

그렇게 결심한 시우가 땅을 박찼을 때.

-쿠우우우웅!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격렬한 진동이 일었다.

“뭐…?

어느샌가 바닥이 기울어 있다.

싱크홀이 생겨나기라도 한 것처럼 순식간에 영역을 넓힌 구덩이가 지면을 앗아간다.이 공간에서 시우는 고작해야 왜곡장과 갑옷을 유지한 채 달려나가는 것이 전부다.리본도, 좌표이동도 하물며 날개도 펼칠 수 없다.

“이런 시발.”

유전자 깊이 각인된 유구한 감탄사가 튀어나오며.

시우는 끝이 보이지도 않는 무저갱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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