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우는 이변을 감지하자마자 마법을 전개했다.
황금빛 좌안에 비친 마력의 물결은 몹시 거칠고, 또 겉잡을 수 없이 막대해서 마치 천재지변을 보는 듯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인지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지만 리본을 펼쳐 최대한 많은 시민을 끌어안고 샤론과 함께 달렸다.
화산재처럼 내려앉은 입자는 점유한 공간 자체를 자신의 것으로 잠식했고, 폭주는 타로 타운의 경계 부근에 들어서야 멈췄다.
“이게 무슨.”
마치 장벽으로 갈라놓은 듯 일렁이는 경계면.
경계 너머 보이는 풍경은 더는 시끌벅적했던 축제가 벌어지던 보더 타운이 아니었다.
대신 기형적으로 뒤틀린 상과 색채들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인다.
그것은 변덕스러운 신에 의해 왜곡된 세계를 연상시켰다.
이와 같은 현상을 시우는 알고 있었다.
비앙카가 쏘아냈던 활과 시우의 창이 맞부딪쳤을 때 일어났던 공간의 난수화.
“시우야, 아멜리아라니…?”
느닷없는 상황에 당황스러운 것은 샤론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샤론은 이런 참사가 벌어지기 전 그가 읊조리던 이름을 들었다.
아멜리아 메리골드.
향수의 마녀라는 이명을 지닌 게헨나의 남작이자, 조금 복잡한 과거를 지녔던 여자.
시우가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길 피하는 듯했기에 자세히 캐묻지 않았지만, 시우가 그녀의 전속 노예였고 두 사람 사이에 모종의 사건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런 샤론의 의문에 답해주기에 정신이 너무 멍했다.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이 눈앞에서 펼쳐지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실시간으로 느끼고 있었다.
아멜리아가 왜 이런 짓을?
원칙적으로 게헨나 내부에서 대규모 마법을, 이면결계도 없이 행사하는 것은 금지 행위다.
더군다나 그녀의 마법은 이미 수천에 달하는 시민들에게 쏟아졌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공간까지 왜곡시켜버렸다.
이 공간이 정확히 어떤 영향을 끼치고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인간에게 유해하고 실제로 끔찍한 참사가 벌어지고 있다면,이후 아멜리아의 처우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추방 이후 공적 지정.아니면 즉결 처형.
혼란스러운 머릿속 최악의 시나리오가 머리를 스쳐 지나가자 당장 해야 할 일이 떠오른다.
지금 중요한 건 왜 그랬냐가 아니다.
어떻게 이 사건을 최소한의 피해로 막아내느냐다.
들어가야 한다.
저 안에 사람들이 살아있다면 구해내고, 아멜리아가 있다면 당장에라도 말려야 한다.
“샤론, 미안해. 나중에 이야기해줄게. 지금은 잠깐 다녀올게.”
“뭐? 저기로 들어가려고?”
샤론은 화들짝 놀랬다.
곧장 팔을 벌려 시우를 제지했다.
“안 돼! 저길 미쳤다고 들어가!”
“괜찮아, 예전에도 겪어본 적 있어. 난수화된 공간이잖아.”
“너 미쳤어? 이게 그냥 난수화된 공간으로 보여?”
샤론은 손가락으로 척 경계면을 가리켰다.
그녀 역시 사람들 구출에 일조하며 등 뒤에서 쏟아지는 마법을 보았다.
그건 모든 것을 멈춰 세우고 있었다.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휘말린 사람들은 제자리에 정지하고, 흙바닥과 돌벽을 가리지 않고 무수한 꽃이 피었다.
그 현상은 단순히 난수화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었다.
최적화된 체계를 통해 새로이 확립된 하나의 대규모 마법이다.
아무리 인명이 귀하다지만 시우는 그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다.
그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나도 알아.”
“알면서 어쩌겠다는 건데!”
“일단 사람들 좀 꺼내고…. 말려야지.”
샤론도 알고 있다.
시우라면 안에 사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향할 것이다.
더군다나 아마 시우의 옛 연인이 분명한 지인이 모종의 사고에 휘말린 것이라면 목숨을 걸어서라도 구하러 갈 것이다.
하지만 이 앞에 무슨 마경이 펼쳐져 있을지 모른다.
어떤 위험이 혼재했을지 모르는 미궁에 가장 먼저 첫발을 들이는 꼴이 될 것이다.
“시우 군!”
그때 뾰족한 목소리가 큰 소리로 시우를 불렀다.
뒤를 돌아보니 알비레오 백작이 치마자락을 휘날리며 날아오고 있었다.
“기다려요!”
별안간 타로 타운에 나타난 거대한 마경.
아멜리아와 교류가 있던 알비레오인 만큼 이것이 누구의 소행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워낙에 특색있는 마법인지라 선대와 인연이 있는 마녀라면 금방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백작님.”
알비레오는 결의가 서린 시우의 얼굴을 보고 서둘러 달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꼼짝없이 사위를 잃어버릴 뻔했다.
“경거망동하지 마세요. 세피로트의 나무에서 회의가 소집됐어요. 다수의 귀족이 해결을 위해 논의 중이에요.”
그만큼 중대한 사안이었으며 게헨나 최고위계 마녀들이 모인 만큼 사태 파악 또한 용이했다.
“지금 들어가 봤자 별 소용 없을 거예요. 예소드 백작과 난수화된 공간의 패턴을 정리하고 있어요. 코하브 백작의 소견에 따르면 당장 공간의 난수화는 멈췄고 안정화에 접어드는 상태라고 해요.”
“무슨 말씀이신가요?”
“조금 더 사태를 관망하고 확실한 대처를 마련한 뒤에 진입해도 된다는 의미에요! 아직까지 이 공간은 평범한 인간에게 위해를 가하지는 않다는 결과가 나왔으니까요.”
그제야 시우는 턱밑까지 차올랐던 조바심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시민들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없다.
그것만으로 최악의 결과는 피했음을 뜻했다.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둘째치고 아멜리아의 공적행이 확정된 것은 아니라는 의미니까.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요. 백작님?”
샤론도 가슴을 쓸어내리며 알비레오에게 물었다.
“저 대신 참석한 데네브가 회의 결과를 알려줄 테니 제발 부탁이니까 무턱대고 들어가지 마요.”
시우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속이 쓰리다.
조금 여유가 생기고 나서야 아멜리아가 ‘왜’ 이런 짓을 벌이게 되었는지에 대한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원인이 자신과 맞닿았을 수도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 진입할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래요, 상황이 난처한 것은 알겠는데 일단은 진정해요.”
붉은가지가 필요하다.
과거 무의식 상태의 시우가 난수화 공간 속에서 마법을 펼쳐 날아갈 수 있던 것은 왜곡장을 활용했기 때문이니 말이다.
또한 난수화 패턴이 정리된다면 미궁의 지도처럼 활용하여 그 안에서 좀 더 안전하게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겠지.
시우는 침음을 삼키며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경계의 저편을 바라보았다.
2.
게헨나가 생긴 이후 이토록 빠르게, 그리고 많은 귀족이 회의에 참석한 사례는 손에 꼽을 것이다.
사건 10분 만에 자그마치 20명의 남작과 4명의 백작이 소집에 응했다.
사실상 게헨나에 머물고 있는 귀족의 전부나 다름없다.
제각기 파티를 즐기고 있던 것인지 화려한 옷차림이지만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은 면면은 하나같이 낯빛이 심각하다.파티 중 자리를 박차고 나와야 하는 건 굉장히 성가신 일임에도 싫은 기색을 내비치는 이 하나 없었다.
귀족 출신인 대마녀들에게 게헨나는 곧 고향이었고 삶의 터전이다.
갑작스레 닥친 이 미증유의 사건에 다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만한 인원이 모였음에도 회의는 진행되지 않았다.
데네브의 옆에 앉은 예소드 백작만이 전공분야를 살려 시시각각 수정구로부터 송출되는 난수 패턴을 분석하고 있을 뿐.
아직 회의를 주최한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늘같이 뾰족한 긴장된 공기 사이로 문이 열리며 모두가 기다리던 마녀가 회장 안으로 들어섰다.
- 또각또각또각
회의장 안에 유달리 크게 울리는 굽소리가 이목을 끈다.
허리까지 늘어진 묵빛 장발과 설원처럼 새하얀 눈동자.
게헨나 최대 규모 학파인 진리지명 학술회의 학회장이자 셋밖에 없는 공작.
24 위계의 대마녀, 블랑쉬 에렐림.
그녀는 최측근인 ‘이본느 코하브’ 백작을 거느린 채 자리에 착석했다.
마녀인 만큼 아름답기로는 흠잡을 곳이 없다.다만 분위기는 지나칠 정도로 이질적이다.
어느 정도 인간적인 모습을 내비치는 다른 마녀에 비해 에렐림 공작은 밀랍인형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해도 믿을 정도로 생동감이 없었으며, 그 혈관에는피 대신 수은이 흐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자신을 기다리던 마녀들 앞에서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착석한 그녀는 나긋한, 그러나 여전히 무기질적인 음색으로 인사를 건넸다.
“먼저 밖으로는 무도한 공적의 난동으로 혼란스러운 가운데 이런 불미스러운 사건이 위대한 도시 게헨나를 어지럽히는 일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그 첫마디에 데네브의 안색이 굳었다.
에렐림 공작은 불미스러운 사건이라는 단 한마디로 자신의 견해를 표명한 것과 다름없다.그녀는 이미 메리골드 남작은 잠재적 위험 요소로 분류하고 있다.
“긴급히 회의를 소집한 까닭은 여러분의 지혜를 모아 작금의 소요를 진정할 방책을 논의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에렐림 공작 개인의 의견만이 아닌, 이 자리에 모인 마녀들의 여론을 움직일 피력이기도 했다.
무릇 현세에서 권력을 지탱하는 뿌리가 자본인 것처럼, 게헨나의 권력을 지탱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마법이다.
게헨나가 존재하기 전부터 마녀로서 존재했으며, 24 위계에 오른 에렐림 공작에게는 무수한 추종자가 존재했다.
당장 이 회의장만 봐도 3분의 1 이상이 그녀의 학파에 속해있다.
유리알 같은 눈동자를 굴려 자리에 마녀를 훑어본 에렐림 공작은, 즉각 본론을 입에 담는다.
“이에 저는 아멜리아 메리골드 남작의 작위를 박탈하고 추방. 요구를 거부하거나 대화에 응하지 않을 시 공적으로 간주하고 토벌할 것을 건의합니다.”
동시에 어마어마한 술렁임이 회의장 전체로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