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1.
참으로 낯부끄러운 검증이 끝났다.
“응... 으구우….”
엎드린 채로 잠꼬대하듯 앓는 소리를 내뱉던 데네브는 휙 몸을 일으켰다.
“헉!”
해바라기 씨를 빼앗기는 꿈을 꾼 햄스터처럼 깜짝 놀란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상황을 인지한다.
도대체 무슨 말이 쏟아질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던 시우.
“언니, 나 씻고 올게.”
하지만 정신을 차린 데네브는 시우 쪽은 바라보지도 않은 채 휘청휘청 욕실로 걸어갔다.
다리에 힘이 제대로 풀려 비틀거리는 모양새가 꼭 갓 태어난 사슴 같았다.
알비레오는 아까 앉던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애꿎은 모서리만 톡톡 손톱으로 두들길 뿐 뭔가 대화가 진행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럼 저도 씻고 오겠습니다.”
어색한분위기.
시우는 재‘빨리 가운을 걸치고 양해를 구한 뒤 샤워실로 향했다.
-쏴아아아!
쏟아지는 온수를 몸으로 받으며 오일과 정액 범벅이 된 장대와 데네브의 애으벅이 묻은 불알을 꼼꼼히 씻었다.
“이게 뭔 일이래….”
영체가 된 이후 깨닫게 된 한 가지는 시우에겐 정력의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추 크기는 별다를 바 없었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현자타임 없이 섹스가 가능하다는 것은 페리윙클 때 확인이 끝난 상태.
따라서 질펀한 사정 뒤에도 시우의 물건은 여전히 꼿꼿하게 서 있다.
어찌나 꽉꽉 자지를 물어대던지 고무줄로 한참 묶었다가 푼 것처럼 감각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시우는 물 온도를 냉수로 맞춰 억지로 몸의 열기를 가라앉혔다.
거사가 끝났음에도 아랫도리를 빳빳하게 세워서 나가서야 알비레오도, 데네브도 볼 낯이 없다.
발기가 가라앉길 기다렸다 대충 물기를 닦고 옷을 입는다.
한참 향유에 절인 탓인지 자지는 디퓨저 스틱이 된 것처럼 향긋한 향기를 풍겼다.
옷을 다시 갖춰 입고 돌아왔을 때도 데네브는 한창 몸을 씻고 있는 듯했다.
방에서 홀로 기다리던 알비레오도 진정된 것인지 소파로 옮겨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런 어색어색한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스몰 톡이 최고다.시우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알비레오에게 말을 걸었다.
“결과는 나왔나요?”
조금 전 행위가 어디까지나 검증이었음을 환기함과 동시에 이 자리를 가장 빠르게 벗어나게 해주는 질문이다.
“나왔어요. 예상대로네요. 데네브는 귀납법을 운운했지만, 처음부터 정해진 거였으니까요.”
“그건 그렇죠…. 괜한 일을 한 셈이네요.”
괜한 일은 아니었다.
기분이야 무척 좋았다.
도의적인 문제를 내려 놓는다면 데네브처럼 예쁜 누님과 몸을 섞는 것이 생리적으로 싫을 리 없다.
다만 미적지근한 마음으로 시작한 성교가 이 정도로 화끈하게 변하리라는 것은 시우조차 예상 못 했달까.
알비레오를 애타게 찾으며 앙앙거리던 데네브의 모습은 차라리 폭력에 가까운 꼴림이었으니 말이다.
시니컬한 알비레오라면 ‘그런 것 치고는 너무 즐기시던데’라고 톡 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무언가 반박하려고 입술을 달짝이던 알비레오의 입이 다시 꾹 닫힌다.
데네브 역시 그 이상으로 망가지는 모습을 보였으니 시우를 탓하는 순간 데네브의 추태도 지적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쌍둥이와의 교제는 허가 받았다고 여겨도 좋을까요?”
“저야 원체 허가하는 쪽이었고, 데네브도 한 입으로 두말하지는 않은 거에요. 다만, 허락받았다고 좋다고 날뛰다가 사고 치지 말고 항상 조심해요. 그때는저도 당신을 용서하지 못할 테니까.”
“명심하겠습니다.”
그거야 당연한 일이다.
“하아… 그리고 또 어쩌냐…. 오늘 밤일은 절대 비밀인 거 아시죠?”
“쌍둥이에게도 말하면 안 되나요?”
“안되죠. 양해해주셨으면 해요. 데네브는 어찌 보면 쌍둥이보다도 미숙해서 이런 결정을 내렸지만 앞서 말했듯이 사심이나 욕심은 없었을 테니까요. 물론지금도 없을 거고요.”
사실 알비레오가 예상했던 대로 사무적인 섹스로 끝났다면 쌍둥이에게 진실을 소상히 밝힐 의향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역효과만 날 것 같달까.
따라서 이건 함구하는 편이 나으리란 판단을 내렸다.
“마지막으로, 야밤에 고생 많았어요.”
“아닙니다. 두 분이 더 많이 고생하셨죠.”
“나가보세요.”
이렇게 짧은 대화가 끝났다.
알비레오의 말투를 보나 행동을 보나 자리를 피하려는 느낌이었다.
하긴 그 꼴을 보이고 보았으니 시우 역시 같은 심정이긴 한데….
싸우고, 두들겨 맞고, 심문당하고, 혼나고, 작은 장모님께 항문안인사를 드리기까지 장대한 여정에 비하면 싱거우리만치 가벼운 마무리였다.따라서 데네브와도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 데네브 님과는 대화하지 않아도 될까요?”
“데네브도 저와 같은 의견일 거예요. 그러니까 들어가 보세요.”
“네, 감사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시우가 퇴실하고.
알비레오는 잠깐 기다렸다가 여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데네브 나와. 갔어.
“...흐흐 ”= = .
욕실로 이어진 응접실 복도와 침실 사이 기둥 뒤 가운을 싸맨 데네브가 헛기침하며 나왔다.
과연 영체의 회복력은 우수했다.
고작 첫 경험 실신 정도의 체력 손실은 금방 회복해냈다.
막 욕조에서 업무를 끝내고 나왔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평소와 같은 모습이다.
“무, 무슨 소리야? 방금 므! 씻고 나왔는데? 언니는 내가 기둥 뒤에서 시우 군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는 식으로 말하네?”
데네브는 소파에 앉아 알비레오가 마시던 잔을 뺏어 들더니 내용물을 벌컥벌컥 비웠다.
얼음에 충분히 녹지도 않은 것을 원액으로 콸콸 부었으니 속이 쓸 수밖에.
데네브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털썩 앉았다.
사위에게 첫 경험을, 그것도 뒤로 헌납하며 헐떡이던 여동생.
그런 여동생의 모습을 지켜보던 언니가 동석에 앉게 된다면 벌어지는 미묘한 화학작용.
한 마디만 잘못 꺼내도 데네브에게 치명타가 될 수 있는 상황이기에 침묵이 길어진다.이대로 더 있다가는 숨 막혀 죽을 것 같았던 알비레오가 먼저 말을 꺼냈다.
“거 봐. 그래도 내 말이 맞았지?”
“뭐, 뭐가?”
“마력 오염의 문제 없다는 거. 큰 위험이 있었으면 내가 알아서 조처했을 거라니까.”
비록 정신을 반쯤 놓긴 했지만 데네브의 모성은 우수했다.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시우의 물건이 끼치던 영향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판정 결과는 알비레오와 마찬가지로 ‘큰 위험 없음’.
안전 인증마크를 몸소 받아낸 것이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는 무슨 주제로 대화해도 조금 전 아수라장을 연상케 했다.다시 떠오르는 객쩍었던 침묵 속에서 이번엔 데네브가 먼저 입을 연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별거 아니던걸?”
“응? 그게 무슨소리니?”
“이런 일은 처음이라 힘들 거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아무것도 안 느껴졌어.”
아무것도 안 느껴졌다고?
이게 갑자기 무슨 흰소린가 싶어 고개를 갸웃하는 알비레오
“고작 저 정도 쾌락을 위해서 남녀 관계를 취미 삼는 마녀도 있다니. 하여간 이해가 안 간다니까?”
“민망하지 말라고 일부러 소리도 좀 내주고 좋아하는 척하느라 좀 힘들었네.”
데네브는 팔짱을 끼고 말했다.
오늘 처음 딱 한 번 해 본 주제에, 그것도 그렇게 흐트러진 추태를 보였으면서 말본새는 세상 모든 남자를 쥐락펴락하는 팜므파탈이다.
세상에….
너무나도 빤히 보이는 여동생의 의도에 할 말을 잃은 알비레오.
그러니까 데네브는 자신이 언니 앞에서 보였던 추태가 모두 연기였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듯하다.
“사실 방금 시우 군이 나가는 거 기다린 거 맞아. 근데 그게 부끄러워서 그런 거 아닌 거 알지?
시우 군이 침대에서 자신만만하게 굴던데. 내 입으로 진실을 말하게 되면 괜히 실망할까 봐 그런 거야. 언니는 이해하지? 나도 참…. 배려심이 너무 많아서문제라니까.”
“응? 응… 알지. 이해하지.”
“아무튼, 괜히 이상한 기분만 들고, 딱히 부끄럽지도 않고, 별로 기분 좋지도 않았어. 혹시 언니가 궁금해할까 봐 말해주는 거야. 별거 아니라고.”
애잔한 데네브의 뒷수습에 알비레오는 차마 자신 역시 데네브의 감각에 공명해 절절한 쾌감을 느꼈다는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정확히 데네브가 느낀 것의 몇 퍼센트가 전이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절규에 가깝게 울부짖던 데네브의 모습을 보면….
그녀가 느껴버렸던 것은 확실할 텐데.
“Oh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남녀관계가 혈액순환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고는 하더라.
근데 우리는 마녀니까 혈액순환이 개선돼도 좋을 것도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아, 그리고 눈물도 조금 났던 것 같은데 그거는 침구에서 튀어나온 깃털에 눈이 찔려서 그랬던 거고, 중간에 언니 계속 불렀던 건 제대로 측정하고 있는지확인하려고 그랬던 거고, 막 발버둥 쳤던 건 자세가 너무 불편해서 좀 바꿔보려고 했던 거고….”
그렇지만 중언부언과 변명을 기관총처럼 소사하는 데네브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는 않았다.어차피 다시는 없을 일일 테니 묘지까지 가져갈 비밀인 셈이다.
“그랬니?”
“그랬구나.”
“아하, 그래서?”
“너가애 많이 썼다. 고생했어.”
알비레오는 안쓰럽게까지 느껴지는 여동생의 변명 랩소디를 차분하게 어깨를 다독이며 1시간이나 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