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2
1.
“장난치는 거지?”
장난이 아닐 것이라는 걸 확신하면서도 알비레오는 물었다.
데네브는 진지하다.
알비레오가 짓궂은 농담을 좋아하는 것에 비해 빈말하지 않는 성격이다.
하물며 쌍둥이의 안위가 걸린 일에 마음에도 없는 헛소리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내가 지금 장난하는 거로 보여?”
“데네브, 너 많이 흥분했구나. 바람 좀 쐬자.”
제법 오래 살았고, 산전수전을 다 겪은 알비레오인데 어째서 신시우만 엮이면 이렇게 기절초풍할 일들만 생겨나는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었다.
“그리고 언니의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어. 내 몸은 내 것이니까. 제가 묻는 건 당신의 의사예요.”
“몹시 송구하지만, 어려울 것 같은데요….”
알비레오의 추파를 거절했던 것과 같은 이유였다.
심지어 시우는 ‘앞으로 잘하자라는 다짐을 한 지 며칠도 지나지 않은 상황.
데네브의 말을 따르면 쌍둥이의 신뢰를 비롯 샤론과 엘로아의 신의도 크게 져버리게 될 것이다.
설령 그것이 쌍둥이와 함께 있기 위한 조건일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데네브는 단호했다.
“그렇다면 저는 여전히 시우 군을 용서하지 않겠어요.”
“왜? 왜 그렇게 되는 건데?”
“쌍둥이의 그릇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건 귀납적인 결과에 불과해. 실제 행위 당시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아무도 모르잖아? 나야말로 언니를 이해할 수 없어! 다름 아닌 오딜과 오데트의 일인데 얼렁뚱땅 덮어두다니!”
사실 남성이 사정하거나 발기할 때 발생하는 마력은 아주 미세하다.
그릇에 영향을 주려면 자궁입구에 바짝 붙인 채 정을 토해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삽입구가 다르다면, 그리고 여태껏 쌍둥이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면 안전하리라는 것이 알비레오의 판단이었다.비단 시우 뿐 아니라, 쌍둥이가 분별을 잃고 앞에 삽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도 있었고 말이다.
“아니, 데네브? 아무리 그래도 그건….”
“그게 싫다면 계승 전까지는 철저하게 격리해야지.”
이제와서 시우가 ‘그럼 계승 전까지는 손도 안 대겠습니다’라고 말한다고 믿을 분위기도 아니다.
데네브의 신뢰를 개박살내며 터진 사고였으니 구두 조약으로 넘어갈 낌새도 없었다.
설령 믿는다고 해도 데네브는 ‘항문 성교 시 발생하는 마력의 작용’ 자체를 원한다.
결과만으로 확신할 수 없으니 과정까지 검증을 거치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곳저곳에 들이대지 않겠다고 다짐한 판국에 장모님 뒷구멍을 쑤실 수는 없지 않은가?데네브의 제안을 받아들이자니 쌍둥이에게도 샤론과 엘로아에게도 죄를 짓는 기분이고.
반대로 거절하자니 게헨나에서 쫓겨나거나 쌍둥이와 격리될 판국이다.
“대답은?”
“아니아니, 대답이고 자시고…. 정말 할 거야? 정 그게 문제라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도 되잖아. 에버그린 양이라던가, 티페레트 공작님이라던가….”
알비레오의 말도 옳다.
데네브가 딱히 욕망에 절어 저런 부탁을 하는 건 아니겠지만, 정 뒷구멍성교로 인한 결과가 걱정된다면 시우의 연인 중 한 명에게 부탁하여 알아내는 방법두 있다
물수커다란 무례를 저지르는 일이겠지만 데네브가 용납하지 않는 이유는 예의범절의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이렇게 중요한 걸 어떻게 남한테 넘겨! 그리고 그 두 사람이 불리한 증언을 하겠어?”
“만약 외부에 알려지면 가문의 이름에 먹칠하는 추문이 될 거야.”
“백날 천날 하자는 것도 아니잖아? 딱 한 번만 확인하면 돼.”
“쌍둥이가 싫어할걸?”
“어차피 시우 군 옆에는 여자가 많잖아? 다 자기들 위해서 하는 일인데 무슨 불만을 품겠어.”
어느새 시우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투닥투닥 의견을 겨루기 시작한 두 장모님.
“저기, 그러지 마시고….”
시우도 슬그머니 끼어들려고 했지만….
“시우 군에게는 발언권 없어요!”
“지금 누구 때문에 이런 건데요…. 가만히 좀 있어요.”
이넵.”
양쪽으로부터 되돌아온 서릿발 같은 원망에 즉각 입을 다물었다.
한참이나 계속된 다툼은 지하감옥에서 빠져나와 저택으로 올라갈 때까지 계속되었다.
2.
결국 한마디의 발언권도 받지 못한 채 묵묵하게 데네브의 방으로 끌려온 시우.
데네브의 방은 구조적으로는 쌍둥이 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신 어쩐지 조금 더 성숙한 체취와 더불어 향초 냄새가 은은하게 퍼지고 있다.제머나이 백작과 시우는 테이블에 둘러앉은 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안주는 첨예하게 대립하는 알비레오와 데네브의 말다툼이다.
강력하게 의견을 고수하는 데네브와, 어떻게든 여동생을 뜯어말리려는 알비레오.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문답에 먼저 백기를 든 것은 알비레오였다.
“후우, 알겠어.”
알비레오는 아름다운 자색 눈동자로 힐끗 시우를 흘겨보고는 결심한 듯 말을 이었다.
“정 그렇다면 차라리 내가 할게. 너는 나보다 아무것도 모르잖니.”
제머나이 백작들은 모두 정통파 마녀이고 남성 경험이 없지만, 그나마 이쪽 방면에 지식이 있는 것은 알비레오이다.반드시 사위와 뒷구멍으로 정을 통하는 터부를 저질러야 하겠다면 그 역할이라도 대신 떠맡겠다는 생각이었다.
“...안 돼, 내가 직접 하지 않고서는 직성이 안 풀리겠어. 언니는 나보다 객관적이지 못 해”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쌍둥이가 위험한 짓을 벌이는 걸 알고도 눈감아줬다는 것부터가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증거야!”
알비레오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데네브가 이렇게까;단호하7『나온다면 알비레오로서도 설득할 수 없다.
“쌍둥이가 정말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지를 알아보려면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파악하는 게 최선책이잖아? 그게 아니라면 난 다른 어떤 선택지도 용납 못 해.”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는 데네브의 말에 신음을 삼키던 알비레오가 시우를 바라보았다.
“시우 군.”
“네.”
“협조해줘야겠네요.”
“꼭 그래야만 할까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
알비레오가 쌍둥이 대신 욕정을 풀어주겠다고 제안했던 때의 말이었다.물론 제안이라기보다는 부비트랩 이었지만 말이다.
“그때와는 경우가 조금 다르죠. 게다가 일이 이렇게까지 꼬인 건 시우 군의 잘못도 있어요.”
“그건 부정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리고, 데네브는 아무런 사심이 없을 거예요. 시우 군을 향한 모종의 연정이나 성적 호기심도요. 어디까지나 마법적 탐구를 하겠다는 의미죠.”
옆에서 듣고 있던 데네브가 발끈해 외친다.
“당연하지! 나라고 좋아서 하는 줄 알아?”
“어차피 저희는 계승이 끝나면 사라질 입장이기도 하고…. 눈 딱 감고 한 번 정도만 어울려 주었으면 해요. 시우 군과 쌍둥이의 비밀 장난이 어떤 위험성을내포하고 있는지도 확실히 해야 하지 않겠어요?”
침묵 속에서 숙고의 시간이 흐르고.
“딱 한 번이면 되는 거라고 하셨죠?”
“그래요.”
“알겠습니다.”
사위와 작은 장모님의 위험한 계약이 성사되었다.
아주 조금의 미련이 남은 시우가 사족을 붙였다.
“저, 마지막으로 혹시나 싶어 여쭙는데. 이것도 모종의 함정 아닌가요? 제가 데네브 백작님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간 탈락하는….”
“그랬으면 좋겠나요?”
“제발요 ”
“…저도 유감이네요.”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반전은 없었다.
3.
데네브는 준비를 하겠다며 잠시 욕실에 들렀다.
완전청결이 보장되는 영체이기도 하고 몸을 씻는 것도 마법으로 대체할 수 있지만, 성행위 전 몸을 정갈히 한다는 기분상의 문제는 있을지도 모른다.어쩌면 단순히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을 수도 있고.
시우 역시 가볍게 샤워를 끝내고 가운을 걸친 채 밖으로 나왔다.그리고 깜짝 놀랐다.
당연히 퇴장했을 줄 알았던 알비레오가 침대 옆 의자에 앉은 채 시우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상황을 곱씹어보니 본인도 어이가 없는지 알비레오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진다.
“설마, 알비레오 백작님도 여기 계시려고요?”
“그럴 예정이에요. 데네브가 신신당부했거든요. 실험에 있어 오차를 줄이기 위해 결과값을 이중으로 기록하는 거죠.”
“지져스….”
가뜩이나 뻘쭘한 상황이고 살면서 가장 어색할 것 같은 밤일이 예정된 상황이다.거기에 알비레오 백작까지 참관한다는 것은 벌써 굉장한 현자타임을 안겨주었다.고추는 제대로 설지 모르겠다.
“그렇게 낙담하지 마세요. 저도 별로 보고 싶지 않거든요?”
죽상이 된 시우를 뾰족한 목소리로 지적하는 알비레오.
“...백작님께는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그러&| 신신당부했잖아요. 결국엔 이 사단까지 만들어내다니…. 조금 더 신중과 자중의 자세를 보여주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시답잖은 대화 중 알비레오는 정신적 피로를 느끼는 듯 눈을 꾹꾹 눌렀다.
“데네브가 남성과의 첫관계를 이런 식으로 맺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 했어요.”
알비레오에게 데네브는 여동생이다.
그런 여동생이 일평생을 지켜오던 순결을 엄하게 잃게 생겼으니….
쌍둥이 때와는 또 다른 낙담이 몰려올지도 모른다.
심지어 그 관계가 사위와 장모라는 배덕적인 관계 속에 일어난다면 말이다.
“죄, 죄송합니다….”
“어》도리가 없죠. 데네브가 극성인 것을. 그래도 너무 죄책감 갖진 마세요.
적어도 저와 데네브에게 처녀성이란 아무래도 좋은 것이니까요. 뒤로 하는 것도 처녀성을 따져야 하는 가는 조금 철학적으로 이야기가 넘어가겠지만요.”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데네브는 남녀 관계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저랑은 달리 아주 아주 조금의 관심도 없거든요. 아마 오늘 밤 ‘검증’이 문제없이 끝나면 없던 일로 치부할거니 다른 여자들에게 미안한 마음 좀 덜라는 말이에요.”
알비레오는 턱을 괸 채 다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딴청을 피우고 있지만 나름 시우의 죄책감을 덜어주려는 노력으로 보였다.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고 잘 해봐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골 때리는 일 생기기만 해봐요. 다시 현세로 내쫓아 버리려니까.”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있자, 안방 쪽 욕실을 사용했던 데네브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째 오래 걸린다 싶더니 목욕을 하고 온 모양이다.
가느다란 목덜미에 은은한 열기가 감돌고 있었다.
정장처럼 정갈하게 갖춰 입고 있던 마녀 복이 아니었다.
요즘 같은 날씨에 숄을 두르지 않으면 대단히 추울 것 같은 하얀 나이트 가운이었다.
치맛단은 짧아 길쭉늘씬탄탄한 허벅지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조금만 들춰도 팬티가 보일 것 같았다.
어깨 부분은 슬릿과 레이스로 마감되어 둥근 어깨선이 도드라지고, 워낙에 얇은 탓인지 사부작거리는 옷감 아래로 은은하게 살결이 비쳐 보인다.
모든 감상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야하게 입혀 놓은 인형 같다.
필요한 만큼의 근육만 불필요한 근육도 없이
고귀; 55답;’우휴한 곡선》느리는 데네브의 실루엣은 자연스레 그런 생각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데네브의 표정은 풋풋한 첫날 밤을 보내는 처녀의 것이 아니다.오히려 굳은 결의를 맺은 전사의 것에 가까웠다.
“준비 끝났어요.”
당차게 말하는 데네브의 모습을 본 알비레오.
“하아아아….”
그 입에서 꼭 참으려 했던 깊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