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420화 (420/917)

#420

1.

제머나이는 둘이서 하나.

이것은 단순히 상징적인 의미나 해석에 따른 것이 아니다.

대대로 제머나이의 마녀는 하나의 낙인을 나눠 받은 쌍둥이였다.

예언기관에 의해 점지 되는 견습마녀도 쌍둥이었고, 데네브와 알비레오의 선대.그 선대의 선대, 그 선대의 선대의 선대까지도 죄다 쌍둥이이었다.

둘이 함께여야 완전한 마법을 자아낼 수 있고, 둘이 함께여야 완벽해지는 것이다.

그런 마법의 특성상 둘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가령 데네브가 일정 이상의 마법을 행사하거나 이상이 생기면 알비레오도 그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

저택에서 평화롭게 사업안을 결재하다 별안간 대규모 마법의 행사를 감지한 알비레오는 그 즉시 데네브의 기척이 느껴지는 타로 타운의 중심지로 향했다.

그때 감지된 것은 이면 결계.

주위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기웃거리는 마녀들은 있었다.

이 결계가 데네브의 것이라는 것을 알고 감히 들어가지는 않는 모습이었다.

안에서 마법 실험을 하고 있다면 몰래 들어가는 것만으로 문책을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아이고, 머리야….”

알비레오의 사고는 재빨리 일련의 단서를 연결지어 그럴듯한 추론을 만들어 냈다.

타로 타운에는 쌍둥이의 비밀기지가 있다.

데네브가 난데없이 그 근처에 이면결계를 펼쳤다.

곧장 신시우라는 키워드가 등장하는 것이다.

가령 신시우가 쌍둥이와 애정행각을 벌이다가 데네브에게 걸린 것이라면?

“미치겠네! 진짜.

그건 보통 일이 아니다.

알비레오보다 잔정도 많고 온화하며 다른 사람을 생각할 줄 아는 데네브지만, 어떤 면모에서는 훨씬 융통성이 없는 성격이다.

알비레오는 재빨리 결계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곤 즉각 자신의 추론이 맞아떨어졌음을 깨달았다.

조금 늦었는지 데네브와 시우는 없었다.

그러나 거둬지고 있는 결계 내부는 멀쩡한 건물이 없었다.

데네브가 마법을 펼치며 대판 날뛴 것이다.

“이거 잘못하면 큰일이겠는데….”

알비레오는 식은땀을 훔치며 머릿속에 한 장면을 떠올렸다.분개한 데네브가 시우의 머리를 똑 떼어내는 모습.

데네브의 마음은 십분 이해한다.

그러나 쌍둥이를 위해서라도 최악의 상황이 발생해선 안 된다.

알비레오는 즉시 데네브가 시우를 데려갔음직 한 장소로 발길을 돌렸다.

2.

찌르는 듯한 두통과 근육통,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와 그에 어울리지 않는 습기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헉! 허억…. 허억….”

전투의 격렬함을 기억하고 있는 육체가 뒤늦게 빠른 숨을 내뱉고, 몸을 움직이려던 시우는 두 팔이 위로 꺾인 채 묶여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찰그락 찰그락!

열심히 몸을 꿈틀거려 보았지만 두 발도 의자에 단단히 고정되고 팔이 사슬로 묶여 있어서 꼼짝할 수 없다.맨몸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 마력을 끌어올리려 했지만….

“뭐야.”

미동도 하지 않는 낙인 속 마력.

시우는 뒤늦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주위 풍경을 한 단어로 묘사하자면 지하감옥이면 충분할 것이다.

녹이 쓸다 못해 완전히 검게 변해버린 쇠창살이 검고 더러운 바위에 빼곡하게 박혀있다.

달빛조차 스며들지 못하는 암실을 채우는 것은 벽에 걸린 횃불에서 나온 불빛뿐.

고양이만 한 쥐들이 대대손손 번성을 이뤘을 것 같은 감옥이었다.

어리둥절해 하는 시우의 옆 시야에 하얀 인영이 또각또각 걸어들어온다.

“과거 클리포트 습격 당시 게헨나는 적잖은 피해를 당하였어요. 저희 가문의 저택 또한 반파됐었죠.”

데네브 제머나이.

그녀의 모습을 보자마자 마침내 모든 기억이 되돌아온다.

“공적과 추방자에 대한 적개심은 극에 달했고 게헨나 내부에서도 여러 조처가 취해졌어요. 예를 들어 저희 백작가의 지하에 이 지하 감옥이 만들어졌죠.”

시우는 도망친 쌍둥이를 쫓아 화해하고, 키스한 끝에 이런저런 야릇한 분위기가 되었고.

영장도 없이 현장에 들이닥친 데네브 제머나이에 의해 현장에서 검거되었다.

“다시 건축된 제머나이 백작가는 건물 배치부터 복도의 모양까지 하나의 거대한 마법식을 그리게 건축되었어요. 지하로 흐르는 지맥과 수맥이 마법식에의해 통제되고, 이 감옥은 저희 자매를 제외한다면 누구도 마법을 발현할 수 없는 감금장소가 되죠.”

그제야 시우는 자신이 어떤 경위로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는지 알게 되었다.

데네브의 말대로 이 주위에 떠도는 묵직한 마력이 사사건건 마법의 행사를 방해하고 있다.아무리 시도해봐도 게임이 끝난 팔씨름을 역전하려는 것처럼 꿈쩍할 수 없었다.

“행여나 쌍둥이가 구해주러 올 거라고는 생각 말아요. 그 애들은 이 장소가 존재하는지도 모르니까. 애들 정서 교육에 안 좋거든요.”

처음 데네브가 보여줬던 분노를 생각하면 그녀의 어조는 굉장히 침착했다.그러나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다.

그건 화가 가라앉았기 때문이 아니라 걸러지고 정제되어 뾰족하게 날이 선 분노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데네브 님.”

“묻는 건 저에요. 당신에게는 자백의 시를 걸어 두었어요.”

“하, 그 마법 진짜 싫은데….”

데네브의 말과 동시에 멋대로 움직이는 입.

이렇게 속마음까지 고스란히 나와버린다는 점에서 정말 최악인 마법이었다.

시우는 추위와는 별개로 다리가 오들오들 떨리는 것을 느꼈다.

다소 침착함을 되찾았다고는 하나 데네브의 분노가 가셨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저 취조를 이어나갈 정도의 이성만을 되찾았을 뿐.

시우가 나불거리는 말을 듣다가 도로 이성을 잃고 목숨을 빼앗는 그림도 썩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일단은 알겠습니다. 여기가 제 무덤이 되겠네요.”“이게 제가 말하려는 게 아닌 건 아시죠? 다 그 거지 같은, 아, 죄송합니다. 자백의 시 때문이니까요…. 선처 바랍니다.”

얼빵한 촌극에도 데네브는 눈썹을 한번 꿈틀할 뿐 전혀 웃음기를 띄지 않았다.냉정한 어조로 말을 잇는다.

“쌍둥이와 성교를 하려고 했나요?”

“그렇습니다.”

꾸욱.

시우는 데네브의 손톱이 손바닥 안을 파고드는 것을 보았다.겨우 첫 마디를 꺼냈는데 벌써 아슬아슬한 조짐.

“...어째서죠? 오딜과 오데트는 견습마녀에요. 그 예후가 어떨지는 당신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이해하고 있을 텐데요?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는데….”

“이미 여러 번 관계를 맺었는데 별다른 이상은 없었습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건가요!”

데네브의 앙칼진 목소리가 암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하지만 정말 진실입니다! 왜냐하면 견습마녀가 더럽혀져서 안 되는 곳은 자궁이고 저희는 어디까지나….”

다시 말하지만 시우는 이 마법이 정말로 싫었다.

아무리 돌려 말하려고 해도.

타이밍을 보고 슬쩍 이야기를 꺼내려고 해도.

머리에 떠오른 즉시 술술 입 밖으로 나와버리고 마는 것이다.

“항문 성교를 했으니까요!”

“...하, 항, 항…?”

그 순간 데네브가 지은 표정은 기존의 절대적 상식이 모조리 무너져 버린 과학자의 것과 흡사했다.무척이나 멍하고, 아연하다.

“지금까지 20번 넘게 사정했지만, 그릇에는 아무런 지장도 없었습니다. 물론 단순히 육욕만을 위해 그랬던 것은 아니고…. 처음에는 그저 사랑의 묘약으로 시작하여…. 물론 저에게는 쌍둥이 말고도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지만…. 그리고….”

그 이외에도 본심과 더불어 주저리주저리 마음속 말들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미 보인다.

데네브의 한쪽 귀에 파고든 문장이 그대로 반대편으로 빠져나오는 것이.

“...어떤 일이든 제가 꼭 책임지려 하고 있었습니다.”

핏기와 더불어 영혼까지 빠져나간 듯이 황망한 표정을 짓던 데네브.

그 얼굴에 조금씩 혈색이 돈다.

뚜렷한 분노에서 기인한 핏기였다.

“그러니까…. 쌍둥이와 음란한 행각을 벌이고, 경각심 없이 그것을 이어간 것도 모자라서, 다른 여자들과도 내연 관계이시겠다? 그래 놓고 책임은 지려고하고 있다? 저희 제머나이 가문을 좆으로 보시네요.”

“맹세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도저히,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네요.”

-웅, 우우웅

대기가 떨리기 시작한다.

데네브는 마법을 발동하려는 심산이 아니었다.

다만 그녀의 격렬한 감정에 동화된 마력이 동요하며 소요를 일으키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지금 시우가 한치의 마법도 발동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설령 데네브가 그럴 의도가 없더라도 저 마력이 자칫 스쳤다가는 그대로 목숨을 잃을 위험도 있었다.

“데네브!”

소용돌이처럼 일어나던 힘의 파동이 커다란 목소리 앞에 일소한다.

계단을 따라 달려오는 굽 소리와 함께 데네브를 제지하는 건 언니인 알비레오.

예상대로의 모습에 재빠르게 데네브의 마력을 상쇄하고 시우와 그녀 사이에 끼어들었다.

“언니, 마침 잘 왔어. 여기 그 잘나신 남자 마녀가 쌍둥이를 가지고 놀고 있다네? 놀랍지?”

“데네브, 우선 진정해.”

“어떻게 진정을 해!”

순간의 욕정에 혹해서 덮쳤다고 해도 용납이 되지 않을 판국에, 상상도 할 수 없는 변태적인 편법으로 쌍둥이와 상습적으로 몸을 섞어왔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샤론 에버그린, 티페레트 공작, 예소드 백작 등 많은 내연녀와 몸을 섞고 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한참 열을 내며 그의 잘못을 규탄하던 데네브는 생각보다 훨씬 태연한 알비레오의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전혀 몰랐던 사실이라기에 언니는 너무나 차분했다.

“설마, 언니는…. 알고 있었어?”

“응 알고 있었어.”

三걸 왜 £자서 알고 있는 거야!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잖아!”데네브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알비레오는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다.

우선 시우를 먼저 유혹했던 것이 쌍둥이였다.

쌍둥이는 왕성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묘약을 통해 시우를 덮쳤고, 그 당시 노예 신분이었던 시우로서는 거절할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시우는 호문쿨루스에게 한 번, 공적에게 한 번 쌍둥이의 목숨을 구해주었다.특히 두 번째는 사실상 사망 상태까지 갔었다.

그가 회복한 이후 알비레오는 시우에게 현세로 나가 있을 것을 종용했고,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그 탓에 비겁의 마녀가 일으킨 겁난에 휘말려 또 한 번 목숨을 잃을 뻔했다

쌍둥이』滿자는 명목하에 꽤 민폐를 끼친 것이다.

하지만 알비레오라고 단순히 죄책감이나 부채의식 따위로 시우의 방종을 눈감아 준 것이 아니다.

쌍둥이는 시우에게 분명한 호감이 있고, 시우 역시 마찬가지일 터.

평범한 남자와는 다르게 죽지도 늙지도 않는 것만으로 사위로서 메리트가 있는데, 지금 이 순간조차 마법의 경지를 높여가는 천재다.좋은 관계를 유지해 나쁠 것이 없다는 것이 판단이었다.

데네브는 당장 시우가 쌍둥이와 육체적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에만 핀트가 꽂혀 전후 사정이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알비레오는 충분히 저울질해본 것이다.

"잠깐 여기서 기다려요.”

“어디 가? 앞에서 못할 말이 뭐 있어!”

알비레오는 잠시 데네브의 손목을 잡아끌고 감옥 구석으로 걸어갔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12월 23 24 0시는 휴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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