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412화 (412/917)

1. 블레싱 님이 제공해주신 팬아트 엘로아를 위로해주는 샤론입니다예쁜 그림 감사합니다

수확제가 오길 기다리며 한창 새 단장을 끝낸 제머나이 저택.

달도 뜨지 않아 한 자락 암막에 가라앉은 별관 속 조그마한 그림자 두 개가 드문드문 피어오른 촛대 사이로 달려나갔다.

제머나이 저택에서 가장 활동량이 많은 생기발랄 쌍둥이.

눈꺼풀을 무겁게 짓누르는 한밤의 나른함조차 쌍둥이를 막을 수는 없다.

야음을 틈타 질주하는 둘은 각기 현세의 아쿠아리움에서 기념품으로 사 왔던 파자마를 입고 있었다.먼저 오딜은 꼬리와 지느러미가 치렁한 푸른색 상어 파자마.

오데트는 커다란 털 귀가 팔랑이는 폭신한 분홍색 토끼 파자마.

“오데트…! 조, 조금만 기다려 봐.”

“언니…! 자꾸 꾸물거리지 마!”

“꼬리가 자꾸 끌린단 말이야!”

달리기하건 마법을 하건 수영을 하건.

명백히 언니 오딜보다 뒤처지는 오데트이지만 오늘만큼은 몇 차례나 언니에게 핀잔을 주었다.

왜냐하면 긴 꼬리를 지닌 상어 파자마의 특성상, 오딜은 꼬리가 땅에 끌리지 않게 하기 위해 그것을 품에 안은 채 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쿠션 대용으로 다리 사이에 끼워 넣고 잘 수 있던 고마운 꼬리가 이렇게 발목을 잡는다니.

오딜이 꼬리 포지션을 재배치하는 동안 오데트는 복도가 꺾이는 모퉁이에 탁 붙어 비밀작전을 수행하는 요원처럼 그 너머를 힐끗거렸다.

“후우…. 일단은 없는 것 같아.”

“서두르자. 꼬리 다 정리했어.”

다시 도도도도 잔걸음으로 뛰어나가는 쌍둥이.

부엉이도 잠들었을 야심한 시각, 때아닌 밀수극을 찍게 된 것은 지금 오데트가 들고 있는 조그마한 상자 때문이었다.

수확제는 꼭 술만 먹고 춤만 추는 축제가 아니다.

연인끼리 다정하게 시간을 보내며 사랑을 확인하는 기념비적인 날이기도 하다.

따라서 쌍둥이는 조수님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다.

단순한 선물이었더라면 쌍둥이가 이렇게 조용히 움직여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선물은 굉장히 위험한 물건이었다.

만약 스승님이나 다른 사람에게 걸린다면 불호령이 떨어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정도로.

따라서 구매 과정부터 은밀한 모략과 어마어마한 노력이 소모되었다.

먼저 갈리나 시녀장의 장부를 훔쳐 수입품 주문서의 양식을 빼돌려야 했으며, 그 물건의 상세 명칭까지 별도의 조사를 통해 파악해야 했다.

거기에 이 물품의 주문자가 오딜과 오데트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도록 페챠, 레나, 마샤, 베라의 도움을 받아 차근차근 보더타운에서 저택까지 들여온 것이다.

다만 마지막 배송을 담당했던 베라가 급하게 불려가며 우편함에 덩그러니 남은 상자를 방으로 옮기는 것은 오딜과 오데트의 몫이 되었다.이른 새벽이면 갈리나가 우편함을 확인할 수도 있으니 속도가 생명이었다.

“쉿…!”

앞서가던 오데트는 팔을 뒤로 뻗으며 벽에 찰싹 몸을 붙였다.

이어 오딜 역시 꼬리에 얼굴을 파묻은 채 헐떡이는 숨을 죽인다.

_뚜벅 뚜벅 뚜벅

호롱불을 손에 든 채 저택을 순찰하는 갈리나 시녀장의 옆모습.

그녀의 둥그런 안경이 불빛에 번뜩이는 것이 슬쩍 보였다.

평상시에도 엄격한 갈리나 지만 지금만큼 은 저승사자보다도 무섭다.

_뚜벅 뚜벅 뚜벅

눈까지 꽉 감은 채 오들오들 떨던 쌍둥이를 뒤로하고 발소리가 멀어져갔다.

두 사람은 시녀장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 이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후아….”

“...걸릴 뻔했네. 언니 우리 다음에는 이런 거 하지 말자.”

그렇게 안심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려 할 때.

-뚜벅뚜벅뚜벅뚜벅

“오딜 님, 오데트 님?”

““히이이익!””

갑자기 좁혀오는 발소리와 갈리나의 걸쭉한 목소리.

오딜과 오데트는 진심으로 식겁한 채 통통 도망치기 시작했다.

“역시 아가씨였군요! 잠자리에 들 시간이에요! 뭐하시는 건가요!”

어그로가 끌린 배회몹처럼 램프를 출렁이며 쫓아오는 갈리나.

호롱불에 정신 없이 흔들리는 그림자는 옛날 이야기 속 괴물을 연상케 한다.

쌍둥이는 난데없는 4D 공포게임 체험에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끼며 엎치락뒤치락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오데트 너가 말 길게 해서 들켰잖아!”

“아냐! 언니가 한숨을 쉬어서 그런 거야!”

“너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들킨 거 못 봤어?”

“언니가 위기가 지나간 것처럼 한숨을 쉬어서 나도 말한 거라고!”

갈리나는 스승님을 이어 절대로 선물의 정체를 들켜서는 안 될 사람이다!

더군다나 설령 여기서 마법을 사용해 도망친다 한들 이미 도망친 시점에서 문책을 받을 것이 뻔하다.

그 문책은 쌍둥이를 이어 시녀들에게 이어질 것이고 그렇다면 모든 것이 끝장.멸망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쌍둥이는 어느덧 자신들이 저택의 끝에 도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지나친 패닉 탓에 막다른 길로 뛰어오고 만 것이다.

“어쩌지 언니?”

“이거라도 숨겨야 해!”

바짝 뒤를 쫓아오는 갈리나의 발소리에 오딜은 엉겁결에 방문을 열었다.최소한 장롱이나 소파 혹은 침대 밑에 선물을 감추기라도 해야 한다.그렇게 부서질 듯 문을 열고 뛰쳐 들어갔을 땐.

“응? 너희 여기서 뭐 해?”

깜짝 놀란 듯 눈을 치켜뜬 샤론이 보였다.

“샤론 언니!”

“저희 좀 숨겨주세요!”

우당탕탕 달려가 샤론이 앉아있는 소파로 몸을 날린 쌍둥이는 마치 등받이를 엄폐물로 삼는 것처럼 꼭꼭 숨는다.

“오달 님! 오데트 님!”

이어 험상궂은 표정을 지은 갈리나가 거의 시차를 두지 않고 들이닥쳤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나 몸을 숨기다 못해 후드를 뒤집어쓰고 오들오들 떨고 있는 쌍둥이와 분기탱천한 갈리나 시녀장의 모습을 보니 벌써 그림이 나왔다.

“아, 에버그린 마녀님. 늦은 밤에 실례했습니다.”

“아니에요. 갈리나 시녀장님.”

“아가씨들을 좀 보내주실 수 있나요? 밤에는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고 그렇게 누누이 말했는데…!”

이 난동의 결말을 직감한 쌍둥이가 하늘이 무너질듯한 표정을 지을 무렵.샤론은 갈리나에게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걸 어쩌죠? 사실 오딜 양과 오데트 양을 불러들인 것이 저라서요.”

“예?”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그랬는데. 괜히 갈리나 님께 폐를 끼친 꼴이 되었네요.”

샤론은 면목이 없다는 듯 꾸벅 묵례를 하고 쌍둥이의 머리에 살포시 손을 얹었다.

“최대한 늦지 않게 잠자리로 다시 보낼게요. 앞으로는 이런 일도 없게 하고요. 죄송해요.”

갈리나는 팔짱을 낀 채 샤론의 말을 듣다가 눈을 감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에버그린 마녀님. 다만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조처 부탁하겠습니다.”

“네, 꼭 그럴게요.”

속아 넘어가 준다는 듯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갈리나로서도 저자세로 나오는 샤론을 보고 밀어붙이기 뭐했다.

어쨌거나 샤론은 제머나이 가의 교사였고, 그 이전에 대마녀였으니 말이다.

그녀가 쌍둥이의 잘못을 덮기 위해 사과하는 만큼 갈리나도 그녀를 존중해줄 필요가 있던 것이다.

“그럼 먼저 물러나겠습니다.

“항상 고생 많으십니다.”

“아닙니다, 사용인 된 자의 의무이죠. 오딜 님도 오데트 님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놀지 않도록 하세요.”

“알았어.”

“네에….”

갈리나가 방문을 닫고 나선 뒤.

모자를 뒤집어쓰던 쌍둥이가 힐끔 샤론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위기를 넘긴 쌍둥이의 표정은 조난 중 구조대를 만난 것처럼 안도로 가득하다.

“고마워요 샤론 언니!”

“감사합니다! 샤론 언니 !”

“하아,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샤론은 허리에 손을 얹은 채 천방지축 말광량이들에게 물었다.

2.

“아무래도 저희도 필살기가 필요할 것 같아서요.”

“갑자기 티페레트 공작님이라니, 너무 강적이잖아요.”

마시멜로우가 동동 떠다니는 코코아를 앞에 둔 쌍둥이는 각기 무슨 일이 있는지 설명했다.

사실 이런 번거로운 전술을 준비한 것은 비단 수확제 때문만이 아니었다.

얼마 전 경쟁자 라인에 새로이 합류한 엘로아 티페레트 공작을 견제하고 더불어 전략적 우세를 쥐기 위함이다.

공작의 재산은 별 볼 일 없다

그러나 게헨나에 셋밖에 없는 공작이며 지극히 많은 마녀에게 존경받는 23 위계의 대마녀이다.

게다가 조수님의 스승님 포지션으로 굳건한 접점을 지니고 있으며, 샤론만큼은 아니지만 쌍둥이에게 없는 강력한 비대칭 전력 또한 확보하고 있다.수수방관하다가는 샤론 때처럼 속절없이 두들겨 맞을 상황이 온 것이다.

“그래서, 이게 그 필살기야?”

샤론은 테이블 위에 놓인 상자를 톡톡 두들기며 물었다.

“하아~ 원래는 절대 비밀로 하려고 했던 건데.”“샤론 언니가 도와주셨으니 특별히 공개할게요.”“그대로 따라 하는 건 반칙인 거 아시죠?”

벗겨진 포장지.

쌍둥이의 설명을 들을 것도 없이 샤론은 단숨에 그 물건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종이 상자 사이에 반투명한 비닐 사이로 빼곡하게 정돈되어있는 나무토막이 보였기 때문이다.

젠가.

나무토막을 쌓아 번갈아 빼내며 먼저 쓰러뜨린 쪽이 패배하는 아주 단순한 보드게임이다.

“어…음, 좋네! 시우가 좋아하겠다.”

샤론은 속내를 감췄다.

필살기라기에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가 했는데 젠가라니.

게헨나에서는 현세 물품을 찾기가 힘들어 특별해 보일지 몰라도 정작 현세에서는 보드게임방을 찾아도 몇 판 하다 마는 물건이다.

아마 어렵사리 구한 것 같은데….

시우라면 리액션을 잘해줄 것이다.

구태여 진실을 전해 쌍둥이를 낙담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맞아요! 근데 일반적인 젠가랑은 달라요.”

“후후후, 한 번 보실래요?”

“다르다니?”

“잠깐 뒤돌아 계세요.”

“언니도 놀랄걸요?”

자동으로 쌓아주는 기능이라도 있는 건가?

아니면 뭔가 마법적인 이펙트가 더해진 고급 장난감?

샤론은 어리둥절하면서도 쌍둥이가 실컷 부산을 떠는 것을 기다려 주었다.

“짠!”

“이제 됐어요!”

어느새 가지런히 쌓인 블럭들을 보며 샤론은 다시금 고개를 갸웃했다.아무리 봐도 평범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번 해보실래요?”

“좋아, 어려운 일도 아닌걸.”

샤론은 소매를 걷고 하단 중앙의 나무토막을 손끝으로 톡톡 쳤다.

어렵지 않게 매끄럽게 빠져나온 블럭.

역시나 별다를 게 없잖아, 라고 생각하던 무렵.

샤론은 히죽히죽 웃고 있는 쌍둥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했는데?”

“아이참, 블록 뒤를 봐야죠!”

“뒤?”

손끝에 들린 블록 뒤집자 일반 젠가와는 다른 특징이 눈에 밟혔다.

투명한 글귀가 새겨진 테이프 같은 것이 들러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뭐 나왔어요?”

“이, 이게 뭐야!”

그 글귀는….

[옷 위로 상대 젖꼭지 위치 맞추기]

아주 단순하면서도 의도가 명백한 벌칙조항이었다.

“이렇게 뽑은 블럭에 있는 항목을 수행하면 되는 거에요!”

샤론의 입이 떡 벌어졌다.

쌍둥이가 준비한 젠가는 흔하디흔한 물건 따위가 아니었다.

커플들의 후끈한 밤을 위해 만들어진 성인용 보드게임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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