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409화 (409/917)

1.

기이한 사건이 있었다.

남미 전반에 걸쳐 악명을 떨치던 알코리자 파밀리아.

카르텔 두목인 알코리자의 생일을 맞아 모여든 1만여 명의 조직원이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모였다.

아무리 드높은 권세를 지니고 있다 한들, 범죄 단체의 조직원들이 한자리에 보란 듯 모이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기에 군경을 비롯해 각종 정보단체의 눈길을 끌었다

여차하면 전쟁이 벌어질 일촉즉발의 상태라 판단을 내린 것이다.

돌발 상황에 대한 준비를 끝내고 군용위성까지 동원하여 저택을 포위 및 감시하던 차.

역사상 최고의 미스테리한 사건이 관측되었다.

그 많던 조직원과 돈 알코리자가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하루아침에 증발한 것이다.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권력자들은 초월자의 존재가 대중에게 알려지기를 원치 않았다.

따라서 마녀에 의한 사고는 보통 국가 권력에 의해 은폐된다.

그러나 아무리 강대한 권력과 신비의 힘이 더해져도 이미 주요 언론과 외신, 그리고 수많은 목격자의 증언을 일일이 틀어막는 것은 불가능했다.더군다나 위치포인트의 입김이 거의 작용하지 않는 남미에서는 말이다.

각국 언론사는 이 황당무계한 실종에 대해 ‘새벽의 저주 사건’이라 명명하며 대서특필함은 물론 시사 채널을 편성했다.

알코리자가 실은 악마의 추종자였으며 조직원을 악마에게 제물로 바친 것이라는 괴담부터.

실은 멕시코 정부와 손을 잡은 미군이 비인가 생물학 병기를 통해 카르텔 주요 조직원을 일소하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는 헛소문 역시 자연스럽게 돌아다녔다.

그러나 그 전말에 대해 알고 있는 마녀로서는 나름 권망 높은 학자라는 양반이 헛소문을 진지하게 입에 주워섬기는 것이 우스울 뿐이었다.

“인간은 재밌다니까~ 상식 속에서 해결되지 않은 일이 생겨도 꾸역 꾸역 상식의 틀 안에 욱여넣으려고 들잖아.”

수녀복을 입은 마녀.

‘구도의 마녀’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도로시 에레보스’는 재밌다는 듯 TV를 바라보며 태연히 다리를 꼬았다.그녀를 기준으로 좌측에는 ‘진조의 마녀’ 클레흐 아스모데가, 우측에는 ‘검의 마녀’ ‘린네 사마키엘’이 앉아있다.

일전 ‘세인트 레이 멕시코 시티’에서 비앙카의 주선하에 모였던 클리포트 소속의 공적들.

그들이 모인 이유는 비앙카의 죽음과 이번 ‘새벽의 저주’ 사건에 관해 의견을 나누기 위함이다.

직접 비앙카의 죽음을 목도한 사람은 없었지만, 이 자리의 모두가 확신하고 있었다.

비앙카쯤 되는 공적의 사업체는 쉽게 건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살아있더라면 저 꼴이 나도록 내버려두었을 리도 없을뿐더러, 즉각 무시무시한 보복 행위를 벌였을 것이다.

하지만 충분히 시간이 지난 지금 그녀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했다.

비앙카 벨릴리는 죽었다.

그러나 케테르가 숙청한 것은 아니다.

케테르가 건재했더라면 이렇게 많은 이들이 보이는 앞에서 1만 명의 실종이라는 대사건을 묵과할 리 없다.계획을 시도하기도 전에 나타나 죽여버렸겠지.

“멍청하게 죽어버렸지만~ 그래도 릴리스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건 확인시켜주고 갔네.”

“케테르 공작은 움직이지 못하는 건가. 이해할 수 없군.”

“어쩌면 경찰 노릇 하기도 지겨워진 게 아닐까~? 그보다는 위치포인트 쪽에서 어떻게 나올지 궁금한걸?”

“그 겁쟁이들이 먼저 움직일 리는 없다. 느긋하게 앉아 사태를 관망하겠지.”

이런저런 의견을 교환하는 가운데.

한 공적이 조개처럼 입을 다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도로시와 린네.

클레흐는 대화가 시작된 이래로 주먹을 불끈 쥔 채 발끝만을 바라보고 있다.

“그럴 리 없어요.”

빠드득 이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치켜든 그녀의 눈은 살벌할 정도의 실핏줄이 잔뜩 불거져 있었다.

“비앙카 그 싸가지 없는 년이, 병신처럼 허무하게 죽어버렸을 리 없어요.”

거기에 맺혀 있는 것은 평범한 인간이라면 마주하는 것만으로 심장을 멈춰 세울 죽음의 기운.

새파란 칼날처럼 벼려진 살기가 방 내부에 휘몰아친다.

하지만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그 정도에 위축될 위인들이 아니었다.

“글쎄? 너한테는~ 잘된 일이 아닐까~? 더는 비앙카에게 삥 뜯기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인데.”

“닥쳐요! 이 젖탱이만 큰 썅년아!”

원래도 입이 험악한 클레흐였으나 이번만큼은 그 노호성에 절절한 울림이 묻어나온다.

서로 사업장의 이해관계 탓에 앙숙인 것과 별개로 도로시도 린네도 알고 있다.

비앙카를 향한 클레흐의 마음은 애증에 가까웠다는 것을.

비앙카가 클레흐의 단물만을 빨아먹고 매몰차게 차버렸다 해도 과거 둘은 연인 관계였으니, 저런 격렬한 반응을 보일 법도 하다.

“무의미한 화풀이다. 실험쥐 역할에 자진한 것은 욕망의 마녀 본인이었다. 너 역시 동의했고.”

사지로 향하는 비앙카에게 찬동한 클레흐였지만 그것은 압도적인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비앙카 벨릴리는 어떤 위험이 다가와도 살아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은 비보와 함께 돌아와 맹신에 불과했음을 알렸지만.

“아련하네~ 나쁜 여자한테 끌리는 타입이었구나?”“죽여, 버리겠어요. 어떤 새끼든 죽여버릴 거에요.”

결국 안구의 실핏줄이 터져나가 혈액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피눈물을 줄줄 흘리는 클레흐도로시는 어깨를 으쓱하며 린네를 바라보았다.

애초에 태평하게 위로나 해줄 정도로 살가운 관계들은 아니다.

원래는 비앙카가 남기고 죽은 사업체 병합과 갈라먹기에 대해서도 말을 꺼낼 예정이었지만, 감정적인 클레흐가 저 꼴 일 때 말을 꺼냈다간 진짜 싸움을 걸어올 수도 있었다

대신 도로進 클레흐의 격분을 어떻게 이용하면 최대의 이윤을 추구할 수 있을지 주판알을 두들겼다.

“흐음~ 그럼 나도 네 복수에 협조하도록 할게. 비앙카는 우리의 친구였으니까.”

“나 역시 돕겠다. 비앙카를 죽인 자를 찾는 것이면 충분하겠지.”

“...가증스러운 말 집어치워요.”

클레흐는 당연히 이빨을 드러냈다.

거대한 뒷세계 사업체를 운영하는 이들의 정보력은 무시할 수 없지만 이곳에 모인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맨입으로 받기엔~ 너도 찝찝할 테니 돈을 줘. 어차피 파밀리아를 네가 흡수하게 될 텐데~ 그 정도 성의는 보일 수 있잖아?”

“흥분이 지나치다. 시간이 지나 마음이 정해지면 연락해라.”

“맞아~ 우리처럼 든든한 협력자는 좀처럼 없을 거야.”

“꺼져! 당장 꺼져요! 씨발…좆같은…!”

클레흐가 광분하며 온갖 험악한 욕설을 퍼부으려는 순간.실내는 귀신처럼 조용해졌다.

지난번 회의와 마찬가지로 여기에 있는 구도의 마녀와 검의 마녀는 실체가 아니다.이혼술을 이용해 인간을 제물로 본체를 일부 구현했을 뿐.

“아아아악! 아아아아악!”

피 거품을 흘리며 죽어가는 인간의 머리를 분을 이기지 못한 클레흐의 손이 후려쳤다.

퍼석한 소리와 함께 무른 토마토 터지듯 폭발하는 머리와 흩날리는 뇌장.

진득한 혈액을 보며 클레흐는 절규와 같은 비명을 질렀다.

“비앙카… 비앙카… 나의 비앙카….”

막대한 수수료를 뜯겨도 좋았다.

말도 안 되는 폭리를 취하며 클레흐를 이용하기만 해도 좋았다.

이런 식으로라도 비앙카에게 가치 있는 마녀가 된다면 언젠가는 돌아봐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녀의 차디찬 눈빛과 미소도.

상대의 머리끝에 올라 비웃는 듯한 매도도 영영 찾을 수도, 받을 수도 없게 되었다.

완전히 끝난 것이다.

“흐윽...흐으윽…”

어두컴컴한 방 속 들려오는 것은 클레흐의 흐느낌과 터져버린 머리에서 흐르는 진득한 체액의 낙하음 뿐이었다.

2.

엘로아는 편지를 내려놓았다.

[...이러한 연유로 귀주께 조력을 부탁하고 싶사옵니다. 답신 기다리겠사옵니다]

널따란 한지 위에 붓 펜으로 쓰인 고상한 글씨가 네 장에 걸쳐 빼곡히 쓰여 있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각종 사진이 첨부된 두툼한 자료까지.

수아 지부장에게서 온 서신이었다.

게헨나와 현세의 소통과 교류는 대부분 즉각적이지 않다.

욕망의 마녀 사망 후 며칠 만에 그녀의 슬하에 있던 알코리자 파말리아가 와해하였다.

하룻밤에 물경 만에 달하는 조직원을 행방불명으로 만든 수단은 마법.

목적은 제물로 사용 추정.

범인은 불명.

이만한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게헨나는 태평스레 수확해를 준비 중이다.

저 옆 대륙에서 내전이 일어났니 뭐니해도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것처럼, 현세에서 일어나는 일은 자신과는 관련이 없다며 뒷짐 지는 경우가 다반사다.하지만 엘로아는 그럴 수 없었다.

이미 라피와 약속하지 않았던가?

무고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지 않게끔 지키겠노라고 다짐하였다.

더군다나 엘로아를 비롯한 몇몇 고위 마녀들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현세의 혼돈은 언젠가 반드시 게헨나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더군다나 이번 사건의 스케일은 위치포인트를 설립했던 엘로아가 간과하기 힘들 정도로 커다란 것이었다.

얼마 전 비겁의 마녀가 벌였던 난동과도 비교할 수 없는 스케일의 사건이다.

은폐를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일을 벌였으며 주요 언론에서까지 다뤄지고 있다는 시점에서 까마득히 ‘선’을 넘었다.

그럼에도 눈에 보이는 숙청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

그건 마녀 사회의 가장 커다란 불문율이 무너졌음을 암시한다.

신중한 공적들은 추이를 더 지켜볼 테지만 케테르의 그림자 속에서 와신상담해야 했던 몇몇 공적은 더더욱 줄타기하며 활개를 치겠지.그때까지도 케테르가 움직이지 않을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정말 케테르 공작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라면?

공적의 난동을 억누르던 그녀가 모종의 이유로 자신의 규율을 내팽개쳤거나, 규칙을 수호할 수 없게 된 것이라면?

누군가는 그 역할을 떠맡아야 한다.

피로 쓰여진 법칙을 관철하는 철혈의 통치자를.숙청의 칼날을 대신해야 한다.

엘로아는 빈 종이를 펼쳤다.

시우를 만났고, 라피가 죽은 뒤 감히 꿈꿔오지 못했던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분에 넘치는 사랑스러운 순간이었다.

수확제는 사흘 뒤.

평의회에서 협의가 끝난 시우와의 시간도 내일이다.

단 하루만 더 평화를 허락받을 수 있기를 바라며 엘로아는 답신을 써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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