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408화 (408/917)

1.

현존하는 멕시코의 최대 카르텔 ‘알코리자 파밀리아’.

가장 정제된 폭력과 공포정치를 시행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이 거대 카르텔은 멕시코 마약 총 공급량의 90%를 담당한다.

그뿐 아니라 매춘 알선, 인신매매, ■무기밀매 사업, 송유관 석유 탈취, 불법 일자리 알선 등을 바탕으로 창출되는 수익은 연간 수백 조 원에 달하며 정식 조직원 수 만해도 3 만에 육박한다.

5년 전 카르텔의 박멸을 선포했던 대통령의 군대를 동원한 전쟁에서도 당당히 승리를 거뒀으니, 알코리자 파밀리아의 대부는 이미 초법의 왕이었으며 멕시코의 그 누구도 두려워하는 악의 거두였다.

그러나 역사상 최대 규모 카르텔의 대부, 루이스 알코리자가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깡촌에서 약이나 팔던 양아치들의 두목에 불과했음을 기억하는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후우, 모르겠군.”

오랜 세월 대물림 된 세련됨 따위가 아닌 과시와 허영에만 찌든 속물적인 방.

‘졸부처럼 인테리어하는 법’이라는 책이 있으면 훌륭한 표본이 될 것 같은 풍경 속 호피 소파에 앉은 알코리자는 식은땀이 흐르는 널찍한 이마를 닦았다.

멋지게 차려입은 흰 양복의 핏마저 무색하게 만드는 불룩 튀어나온 뱃살.

손목과 목을 치장한 번쩍이는 금팔찌와 명품 선글라스를 벗겨낸다면 멕시코에 널리고 널린 실업자들과 별다를 바 없어 보이는 생김새이다.실제로도 그는 딱히 특출난 곳이 없는 남자였다.

“왜,이런 짓을

알코리자는 온통 금으로 도금한 리볼버 한 정을 움켰다 쥐었다 하며 초조함을 달랬다.

그러나 아무리 진정하려 노력해도 흐르는 땀이 멈추질 않는다.

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치며 길거리 시민들조차 함부로 욕보일 수 없는 대부이지만, 그런 그에게도 ‘마녀’만큼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가 아직 필로폰과 아편을 g 단위로 취급하던 시절.

여느 때처럼 무리한 상납금 요구에 술 한잔 걸치고 욕설을 뇌까리던 알코리자는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났다.

건장한 남자도 총 맞아 죽어가는 콰우테펙에서 어떻게 강간당하지 않고 멀쩡히 돌아다니는지 의문인.

아름다운 비취색 눈과 귀족적인 백금발을 지닌 백인 여자였다.

평소 알코리자였더라면 외설적인 농담을 던지거나 몸을 사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그녀에게 풍기는 불길함과 고귀함을 동시에 느낀 알코리자는 그녀에게 술을 사주며 점잖은 대화를 나눴다.

그 날 별생각 없이 베푼 호의는 알코리자의 운명을 바꿔주었다.

‘맨입으로 먹기에는 좀 미안한데. 혹시 이루고 싶은 욕망이 있니?’

‘하하, 타고나길 소인배인지라 상납금이나 없었으면 좋겠네.’

‘정말 그게 다야? 더욱 큰 소원을 말해보련? 어쩌면 내가 들어줄 수도 있잖아. 나는 마녀거든.’

비앙카는 자신을 마녀라고 소개했다.

당연히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하하하하.’

‘정말이라니까? 억울한 누명을 쓰고 불태워진 불쌍한 여편네들이 아니라. 진짜 마녀.’

‘그렇다면, 멕시코 최대의 마약왕으로 만들어 줘봐. 이보다 더한 술도 사 줄 테니까.’

취한 김에 내뱉은 싸구려 농담 정도로 생각했던 그 말을, 비앙카 벨릴리는 5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만에 실현 해주었다.

그녀의 지시만 따르면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풀렸다.

반목하는 적대 조직의 두목이 소리소문없이 죽어 나갔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신비한 마약 정제법을 무제한으로 제공해주었다.

겁이 많고 눈치만 빠른 알코리자였으나 일머리까지 전혀 없던 것은 아니다.

비앙카의 도움을 받아 통합시킨 카르텔로부터 밀수 루트를 빼앗고 거래처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폭발적으로 몸집을 불려 나갔고, 정신을 차리고 나니 멕시코에서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마약왕이 되어 있었다.

악마와 계약한 파우스트가 된 기분이었다.

아니지.

시간을 두고 점차 알게 된 그녀는 실제로도 악마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러나 화수분에 취해있는 알코리자는 개의치 않고 그녀의 명령에 복종하며 그 대가를 취했다.

손으로 아무리 퍼담아도 흘러넘치는 부와 명예와 권력.

순수익의 절반도 되지 않는 금액만 양도하면 비앙카는 모든 것을 현실로 실현해준다.

카르텔이 궤도에 오른 이후로는 별다른 간섭도, 마땅한 지시도 내리지 않고 상납금만을 받아가던 비앙카.

그녀는 별안간 이상한 지시를 내렸다.

48시간 안에 1만여 명에 달하는 조직원을 알코리자의 저택에 모으라는 지시였다.

아무리 알코리자 파밀리아가 멕시코 북부에서 막강한 권력을 자랑한다지만 이건 분명 리스크가 큰 행위였다.

연합 경찰의 시선을 끌게 될 것이며, 각종 첩보기관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어쩌면 미국이 직접 개입할 빌미를 줄 수도 있겠지.

그러나 이 방만한 선택이 불러올 결과보다도 두려운 것은 알 수 없는 마녀의 의중이다.

이제는 산사람을 토막 내는 것을 봐도 구토하지 않게 된 알코리자지만 비앙카 벨릴리는 근원부터가 달랐다.

아직도 종종 비앙카가 상대 카르텔 두목을 생글생글 웃으며 죽이던 광경을 악몽에서 마주하곤 한다.

잔인한 광경이 두려웠던 것은 아니다.

다만 이성을 잃은 채 제 일가족을 뜯어 먹은 뒤 충격으로 자살한 적대 카르텔 두목의 모습이, 별다른 ‘메세지’를 위한 것이 아닌 오직 그녀가 품은 호기심의결과물이었다는 사실이 더없이 두려웠다.

“이중장부 때문인가? 아니면 정말 전쟁이라도 할 셈인가?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알코리자는 머리를 핑핑 굴리며 자신의 잘못 혹은 마녀의 계획을 파악하려 했다.무의미한 고민만을 거듭하던 가운데 약속한 시각이 되어도 나타나는 사람은 없었다.덜덜 떨리는 손으로 시가를 문 알코리자는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그의 집이 아무리 넓은 부지를 지녔다지만 무려 1만 명의 조직원들이 밖에서 웅성거리던 터였다.즉, 이렇게나 조용할 이유도, 그럴 수도 없다는 것.

“호세! 네메시오! 무슨 일이야!”

돌격소총을 들고 문 앞을 지키고 있을 두 명의 부하를 불러보았지만.

들려오는 대답 따위는 없었다

알코리》는 휘둥그;진 눈을 한 채 뒤뚱뒤뚱 창문 쪽으로 뛰어나갔다.

창밖을 내다본 그는 나지막한 욕설을 내뱉었다.

“Joder--.”

커다란 물병 모양의 신기루가 저택을 덮고 있었다.

그 어떤 과학적 방법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

마녀가 부리는 마법이다.

이상한 점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졸부인 알코리자의 취미에 맞춰 요란번쩍하게 꾸며진 정원과 수영장이 텅 비어있다.

조직원들이 다 같이 마약에 취해 갑자기 숨바꼭질을 시작했다고 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정적이었다.

알코리자는 미끈거리는 권총 그립을 꽉 움켜쥐고 덜덜 떨었다.

느껴진다.

그의 곳간을 산더미 같은 황금으로 채워주던 악마가 마침내 계약의 대가를 받으러 왔다.

“하,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여,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주기도문을 중얼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알코리자.

“안녕.”

“흐하!”

소리가 들려오는 곳에 권총을 겨눴다.

거기에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짧은 단발을 한 여자가 서 있었다.

특이사항이 있다면 인간 같지 않은 붉은 눈과 비앙카에 비견될 정도로 아름다운 용모를 지니고 있다는 것.

“서...설마…. 마녀님… 되십니까…?”

“정답이야. 네가 비앙카의 돈줄이었구나?”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판국에 알코리자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돈줄’이라는 말에서 지금처럼 순순히 상납만 한다면 목숨을 보전할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그그그 그렇습니다I”

“흐음… 너무 멍청해 보이는데.”

마녀의 눈이 좁아진다.

평가를 내리는 듯 날카롭게 위아래로 쏟아지는 붉은 눈동자에서 급속하게 흥미가 가셨다.

“자살해 줄래?”

“네, 네…?”

“내 리본을 배때기의 지방으로 더럽히기는 싫으니까. 자살해 달라고. 손에 좋은 거 쥐고 있잖아.”

“마, 마녀님! 죄송합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부, 부디… 목숨만은, 목숨만은…. 커헉!”갑자기 튀어나온 검은 리본이 알코리자의 배를 꿰뚫는다.

그것은 권총으로 뇌관을 쏘아 즉사하는 것보다 끔찍한 고통을 안겨 주었다.

“하여간 말 안 듣네. 선의의 충고였는데”

"크하악! 끄아아…마마마마녀님…. 제발….”

“비앙카도 취향이 고약하네. 저런 머저리를 부하라고 데리고 있고.”바닥에 철퍼덕 엎어진 채 고통에 몸부림치던 그는 1만을 넘는 부하가 어떻게 증발하듯 사라져 버린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염산을 들이부은 것처럼 고통도 없이 흐물흐물 녹아 사라지기 시작하는 손가락.

마찬가지로 전신이 끓는 물에 들어간 각설탕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3초도 되지 않아 벌어진 일에 단말마조차 지를 수 없던 알코리자.

희끗한 무엇인가가 에아가 손에 들고 있던 연꽃 모양의 아티팩트로 빨려 들어갔다.

“연비가 더럽게 안 좋긴하네.”

에아는 제 손에 담긴 물건을 보고 피식 웃었다.

비앙카 벨릴리에게서 적출한 낙인도 모자라 1만 하고도 322개의 생명을 먹였다.

그제야 빛나며 구동을 시작한 연꽃을 보니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아무리 모든 것을 왜곡하여 재생할 수 있는 아티팩트라지만 이렇게까지 연비가 나쁘다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절대로 작동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케테르 공작이 움직이는 때였더라면.

하지만 그녀는 더는 움직이지 않는다.

수많은 생명을 머금은 영묘한 빛이 햇볕을 반사하는 프리즘처럼 반짝인다.

마침내 완전히 피어오른 연꽃은 에아의 부름과 소원에 응하여 한 가지 기적을 행사했다.

“과거의 영광을, 그보다 더 드높은 경지를 되찾기를.”

작동방식 자체는 어렵지 않다.

미 이2|팩트로 요성된 물건인 데다가 목적 자체가 ‘부활’을 위한 것이다.

에아는 자신의 몸에 스며드는 빛을 느꼈다.

어두컴컴한 아인 속.

갈취당해 버렸던 구조물이 빼곡하게 차오름이 느껴진다.

전보다 더 강렬한 힘으로 넘실거리며 재생하고, 강화되어 용솟음치는 마력의 힘.

일반적인 마녀는 경험할 수 없는 거의 10개에 가까운 위계가 단번에 올라가는 황홀함.

“아… 아아….”

그 경험은 오르가즘에 필적하는 쾌락을 안겨주었다.에아는 신음을 흘리며 그것을 만끽한다.

그리고….

“돌아왔구나, 내 사랑스러운 베틀.”

그녀의 등에 돋아난 뺵빽한 리본이 장식품처럼 너훌거리며 물병자리의 마녀, 에아 사달멜리크의 화려한 복귀를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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