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우는 눈을 감았다.
차분히 쌓이는 눈 소리가 들릴 정도의 집중.
심장이 뛰는 소리와 숨소리가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처럼 크게 들릴 정도의 고요.
심상의 내부를 관조하듯 정신을 집중하면 의식은 끝없이 컴컴한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다.
확인해 볼 것이 있다.
여태껏 시우가 쌓아 왔던 수많은 마법식이 존재하는 아인.
시우의 눈앞에 보였다.
그림자의 일렁임.
베틀.
원소 입자.
기억의 궁전으로 향하는 문과 열쇠.
계약의 문자열.
역장과 함께 떠오른 거대한 달.
그리고 시우가 원래 연구하던 프렉탈 형태의 차원식.
예상대로였다.
정신을 차린 직후 자신의 마법을 시우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몇 가지나 되는 자성마법이 추가되어 있던 것이다.
기존 외부로 드러났던 처녀의 베틀과 그림자의 법칙, 미완성 차원이동식과 만병지왕의 계약 이외에도.
원래 무의식에 가라앉아있던 것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완성도를 따지자면….
“끔찍하네....”
그야말로 끔찍하다.
원래 존재했던 구조물들은 제법 질서와 규칙에 맞게 잘 쌓여 있었지만, 새로이 추가된 구조물은 몹시도 난잡한 상태였다.
시우가 일전 무의식 속을 파고들어서 봤던 것과 비교하면 아이의 레고 놀이와 전문가의 건축물 수준의 차이가 났다.
무질서.
그 아름다웠던 조화를 기억하는 시우의 눈에는 이것들이 더더욱 하찮아 보였다.다시금 눈을 감고 의식을 가라앉힌다.
내면의 자신과 만날 생각이었다.
대화가 가능한 상대인지는 솔직히 감이 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 능력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어지간한 위협에서는 자유로워질 수 있을테니 충분히 시도해 볼 가치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내려가도 내려가도 존재하는 것은 우주처럼 무한한 어둠뿐이다.
그때의 검은 장막 같은 것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역시 그런가….”
시우는 눈을 떴다.
스승님과의 수련 장소로 활용하곤 하던 제머나이 저택의 공터가 보인다.
사람의 의식과 무의식이라는 게 C 드라이브 D 드라이브도 아니고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크게 하지 않았다.
“피어라.”
시우는 영창을 외웠다.
클로버 덕택인지, 아니면 무의식의 시우가 몸을 재건해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탈진을 제외하면 경미한 부상이었다.
새로운 무기와 스킬을 얻었다면 사용해보고 싶은 것이 당연지사 아니겠는가?
아직 최적화가 엉망인 낙인을 추궁해 가장 익숙한 그림자의 법칙을 시연해 보였다.
그림자를 부정형의 안개처럼 뿜어내자.
-후우우욱!
“뭐야.”
전설 속 크라켄이 먹물을 뿜어낸 것처럼 공터가 그림자로 가득 찼다.
그 그림자는 달빛조차 완전히 가려버려 마치 아인에 들어 온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미쳤네….
경악스러웠다.
예전에도 거듭 증폭을 활용해 마력을 어찌어찌 뽑아내면 이 정도의 그림자는 생성할 수 있었다.
하지 만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다.
족히 10배는 올라간 효율과 농도.
시험 삼아 갑옷으로 입어보자 그 체감은 더욱 확연해진다.
전신에 맞닿은 흑색 갑주는 원소와 결합하지 않았음에도 일전보다 짜임새 있고 단단하다.
마법이 강화되었으리라는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이번에는 리본을 꺼내보았다.
-촤르르륵!
순식간에 허공을 수놓는 100가닥이 넘는 검은 리본.
개수가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롭게 움직이며 힘 또한 강력하다.한 가닥 한 가닥이 마치 팔처럼 움직였다.
무의식과 의식이 뒤엉키는 과정에서 모종의 기능향상이 일어난 것일까?
이건 강해졌다고 기뻐한다거나 그런 수준이 아니다.
갑작스레 주어진 힘은 도리어 기분이 나쁜 수준이었다.
가령 이 힘이 과연 ‘아무런 대가 없이’ 주어진 것인가에 대한 불쾌감.
“어.
불현듯 현기증을 느낀 시우는 마법 사용을 그만두었다.
아직 지쳐있는 마력 회로를 타고 흐르는 작열감은 둘째치고, 극심한 숙취처럼 옆 통수를 찌르는 편두통이 견디기 힘들었다.
“아직은 무리였나….”
오늘 만병지왕의 계약과 붉은가지까지 테스트를 끝내고 싶었는데.조금은 더 몸을 쉬게 해 줄 필요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나무 위로 쌓여있던 눈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뿅 하고 튀어나오는 두 개의 인영이 보인다.
굵직한 나무 기둥 뒤로 쫑긋 튀어나온 토끼 귀와 옆으로 튀어나온 상어 꼬리.
일전 현세에서 쌍둥이가 사 왔던 파자마였다.
“오딜 님, 오데트 님. 나오세요.”
잠잠하다.
“죄송한데 다 보였습니다.”
한마디 더 얹고 나서야 반응이 돌아왔다.
“오데트 너 때매 들켰어!”
“언니가 하품하다가 나를 밀쳐서 내가 나무를 건드린 거잖아!”
또또또 티격태격.
언제나 입에 미소가 절로 새겨지는 쌍둥이의 장난이다.
슬쩍 다가가자 서로를 노려보며 입이 댓 발 나와 있는 쌍둥이가 보인다.
“이렇게 추운데 잠옷만 입고 뭐 하시나요?”
“원래 조수님이 귀가하는 타이밍에 놀래 주려고 했는데.”
“언니 때문에” “오데트 때문에”
““실패했어” 요.”
여전히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는 스테레오 화법.
이대로 두면 또 언니 탓이오, 동생 탓이오 싸울 것이 뻔하니 적당히 끼어들어 중재했다.
“추운데 빨리 들어가요. 감기 걸리겠어요.”
팔을 벌리자 쫄래 쫄래 한쪽 팔에 한 명씩 안겨오는 오 쌍둥이.
제각기 팔짱을 끼는 모양새였다.
조그마한 머리통 두 개가 기대져 팔뚝에서는 봉긋한 가슴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양손의 꽃이다.
“조수님 섭섭해. 우리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휭 가버리고.”
“맞아요, 아무리 해결하실 일이 있다지만. 저랑 언니랑 얼마나 걱정했다구요.”
“죄송해요, 제가 조금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기다렸다는 듯 눈을 빛내며 달라붙는 오딜.
“조수님 진짜 미안한 거 맞아?”
“그렇죠, 걱정도 잔뜩 끼쳐 드렸고….”
“그럼 정식으로 사과하셔야겠네요.”
“겸사겸사 우리 부탁도 들어주고.”
이런 분위기라면 뭘 요구할지는 대충 감이 왔다.
항상 비슷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보이지 않아도 쌍둥이는 시우와 하는 걸 무척 좋아했으니 말이다.
비록 뒤로밖에 못 하지만.
“당연히 들어 드려야죠.”
“그럼, 조수님 방으로 가자.”
“제 방이요?”
사실 제머나이 저택가에 머물게 된 이후로 쌍둥이와 몸을 섞은 것은 딱 한 번.그때 별장에서 알비레오에게 걸렸을 때뿐이다.
비록 쌍둥이와 섹스할 때에는 뒷구멍으로만 하는 만큼 마력의 파동이 생겨나진 않지만 쌍둥이 저택에는 그녀의 스승인 알비레오와 무엇보다 데네브 제머나이가 상주한다.
아무리 그래도 조금 켕겼다.
들켰을 때의 후일이 무섭기도 하고 말이다.
그건 쌍둥이도 매한가지인지 무리하게 시우에게 사랑을 나눌 것을 요구하진 않았다.
하지만 오래 기다렸을 쌍둥이에게 충분히 시간을 내주지 못한 것도 잘못이다.잘못을 한 상태에서 마냥 버틸 수도 없었다.
세 사람은 공터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우의 방으로 들어왔다.
쌍둥이는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파자마 후드를 벗은 뒤 시우를 침대 위에 앉혔다.먼저 오데트가 포문을 연다.
“저희가 부탁하고 싶은건요.”
“조수님이랑 엄청 엄청 진하게 키스하는 거야.”
“가위바위보에서 제가 이겨서 제가 먼저 할 거예요.”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생글생글 웃는 오데트와 뭔가 못마땅한 듯이 팔짱을 끼는 오딜.
“괜찮겠죠?”
“키스만이라면 얼마든지 하셔도 좋은데…. 아무래도 조금 조심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정말 키스만 할게요.”
총총 다가온 오데트가 시우의 허벅지에 걸터앉아 다리로 허리를 감았다.그리고 목을 꽉 끌어안으며 키스를 재촉했다.
“요기에 해주시면 돼요. 그리고 혀도 넣어주세요.”
“오데트 너무 시간 끌지 말고 나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이제부터 엄청 오랫동안 할 건데?”
오데트는 모처럼 첫 번째 타자가 되어 굉장히 신난 듯했다.
반대로 오딜은 첫 타자를 뺏겨 굉장히 못마땅한 듯했고.
언니를 놀리며 이죽거리던 오데트는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시우에게 키스를 졸랐다.
역시 쌍둥이는 귀여우면서도 요망한 매력이 있다고 해야 하나.
푹신한 토끼 파자마를 입은 오데트를 보니 그야말로 인형 같았다.
“후음….”
부드럽게 얽히는 입술.
오밀조밀 작은 혀가 입술을 맞대자마자 즉시 시우의 입안으로 쏙 들어왔다.
밤늦게 꿀을 탄 우유라도 마신 것인지 살짝의 우유 향기와 달달한 꿀맛이 타액과 섞여 느껴진다.
“츄웁...흐음… 쭈웁
눈을 꼭 감은 채 열심히 혀를 놀리는 오데트.
굉장히 서툰 키스지만 별다른 말없이도 전해져 오는 마음이 참 따뜻하다.
길고 긴 키스를 끝낸 오데트는 발갛게 변한 얼굴로 시우를 올려보았다.
평소에는 소심한 장난꾸러기인 쌍둥이지만 이렇게 야릇한 분위기로 흘러가면 굉장한 요염함을 자랑한다.
“헤헤, 좋아요….”
“오데트 인제 그만 나와! 무슨 키스를 3분이나 해!”
“아앗…! 언니! 간지러워!”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끌어당기는 오딜에 의해 끌려 나온 오데트.오데트는 곧장 불만을 토로했다.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게 나잖아!”
“그렇다고 혼자 다 해먹으라는 말은 아니었거든?”
“언니도 이렇게 했을 거면서!”
여지없이 말싸움을 하는 쌍둥이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문득 페리윙클의 말이 떠올랐다.
처음엔 미안한 만큼 더 힘껏 사랑하라고 했던 그녀의 말은 무척 궤변같이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또 생각해 본다면 이 방법밖에는 없지 않은가?
시우에게는 하나하나 모두 소중한 사람들이다.
“오달 님 오데트 님.”
“조수님/이번에는 말리지 마. 전부터 하늘 같은 언니한테 따박따박 대드는 게 마음에 안 들었는데. 오데트랑 끝장 좀 봐야겠어.”
“겨우 몇 시간 차이 언니면서!”
시우는 팔을 벌려 오딜과 오데트를 와락 끌어안았다.
“뭐 뭐야? 갑자기.”
“저도, 저도 언니한테 할 말 많은 데에….”
거의 맞붙어 뒹굴며 싸움이 벌어질 뻔했던 쌍둥이지만 시우의 품에 안기자 거짓말처럼 얌전해졌다.
“항상 고마워요.”
“왜, 왜 이래 새삼스럽게….”
“맞아요, 조수님은 저희의 은인인데….”
“오딜 님도, 오데트 님도. 두분 모두 제 은인이세요.”
잠잠해지다 못해 머리카락을 비비 꼬며 부끄러워하는 쌍둥이.
쑥스러워하는 모습까지도 쏙 빼닮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거의 맹신에 가까운 신뢰를 보이는 쌍둥이를 보니 책임감이 무럭무럭 솟는다.
“더욱더 멋진 사람이 돼서, 오딜 님과 오데트 님의 마음에 완전히 답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무슨 소리야, 조수님은 이미 우리랑 엄청 잘 어울리는 멋진 사람인데.”
“맞아요, 맞아요.”
“그건 그렇고 키스 내 차례야.”
먹이를 조르는 새처럼 입술을 뾰족하게 내민 오딜.
아무래도 장소가 장소인지라 쌍둥이 역시 섹스는 뚜리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결국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 자리가 되었다.
무용담을 듣는 것처럼 비앙카와의 싸움 이야기.
처음 만났던 때의 이야기.
물병자리 마녀의 이야기.
시우가 병상에 누워있을 때의 이야기 등등.
비록 술은 없어도 시도 때도 없이 더해지는 쌍둥이의 키스는 분위기를 돋우기 충분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