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405화 (405/917)

1.

굉장히 뜻밖으로 들리겠지만 게헨나에는 시청 규정에 의거한 건축법이 존재한다.

건물의 외관이나 실내가 지나치게 게헨나의 분위기와 동떨어지거나 미관을 해칠 경우 건축 허가가 나지 않는 것이다.

두루뭉술한 조항이지만 단적으로 말하자면 현세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자재와 건축 공정을 사용해 건물을 짓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제머나이 백작가와 예소드 백작가, 또 게헨나의 위치한 갖은 건물들만 보아도 대충 이해할 수 있다.

사실 법령의 제한이 풀린다고 해도 게헨나가 갑자기 현세 신도시처럼 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게헨나의 건설자들은 현대의 건축 과정을 모르고, 또한 각종 자재를 들여오는데 상상을 초월할 금액이 필요할 테니 말이다.애초에 게헨나에 머무는 대다수 마녀들은 미적 기준이 과거에 맞춰진 편이다.

그렇게 예스럽고 고풍스러운 건물이 9할 이상인 게헨나에서 가장 현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저택이 있다면 그것은 레노먼드 타운에 위치한 페리윙클 저택일 것이다.

커다란 유리 벽을 아낌없이 사용해 개방감을 준 점도 그렇고 실내조명에 할로겐 램프를 적극 활용한 것도 그렇다.

마치 취향 독특한 할리우드 배우가 살 것 같은 저택이랄까.

일전에는 정신이 없어 살피지 못했는데 가구 하나부터 실내장식까지 느낌이 많이 달랐다.

페리윙클에게는 아직 갚지 못한 빚이 있었기에 시우는 거의 곧장 그녀를 만나러 방문했다.

이번 사태가 잘 해결될 수 있도록 도와준 일등 공신을 꼽자면 페리윙클을 빼놓을 수 없다.클로버가 없었더라면 싸움이 비벼지는 수준까지 갈 수도 없었을 테지.

“귀염둥이 왔어?”

전처럼 공방으로 가면 되는 건가 싶어 배회하고 있을 무렵 페리윙클이 마중을 나왔다.

군청색 머리카락을 공주님처럼 올려 묵고 자칫 촌스럽게 보이는 반짝이 드레스를 걸치고 있었다.

으레 시퀸 드레스라고 불리며 스팽글이 잔뜩 달린 물건인데 페리윙클의 경우 반짝이는 장식 하나하나가 아주 작은 보석이었다.본판부터가 늘씬한 미녀 상이고 부티나게 생긴 그녀에게는 더없이 잘 어울리는 코디다.

“페리윙클 님.”

“얘기는 들었어. 깨어나자마자 바로 오다니 기특한걸?”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기에 앞서 시우는 땅바닥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깊이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타카쇼도 페리윙클 님 덕분에 무사했어요.”

시우가 가장 크게 감사를 느끼는 이유였다.

페리윙클이 아니었다면 기껏 개고생하며 비앙카와 대적한 이유조차 없었겠지.

“됐어, 그 친구한테는 이미 답례를 받았거든. 로즈 글래스 VVIP 평생 우대권이라나?”

별거 아니라는 듯이 피식 웃으며 손짓한 페리윙클은 사뿐사뿐 걸어와 시우에게 팔짱을 꼈다.

“하지만 아직 약속한 건 못 받은 것 같아서. 까먹지는 않았지?”

“물론입니다.”

“그런데 너 정말 욕망의 마녀를 이긴 거야?”

페리윙클은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시우를 보았다.

비록 페리윙클의 클로버가 예상외의 변수를 만들어내는 최고의 예장이긴 해도 위계에서 나오는 격의 차이라는 것이 있다.

당장 페리윙클이 비앙카와 맞붙었더라면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것이다.

목숨이야 겨우 건졌을 뿐이겠지.

그런데 고작 1대에 불과한, 그것도 남자 마녀가 그 악랄하기로 이름 높은 공적 사냥에 성공하다니.

결코 쉽게 믿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심지어 페리윙클과 시우의 첫대면은 그가 눈 17개 달린 호문쿨루스에게 당했던 때이니 말이다.

“음…. 말씀드리자면 좀 긴데. 사실 마무리는 제가 하지 않았습니다.”

“마무리는…?”

그럼 마무리 직전까지는 시우가 했다는 것 아닌가?

소문만 듣고 ‘다른 마녀의 조력이 있었겠거니….’ 여겼던 페리윙클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네, 그… 메리골드 남작님이 도와주셨거든요. 방심하고 있을 때요.”

복잡한 심경을 내비치는 표정과 말투였지만 페리윙클에게는 그런 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갑자기 그의 옆얼굴이 다르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전까지 시우는 페리윙클에게 조금 특별한 남자인 것이 전부였다.

성취가 빠르긴 하다지만 마법도 겨우 흉내 내는 수준이고, 아무튼 무력으로만 따지자면 페리윙클보다는 아래였던 상대.

그런 그가 실은 22 위계 공적까지 토벌할 수 있는 실력자?

괜히 더 멋지고 늠름해 보이는 것이다.

“...이거 위험한데.”

“네? 무슨 말씀이세요?”

마녀라도 일단은 여자이다.

강한 수컷에게 끌리는 암컷의 본능은 깊이 내재하여 있는 것이다.이제까지는 마녀보다 강한 남자가 있을 수 없었어서 그렇지.

“그런데 약속은 어떻게 지키면 될까요?”

저 중후한 목소리의 떨림.

힐끗 5리효클을 보는 시선에 괜히 위압감이 서린다.

아닌 말로, 그럴 리 없겠지만, 시우가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저항하는 페리윙클을 찍어누른 채 멋대로 범할 수도 있는 것이다.

페리윙클은 뜨거운 숨이 목에서 탁 걸리는 것을 느꼈다.

“그… 그러게? 어떻게 하면 좋으려나?”

“생각해두신 거 아니에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하는 시우를 보며 페리윙클은 더는 참지 못했다.

“좀 거칠게 하는 것부터 해볼까?”

2.

“후우..,”

아직도 열기가 남아있는 침대 위.

등받이에 기대앉은 페리윙클은 느긋하게 담배 연기를 뿜었다.

시우도 마찬가지로 사이좋게 담배를 물고 둘 사이에 놓인 재떨이에 톡톡 재를 털고 있다.

이불로 전부 가려지지 않고 드러난 페리윙클의 몸에는 울긋불긋한 손자국이 가득했다.

극도의 쾌락에 발버둥 치며 벗어나려는 페리윙클을 시우가 묵직하게 찍어누르며 생긴 결과.

슬쩍만 이불을 내리면 이빨자국이 가득한 페리윙클의 가슴도 드러날 것이다.

그가 처음 개통해 주었던 뒷구멍으로 3번이나 사정을 받은 페리윙클이지만 어쩐지 석연잖았다.

“무슨 고민이 라도 생겼니?”

분명 시우는 열정적으로 페리윙클의 몸을 탐했다.

자지에 박?|고 박&다가 참을》없어춰금엉G 기어 도망치는 페리윙클을 단단히 찍어 눌렀고, 아무리 싫다고 외쳐도 집요하게 뒷구멍을 공격했다.

하지만 이전과는 뭔가 달랐다.

자신의 몸매에도 얼굴에도 자신이 있는 페리윙클인만큼 정말 뜨겁고 농밀한 밤이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기분이야 당연히 좋았고, 기대했던 것 이상의 만족감을 얻었다지만 시우의 언행은 어쩐지 사무적이었다.그도 그럴게.

그는 속내를 숨기는 것이 어설프니 말이다.

“0| 누님한테 말해 봐. 상담이라도 필요한 얼굴인데.”“마음이 완전 콩밭에 가 있던데. 죄책감 때문이야?”

“괜히 죄송하네요. 더 열심히 해도 모자랄 판국에.”

사실 고민이 많았다.

본래였다면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하게 굴어도 모자랄 상황이긴 하다.하지만 아직 신경 쓰이는 것이 너무 많았다.

총 세 가지.

첫째는 아멜리아.

비앙카에게서 시우를 구해준 그녀에게 제대로 된 감사 인사도 못 한 것.

게다가 차가운 시우의 눈을 보고 멍하니 굳은 채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그녀의 모습.

왜 그녀가 현세에 나와 있을지에 대한 의문.

최악의 결별을 맞이했던 그녀가 쪽지를 읽긴 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시우를 보고 있을 건지.

둘째는 케테르 공작의 꿍꿍이.

도대체 무슨 속셈인지 알 수가 없다.

수십 년째 은거 중이라던 케테르 공작이 왜 별안간 시우에게 ‘그릇’을 넘겼는지.

왜 몸을 치료해 주었는지

왜 사고에 개입해 문어발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을 옅게 만들었는지.

하나도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마지막 고민은 두 번째 것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

샤론과 쌍둥이에 이어 스승님과도 정식으로 교제하게 된 이 시점에 이전처럼 아무 여자나 찌르고 다닐 순 없다.

케테르 공작이 무슨 목적으로 수작을 부렸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수작 자체를 알게 된 이상 예전과 똑같이 행동할 수는 없다.페리윙클과 몸을 나눈 것도 그녀에게 갚기 힘든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지, 조만간 예소드 백작과의 관계는 청산할 생각이었다.

“실은...”

이 중에 페리윙클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은 3번 문제뿐이었으므로 시우는 그것에 대해서만 심정을 토로했다.새로운 담배를 물고 시우의 말을 경청하던 페리윙클은 피식 웃었다.

“아, 미안미안. 비웃으려던 건 아니야. 그냥 귀여워서.”

“남은 심각한데 뭔가요….”

“너무 순진하잖& 하아, 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줄 알고 깜짝 놀랐지 뭐야. 그래서 그렇게 한사코 키스도 안 한 거야? 섹스하는 내내?”페리윙클은 귀엽다는 듯이 시우의 뺨을 꾸욱 꼬집었다.

어째 이상하다 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나랑 자기 싫어서 거짓말하는 건 아닌가? 라고 생각했겠지만 페리윙클은 시우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있다..제 딴에는 진지하게 이 문제를 궁리하고 있을 것이다.

“왜 웃기냐면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일부다처는 그렇게 이상한 게 아니었거든. 아직도 법적으로 허용하는 나라도 많고.”“법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페리윙클은 차분히 제 생각을 털어놓았다.

“너는 얼굴도 잘생겼고, 능력도 좋아. 아마 네가 앞으로 살면서 엄청나게 많은 여자가 꼬일 거야. 능력 있는 영웅이 삼처사첩하던 이야기가 그리 먼 옛날이야기는 아니라는 말이지.”

“...뭔가 남사스러운데요. 제가 영웅인 것도 아니고요.”

“22 위계의 공적을 사냥한 남자가 어떻게 영웅이 아니겠어. 넌 조금 더 네 상황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어.”

하지만 시우는 여전히 갑갑한 표정이었다.

페리윙클은 조금 더 공을 들여 그에게 설명하려 했다.

“인간이 왜 한 명만을 사랑할까? 이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건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 사람을 온전히 사랑해주기에 인간의 생은 너무나도 짧고, 젊음은 더더욱 짧거든.”

“그건….”

“네가 준비만 되어 있다면, 그럴 자신만 있다면. 왜 사랑에 죄책감을 느껴야 하니?”

꼭 그와 계속 섹스하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귀여운 동생의 연애 상담을 해준다는 느낌이었다.

“미안하다면 미안한 만큼 더 사랑하면 되는 게 아닐까?”“우선 가보고 마음 좀 정리하고 와. 아직 너한테 빚을 다 받아낸 건 아니니까. 그래도 이렇게 찜찜하면 서로 불만족스럽잖아? 가서 네 나름의 답을 찾아봐.정 나랑 하기 싫으면 다른 상환 방법을 일러줄 테니까.”

“페리윙클 님, 뭔가 정말 든든한 누님 같네요.”

“이제 알았어? 내가 너보다 몇 살 연상인데.”

페리윙클은 시우에게 몸을 기울여 가볍게 뺨에 뽀뽀를 해주었다.

“아 참, 이 말을 좀 늦게 했네.

그녀는 멋지게 싱긋 웃었다.

“잘 돌아왔어.”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