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404화 (404/917)

1.

일전 게헨나 최초의 남자 마녀 신시우와 몸을 섞은 예소드 백작은 그가 사정할 때 마력의 충전과 더불어 독특한 마력의 파장을 발현시킨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우는 자신의 몸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규명이 필요했고,

예소드는 마녀로서 자연히 존재하는 마법적 탐구심을 채울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둘이 합의하고 성관계를 나누었고, 그 결과를 마법적 작용과 마력의 파동을 측정해 기록하는 수정에 기록했다.그것을 분석하며 예소드 백작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건….”

신시우의 사정 매커니즘은 크게 다섯 가지 차례를 거친다.

사정-마력 침투-마력 회수-증폭-반환.

이 과정은 마치 자율방어가 작동할 때처럼 시우의 사고가 개입되지 않으니 본능 혹은 무의식과 맞닿았을 가능성이 있다.

이 자체로도 신비하고 놀라우며, 조금 차갑게 들리겠지만 ‘유용’하다.

일반적으로 마녀가 낙인에 마력을 저장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자기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순도 높고 정순한 최상위 마력수가 있다면 충분히 시간을 단축할 수 있지만 그래도 시간이 걸리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반면 그의 마력충전은 그런 통념을 완전히 뒤집는다.

자기화에 있어 굳이 필터링을 거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완전무결한 순수마력.

이 정도라면 예민하고 섬세한 견습마녀의 그릇에 주입되어도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을 정도였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

마법 회로에 걸리는 과부하와 피로도, 그리고 마법을 연산함에 따라 생기는 필연적인 정신력 소모를 감당할 수만 있다면 몇 번이고 마력을 완전 충전하는부조리한 치트를 쓸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대단해요….”

그러나 예소드 백작이 수정에서 읽어낸 기록은 그조차도 능가한다.

그는 마력을 주입하면서 마치 몰드처럼 낙인에 존재한 자성마법의 파편을 덧그리고 있다.

소름이 돋았다.

그가 보유한 자성마법의 특색 탓인지.

아니면 ‘남자 마녀’라는 고유의 특성이 불러오는 것인지는 비교할 샘플이 없기에 확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예소드 백작의 뇌리에 스쳐 가는 한 가지.

혹시 이거라면 기존의 틀을 깨는 새로운 방식의 ‘계승’이 가능한 건 아닐까?

놀라운 발견에 가슴을 졸이며 두근두근하고 있을 무렵.

원격 수정구가 웅웅 울렸다.

평소라;이런 원대한 발견의 가능성을 앞에 두고 있는데 방해하는 작자가 누굴까 귀찮았겠지만, 지금은 예외다.

“어머? 시우 씨가 깨어났다고요?”

며칠 전 욕망의 마녀와 맞서고 친구까지 구해온 그러면서도 크게 다치지 않은 내연남 신시우.그가 병상에서도 일어났다는 소식이었다.

2.

우연히 예소드 백작과 마주친 알비레오는 살짝 멍한 표정이 되었다.

높다란 하이힐을 신고도 거의 달리다시피 복도를 걷고 있는 예소드 백작.

시우가 깨어나면 보고해달라고 부탁했던 것이 그녀이고, 조금 전에 수정구로 연락했으니 여기에 있는 것 자체는 이상하지 않았다.

애초에 예소드 백작은 시우가 누워있는 사흘간 무려 두 번이나 병문안을 왔던 것이다.

사실 고작해야 과외 제자의 어머니 포지션 겸 임시 선생인 예소드 백작이 시우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수상쩍긴 했다.

그러나 깊게 염려하진 않았었다.

‘에이 설마….’ 하는 심정이 컸음은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예소드 백작의 품에 100송이는 족히 될만한 빨간 장미 꽃다발이 안겨있는 것을 본 알비레오는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꽃?

게다가 장미?

게다가 100송이가량?

스멀스멀 조각난 단서가 맞춰진다.

그래도 이 시점까지 알비레오는 ‘아무리 그래도….’라는 생각을 놓지 않았다.

“오랜만이네요, 백작.”

“그러게요.”

“혹시 시우 씨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병실에도 다녀왔는데 보이지 않더라고요.”

“아마 동쪽 응접실 세 개 중 하나에 있을 거긴 한데….”

“고마워요, 마음이 급해서 이만 실례할게요.”

원래라면 우연히 마주쳤다 해도 가벼운 대화를 나누기 마련이다.

알비레오 백작은 이 저택의 주인이고 예소드는 어디까지나 손님으로 온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예소드는 간단한 인사만을 끝내고 꽃다발은 안은 채 알비레오를 지나쳐갔다.

나름대로 정통파인 예소드 백작이 이런 나사 빠진 모습을 보일 때는 딱 한 가지 경우였다.

그녀의 견습마녀 디아나와 관련이 있을 때.

근데 지금 상황이 디아나랑 연관이 있던가?

“예소드, 혹시 그 장미는 디아나 양의 선물인가요?”

정숙지 못한 일임을 알면서도 알비레오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무슨 의미인가요?”

“가령 그 꽃다발이 오는 길에 디아나 양께 받은 선물이라거나, 아니면 디아나 양이 당신을 대신해 시우 씨에게 꽃을 선물했다거나….”

고개를 갸웃거리는 알비레오를 보면서 예소드 백작도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솔직하게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은 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숨길 수도 없다.

딱히 숨길 이유도 없고.

“하아…조금 쑥스러운 일인지라 비밀로 하고 싶었는데…. 알비레오의 눈썰미 앞에서는 별수 없네요.”

“네?”

마치 첫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풋풋하게 얼굴을 붉히며 쑥스러워하는 예소드 백작을 보며 알비레오의 머릿속에 ‘설마 설마 설마’하는 에코가 울렸다.

“최근 제가 새로운 행복을 찾았답니다. 그가 무사히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에요.”

알비레오는 잠깐 말문을 잃었다.

“새로운…. 행복이요?”

“네, 어쩌다 보니 그와 깊은 관계를 갖게 되었는데…. 계승을 얼마 남기지 않고 이렇게 달콤한 생활을 보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바야흐로 예비 장모와 사위의 내연녀의 만남이었다.

알비레오는 어이가 없어서 무슨 말을 할지도 잊어버렸다.

쌍둥이에 이어 샤론에 이어 예소드 백작까지?

도대체 얼마나 더 발을 뻗칠 것인지 믿어지지 않는다.

“자세히 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스산해지는 눈빛.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듯 예소드 백작은 은밀한 자랑거리라도 늘어놓듯 시우와의 관계를 완곡하게 털어놓았다.

“남자와 여자의 깊은 관계라면 달리 있겠어요?”

“아….”

그러면서도 얼굴을 수줍게 붉히는 예소드 백작.

비록 남자 혹은 여자와 관계를 맺어본 적은 없지만 그런 알비레오조차 알아차릴 수 있는 기미였다.

어지럽다.

알비레오는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와중에 물었다.

“혹시 누가 먼저 제안한 관계인가요?”

“그게 중요한 일인가요?”

그쯤 되자 예소드 백작 역시 의아함을 느낀 모양이다.

그러더니 음흉한 아저씨 같은 표정을 지으며 알비레오에게 너스레를 떤다.

“아,혹시 알비레오 당신도 그에게 눈독을? 후후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독점욕 같은 건 달리 없으니까. 그와는 단순히 재미난 놀이만 함께하는 사이랍니다.”

“예소드, 말해줘요.”

예소드 백작의 꽁트에 어울려 줄 생각이 없는 알비레오는 한숨을 숨겼다.

“제가 먼저 유혹하긴 했어요. 이런저런 이유로 이해관계가 맞아 계속하게 되었지만요.”한눈에 하나씩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쌍둥이들을 채간 것도 모자라 샤론, 예소드 백작에게도 다리를 걸치고 있다.

역사상 이렇게 많은 마녀를 후린 바람둥이가 또 있을까?

백작이 먼저 제안했건 말건 의미가 있을까 싶다.

“그나저나 당신도 눈길을 둘 줄은 몰랐네요. 제 기억에 당신은….”

“관두죠.”

어디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포기한 알비레오는 기왕 만난 겸 예소드 백작을 시우에게 안내해주기로 마음먹었다.겸사겸사 바람둥이 사위에게 못마땅한 눈빛도 좀 보여주고 말이다.

그렇게 품위도 내려놓고 들뜬 예소드와 함께 L자 형으로 꺾이는 복도를 걷던 알비레오가 우뚝 멈춰 섰다.맞은 편 으로 나 있는 응접실의 창.

커튼이 틈새의 창을 통해 시우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냥 시우가 아니었다.

소파에 앉아있는 티페레트 공작과 진하디진한 키스를 주고받는 신시우였다.

“으헥!”

믿기지 않는 장면에 눈을 갸름하게 뜨고 창밖을 내다본 알비레오는 저도 모르게 괴상한 경악성을 지르고 말았다.

틀림없다.

멀리서도 한눈에 보이는 분홍빛 머리카락이 티페레트 공작이 아니면 누구겠는가?

안 그래도 골치 아픈 난장판에 티페레트 공작이 포함되어 있었다니.

알비레오는 아연한 표정으로 굳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쌍둥이를 밀어 넣어주려고 했다.

그러나 티페레트 공작은 규격 외의 강자다.

비록 그녀에게 남은 재산이 거의 없다고 해도 그녀가 지닌 명성과 존경은 일반적인 마녀들에 비할 것이 아니었다.개성 있고 매력적인 외모는 굳이 말하기도 입 아프고 말이다.

이걸 어디서부터 손봐야 할까.

아니, 이게 어떻게 손을 댄다고 해결될 일일까?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갑자기 멈춰서 품위 없는 괴성을 내는 알비레오를 보고 고개를 갸웃한 예소드 백작 역시 같은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예소드 백작의 안색도 괴성과 함께 창백해진다.

시우에게 이미 연인이 있다는 말을 듣긴 했다.

그러나 그게 설마 엘로아 티페레트 공작이었을 줄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불장난을 즐기던 백작으로서는 상상치도 못한 본처의 등장이었다.

단순히 게헨나 내부에서의 영향력이나 자본만 따지자면 빈털털이 티페레트 공작보다 예소드 백작가가 훨씬 앞서긴 하지만….

예소드는 결코 화가 잔뜩 난 채 그녀 앞에 선 티페레트 공작을 보고 싶지 않았다.

두 백작은 나란히 서서 시우와 엘로아가 키스를 나누고 떨어지는 모습까지 지켜보았다.각기 복잡한 심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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