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으...I”
뽀송뽀송한 햇살이 느껴졌다.
뒤통수로 느껴지는 것은 오리 깃털을 넉넉하게 채웠음이 분명한 푹신한 베개.
가슴께까지 덮여 벽난로의 온기 한줌을 품은 담요도.
안락하기 그지없다.
창살 사이로 흘러들어온 햇살이 간만에 빛을 보는 눈을 뜨겁게 쑤시는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무척 포근하고 따스한 햇살이 다.
단잠에 취한 것처럼 다시 스멀스멀 수면으로 기어가려던 정신이 찬물을 끼얹은 듯 투명해졌다.
비몽사몽에만 머물러 있기에는 아직 해결되지 못한 무수히 많은 문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시우야!”
““조수님!””
눈이 부시는 광량에 눈이 적응되기도 전에 네 사람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그렇게 왼손에 조금 작은 두 손.
오른손에 한 손.
부서질 듯 잡고 싶은데 차마 그럴 수 없는 떨림이 느껴지는 손길.
굳이 눈을 뜰 것도 없었다
사실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어도 알아차렸을 것이다.
쌍둥이와 샤론이 다.
“그런데 갈 거면 나한테라도 이야기했어야지!”
“조수님…! 진짜! 못 됐어요!
“맞아 엄청 못돼 먹었어 툭하면 사라져서 죽을 짓만 하고!”
끔뻑이며 뜨인 눈꺼풀 사이로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샤론과 쌍둥이가 보였다.
샤론은 거의 흐느껴 울기 직전이고, 쌍둥이는 반쯤은 침대 위로 뛰어넘어와 시우에게 와락 안기려는 걸 꼭 참는 게 보였다.
펄펄 화를 내는 것이 다 걱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기에.
시우는 뭐라도 사과의 말을 꺼내려 했다.
“미, 콜록…!”
꽤 아무 말도 없이 오래 누워있던 탓인지 갈라지는 목.
그 모습을 보자마자 샤론과 쌍둥이가 동시에 협탁 위의 물병을 잡는다.거의 베이스를 터치하려 슬라이딩하는 타자의 기세였다.
“呈 물 마셔!”
“제, 제가 줄래요!”
“조수님, 솔직히 내가 주는 물이 제일 마시고 싶지?”
“감사합니다, 고마워.”
어째 세쌍둥이인 양 죽이 굉장히 잘 맞게 되었다.
시우는 지나치게 호흡이 좋아진 세 사람을 보며 얼떨떨한 심정으로 물잔을 받아 들였다.
원래는 조금 티격태격하지 않았었나 싶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넌 혼나야겠어!”
“샤론 언니 말이 맞아!”
“샤론 언니 말이 맞아요!”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시우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그의 침대 옆을 지키면서 기묘한 전우애 같은 것이 피어난 샤론과 쌍둥이였다.일전 서로 오해를 풀고 협약을 주고 받기도 했고 말이다.
일단 얌전히 물을 받아먹고 나자 샤론의 질책이 시작되었다.
“제정신인 건 맞아? 가면 확실히 죽을 거 뻔히 알면서…. 왜, 너 없으면 우린 어쩌라고…!”
“맞아! 조수님 깨어나는 사흘 동안 우리가 얼마나 전전긍긍했는지 알아?”
“잠도 제대로 못 하고 여기서 조수님 깨어나는 거 기다렸다구요!”
주위를 둘러보자 천개로 가려진 침대 주변에 작은 침대 한 개와 꽤 큰 침대 한 개가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작은 쪽이 샤론의 것.
큰 쪽이 쌍둥이 둘이 사용하는 것인 것 같았다.
깨어날 때까지 극진한 간호를 받은 것이다.
“그,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인 줄 알아?” 요?”
하지만 큰소리도 오래가지 않았다.
쌍둥이와 샤론이 일제히 달려들어 시우를 꽉 끌어안았으니 말이다.
푹신푹신하게 코를 휘감는 꽃향기.
샤론과 쌍둥이의 시》잡거나 뺨을 비비며 말했다.
“앞으로는… 절대로 그런 무모한 짓 하지 마….”
“조수님, 솔직히 좀 대단한 건 인정하겠는데…. 앞으로는 그러지 마.”
“조수님, 그러시다가 저희가 계승 받기도 전에 돌아가실 것 같아서 무서워요….”
울먹이며 흘러나오는 진심 어린 걱정과 따스한 환대.
시우도 콧날이 시큰해졌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던 소중한 사람들의 품속은 평소보다 포근했다.
하지만 이렇게 마냥 마음 편히 안겨 있기에는 마음 한구석 걸리는 점이 있었다.
시우가 비앙카에게 죽음을 무릅쓰고 찾아간 것은 결국 타카쇼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시우는 모든 수작에 어울려 주었음에도 타카쇼를 지켜내지 못했다.
시우를 위해 극악의 고문까지 버텨낸 타카쇼를.
“샤론…. 혹시, 타카….
목이 메이려 한다.
도저히 유해는 찾았느냐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없었다.
그렇게 된다면 타카쇼의 죽음이 확실시 되는 것이니 말이다.
주저하고 망설이던 때 방문이 열리며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등장했다.
“여어, 신시우. 역시 일어났구나.”목발을 짚고 있고 양팔에 깁스했고 붕대로 칭칭 감고 있지만, 여전히 구릿빛 건강한 피부를 자랑하는 미마야 타카쇼.시우의 오랜 친구였다.
2.
쌍둥이와 샤론에게 10분간 양해를 구한 시우.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 타카쇼를 끌어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살면서 한 번도 진짜 눈물 흘리는 걸 본 적 없는 타카쇼 역시 눈시울이 빨개진 것이 보인다.
“어, 어떻게 살았어? 너 진짜 타카쇼 맞냐?”
“에헤이, 보면 모르시나. 명색이 게헨나 제일 최고 미소녀 타카코가 백마 탄 신시우 님이 구하러 와주시는데 어떻게 맥없이 나자빠져있냐.”
믿기지 않았다.
인간 따위는 벌레 취급하는 그 비앙카라면 무조건 인질의 가치가 떨어진 시점부터 죽였으리라 보았거늘….
“너 몸에 구멍 뚫리고 고기밥 된 거 아니었어?”
“구멍? 뚫렸지. 그 미친 썅년이 구멍을 뚫어줄 거면 아래 한 개만 뚫어주면 되는데 기어이 세 개를 뚫더라.”
그 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오싹 소름이 돋는지 몸을 부르르 떠는 타카쇼.근데 어떻게? 라는 눈빛으로 보고 있자 어깨를 으쓱하며 답한다.
“그래도 페리윙클 님의 사업파트너로 나간 거 아니겠냐. 뭐, 인맥을 소개받은 거뿐이다만, 아티팩트를 빌려주셨거든. 돌아오면 돌려달라는 조건으로.”
그렇다.
타카쇼가 현세행에 동반하게 된 것은 애시당초 페리윙클이 주선한 사업체와 납품 계약을 맺기 위함이었다.
타카쇼는 그 뒤로 사려 깊은 페리윙클 님의 드높으신 지혜에 대해 떠들었다.
조금 농담과 과장이 섞이긴 했어도 정말 큰 은혜를 입은 것은 사실이다.
몸에 큼직한 구멍이 세 개나 뚫리고 바닷물에 한 시간 넘게 염지됐는데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클로버가 안겨준 ‘기적’이라는 말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아무튼, 이번에도 정말 고맙다, 친구야.”
“새끼… 나 때문에 잡혀간 건데….”
“그게 왜 너 때문이야. 온갖 마녀를 홀리는 이 몸의 마성이 문제인 거지.”
타카쇼는 튼실한 건치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고 시우 역시 그에 마주해 미소 지었다.
“아, 그리고 기쁜 소식이 하나 있다.”
“뭔데?”
타카쇼는 중대 사실을 발표하듯 눈을 감았다.
무척이나 고무된 듯 거세진 콧김과 눈꺼풀의 꿈틀거림.
“나, 선다….”
“뭐…?”
“자지가 섰어. 오늘 아침에.”
과연 타카쇼가 뜸을 들인 것처럼 중대 사안이었다.
비앙카가 불알을 으깼음에도 타카쇼의 발기 및 사정 기능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고 한다.시우는 진심으로 굳게 손을 맞잡으며 타카쇼의 진정한 부활을 축하해 주었다.
“넌 진짜 대단한 놈이야.”
“그걸 이제 알았어?”
3.
“하여간 시우 군은 사고뭉치네요….”
샤론, 쌍둥이, 타카쇼와의 해우가 끝난 후 시우가 상대해야 하는 것은 알비레오 장모님이었다.
싸움에서 어찌어찌 돌아와 재회했을 때 가장 마음이 켕길 것 같았던 사람 2위.
참고로 1위는 데네브이다.
“도대체…. 어떻게 가는 곳마다 이렇게 사건이 터지죠? 물병자리의 마녀, 비겁의 마녀, 호문쿨루스 소동에 이어 욕망의 마녀까지….”
알비레오는 질책을 넘어 어이가 없다는 수준의 반응이었다.
이 모든 일이 2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일어났다는 것이 경악할 따름이다.어떻게 팔자가 꼬여도 저렇게 꼬이는 지.
“면목없습니다….”
시우는 의자에 앉아 얌전히 무릎을 모은 채 사죄의 오체투지를 준비하고 있었다.
사실 알비레오는 쌍둥이와 시우가 뒷구멍 섹스 관계임을 알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대인 난이도가 올라가는 상대다.
더군다나 플로라 아라베스크에게 망토를 주문하는 대가로 건넨 신용증서.
시우는 거기서 얼마간의 금화가 빠져나갔는지는 아직 전해 듣지 못했다.
허나 마이페이스 플로가 히죽히죽 웃으며 좋아하던 모습을 보았을 때 절대로 적은 금액은 아니라고,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래서 이렇게 알비레오와의 독대가 껄끄러운 것이고 말이다.
“시우 씨가 저희 가문의 은인이고 이번 폭주가 친구를 구하기 위한 의로운 행위였다는 건 인정해요.”
“넵,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기존에 약조했던 금액의 2배가 훌쩍 넘는 금액을 이렇게 써버리면…. 아무리 시우 씨라도 그냥 넘어가기는 힘들어요.”
“두, 두 배요…?”
“정확히는 2.74배네요.”
그야말로 놀라울 따름이었다.
일일이 생각하며 쓴 적은 없었지만 100억이었던가?결코, 적은 액수는 아니었을 텐데….
“그, 그게 정확히 얼마죠?”
“기존엔 5년마다 100억씩 지급이었죠. 정확하게는 시우 씨가 현세에서 쌍둥이의 계승이 끝나길 기다리는 조건으로. 이 지원 으부조가 아직까지 의미가 있는지는... 살짝 회의적이지만요.”
그럼 옷 한 벌에 274억을 태웠단 말이다.
시우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제머나A가문;3;종살이하는 자신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진 탓이다.
차마 양심상 15년 치를 미리 줬다고 생각하시면 안될까요? 라고 할 수는 없고….
그 절반만 갚으려고 해도 그게 얼마야.
로또를 맞아도 열 번은 맞고 또 몇 번 더 맞아야 겨우겨우 갚을 금액이다.
“빚을 졌네요, 시우 씨.”
“감당하겠습니다.”
시우는 눈을 감고 알비레오의 처분을 기다린다.
잔뜩 긴장한 채 이어질 말을 대기하고 있자니 피식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자 입가를 가린 채 웃고 있는 알비레오가 보였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게 해요. 사람 살 떨리게 하지 말고.”
성녀와 같은 알비레오의 반응에 가슴이 웅장해진다.
“정말 그거면… 되나요?”
“당연히 안 되죠. 올바른 부르주아의 삶이란 허투루 나가는 금화 한 푼도 꼭느 움켜 쥐어야 하는 법인 걸요.”
“윽... ”
할 말이 궁색해져 고개를 숙인 시우를 보며 알비레오는 깔깔 웃었다.
농담인 걸 알면서도 마땅히 대꾸할 수 없다.
알비레오도 그 점을 알기에 시우를 상대할 때 곤란한 농담을 쏟아내곤 했다.
이쯤 되면 백작들은 다 성격이 비슷한가 싶다.
“대신 쌍둥이도 많이 예뻐해 주세요. 샤론 양만 챙기지 말고요.”
곰살맞은 말투로 넌지시 충고한 알비레오.
안 그래도 딸 도둑이 된, 그것도 쌍둥이 딸 도둑에 바람둥이가 된 시우가 달리 할 말이 있을까.
“최선을 다해서 받들겠습니다.”
“대답이라도 씩씩해서 좋네요. 아, 시우 군. 시우 군은 극심한 마력소진으로 기절한 거지만 사흘이나 누워 있었어요. 움직일 수 있다고 맘껏 나돌아다니지말고 당분간 요양을 취하세요.”
“네, 그것도 알겠습니다.”
알비레오는 나가보라는 듯 손짓을 하며 다시 펜을 쥐었다.시우가 들어오는 순간에도 공무를 보고 있던 그녀다.저런 걸 보면 부자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싶달까.
“아, 혹시 스승님은 어디 계시나요?”
당연히 시우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바람처럼 달려왔을 것이라 생각했던 엘로아.여태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찾아가려던 터였는데.
“티페레트 공작님은
-벌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