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401화 (401/917)

#401

1.

첫 번째 문을 열었다.

세상이 보인다.

그곳은 온갖 수식과 기하학적인 수열로 가득한 세상이었다.

아니.

조금 다르다.

이것은 만약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사물과 물체의 행동원리를 마법적으로 분석한다면 덧그려졌을 계산식이었다.

조금 의식을 집중하자 잠자리 눈처럼 겹겹이 흩어진 시야 사이로 한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시우의 몸을 치료해주고, 나중에는 원나잇 상대까지 함께 해주었던 거유녀.

예빈 스미르나.

그녀는 자성마법과 성교를 활용하여 자신이 창조한 아인에 갇혀 오직 연구만을 거듭하던 시우의 의식을 활성화했다.

무엇이 무엇인지 확실하지 못한 상황 가운데.

본능에 가까운 외침이 두 가지 답을 내놓는다.

자성마법을 본떠라.

범하고, 범해 마법을 가져와라.

그것이 유일한 답일진저.

시우는 예빈을 덮쳤고 그녀의 마법 기억의 궁전을 복사해내는 데 성공했다.

자성 마법치고는 급이 그렇게 높지 않은 것이었다.

고작해야 타인의 기억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 전부였으니까.

두 번째 기억.

아멜리아가 보였다.

예빈 스미르나보다 훨씬 높고 풍부한 마녀 특유의 체취.

이미 한 번 본능의 지시를 따라 마법을 복사해 냈던 시우이다.

이 마법 역시 가져와야 한다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마법의 성취에 더 없이 도움이 될 것 같았으니까.

그녀는 다소 저항이 있었지만 고분고분하던 예빈 스미르나와는 달랐다.

아멜리아 메리골드는 마법 연구의 협조를 거절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지만 들리지 않는다.

그저 마법의 연구를 방해받았다는 불쾌함과 되짚을 수도 없는 예전 기억이 입술을 달싹이게 한다.

아마도 욕설이었겠지.

그 순간 마법식이 베일처럼 잠깐 걷히며 아멜리아의 얼굴이 드러난다.

곧은 눈빛과 도망치지 않기로 각오한,

하지만 조금만 건드리면 무너져내릴 것 같은 눈물 섞인 눈망울이 시우의 얼굴에 멈춘다.

아멜리아는 시우를 질책하지 않았다.

등을 돌린 시우 앞에서 도리어 자신이 죄라도 지은 것처럼 눈물을 머금더니 조용히 방문을 닫는다.

시우는 몰랐다.

이런진실.

기억하지 못했다.

기억이 흐른다.

두 번째 문에 도달했다.

시우의 일상은 마법을 홀로 연구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쌓아올린 자산을 바탕으로 끝없이 분해와 재조립을 반복하며 효율적인 형태를 추구하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영감이었으며 놀이터였다.

가령 게헨나를 분리해주는 이 거대한 결계 자체가 완벽에 가까운 것처럼.

기존에 있던 차원마법식을 위해 그 결계를 참고하고하며 시우는 끝없이 연구를 계속했다.

그러던 중 느껴진 결계의 결함.

완벽해야 할 게헨나의 결계에 이상 조짐을 느낀 시우는 에아 사달멜리크를 만났다.

끔찍한 공적 배제해야 할 악.

그교를 대면한 순간 명확두의식이 없음에도 그녀를 방해물이라 판단한다.

싸웠고.

쓰러뜨렸다.

단순히 마법을 복사 및 이전해가는 것은 방해물에게는 사치다.

무릎을 꿇는 그녀를 강간하고 처녀의 베틀을 빼앗았다.

만병지왕의 계약을 빼앗았다.

시우는 처음으로 베틀과 만병지왕이 어떻게 제 손에 들어왔는지를 깨달았다.

이후.

케테르 공작을 만났다.

어떻게 알아차렸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오버클릭 된 마안으로도 그녀의 깊이를 꿰뚫어 볼 수 없었으니까.

어떠한 말을 중얼거린 케테르는 지나친 과부하로 부서져 가던 시우의 몸을 어린 시절로 돌렸다.그와 동시에 아인이 이등분 된다.

한 명의 신시우는 위.

한 명의 신시우는 아래.

원치 않는 깊은 곳으로의 유배.

더는 마법의 영감을 얻을 수 없는

블록을 부수고 다시 쌓기만을 하복해야 하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시우에게 낙담은 없었다.

분노도 없었다.

다만 짙은 아쉬움이 모종의 조처를 하게 했을 뿐.

검은 아인이 완벽하게 닫히기 직전.

신시우는 위의 아인과 연결되는 한 가닥의 실을 던졌다.

다른 마법을 지닌 마녀의 체취를 들이마시었을 때 그것을 갈망하도록.

위기의 순간이 닥쳐 더는 무의식의 저변에서조차 마법을 연구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언젠가 다시 떠오르도록.

자율방어와 연결고리를 걸어 놓는다.

기나긴 시간이 흘렀다.

이따금 마법의 조각이 흘러들어올 뿐인 무료한 시간.

보통의 인간이었더라면 그것이 지겨웠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양질의 마법을 받아들일 때마다 개화하고, 변화시키는 것만으로 충족감을 얻는다.

그는 텅 빈 아인의 자신의 세계를 쌓았다.

더욱 완벽하게, 더욱 아름답게, 더욱 높은 곳을 향하여.그것이 마녀가 지녀야 할 사명일 테니.

잊혔던 기억의 문이 하나둘 열려간다.원소 마법의 파편을 얻게 된 것.

계약의 마법의 파편을 얻게 된 것.역장 마법의 파편을 얻게 된 것.

시간이 흐른다.

다시 등장한 문은 지금까지의 문과는 조금 생김새가 달랐다.

단단하게 닫혔던 검은 문과는 다르게 어딘가 조악한 생김새.

그리고 은은하게 빛나는 분홍빛의 마력 반사광과 문짝에 새겨진 계약의 무늬.

문을 열자.

“미안하네, 하지만 지금은 이것이 최선이라 믿어 의심치 않네… 오늘 일에 대한 책임은, 이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반드시 지도록 할테니….”

시우의 코 밑으로 머리를 들이대는 엘로아가 보인다.

다른 기억들과는 달리 선명하게 들리는 엘로아의 대사와 그녀의 육신과 쾌락에 번민하는 땀방울까지 선명하게 눈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쌍둥이네 마차에서 단둘이 있게 되었을 때.

묘약을 들이킨 시우와 엘로아는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다.

상황극을 빌미로 이어지는 엘로아의 절절한 본심.

“아마도… 저는 시우를 많이 사랑하나 봐요.”

별안간 계약검을 꺼내 든 엘로아.

“계약한다.”

그것으로 이번 기억이 끊겼다.

바야흐로 마주한 마지막 문.

인질로 잡혀간 타카쇼와 그런 그를 구하기 위해 욕망의 마녀와 독대했던 일.

여기부터는 기억이 제법 부드럽게 이어진다.

시우가 이 기억의 궁전을 거닐기 전.

마지막 기억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모아왔던 마법의 파편.

그것은 거대한 나무에 엮어 합일한 신시우는 비앙카에게 맞섰다.

그 마법은 자신의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경이로웠으며 또한 아름다웠다.

결국에 받아냈다고 착각한 승리.

욕망의 마녀는 최후의 최후까지 동귀어진의 수를 안배해 두었다.

창살 같은 이빨이 온몸을 난자하려는 그 순간 차갑게 내리는 겨울비와 함께 부서져 내리는 야생화의 군총.

시우는 아멜리아를 보았고.아멜리아도 시우를 보았다.

그녀가 왜 여기에?

마법 수업도 공방도 내팽개친 채 어디론가 떠났다고 들었다.

가슴이 술렁인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시선을 마주치자마자 뻣뻣하게 굳어버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썩 편치 않다.

마치.

기억을 되찾은 시우가 모진 말을 내뱉었을 때의 아멜리아 같아서.

일부러 잊혀두고 외면하려 했던 감정이 꾸물꾸물 올라오는 것 같아서.

쪽지를 펼쳐 본 것일까?

어떻게 여기 온 것일까?

말을 고르고 골라 입을 열고 싶었지만 여기는 과거 이미 지나간 순간일 뿐이다.

시우는 아멜리아에게서 시선을 떴!다.

그의 눈은 저 드넓은 바다를 넘어 사라져 가는 기척에 집중된다.

다 잡은 사냥감을 놓칠 순 없기에 내디딘 발걸음은 극심한 소모와 피로로 방전되듯 멎었다.

신시우가 알지 못하던 신시우의 기억도 거기서 끝이었다.

2.

“크헉... 우웩...। 우웩…!”

어두운 지하실.

한 아티팩트가 놓여있다.

거대한 포유류의 태막, 혹은 고깃덩어리로 만든 침낭을 연상시키는 그것은.

비앙카 벨릴리가 최후의 수단으로 마련해 두었던 환생의 고치.본디 에아 사달멜리크의 수중에 있던 것을 갈취한 것이다.

몸을 적시다 못해 코와 입안까지 들어찬 끈끈한 액체를 내뱉으며 비앙카는 진저리를 쳤다.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경험이었던 탓이다.

또한, 두려움 탓이기도 했다.

위계의 하락이란 어찌 보면 죽음보다도 끔찍한 것.

비록 비앙카가 위계를 바치는 대신 단 한 번 목숨을 살려주는 아티펙트를 아무런 위계의 하락 없이 부활할 수 있도록 개조했다 한들.

결과는 직접 죽어보기 전까지 모르는 것이니 말이다.

다행스레 비앙카에게는 아직 22획의 선명한 낙인이 남아있었다.

불법 튜닝의 대가로 일회성이 되어버려 말라 비틀어진 육포처럼 사라진 환생의 고치.

저만한 ‘최후의 도주로’를 잃게 된 것은 아쉽지만 반대로 말하면 본래는 있을 수 없던 재기의 기회를 얻은 것이다.방심하지 않는다면 두 번 다시 같은 방식의 패배는 반복하지 않는다.

“쿨럭! 쿨럭! 재밌네, 재밌어.”

우선은 체력과 마력을 회복하는 것이 먼저다.

엎드린 채 가쁜 숨을 고르며 몸을 일으키려 한 비앙카.

그녀의 몸이 우뚝 굳는다.

-또각 또각 또각

지하실로 향하는 원형의 계단.

그곳에서 들려서는 안 될 발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이곳은 비앙카가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은 은신처이자 보물창고.

타인의 인기척이나 등불에 너울거리는 그림자 따위가 보이면 안 됐다.

심지어 그것이 에아 사달멜리크의 것이라면 더욱더.

“올라! 이렇게 인사하는 거 맞지?”

갓 탈피한 애벌레처럼 바닥을 기는 비앙카의 시선에 에아 사달멜리크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그믐달 아래 피안화를 연상시키는 새빨간 안광.

어깨 위에서 똑 자른 단발과 그녀가 사랑해 마지 않는 물병 무니 레이스의 드레스.

“아하하하…. 미친 년….”

비앙카는 실소를 지었다.짓지 않을 수 없었다.

며칠 전까지 침을 질질 흘리며 주인님 주인님 거리던 에아 사달멜리크.

게다가 홍콩에서 술래잡기하라는 명령을 내렸던 그녀가 이곳에 있는 이유.헛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내연기는 어땠어?”

비앙카는 22 위계.

지금 에아는 13 위계.

하지만 일전 전투에서 격렬한 소모를 거치고 한 줌의 마력도 남아있지 않은 비앙카는 에아를 결코 이길 수 없다.연료가 없는 미사일은 그저 고철더미일 뿐이다.

“병신년처럼 침 질질 흘리는 연기?

반쯤 악에 받친 채 비웃음을 흘린 비앙카지만 에아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도리어 쪼그려 앉아 비앙카와 눈을 맞댔다.

“그렇게 안일하면 어떡해? 머리띠도 벗겨 놓고…. 자유롭게 풀어주고…. 벗길 거면 옷만 벗겼어야지. 게다가, 어머 이거 볼래?”

에아는 부자연스럽게 등 뒤로 넘기고 있던 팔을 앞으로 빼내어 손바닥 크기의 연꽃을 보여주었다.크리스탈로 만들어진 듯 무지개색 현묘한 빛을 내뿜는 연꽃.

“이런 중요한 건 따로 빼돌려 뒀어야지.”

아무리 그녀가 망가졌다고 판단했다 한들 이 공방을 에아에게 알려준 기억은 없다.

하지만 에아의 말대로 비앙카의 행동이 안일했더라면, 의식하지 못한 작은 동작이나 말에서 단서를 흘렸을 가능성 정도는 있을 것이다.

심지어 이것은 에아의 입장에서 노 리스크 하이 리턴의 도박수였다.

만일 비앙카가 싸움에서 이겼더라면 환생의 고치로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고, 에아는 평상시처럼 연기를 계속했겠지.반대로 지금처럼 환생의 고치로 돌아왔다는 것은,당장 저항이 불가능한 피해를 보고 왔음을 의미하니.

부정할 여지가 없다.

비앙카는 에아 사달멜리크에게 완전히 속아 넘어갔다.

에아는 즐거워 죽겠다는 미소를 지으며 이를 꽉 물었다.

웃음을 참기 위한 표정이라는 건 알기 어렵지 않다.

“0| 연꽃이 뭐라더라? 충분한 제물과 마력만 있으면 내 위계도 회복할 수 있댔나?”“...죽여.”

비앙카는 최후를 직감했다.

그녀가 알고 있는 에아라면 절대로, 절대로 비앙카의 목숨을 살려두지 않을테니.

“벌써? 그러지 말자. 아쉽잖아, 모처럼 통쾌한 순간인데 나도 당한 건 복수해야지.”

그렇다.

비앙카는 에아를 온갖 방법으로 수치를 주며 괴롭혔다.

확실히 에아 정도로 자존심이 높은 마녀가 그런 짓을 당했다면 되갚아주고 싶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이것은 기회다.아주 실낱같은...

“미안, 농담좀 해봤어.

비앙카는 화끈한 열선이 목을 스치고 지나간 듯한 통증을 느꼈다.

뒤늦게 꿀렁이는 피가 기도로 흘러들어 가며 폐를 적시는 게 느껴진다.

에아는 마치 백정처럼 정확하게 목의 급소에 칼날을 그었다.

자율방어 활성화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소진한 비앙카에게는 치명적인 한 수였다.

“컥! 커헉… 쿨럭…!”

“&정 示 네가i려줬잖아. 방심은 아주 병신 같은 짓이라는 걸.

그래도 한 가지 위안 삼을 점을 알려줄까? 네 낙인은 아주 좋은데 쓰이게 될 거야. 바로 나 에아 사달멜리크의 화려한 부활에! 그 쓸데없는 몸뚱아리는 흐

음…. 돼지 먹이로 던져줄 거지만.”

에아가 붙잡던 머리카락을 놓자 비앙카의 머리가 푹 앞으로 꼬꾸라진다.덧없이 시멘트 바닥을 움켜쥐며 부러지는 손톱.

끄르륵거리는 피거품 소리 위로 에아의 스산한 웃음이 겹쳤다.

“고마워, 비앙카 벨릴리. 넌 정말 좋은 주인님이었어.”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입조심하면서 글만 쓰겠습니다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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