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400화 (400/917)

3.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아멜리아가 마력의 파동을 되짚어 도달한 곳은 한 조선소는 면밀히 살펴봐도 특별히 수상한 점이 보이지 않았다.

결계가 따로 펼쳐진 흔적도 없고, 추가로 마력의 둔중한 파동이 느껴지지도 않는다.

이쯤 되면 그저 착각이었나? 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아멜리아 정도 되는 마녀가 인접한 결계의 존재를 간과하는 건 있기 힘든 일이니까.

헛걸음이었음을 느끼고 돌아서려는 아멜리아.

그런 그녀를 붙잡으려는 듯 다시 한 번 느껴지는 둔중한 마력의 충격.

-쿠우웅!

아멜리아가 포착한 것은 무너진 결계의 흔적이었다.

아직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저 하늘 너머 조각난 듯 걸려있는 밤하늘.

검은 바다 한가운데는 살생부에서 보았던 욕망의 마녀가 내려앉은 깃털처럼 떠다니는 것이 보였다.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

잔뜩 찢어진 옷과 마력 결핍으로 창백해진 안색만 보아도 뚜렷하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 앞를 내려보는 남자.

그토록 그리고 그려왔던 뒷모습은 신시우의 것.

“아….”

느릿한 탄식과 함께 떠오르는 것은 트라우마였다.

에아 사달멜리크의 발치에 딸려 머리를 꿰뚫리던 신시우.

전후 상황을 불문하고 ‘공적과 단둘이 있는 시우’를 보는 것만으로 아멜리아의 안색이 창백해진다.

기다렸다는 듯 수면 위의 먹잇감을 삼키려 드는 거대한 입에 아멜리아는 비명을 삼키며 마법을 행사했다.

무너지는 꽃더미.

이번만큼은 아주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아티팩트와 욕망의 마녀 모두를 흩어내 버린 아멜리아는 지체 않고 바다 위를 달려 시우에게 달려간다.

비앙카 이상으로 시우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원래 어떤 피부색을 하고 있었는지 알기 힘들 정도로 피를 뚝뚝 떨어뜨리는 그의 모습.그 끔찍한 부상에서 기인한 걱정이 두려움을 잊게 한다.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어떤 얼굴로 그를 봐야 할 지 몰라서 두려움에 뒷걸음질만 쳐왔던 두 발이 쉴 새 없이 시우를 향해 뛰고 있다.

실은 두렵다.

무섭다.

거절당하는것이.

에둘러 외면해 왔던 결과를 마주하는 것이 두렵기 짝이 없다.

이별의 순간 마주했던 시우의 눈물과 그가 흘렸던 비분의 외침이 아직도 가슴에서 메아리치고 있다.

매일 밤 악몽에서 되풀이 되는 악몽이 오늘 일어날지도 모른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꽃으로 변해 사라진 비앙카를 내려다보던 시우.그의 시선이 아멜리아를 향했을 때.

수면을 찰팍이며 달리던 아멜리아의 눈이 시우와 마주친 순간 발걸음이 서서히 멎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그를 대해야 할지.

사냥이 끝난 후 몸을 웅크리며 지쳐 쓰러지기 전에 그렸던 무수한 말들.

그 어느 것 하나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굳게 다문 그의 입은 떨어지지 않는다.

희미했던 희망의 끝자락조차 말끔하게 잘라내는 것은 차가운 시선.

마치 방해꾼을 만난 것처럼 은은한 짜증마저 느껴지는 분위기는 그 어떤 변명이나 사과의 말조차 허용하지 않았다.거기에 있는 것은 단절과 배척 뿐이다.

“시…우….”

간신히 쥐어짜 낸 부름에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르고.

눈을 마주쳤던 시우는 아멜리아를 외면하듯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은 아멜리아가 아닌 동쪽 하늘을 향해 있었다.

-찰팍 찰팍

아무런 미련 없이 등을 돌린 시우의 등.

최소한의 대화조차 건네지 않고 어디론가 향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뒤틀렸던 이면결계가 무너짐과 동시에 아멜리아의 마음도 함께 무너졌다.

4.

아멜리아는 몸을 웅크린 채 하염없이 같은 장면만을 떠올렸다.

묵묵하게 호문쿨루스를 사냥하고, 공적을 잡고.

당신을 위해 했다고 말한다면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이고, 어떤 갈등이건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 여겼던 이기적인 낙관.

그 모든 것이 허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시우는 아멜리아를 보고 화내지 않았다.

한 마디 말을 건넬 여유조차 주지 않고 등을 돌렸다.

마치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그는 갈등을 풀고자 하는 마음조차 없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싸워왔던 걸까.

스스로를 비극의 여주인공으로 몰아넣고 그가 돌아봐 주기를 바랬던 것부터가 순수하지 못한 속죄였던 것일까.

이제 뭘 하면 좋은 걸까.

어디로 돌아가면 좋은 걸까.

아직 실감조차 나지 않아 눈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비정한 현실에 아멜리아는 한없이 가라앉는다.

“아멜리아! 말도 안 하고 가면 어떡해! 깜짝 놀랐잖아!”

천천히 고개를 떨구려던 아멜리아의 어깨에 클라라의 손이 얹혔다.

“클...라라….”

쪼그려 앉은 채 톡 건드리면 눈물을 쏟을 것처럼 클라라를 바라보는 아멜리아의 표정에 클라라는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저... 시우를…. 만났어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결정을 짓는 추가타가 더해지자 클라라는 확신을 굳혔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어요….”“아멜리아.”

또 혼자 도망치려하는 아멜리아의 손을 클라라가 굳세게 잡는다.

꼭느 움켜쥐는 거나 다름없는 거친 손길에서 오는 통증.

그것이 패닉 상태에 빠지려던 아멜리아의 의식을 붙잡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데? 제대로 이야기해줘.”“싫어요…. 괴로워요…. 이제 다 싫어요….”“아멜리아!”

클라라는 엄한 목소리로 아멜리아에게 호통쳤다.

발랄하고 씩씩한 성향 탓에 원래부터 목소리가 커다랗던 클라라였지만 이렇게 큰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다.깜짝 놀란 듯한 아멜리아의 눈이 클라라를 향했다.

“우리는 친구잖아! 적어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말해줘! 나도, 나도 널 돕고 싶단 말이야….”

“클라라….”

커다랗게 치켜떠 졌던 아멜리아의 눈에서 방울방울 눈물이 떨어진다.

호흡이 괴로운 듯 찡그려진 고운 얼굴로 괴롭게 헐떡였다.

그를 만나 벌어졌던 모든 일을 설명하는 아멜리아.

사실과 감상이 뒤섞이고 말투는 흐려진 데다가 반쯤은 흐느낌인 횡설수설이었기에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클라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아멜리아의 말을 들어주었다.

시우가 어떤 반응을 보이며 그녀를 대했는지.

그녀가 어떤 절망을 느끼고 있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클라라는 아멜리아를 품에 안은 채 하소연에 가까운 말을 들어주었다.

“아멜 리아.”

히끅이기만 할 뿐 제대로 답도 못하는 아멜리아를 보며 클라라는 그녀의 등을 토닥인다.

“그렇다면 아직 제대로 대화를 나눈 적도 없다는 거네?”

“...말할 수… 없었어요….”

“아냐&냐, 널 :!;하려는 게 아니야. 그래도 확실한 건 없다는 거잖아.”클라라의 말에 아멜리아의 몸이 슬쩍 굳는다.

“이렇게 혼자 괴로워할 거면…. 조금만 더 용기를 내보는 건 어떨까?”“네가 갑작스럽게 시우를 만난 것처럼 시우도 갑자기 나타난 네 모습에 당황했을 거야. 지금쯤이면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몰라. 아니면 너처럼 내심후회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고.”

아멜리아는 타인의 말을 잘 믿지 않는다.

너무 오랜기간 혼자 생활하고, 가장 깊게 맺었던 관계가 최악의 파국으로 치달으며 얻게 된 인간 불신이 깊게 뿌리내려 있다.

하지만 클라라의 목소리는 유독 선명하게 아멜리아의 가슴을 울렸다.

“우선 게헨나로 돌아가자. 돌아가서, 대화가 어렵더라도 최소한 만나는 시도라도 해보자.”

“어떻게… 해야 할지….”

소중하게 아멜리아를 끌어안은 클라라는 부서질 것 같은 그녀의 금발을 쓰다듬었다.아기처럼 매달리는 아멜리아의 귓가에 키스하듯 입술을 달싹였다.

“걱정하지 마, 내가 도와줄게. 다른 복잡한 문제 생각할 것 없어.”

아멜리아의 마음에 뱀의 유혹보다도 달콤한 속삭임이 흘러들어간다.

“넌 그냥, 내 속삭임에만 귀 기울이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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