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397화 (397/917)

#397

1.

천지를 진동하던 힘의 격돌이 끝났다.

비앙카는 두둥실 하늘에 떠오른 채 조선소를 내려보았다.

더욱 정확히 표현하자면 ‘조선소였던 것’일까나.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던 컨테이너선은 마치 정교하게 만들어진 미니어쳐를 내동댕이친 것처럼 산산조각이 났다.그 아래 도크 역시 원래 숭숭 구멍이 나버려 바닷물에 잠겨가고 있다.

공간을 접어 쏘는 아크하트의 활.

그 파괴력은 질량 보존의 법칙 등 일반적인 물리학의 척도를 벗어난다.

원래였더라면 배 자체가 소멸해야 했다.

배뿐 아니라 이 일대가 폭풍에 휘말려 사라지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렇게 되지 않은 이유는 한 가지.

리본을 새총처럼 활용해 쏘아 보낸 폭주 상태의 붉은가지와 거기서 기인한 강력한 왜곡장이 상쇄반응을 일으켜 마법적 중화작용을 일으킨 것.

하지만 힘의 차이는 완연했다.

비앙카가 쏘아낸 밤하늘은 붉은 섬광을 그대로 짓누르며 추락시켰다.

급조된 임기응변의 투창이 마법적으로 완벽한 필살의 예장을 이겨내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던 일이다.

사상의 관측안에 철골 구조물에 등을 기댄 채 고개를 푹 떨구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비앙카가 가볍게 날개를 퍼덕이자 그녀의 발은 어느새 두 조각이 난 채 천천히 가라앉은 선내를 딛고 서 있었다.

“아쉽게 됐네.”

시체처럼 고개를 숙인 그에게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는 마지막까지 훌륭했다.

어떤 마녀도 막아낸 적 없던 필살의 일격을 요격해냈으니.

그러나 아무리 역장 마법에는 딱히 소양이 없는 비앙카라도 그 위험성 정도는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강력한 왜곡장에 너무 오래 노출됐다.

호흡은 거의 멎었고 지금 이 순간도 느리게 죽어가는 심장이 보인다.

비앙카에게는 어지간한 부상을 삽시간에 회복시킬 수 있는 영약이 존재한다.

그에게 먹이기 위해 잠시 앰플을 꺼내 들었던 비앙카는 그것을 도로 품에 넣었다.

영약으로도 저 부상은 무리다.

겉으로만 보기에 멀쩡하지만 마법적으로 보자면 영체 내부가 으깨진 순두부처럼 변했다.

곧이어 심장 소리가 멈췄다.

아쉬운 대로 붉은가지라도 회수해야겠지.

“어라?”

저만치 내팽개진 붉은가지.

그것을 집어 들려던 비앙카의 눈앞에 믿기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 꿈틀

아주 미세하게 움직인 손가락.

처음에는 격렬한 흥분에 의해 남아있는 전기적 신호가 근육에 잔류하고 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심장이 멎었다

흐바조 향한 동공이 완전히 풀어지는 것은 관측안으로 관측했다.

이미 사망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움직이고 있는거지?”

비앙카는 신시우를 보았다.

신시우도 비앙카를 보았다.

2.

끝없이 가라앉는다.

광활하며 어두운 공간.

그런데도 뺨을 쓰다듬고 허리를 휘감는 어둠은 모태로 돌아온 듯한 포근함을 안겨주었다.

아인.

현현하지 않는 삼계의 첫 관문.

그 지평선에는 시우가 써내려간 마법의 역사가 거대한 구조물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의 몸처럼 두둥실 표류하던 사고가 되돌아왔다.

아….

망연자실하게 탄식을 내뱉은 이유는 마지막 순간 붉은가지를 집어삼키며 쏟아지던 밤하늘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천지를 찢던 마법의 파쇄음이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듯한데 이렇게나 조용하다니.

그 부조화는 불길할 정도로 섬짓하여 몸서리치게 한다.

이것이 죽음일까.

멀리 지평선으로 점점 저물어가는.

너무나도 멀어진 마법 구조물이 보였다.

“아….”

이제야 목소리가 입 밖으로 나왔다.

동시에 자각했다.

싸움은 끝났다.

결과는 패배.

대가는 목숨.

아쉽다.

조금만 더 빨리 붉은가지를 쏠 생각을 했더라면.

조금만 더 마력을 보존했더라면.

조금만 더 공부에 힘써서 마법적 성취를 이루었더라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회한과 안타까움.

또다시 가라앉고 침잠하는 의식.

그때.

시우는 무언가 이변을 눈치챘다.

이곳은 아인, 실존하지 않는 관념적 세계.

그 끝이 존재할 턱이 없다.

그런데도.

바닥이 보인다.

시우가 이제껏 인지하지 못했던 바닥은 마치 잔잔한 석유의 수면과 같이 검었으며 또한 이 광활한 아인을 이등분하듯 넓게 펼쳐져 있었다.

발이 잠기고.

종아리가 잠기고.

허리와 가슴께 목까지 집어삼킨 그 바닥을 넘어서자.

반전된 세계가 드러났다.

검은 수면을 경계로 상하가 뒤집힌 듯 존재하는 또 하나의 아인.

쉴새 없이 변화를 반복하는 어두컴컴한 그림자.

거대한 기계장치처럼 돌아가는 격렬한 베틀의 쇳소리.

피었다 지기를 반복하며 쉴새 없이 휘날리는 원소 입자.

무한한 아인 속 유한하게 펼쳐진 계단과 문으로 이루어진 기억의 궁전.

하늘 위로 선명하게 새겨진 계약의 문자열.

역장을 관장하는 거대한 달.

그 모든 것을 조화롭게 아우르는, 하늘에서 지상으로 뻗은 거대한 나무 형태의 프렉탈.

시우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구조물 속에 거꾸로 매달린 남자가 있다.그는 신시우였다.

15 위계.

본능과 마법이 합일되는 경지.

살아남기 위한 생존 본능은 자율방어라는 형태로 나타나며 술자가 의도치 않은 이상 마법에 의한 자해가 일어나지 않는다.

신시우의 경지는 진작 15 위계를 넘어섰다.

그런 그에게 자율방어가 작동하지 않았던 이유.

그의 본능은 지금까지의 위기를 위기라고 인식하지 않았다.

시우의 심장이 멎는 순간.

비로소 자신이 움직여야 함을 깨닫는다.

굉음과 함께 아인이 뒤집혔다.

가라앉는 배처럼 수평 대칭에서 수직 대칭으로 기운 세계는.다시 한 번 뒤집혀 수평 대칭을 이룬다.

신은 잔혹하여 기적을 선물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든 기적은.

인과의 교차가 만들어낸 필연일 것이다.

3.

마녀란 신비를 부리는 존재이다.

죽은 자가 되살아나는 정도는 그다지 눈여겨볼 것이 못 된다.

하지 만 그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사상의 관측안은 틀림없이 신시우의 임종을 고하고 있었다.

부활을 위한 다른 아티팩트나 장치가 없다는 것 역시 모두 파헤치고 있었다.

마법에 의존하지 않고 일어난 신비.

비앙카는 아무리 곱씹어도 어떻게 그가 다시 일어나는지, 또 이쪽을 바라볼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놀랍네. 일어난 거야? 아직도 숨겨 둔 것이 있었다고?”

동양인 중에선 흔하디흔한 검은 눈동자와 금빛으로 반짝이는 마안.

그 오드아이와 눈이 마주했다.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무기질적인 눈동자는 깊은 심연과 같다.

비앙카의 눈매가 좁아진다.

“넌…. 누구니?”

모든 감정이 깔끔하게 거세된 안광.

다르다.

단순히 마음가짐이 변했다 수준으로 변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저도 모르게 등골을 타고 오르는 전율.

갈가리 찢겨 나갔던 갑주가 다시금 제 모습을 구축했을 때, 비앙카는 날개를 퍼덕여 밤하늘로 날아오른 뒤였다.

하늘에 잠긴 비앙카를 향해 솟구치는 수십, 아니 수백 가닥의 리본들.

그간의 전투 경험이, 관측안이, 문자로 설명할 수 없는 본능이 경고한다.

뭔가 위험하다.

지금껏 비앙카가 상대해왔던 신시우는 뭔가 어찌저찌 해가는 느낌이 컸다.자성마법 하나하나만을 놓고 보자면 높게 쳐주어야 18 위계 정도.단독으로라면 미흡할 뿐인 자성마법을 또 다른 자성마법으로 보조해왔다.

가령 구성이 흐트러지기 쉬운 그림자는 베틀을 통해 리본으로 활용하거나 원소 마법으로 강도를 높여 무구로 활용한다.또한 제대로 된 마법전으로는 정면 힘 싸움이 되지 않으니 근접 전투라는 이단적인 방식을 채택해 균형을 맞췄다.

즉, 제대로 된 마녀라고 칭하기엔 모호한 어중간한 상대였다.

하지만 저건 다르다.

리본 하나하나의 구성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정교하고 단단하다.

숫자는 적지만 위력 자체는 전성기 에아 사달멜리크의 것과 비교해도 큰 손색이 없다.

죽음의 위기를 뛰어넘은 뒤 각성?

마지막 순간에 찾아온 새로운 깨달음?

그럴 리 없다

세상은 ;렇게 상냥하고 친절하게 설계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은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걸까.

-쉐엑! 쉐엑! 쉐에엑!

모든 가닥이 제 의지를 지닌 것처럼 비앙카를 향해 쇄도하는 리본들.

그저 추적하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 그물을 놓듯 비앙카를 유도하고 한쪽에 몰아넣는다.그러나 아무리 수가 많다 한들 사상의 관측안은 놓치지 않았다.

날아오는 리본보다 빠르게 비행하면서도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지지 않는 이카로스의 날개는 여유롭게 추적을 뿌리쳤다.

당황할 것 없다.

아직 당장 마력에 여유가 있다.

마하 30.

눈을 떴다 감으면 10km 앞의 사물이 등 뒤로 지나쳐가는 극속의 세계.

본래라면 급선회 시 발생하는 G포스 탓에 인체가 찌그러져도 무방한 속력 속에서 비앙카는 아크하트의 활을 당겼다.

아크하트의 활은 비앙카가 지닌 어떤 병기보다 강력한 화력을 쏟아부을 수 있다.그만큼 많은 마력을 소모하기에 비앙카도 부담 없이 쏠 수 있는 것은 세 발까지.

즉, 최소 두 발이 남아있다.

한계까지 당겨진 활과 다시금 휘어진 하늘.목표는 저 아래서 리본을 다루는 신시우.다시 한 번 밤하늘이 쏘아지려는 그 순간.

-위이이이잉!

기다렸다는 듯 허공을 가르던 리본이 일제히 직경 수백 미터의 원을 그렸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그것은, 갈수록 좁아지는 거대한 링 터널을 만든다.

리본 하나하나에 적혀있는 빼곡한 금빛의 마법식은 모두 역장의 제어를 위한 것.

코일처럼 겹겹이 원을 그린 리본과 거기서 방출되는 역장은 감히 비앙카 벨릴리의 최고의 일격을 막아내려 하고 있다.

“쏘아라!”

두 번째의 사출이지만 위력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

-기이이이이익!

공간을 깎아내며 달리는 검은 화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리본들이 일제히 공명하고, 검은 화살은 마치 그물에 걸린 듯이 주춤한다.

“뭐…?”

이카로스의 날개로도 따돌릴 수 없을 속도의 화살이 눈에 보일 정도로 느릿하게 날아간다.그 자체만으로도 비앙카는 믿을 수 없었다.

화살이 역장에 간섭받고 있다는 의미였으니까.

규격 외의 예장, 붉은가지의 왜곡장도 아닌.

단순히 무식할 정도로 크게 전개한 정체불명의 술식에 의해.

막으려는 역장과 뚫어내려는 화살.

살이 나아갈 때마다 그 주위의 리본이 고압전류에 노출된 필라멘트처럼 새빨갛게 타들어 갔다.멈출 듯 주춤했던 화살은 다시 속력을 찾아 매끄럽게 링 터널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내 깨닫는다.

애초에 그의 목적은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내는 것이 아니었다.

-쿠와아아앙!

내장을 욱신거리게 만들 정도의 굉음.

바다가 토해낸 새하얀 물보라가 수백 미터나 치솟았다.

비앙카는 일련의 과정을 똑똑히 보았다.

필살의 일격이 리본이 만들어낸 링 터널에 유도되어 목적지와 달리 바다 깊은 곳에 처박히는 것을.

몇 번이나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걸까.믿을 수 없다.

발상 자체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직선형의 공격에 맞서 미끄럼틀을 놓듯 유도하는 것.

고작 위치보드 따위에서도 종종 마포를 막기 위해 활용되는 전략이다.

그러나 비앙카의 공격은 단순한 마포 따위가 아니었다.

설령 앞에 특수합금으로 이뤄진 1km짜리 큐브가 있다고 해도 통째로 소멸시킬 수 있는 그런 일격이다.

그걸 단순히 리본과 역장 마법을 조합해서 흘려낸다고?

조금만 연산이 잘못되어도 목숨을 앗아갈 아슬아슬한 곡예를?

광인의 소행이다.

제정신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비앙카는 경악을 금치 못하며 시우를 찾으려 했다.

산산이 흩어지는 물보라와 마력의 노이즈 안에서도 관측안은 그의 위치를 순식간에 특정해냈다.

공간을 찢고 튀어나와 비앙카의 바로 뒤에서 붉은가지를 휘두르는 신시우를.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3부 세미 클라이막스이기도 하고 연참하고팠는데…상황이 안받쳐주니 답답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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