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395화 (395/917)

#395

1.

단 한 번도 생포를 기반으로 전투를 수행한 적 없는 비앙카는 새로운 교훈을 얻었다.

날벌레를 죽이지 않고 사로잡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교훈이었다.

갑자기 어마어마한 마력의 거듭 증폭을 통해 템포를 올린 시우.

그 속도는 이미 전과 비교 불허하다.

가벼운 뜀박질만으로 음속을 우습게 넘나들며, 초인적인 스피드를 과시하고 있었다.

만약 비앙카가 맨눈으로 그것을 추적하려 들었다면 기껏해야 흐릿한 잔상만을 관측할 수 있었겠지.

그러나 ‘사상의 관측안’은 단순히 사격 보조 예장 따위가 아니다.

비앙카에 의해 강화된 관측안은 상대의 정보를 파악하고 움직임마저 완벽에 준하게 예측하는 최고의 관측기이다.

아무리 속도를 올리고 달려들어도 관측안과 연동된 비테게의 방패는 무리 없이 공격을 제지한다.

나름 리본을 꼬아 이리저리 헤집고 동시에 여러 곳을 타격한다 한들 무의미한 일이었다.

최대 72개까지 분열해 방어를 선보일 수 있는 비테게의 방패는 한 번도 뚫린 적이 없는 절대 방어 그 자체였으니까.

그러다가 앞에서 땀과 피를 뻘뻘 흘리며 창을 휘둘러대는 모습이 갑갑해지면 시성선을 휘둘러 다시 거리를 벌리면 그만이다.따라서 비앙카가 보기에는 하품이 나올 정도로 지긋지긋한 소모전이었다.

그는 명백히 몸을 혹사하고 있었다.

아무리 마력이 만능한 에너지라 한들 저만한 마력을 온전히 영체에 담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하물며 전투기에 가까운 추력을 인간의 근골로 끌어올린다면 그 말로는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다.

“무모하네.”

친구를 잃고 이성까지 잃었다 한들 이 정도로 사리분별이 안되는 자였을 줄이야.

비앙카는 또다시 구두로 바닥을 내리쳤다.

그와 동시에 하얀 종이비행기 수십 개가 추가로 떠올라 곧장 시우를 추적한다.

아까부터 시우에게 날아드는 투사체는 단순한 종이비행기가 아니다.

적을 추적해 섬멸하는 아티팩트로 만들어진 것을 추가로 비앙카가 개조한 것.

이리저리 방향을 틀며 끈질기게 추적하는 유도 투사체는 시우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쾅! 콰앙! 콰아앙!

그렇다고 무시하기만 할 상대는 아니다.

비앙카는 맹렬하고 화려한 창격으로 수십 개의 종이비행기를 모두 격추하는 시우를 보며 내심 감탄했다.

통상적인 마녀의 전술이라고 하기엔 어려워도 그의 솜씨만큼은 진짜배기다.

존재한지 10년도 안 된 마녀라기엔 과연 약화한 에아를 두들겨 패줄 만큼 강했다.

근접 전투라는 이단적인 방식을 채택한 만큼 제대로 된 대처법이 없는 마녀라면 쉽사리 승부를 내어주겠지.

믿어지는가?

고작 남자 따위가 이토록 단기간에 수백 년을 걸쳐 쌓아온 위업의 아성마저 넘보는 것이다.

불탈 듯한 소유욕이 몸을 떨게 한다.

-콰가가가강!

“후우... ”

“...아하.”

비앙카는 불현듯 깨달았다.

처음에만 해도 죽을 듯이 달려들던 그가 갑자기 무모한 돌진을 감행하지 않은 이유.

분노는 휘발성이다.

인간은 나약하다.

죽음을 각오하게 하는 분노조차도 현실의 무력함 앞에서는 덧없이 사라지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친구의 죽음을 전해 듣고 눈이 뒤집혀 달려왔던 시우.

그러나 일합 만에 견적이 나왔겠지.

이길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뼈 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이 배에 오를 때 ‘무도회 명부’에 서명을 끝냈다.

제 손으로 계약에 응한 이상 도주는 불가능해졌고 비앙카는 시우에게 그 사실을 주지했다.

그렇다면 압도적인 격의 차이를 깨닫고 도주마저 봉쇄당한 상대가 시간을 끄는 이유는?

“혹시나 해서 묻는데. 누가 구해주러 오길 기다리고 있니?”

침묵을 지키는 시우를 보며 비앙카는 확신했다.

수정구의 메시지를 확인했다는 알림이 온 순간부터 그가 모습을 드러내기까지는 제법 긴 시간이 있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일이 수틀렸을 때의 방책도 준비해 왔을 것이다.

가령 ‘30분 정도 뒤에 ~로 와주세요.’ 같은 쪽지를 남기는 것도 가능했을 테지.

티페레트 공작은 에아를 찾아 홍콩을 방황하고 있을 테니 제외하더라도, 그의 주변에는 우호적인 마녀가 많다.

“어리석어, 내가 그 정도도 생각 못 했을 줄 알고?”

하지만 비앙카는 당연히 거기까지 예상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면결계를 펼칠 때부터 아티팩트 하나를 사용했다.

‘투기장의 깃발’.

내부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싸움이 끝나기 전까지는 그 누구의 난입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 뿐 아니라 이면결계의 관측조차도 불가능하게 만든다.

공적에게 있어 은폐성을 띈 이면결계를 펼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헛된 시간 낭비야. 이 결계를 뚫고 널 도우러 올 사람 따윈 없어.”

대화에 의한 잠시간의 소강상태.

비앙카는 무한한 탄막을 형성하던 아티팩트의 사출을 멈췄고 시우는 제자리에서 헐떡였다.

그의 건틀렛 끝을 따라 뚝뚝 피가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예상대로 무리한 움직임이 연약한 피부부터 찢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항복하는 게 어떠니? 네 친구 일은 유감이긴 해도…. 인간 때문에 네 목숨까지 걸 필요가 있을까?”

그 친구를 죽인 당사자가 하기에는 너무나 뻔뻔한 말이다.

그러나 비앙카의 낙관적인 제안에는 그것을 자각하는 듯한 낌새조차 없었다.

비앙카가 마녀이듯, 신시우도 마녀이다.

반면 죽었다는 친구는 고작해야 인간이다.

하잘것없는 우정을 위해 목숨을 거는 행위는 아무리 곱씹어 보아도 어리석은 만용에 불과하다.자존심을 굽혀서라도 목숨을 보전하는 것이 지극히 합당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길어지는 침묵.

비앙카는 아주 조금의 기대를 품은 채 시우를 지켜보았다.

고고한 신념을 내세우던 인간이 타협하고 타락하는 것을 관찰하는 건 즐거운 일이다.

지금은 정의의 용사 역할을 하는 저 남자를 욕망의 노예로 삼아 애완동물처럼 키우는 상상만 해도 황홀함에 아랫도리가 저릿거렸다.

“타카쇼는 좋은 놈이었어.”

“하아....”

“그렇게 헛되이 죽어도 되는 녀석이 아니었어.”

기대를 배반하는 미련한 대답에 푸욱 한숨을 쉰 비앙카.

“인간은 원래 헛되이 죽어. 언제까지 구질구질한 감성에 매여 있을 거니. 너도 일단은 마녀잖아? 이성적으로 생각해야지.”

이건 비아냥이나 도발이 아니었다.

순수한 의도에서 나온 건실한 충고였다.

마녀에게 마법보다 가치 있는 것은 없다.

향상심과 탐구심, 그리고 욕망 이외에는 모든 것이 부가적인 감정이며, 인간이 주창하는 도덕과 윤리는 제 것을 뺏기기 싫은 자들이 만들어낸 나약한 자들의 사회적 합의에 불과하다.

인간임을 초월했다면 그 굴레를 벗어던져야 한다.

“아니. 넌 틀렸어.”

마녀는 분명 인간과는 다르다.

늙지도 않고 영생을 살며 마법이라는 것에 목을 매는 광신도이다.

하지만 어머니를 잃을 것에 속상해하는 견습마녀가 있다.

홀로 남겨질 딸아이를 걱정하는 선대 마녀도 있다.

평범한 연인처럼 시우를 맹목적으로 믿어주는 마녀도 있었으며.

유자를 잃고 괴로워하던 마교도, 남자 노예;는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와 주었던 쌍둥이도 있다.

“너는 그냥, 괴물일 뿐이야.”

“… 고지식하긴.”

비앙카는 크게 낙담하지 않았다.

그 정도 그릇이라는 거겠지.

팔다리를 부러뜨리고 황홀한 쾌락을 끝없이 안겨주다 보면 결국엔 굴복할 남자이다.

세 치 혀로 조교 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할 이유 따위 없는 것이다.

시우는 몸의 상태를 점검했다.

영체가 버틸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선 육체 강화.

전신 근육이 걸레처럼 쥐여짜진 듯 통증을 호소하고 관절부는 엔진을 감당하지 못한 구동부처럼 녹아버릴 것만 같다.

그럼에도 작살을 쥐듯 창을 고쳐 잡았다.

몸을 틀고 회전력을 더해 전력을 다해 투척한 붉은가지가 허공에 여운이 긴 붉은 꼬리를 남기며 혜성처럼 날아간다.

본인이 지닌 가장 강력한 병기를 투척해버리는 행위.

그것도 아티팩트를 제 것으로 삼을 수 있는 비앙카의 앞에서 그러한 작태를 보인 것은 자포자기의 발버둥이라고 밖에는 해석할 여지가 없다.

-키이잉!

광선과 같은 속도로 날아든 붉은가지는 여지없이 비테게의 방패 앞에 멈춰 섰다.과녁에 꽂힌 활처럼 수평으로 정지한다.

“이제 끝이지?”

비앙카는 허무하리만치 가볍게 끝난 싸움에 코웃음 치며 시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발견한다.

압도적인 격차를 목도하였음에도 조금도 전의가 사그라지지 않은 신념을.

“아니.”

붉은가지는 외부의 충격에 반응해 강렬한 왜곡장을 뿜어낸다.

그리고 지금껏 전투에서 수많은 충돌을 거듭하며 충격량이 붉은가지를 감싼 리본 안에 차곡차곡 누적되었다.

시우가 비앙카에게 달려들지 않았고 수비 일변도를 취했던 것은 돌진이 무의미함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다.

당장에라도 날뛰려는 왜곡장을 제어하는 것만으로 막대한 마력과 심력, 그리고 연산력이 소모되었기 때문이다.

1200명의 인간을 먹어치우고 개화한 저주받은 예장.

시우가 이 예장의 기능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은 고작 4분의 1에 불과했다.

적기사처럼 왜곡장을 임의로 활용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결계는 아예 활용할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누적된 충격에 더해 임의로 폭주를 유도하는 것이라면?

“이제 시작이야.”

-우우우우우웅!

붉은가지를 감싸며 그 안에 날뛰는 ‘왜곡’을 통제하던 리본이 벗겨져 나간다.

동시에 간신히 억누르던 왜곡장과 붉은 결계가 먹잇감을 향해 일제히 방류되기 시작했다.

“이, 이런…!”

친근한 비유를 들자면 뚜껑을 꼭 닫고 흔들던 콜라 안에 멘토스까지 넣어 상대에게 던져준 셈.

피아를 가리지 않고 왜곡장과 결계를 난사하는 붉은가지에 비앙카의 얼굴에 처음으로 곤혹이 서린다.

그 자체만으로는 비테게의 방패를 넘어설 수 없었다.

하지만 원체 아티펙트와 상극인 왜곡장은 전자기기에 EMP를 터뜨린 것과 흡사한 효과를 유도한다.

기능 저하와 동시에 통제에서 벗어나 먹통이 되어가는 아티팩트를 보며 비앙카는 처음으로 뒤로 물러나기 시작한다.

시우는 기다리지 않았다.

당황하는 비앙카를 보며 새로이 만들어낸 검을 들고 결계와 왜곡장이 휘몰아치는 폭풍 속에 클로버를 믿고 발을 내디딘다.

몸이 찢겨나갈 것 같은 저항감.

고농도의 왜곡장은 영체에 있어 무분별하게 방출되는 방사선과 같다.

대량의 방사능에 피폭된 듯 울렁이는 시야.

녹아내리는 것 같은 균형감각과 불타오르는 작열감 속에서 클로버 두 개가 순식간에 부서져 나가는 것이 보인다.

페리윙클의 클로버 역시 일종의 아티팩트.

왜곡장의 간섭에 아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헛수작을!”

비앙카는 왜곡장의 폭풍 속에서 멀어지는 한편 새로운 아티팩트를 꺼내들려 했다.

하지만 사상의 관측안도 일시마비된 상태.

설마 저 남자가 죽음을 각오한 최단 경로를 가로질러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탓에 대처가 느리다.

-부웅!

죽을 힘을 쥐어짜 낸 시우의 참격이 매섭게 비앙카를 향해 쇄도한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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