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393화 (393/917)

#3931.

보더 타운의 출입국 관리소의 승인을 받고 ‘문’을 건넌지 5분 만에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부서질 듯 투명한 하늘과 바다 비린내에 섞인 기름 냄새.

어지간한 건물보다 커다란 중장비가 어지간한 트럭보다 커다란 파츠를 옮기는 것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정오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15분.

시우는 담배를 물고 어깨에 두른 망토를 확인했다.

팔 움직임에 걸리적거리지 않지만, 망토 안쪽의 끈을 손목에 연결해 언제든 몸을 감쌀 수 있도록 디자인한 고급스러운 망토였다.

시우가 플로라 아라베스크를 찾아간 이유는 솔직히 말하면 동아줄이라도 잡는 심정에 가까웠다.

욕망의 마녀가 활용하는 무수한 아티펙트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원거리에서 타격이 가능한 무기라는 것이다.

처녀의 베틀이 있다고는 해도 시우의 무대는 초근거리에서의 근접전이다.

클로버만으로는 그 간격을 메울 수 없기에 또 다른 수단이 필요했다.

지금까지 주워들었던 몇 가지 단서를 조합해보면 답이 나왔다.

일전 수영복을 맞추러 갔을 때 플로라 본인과 나눴던 대화.

‘못 가르쳐 줄 것도 없지. 내가 마음먹고 짠 옷은 어지간한 마법은 전부 방어해 낼 수 있어.’

그리고 지나가듯 나눴던 예소드 백작과의 대화.

‘아마 그녀가 계속해서 마법 연구에 매진했더라면….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굉장히 높은 경지겠죠? 까마득한 옛날부터 22 위계였으니.’

시우는 양장점에 들어서자마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았다.

그리고 그녀의 자성마법을 최대로 활용한, ‘예장’ 급의 망토제작을 부탁했다.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페리윙클 때와는 달리 옷 세 벌 맞춘 것 이외에는 아무런 연이 없는 두 사람이다.

막무가내나 다름없는 부탁에 플로라는 성가시다는 듯이 담뱃대만을 만지작거렸다.

남자 옷을, 그것도 딱히 예쁘지도 않은 망토를, 그것도 예장급 방호 성능을 넣어 만들어 달라는 억지였으니까.

‘귀찮게 굴지 말고. 썩 나가렴.’ 이라는 말은 그녀 딴에는 정중한 응대였겠지.

하지 만 운이 좋았다.

시우는 제머나이 백작가의 이름으로 발행된 백금 카드, 신용증서를 들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것을 플로라에게 넘겼다.

제 흥미본위가 아니면 무관심하고 귀찮아하는 듯한 플로라조차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시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솔직히 신용증서를 통해 얼마의 금화가 플로라의 금고로 이전되었을지는 상상하기 무섭다.

믿고 맡겨 준 알비레오 백작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만약에 살아 돌아간다면 어떻게든 충당할 생각이었다.

“후우..,”

모든 준비는 끝났다.

담죠 2기M 내2으며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세상이 멈췄다.

수상할 정도의 고요함.

조선소 곳곳을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던 인부도, 중장비도 크레인도 거짓말처럼 멈춰 섰다.

무엇보다도 고작 한 걸음을 경계로 이 세계는 밤이 되었다.

이면결계에 들어선 것이다.

다만 평범한 결계와는 다르다.

비앙카가 소지한 아티팩트에 의해 생성된 결계였으니 말이다.

기록서에서 보았던 대로였다.

너무도 복잡해 채 머 릿속으로 정리하지 못하는 감정들.

그런 감정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갈무리되며 하나의 문장을 이룰 때가 있다.

“아마 죽겠지.”

두렵다.

무섭다.

지금이라도 도망치고 싶다.

너무도 급작스러운 상황이었기에 쌍둥이에게도, 스승님에게도, 샤론에게도, 그 외의 여러 사람에게도 작별인사를 고하지 못했다.

“죽느니 못하거나.”

이 무모한 돌격에 비하면 돈키호테가 회전하는 풍차를 향해 돌진한 일은 굉장히 사려 깊고 신중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발걸음을 잡아끄는 것은 신의를 지켜준 친구에 대한 우정.

친구를 짓밟은 적에 대한 분노.

모서리를 깎아내는 것처럼 미혹도 주저함도 내려놓는다.

시우는 안대를 벗고 잠시 감았던 눈을 떴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거대한 도크 안에서 아직 건조 중인 거대한 선박.

건물 여러 개를 붙여놓은 듯한 그 규모는 하부가 수심 아래 잠기지 않은 터라 더더욱 위용이 실감 났다.망토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창을 어깨에 진다.

작업 조명도 모두 소등되어 어두컴컴한 가운데 이곳이라는 듯 불빛이 반짝이는 선미부.펄쩍 뛰어올라 배에 오른 시우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컨테이너선은 화물선이다.

아직 화물이 탑재되지 않은 모습을 묘사하자면 컨테이너를 최대한 욱여넣기 위해 커다란 바구니 여러 개를 길쭉하게 연결한 형태로, 여객선과는 달리 미관이나 운치 따위를 포기하고 실용성에만 모든 능력치를 찍은 배인 것이다.

그러나 선미부는 뻥 뚫려 있어야 할 화물창(Cargo Hold) 대신 마치 유람선에라도 탐승한 듯 근사한 갑판이 깔려 있었고 온화한 빛을 띤 조명이 시우를 반겨주고 있었다

당장 살2; 혈투를 예상했던 시우의 기대를 아득히 벗어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당혹스러운 가운데 저편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반사적으로 창을 움켜쥔다.

말끔한 신사복과 구두까지 갖춰 입은 채 고풍스러운 결재판을 품에 안은 그것의 정체는….일단 사람은 아니었다.

“신시우 씨, 초대에 응해주셔서 영광입니다.”

눈과 코가 뻥 뚫린 해골.

심지어 양복 밖으로 나온 손과 팔목 역시 하얀 백골이다.

판타지 장르에 나오는 스켈레톤을 실사화한다면 딱 이런 몰골일 듯싶다.

성대 역시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일반적인 발성이 아닌 공기가 떨리는 듯한 음색에 가깝다.

아마도 골렘 혹은 사역마이겠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정중한 말씨로 묵례한 해골은 잘 교육된 웨이터처럼 결재판과 펜을 내밀었다.

“입장하시기에 앞서 이곳에 서명해 주시겠습니까?”

“뭐하자는 거야.”

“이곳에 서명해 주시겠습니까?”“서명해주시지 않으면 입장은 곤란합니다.”

다만 역시 정교한 사고회로는 없는 것인지 어딘가 인공지능이 미흡한 NPC 같은 느낌이다.시우는 최대한 경계한 채로 결재판을 받아들였다.

양피지로 보이는 종이 위에는 비앙카 벨릴리라는 이름이 호쾌한 필체로 쓰여 있었다.

어차피 선택지는 없다.

펜을 적고 양피지 위에 신시우 석 자를 적은 순간.

-우웅

마력의 파동이 몸을 감싸는 것이 보였다.

이건 엘로아와 계약을 맺을 때 느꼈던 파동과 흡사했다.

저 명부 자체가 아티펙트.

상호 계약을 동반해 일정한 계약을 치르게 하는 아티펙트인 것이겠지.

“감사합니다. 카펫을 따라가시다 보면 벨릴리 님께서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즐거운 시간되시길.”

화물창으로 향하는 해치가 열렸다.

그 아래는 레드카펫이 복도를 따라 길게 깔려 있다.

조명이 전부 나가 어두컴컴하고 좁은 복도를 구불구불 나아간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죽음을 향하는 것처럼 숨을 들이쉴 때마다 느껴지는 묵직한 긴박감.

두 개의 문을 거치고 코너를 돌자 수십 개의 컨테이너를 보관할 수 있는 거대한 화물창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십자 형태로 엮인 강철의 격벽과 거대한 공간은 마치 거인의 정글짐을 연상시켰다.

-팟! 팟 팟!

시우가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무대 조명용으로 쓰이는 LED 라이트에 순차대로 불이 들어온다.

철제 기둥과 난간을 칭칭 감싸고 있던 꼬마전구가 총천연색의 불꽃을 쏟아내고 어디선가 피어오르는 폭죽과 꽃가루, 심지어 흥겨운 음악까지.삭막하다 못해 살풍경했던 장소가 순식간의 이국의 카니발처럼 변해버렸다.

“ihola!”

쾌활한 목소리와 함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나타난 비앙카 벨릴리.치맛자락을 잡은 채 노래 박자에 따라 가볍게 춤을 추고 있었다.

“내 파티에 응해준 걸 진심으로 환영할게!”

연극배우처럼 팔을 활짝 펼치며 방긋 미소를 짓는 비앙카.

시우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흥이 식은 듯이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이러기야?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데.”

중요하지 않다.

저 정신머리 없는 공적이 무슨 변덕을 부린 것인들.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들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지금 신경 쓸 것은 오직 하나.

"타카쇼는?”

이 주변은 수정구 속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다.

심지어 스포트라이트 바로 아래, 비앙카의 발치에 거뭇하게 묻은 핏자국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바로 본론? 춤이라도 한 곡 춰 주는 건 어떤지?”“타카쇼가 먼저야.”

비앙카가 흥이 식었다는 듯이 손가락을 튕기자 쿵쾅쿵쾅 요란스레 울리던 음악과 정신없이 분출되던 드라이아이스 연기가 멎는다.

“시간은 맞췄어. 붉은가지도 가져왔고, 혼자 왔지. 네가 입구부터 부리던 수작에도 어울려줬어. 타카쇼를 놔줘.”

“친구가 그렇게 걱정되는구나?”

파티에 어울리지 못하는 손님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비취빛 눈동자.그와는 정반대로 썩은 치즈처럼 녹아내리는 입꼬리.

“그렇게 걱정하지 마. 타카쇼는 날 즐겁게 해줬으니까.”

어쩐지.

그녀가 말을 꺼내기 전에도 불길한 직감이 등골을 기어오른다.

“영상을 찍자마자 구멍을 세 개정도 뚫어서 바다에 던져줬어. 그러니까 혹시 살릴 수 있진 않을지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돼.« 99

사실 예상하고 있었다.

비앙카는 소치틀과는 다른 존재이다.

후회 속에서 잘못된 방법이나마 자신의 과오를 되잡고자 했던 소치틀과는 아주 다른 종자.

개선의 여지도, 참작의 여지도 없는 에아 사달멜리크와 같은 순수악.

“생각보다 별로 놀라지 않네? 그럼 여긴 왜 온 거야? 혹시 내 얼굴이 마음에 들었니?”

타카쇼는 시우와는 다르다.

마법을 부릴 줄도 모르고 게헨나 최초의 남자 마녀도 아니다.

시우를 불러낼 영상만 찍을 수 있다면 그 뒤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인간.

공적의 눈으로 보자면 희소성조차 없는, 말하는 개미 정도의 존재.

그렇기 때문에 약속을 지킬 생각도 않고 그리 쉽게 죽여 버렸겠지.

“솔직히 난 별로 싸우고 싶지 않아. 계란으로 바위 치기도 한두 번이지. 너희 같은 괴물들이랑 싸울 때마다 무섭고 아프니까. 차라리 노예 취급받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잘됐네. 그럼 무기를 넘기고 순순히 따라와. 실험체로도 노예로도 아주 극진하게 대접해 줄 테니까.”

하지만 시우에게는 아니다.

그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우정을 지키려 들었던, 더없이 소중한 친구였다.

간신히 막아두었던 감정의 급류가 댐을 부수고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진다.

무모할지라도.

우스울지라도.

설령 그 앞이 죽음일지라도.

타협을 용납지 않게 하는 뜨거운 불꽃.

“그런데, 내 친구를 죽여놓고, 날 데려가겠다고?”

안대로 가려지지 않은 금안이 마력을 흡수하기 시작한다.

일대를 폭풍처럼 뒤흔드는 압도적인 마력의 흐름은 하나의 바람이 되고, 이윽고 폭풍이 된다.

“좋아, 해봐.”

자욱이 피어난 그림자가 몸을 감싼다.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주조된 갑주는 탁한 묵빛으로 가라앉고.

통제를 벗어난 붉은 창끝이 녹아내릴 듯 빛난다.

투구 사이에 친우를 잃은 분노로 불타는 한 쌍의 시선이 강대한 적을 쏘아보았다.도저히 이길 수 없는 강적을.

“대신 너도 목숨을 걸어.”

“아하하하!”

재미난 농담이라도 들었다는 듯 폭소를 터뜨리는 비앙카와 함께.

죽음의 무도회가 시작되었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샤론의 공식 일러(ver-어른)가 완성되었습니다!

갓지은밥 님이 작업해주셨어요

작품 공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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