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383화 (383/917)

#383

1.

아침 식사 대신 백작님으로 간단히 요기를 끝낸 시우.

막 구워낸 스콘 위에 무염 버터를 바르고 꿀 두 스푼 넣어 휘휘 저은 밀크티를 마시는 것보다.

막 벗겨 낸 백작님과 농밀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훨씬 영양가 넘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튼 폭풍 같은 아침 식사 이후.

디아나의 가정교사 업무로 복귀해도 좋다는 백작의 허가를 받았다.

당장 어제오늘 침대에서 폭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디아나를 금쪽처럼 아끼는 예소드 백작이 만에 하나를 생각해 격리하려 들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뜻밖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꽤 신뢰를 얻은 모양이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백작에게 끝끝내 ‘따님이 저희 섹스 장면을 목격하셨습니다. 저랑 눈도 마주쳤어요’라고 말하지 못했다.

말할 기회를 봤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기가 힘들었다.

차라리 디아나와 대화로 풀고 비밀로 묻자.

왜 독일 속담에도 있지 않은가?

“말하지 않은 것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백작과 함께 샤워를 끝내고 말끔한 집사복을 차려입은 시우는 디아나의 방문을 두드렸다.

“디아나 아가씨, 신시우 입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제 흥분이 극에 달했던 시우는 상당히 섹스한 섹스를 해버리고 말았다.

남녀 관계에 대해서는 키스만 봐도 펄떡 날뛰던 순진한 디아나로선 꽤 충격이 아닐까….

은연중 걱정된다.

그래도 일전에 한번 구해줬던 인연이 있다.

또 갖은 놀이 활동으로 첫 만남에 비하면 비교적 부드러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니 잘만 이해시키면 되지 않을까?

그런 낙관을 가슴 한쪽에 품었다.

노크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문 뒤로 인기척이 들렸다.

“들어… 오세요.”

2.

디아나는 아마 그 뒤로 잠을 자지 못한 것 같다.

그녀의 눈 밑에 짙게 깔린 음영이 이를 방증했다.

하긴 어머니의 그런 장면을 보고 발 뻗고 잘 수 있는 자식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예소드 백작에게 무심한 듯 굴지만 실은 백작만큼 엄마를 사랑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백작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게 된 장본인과의 독대라….

어떤 대화가 오갈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다.

너무 안일하게 협상 테이블에 앉은 것은 아닐까?

소파에 마주 앉은 뒤 싸늘하게 흐르는 정적.

“…….”

“…….”

견습마녀답게 성적인 지식이 전무한 듯했던 디아나.

다만 쌍둥이가 무지+호기심이었다면 디아나는 무지+거부감 쪽이다.

당장 얼굴을 붉히면서 우리 엄마를 왜 건드리냐고 짐승이냐고 욕을 얻어먹거나 뺨을 맞는 것도 상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체는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오늘의 디아나는 무척 쪼그라든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도 무릎을 잔뜩 움츠리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무슨 고해성사라도 하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니.

완전히 위축되어 부산스럽게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시우의 눈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있다.

“저… 제가 먼저 말해도 될까요?”

고작 한마디 꺼냈을 뿐인데 치마 안으로 벌레라도 들어간 것처럼 디아나의 어깨가 세차게 떨린다.

녹슨 인형처럼 까딱까딱 고개를 끄덕이는 디아나.

“그… 음, 어제, 아니 오늘 아침이구나. 보셨죠?”

“히꾹!”

어쩜 이리도 만화 같은 리액션일까.

시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디아나는 히꾹히꾹거리며 딸꾹질을 시작했다.

열심히 입을 막고 숨도 참아보지만 멈출 기색이 없었다.

시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따라주고 디아나가 진정하길 기다렸다.

“아이고, 이거 드시면서 말씀하시죠.”

“히꾹! 네… 히꾹!”

근데 너무 놀라는 거 아닌가 싶다.

빤히 눈까지 마주친 채 한 십 초 가량은 서 있던 것 같은데 설마 눈치채지 못했다고 생각하던 걸까?

“죄, 죄, 죄송해요…. 어, 엄마한테는… 말하지 말아 주세요…. 잘못했어요….”

애잔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기어들어가듯 말하는 디아나를 보자 뭔가 감이 왔다.

디아나는 이번 사태의 모든 원인을 자신에게로 돌리고 있었다.

즉, 시우가 여기에 온 것이 혼내거나 꾸짖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시우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디아나가 꺼내는 말을 귀담아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디아나가 이 정도로 저자세가 된 이유를 찾았다.

디아나는 언뜻 보기에 요령이 좋아 보인다.

그러나 그건 그녀 특유의 로우 텐션과 무관심함이 더해진 겉모습에 불과하다.

뺀질거리다가도 당혹스러운 상황이 찾아오면 고스란히 제 속내를 내보여주는, 여러모로 서툰 견습마녀인 것이다.

“일, 일부러 본 게 절대 아니에요….”

아하.

일부러 봤구나.

“계, 계속 보고 있던 것도 아니고 지나가다 슬쩍 본 거에요….”

계속 보고 있었구나.

“수, 수상한 짓도 하나도 안 했어요….”

수상한 짓도 했구나.

시우는 별말 안 하고 있는데 혼자 술술 자백하기 시작한 디아나.

어째 기시감이 든다.

만화스러운 상황이었다.

물건을 훔쳤느니 뭐니 하며 약점 잡고 괴롭히는 상황.

여기서 고추를 덜렁 내놓으며 ‘큭큭, 입을 다물게 하고 싶다면 뭘 해야 할지 알겠지?’라고 말하면 완벽하리라.

‘그런 것 못해요!’ 라고 디아나가 반문하면.

‘어머니께 알릴까?”라고 답하면 퍼펙트.

시우는 눈가를 긁적이다가 한숨을 쉬었다.

너무 상황이 맞아떨어져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당연히 흑심이 있다는 건 아니다.

저 정도 알량한 협박거리로 대 예소드 백작가의 견습마녀를 겁박하려 들었다간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무엇보다 더 좋은 협박거리가 있어도 협박할 생각도 없고.

애초에 혼내러 온 상황도 아니고 적당히 함구 협약을 맺기 위해 왔다.

디아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말을 고르고 있을 때.

“저, 저는 견습마녀라…. 못해요….”

“응?”

“그래도…. 손잡는 거… 아니…. 키, 키스까지는…. 해드릴게요. 그러니까 꼭 비밀로….”

“네?”

디아나의 폭탄선언이 떨어졌다.

이 아가씨 사고 흐름이 이상하다.

“저기요, 아가씨.”

“서, 서, 설마 그 이상을… 설마?”

견습마녀는 성행위가 불가능하다.

남성기가 발기 및 사정할 때 발생하는 불순한 마력이 자궁 내 그릇을 더럽히게 되면 대를 이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아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여성의 몸에 뚫린 생식기 이외의 구멍.

어머니가 작성했던 귀축배달부에서도 등장하는 충격적인 뒷구멍 삽입 씬.

게다가 시우가 엄마에게 요구한 ‘엉덩이 구멍을 벌리고 있으라’는 명령.

그 ‘구멍’이라면 그릇에 지장 없이 성교가 가능할 터.

디아나의 얼굴이 터질 듯이 붉어진다.

확 제 몸을 껴안으며 옷 밖으로 드러난 맨살을 죄다 가리려 든다.

“뒤, 뒤, 뒤로라니…! 문란한 행위를… 할 리가 없잖아요…!”

“무슨 말씀이신가요?”

“절 겁박할 셈이잖아요…! 당신보다 힘도 없고 연약하고… 그렇지만 이렇게나 예쁘고 귀엽고…! 약점을 잡았으니까 당신이 할 생각은 뻔해요…!”

생전 처음 보는 디아나의 큰 목소리.

중간중간 숨이 찰 정도로 빠르게 랩을 하는 디아나의 얼굴은 시시각각 새하얗게 변했다가 빨갛게 변했다가 한다.

발언의 전제 자체가 시우가 약점을 잡을 것처럼 말하고 있고 나아가 성적 향응을 요구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듯했다.

디아나의 ‘이상한 짓은 안 했어요’라는 발언으로 미루어 봤을 때 제 속으로 켕기는 것이 있으니 저런 망상까지 펼치는 걸까?

그걸 고려해도 무슨 중증 야설 중독가인 것처럼 아득히 앞질러가고 있었다.

“아가씨?”

굉장한 오버풀 상태라는 것은 알겠다.

당장 귀에서 김이 뿜어져 나와도 납득될 것처럼 과도한 흥분 상태인 것이다.

그래서 이런 탑툰 시나리오를 줄줄 쓰고 있는 것이고.

“키스 정도는… 그래도… 절 구해준 적도 있으니까 허락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결단코 안 돼요!”

쉽게 볼 수 없는 그녀의 모습에 무심코 놀리고 싶어졌지만 자제하도록 하자.

까딱하면 성희롱이 될 가능성도 있고 무엇보다 디아나는 보더 타운에서 큰 봉변을 당할 뻔한 적도 있다.

어쩌면 트라우마가 플래시백 된 것일지도 모르지.

“디아나 아가씨, 오해가 있으십니다. 저는 말씀하셨던 의도가 조금도 없어요.”

“거짓말…!”

“진짠데요.”

“거짓말 말아요!”

“제가 그렇게 못 미더우시나요?”

시우의 쓴웃음에 하이소프라노 랩과 함께 앞으로 기울었던 디아나의 상체가 뒤로 확 젖혀진다.

자신의 말이 의도하는 바를 곰곰이 곱씹었는지 휘둥그레졌던 디아나의 눈.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말이 안 되잖아요! 약점을 잡았는데…. 무려 저 디아나 예소드의 키, 키 , 키스도 안 받고 순순히 돌아가겠다니!”

“…이게 그 정도 약점이나 되나요…? 오히려 제가 디아나 님께 백작님께 모습을 들켰던 것은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할 심산이었는데 말이죠.”

“당연하죠! 제가 그 장면을 계속 지켜보고 있던 걸 엄마가 알게 되면… 앗! 이건 말하면 안 되는데!”

난리 났구먼.

생긴 건 멀쑥한 아가씨인데 하는 짓이 꼭 사춘기 말기다.

추가로 제 주량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너무 많이 술을 마셔서 취한 줄도 모르는 아가씨의 헛소리까지.

“…….”

“디아나 아가씨.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그런 의도로 찾아오지 않았어요.”

“…으.”

시우는 목소리를 낮춰 차분하게 설명해주었다.

“아무래도 저희의 이해관계가 같은 것 같습니다. 예소드 백작님의 귀에 들어간다면 괜히 곤란해진다. 그렇죠?”

끄덕끄덕.

디아나는 한결 침착해진 채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그냥 비밀로 해버리는 겁니다. 계약 조건은… 서로가 서로의 비밀을 지킨다. 이 정도 어떨까요? 저는 디아나 아가씨를 본 적이 없고, 디아나 아가씨도 그 일을 본 일이 없는 겁니다.”

“하, 하지만….”

뭔가 불만이 남기라도 한 것처럼 꿈지럭거리던 디아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튼 간에 손이 많이 가는 아가씨다.

시우는 피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계약이 성사되면 이렇게 손을 잡고 위아래로 가볍게 흔든다죠?”

디아나는 꿀꺽 침을 삼키고 시우의 손을 보았다.

그녀의 손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크고 두껍고 굳은살이 박힌 손을.

그리고 조심스레 손을 뻗어 시우의 손을 잡았다.

“조, 조, 좋아요.”

“이야기가 빨라서 다행입니다.”

두 사람의 비밀 계약은 성공적으로 성사되었지만, 아무래도 디아나는 자신이 흥분 상태에서 보였던 추태가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소심한 목소리로 시우에게 나가줄 것을 청했고 시우 역시 순순히 디아나의 방을 나섰다.

이렇게 된 이상 개별적으로 연구나 해볼까?

생각보다 손쉽게 풀린 일에 휘파람을 불며 떠나려던 때.

방문이 벌컥 열린다.

“신시우 씨!”

“네?”

“안 되겠어요. 저도 당신 약점을 잡아야겠어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 성큼성큼 다가온 디아나는 시우의 목을 확 잡고 제 쪽으로 끌었다.

내팽개치려면 내팽개칠 수 있었다.

다만 순간 걱정된 것이 있다면 이렇게 순간적으로 내는 힘을 연약한 디아나가 감당해 낼 수 있을까? 라는 것.

입술 위로 푹신한 것이 닿는다.

그녀의 어머니의 것처럼 도톰하고 결이 부드러우면서도 푹신한 입술이었다.

그것도 잠시.

3초도 되지 않아 디아나의 입술이 멀어진다.

“흐아… 흐아… 흐아….”

저 혼자 달려와서 입술 박치기를 했으면서 디아나는 핫소스라도 단번에 마신 것처럼 펄펄 뛰었다.

얼굴을 붉게 변하고 손가락 끝을 바들바들 떤다.

“마, 마, 만약! 엄마가 우리 비밀을 알게 되면! 저도 폭로할 거에요! 아시겠어요!”

힘차게 선언한 디아나는 도도도 방문으로 달려갔다.

“꺄악!”

그리곤 발목을 접질렸다.

EP.386 #83_공동 비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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