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372화 (372/917)

#372

1.

예소드 백작과의 과외 시간.

디아나에게 입구컷 당한 나머지 시간에 여유가 있었기에 제머나이 백작으로 돌아간 이후 복귀.

지금은 어깨에 리본으로 감싼 붉은가지를 걸친 채 털레털레 복도를 걷는 중이다.

“흠….”

이제 곧 예소드 백작을 만날 시간이라 그런지 심란했다.

어젯밤 시우의 무릎에 걸쳐 앉은 채 몸 상태를 점검했던 백작.

그게 진짜 몸 상태 체크인지, 아니면 섹스 어필인지 잘 감이 오지 않았다.

그 당시만 해도 ‘이건 섹스각이다!’라는 판단이 섰었는데 결과는 어떤가?

시우가 키스하려는 낌새를 보이자마자 백작 쪽에서 뒷걸음질 쳤다.

그렇다고 아주 헛다리 짚었다기에도 뭐한 게 하필이면 야심한 12시로 과외 시간이 옮겨졌다.

“진짜 바쁜 건가….”

물론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이 ‘오늘은 백작과 떡각을 잡고야 말겠다!’라는 의지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사실 어제 반성을 좀 했다.

시우에겐 샤론도 있고, 쌍둥이도 있다.

페리윙클과의 보답 섹스도 예정되어 있긴 하다만, 그쪽은 예외.

생명의 은인인데다가 타카쇼에게 큰 도움을 또 한 번 준 은인이고 정말 가벼운 관계다.

페리윙클도 그 이상은 원하는 것 같지 않고 말이다.

영웅은 삼처사첩이라지만 시우는 영웅이 아닐뿐더러 아무리 영웅이라도 유부녀까지 후리고 다닌다면 정말 큰 욕 먹고 다닐 것이다.

남자가 줏대는 없어도 좆대는 있어야 한다고 더 이상 휘청거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정말 뒤늦게 들었다.

“…생각만 하면 뭐하냐.”

생각은 쉽다 생각은.

근데 막상 예소드 백작이 유혹을 감행한다면.

옅은 체취나마 가까이서 지속적으로 들이마시기 시작한다면 백작의 은혜 갚기를 버텨낼 수 있을까?

차라리 과외에 들어가기 전에.

그러니까 백작님이 유혹을 시작하기 전에.

칼처럼 잘라 버리자.

그렇게 결심했다.

“후우….”

-똑똑

“아, 시우 씨. 들어오세요.”

노크 이후 들려온 대답에 문을 열며 타이밍을 가늠했다.

언제가 좋을까? 문 열고 인사를 나누자마자 바로? 각자 소파에 앉고 바로? 아니면 수업이 끝나고?

“안.”

“어서 와요, 좀 도와줄래요?”

시우는 어정쩡하게 굳었다.

문을 열자마자 시우를 반기는 건 예소드 백작이었다.

그래.

백작인 건 문제가 없는데 환하게 드러난 그녀의 등판이 반겨주고 있다는 것은 문제다.

백작이 즐겨 입는 몸매에 딱 맞게 떨어지는 시스라인 드레스의 백타이가 절반 넘게 풀려있다.

월광 베틀에 담아 자아낸다면 저런 빛깔로 빛날까 싶은 은색 주단이 물병 같은 허리와 골반 선에 걸쳐 있을 뿐.

살짝 뒤를 돈 탓에 도드라진 고운 어깨선과 날갯죽지.

한 손은 잡고 있지 않으면 주르륵 벗겨질 드레스의 앞판을 붙잡고 있었다.

입던 중인지 벗던 중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 중간의 차림새다.

“녕하세요….”

힘 빠지는 목소리로 인사를 마저 끝냈다.

입이 벌어져 있지는 않나.

그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마침 잘 왔어요. 곤란하던 참이거든요.”

저도 살짝 곤란해진 참입니다 라는 말을 꾹 참았다.

“옷 갈아입으시던 중이군요.”

여기는 서고인데요? 라는 말도 꾹 참았다.

“네, 괜히 혼자 하려다 사단이나네요. 시우 씨가 도와주시겠어요?”

이건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양 자연스레 도움을 요청하는 백작.

우선 더 휘둘리지 않기 위해 적당히 핑계를 대 빠져나와야겠다.

“어떻게 묶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드리고 싶은 말씀이….”

사실 꼭 꾸며 낸 것도 아니다.

정말 어떤 걸 어떤 거랑 어떻게 묶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디 살면서 이런 종류의 드레스를 묶어볼 일이 어디 있겠는가?

“왜 꼭 묶는 일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네?”

“그 반대를 부탁드렸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벗던 중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위로 휘어 올라간 눈꼬리를 하고 눈을 피하지 않은 채 시우를 빤히 바라본다.

꿀꺽.

마른침이 넘어갔다.

고작 눈빛만으로 매끄러운 벨벳이 몸을 감싸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어 가까스로 시선을 피했다.

도망치려는 것을 붙잡듯 예소드 백작이 말을 걸어온다.

“시우 씨는… 어느 쪽이면 좋겠나요?”

“…그걸 제가 결정할 수 있나요?”

백작이 보인 것은 말이 아니었다.

긍정인지 부정인지 알듯 말듯 한 신비로운 미소.

연상의 여인에게 쪽도 못 쓰고 리드당한다는게 이런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느낌일지도 모르겠다가 아니구나.

현재진행형으로 그러는 중이다.

“빨리해주세요, 애타잖아요.”

마치 재촉하듯이 살랑살랑 흔들리는 엉덩이.

애교를 부리고 아양을 떨어도 결코 천박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녀가 지닌 기품 탓일까.

이제 백작의 의도가 명백해졌다.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나간다면 상상 이상의 황홀함을 느낄 수 있게 된다는 것 역시 자명하다.

“진도 나가죠.”

조금 놀란 듯이 눈을 뜨는 백작.

시우는 애써 그 모습을 무시하며 눈 딱 감고 백타이를 어찌어찌 매었다.

운동화 끈도 예쁘게 못 매는 마당에 이 복잡한 드레스 타이를 제대로 맸을 리는 없다.

백작은 피식 웃으며 염동으로 매듭을 고쳐 묶더니 소파에 앉았다.

“생각해보니 직접 하실 수 있으시잖아요.”

“그냥 시우 씨가 매주었으면 했는걸요.”

“네, 오늘은 역장 과부하 관련 수업이었죠? 제가 이것저것 점검해봤습니다.”

“…진도? 좋죠. 뭐.”

의도적으로 무시한 채 할 말을 꺼낸 시우.

백작은 아쉬운 듯 긴 한숨을 쉬더니 수업을 재개했다.

2.

예소드 백작은 수업 내내 시우를 살폈다.

“흐음….”

저번만큼은 아니어도 꽤 적극적인 어필이었다고 생각한다.

드레스를 벗길지 입힐지에 대한 선택권까지 주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이상하리만치 철벽 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니면 단순히 숫기가 없어도 너무 없어서 먼저 리드할 용기가 없는 걸까?

귀엽기는.

백작은 은근히 시우를 떠보기 시작했다.

“어디 봐요, 어머. 그렇게 복잡하게 가지 않아도 되는데….”

앞으로 몸을 숙이며 은근히 가슴골을 노출한다.

워낙에 헐렁한 옷차림인지라 어디까지 보일지 백작도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어쩌면 가슴골을 넘어 연분홍빛의 꽃받침대까지, 혹은 옷감에 비벼지고 있는 뾰족한 첨단까지 보일지도 모르지.

흔히 남자들이 여자의 몸을 힐끗거리면서도 들키지 않았겠거니~라고 여기는데.

여자란 원래 시선에 민감한 생물이다.

그것이 동성이 아닌 이성의 것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15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그의 눈이 빠르게 가슴을 훑는 것은 백작은 놓치지 않았다.

“네, 수정해 보겠습니다.”

“방금 그 조언으로 충분한 건가요?”

“얼추 얼개가 잡히는 느낌이에요.”

“역시 대단하네요. 시우 씨는.”

그렇게 말하며 이번에는 대담하게 다리를 꼬았다.

하얗고 부드러운 허벅지가 치맛자락을 말아 올리며 여유롭게 꼬아진다.

줄곧 가슴과 종이 위를 번갈아 뛰놀던 그의 시선이 하반신에 쏠리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음을 고쳐먹은 것인지 아예 종이에서 눈을 떼지조차 않는다.

시우는 연신 다리를 꼬거나 자세를 바로 하는 것으로 숨기려 들었지만 백작은 놓치지 않았다.

그의 바지춤이 아플 정도로 부풀어 올랐다는 것을 말이다.

백작은 가슴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뭘까 이 우월감은?

그의 서툰 반응 하나하나를 볼 때마다.

백작의 사소한 행동과 말에 쩔쩔매는 모습을 볼 때마다 오랫동안 무시해왔던 내면의 욕구가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매력을 이성에게 인정받는 느낌.

상황의 주도권을 쥔 채 밀었다 당기며 상황을 컨트롤하는 느낌.

거기에 어리숙한 그에게 하나하나 가르쳐 훌륭한 수컷으로 만들어 보이고 싶다는 왜곡된 모성 본능까지.

“오늘도 고생 많았어요.”

수업이 끝나고 시우는 여느 때처럼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일어서지 못했다.

당연하다.

백작은 맞은 편에 앉아 있고 시우의 아랫도리는 계속된 백작의 유혹 탓에 매우 큰 텐트를 치고 있었다.

만약 이 자리에서 일어난다면 그 적나라한 자태가 백작에게 보일 테니.

하지만 그런 사실을 모르는 백작에게는 그 의미가 다르게 해석되었다.

“어머?”

언제나 수업이 끝나면 정중한 인사와 함께 자리를 떠나던 그가 오늘만큼은 끝까지 남아있으려 한다?

우물쭈물한다?

이를 해석하자면.

=>백작님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더욱 진도를 나가고 싶지만 차마 제 입으로 말씀을 먼저 꺼내지는 못하겠습니다.

가 되는 것이다.

백작은 승천하려는 입꼬리를 누르며 은근히 물었다.

어쩜 저리 하나부터 열까지 하는 짓이 귀여운지.

가슴이 두근거리고 확 잡아먹고 싶었다.

“아직 볼 일이 남아있나요?”

“어…음…. 아닙니다.”

“그러면 하실 말씀이라도?”

“그것도 없습니다.”

곤혹스러워하는 그의 모습에 제 가설에 확신을 더한 백작은 슬쩍 옆자리에 앉았다.

조금 더 그의 반응을 보며 즐거워하고 싶지만, 너무 골리는 것도 못 할 짓이다.

이쯤에서 연상의 여유를 보이며 그를 도와주어야지.

드디어 오늘 그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두근두근 심장이 뛴다.

“시우 씨, 그거 알고 있나요?”

“네?”

백작은 그의 어깨에 기대듯 고개를 뉘었다.

억지로 꼬고 있는 그의 허벅지 사이에 손을 집어넣자 딱딱하게 몸이 굳는 시우.

헉하고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남자의 몸에는 몹시 나쁜 독이 있답니다.”

“백작님?”

“아주 깊은 원죄, 욕망으로 이루어진 극독인데…. 제때 해소해주지 않는다면 몸과 마음을 좀먹곤 하지요.”

벨트를 풀고, 버클을 끌어낸 뒤 슬며시 쥐었다.

뜨겁고, 단단하고, 촉촉한 독을 뿜어내는 거대한 구렁이가 팬티 안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숨을 집어삼키며 더욱 긴장한 시우를 보며 백작은 뜨거운 한숨을 뱉었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시우 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백작님…. 말씀드려야 할 것이 있을 것 같습니다.”

살짝 시선을 돌려 가까운 거리에서 눈을 마주치자.

갈등과 번민, 그리고 흥분감 탓에 살짝 핏기가 돈 그의 눈이 보였다.

“제게는 이미 만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솔직히 조금 놀랐다.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으로는 여자친구는커녕 손 한번 잡아 본 적 없던 것 같았는데 만나는 사람이라니.

청천벽력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이미 예소드 백작의 인내심은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으니.

“어머? 저희가 나쁜 짓이라도 하고 있나요? 그냥, 이렇게…. 가벼운 장난만 칠 뿐인걸요?”

영묘한 백사(白蛇)처럼 하얀 백작의 손이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던 코브라에 얽혔다.

세밀한 손놀림으로 앞뒤로 그의 물건을 쥐고 쓰다듬는다.

팬티까지 젖히고 들어가자 느껴지는 단단함과 뜨거움, 툭툭 무섭도록 불거진 핏줄과 거기서 느껴지는 수컷의 맥박.

“남녀의 장난에 사랑은 없어도 좋아요.”

어느새 팬티와 바지 사이로 우뚝 솟아 공기 중에 맞닿은 시우의 커다란 물건.

그 위용에 감탄하면서도 검지와 중지 사이로 자지를 훑던 백작이 고혹적인 음색으로 속삭인다.

어찌나 끈적이는지 귀 안이 열기로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달콤함 한 스푼과 귓속말 한 꼬집, 그리고 비밀 조금만 있으면 된답니다.”

예소드 백작의 도톰한 입술과 시우의 입술이 포개졌다.

EP.375 #81_백작부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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