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369화 (369/917)

#369

1.

응접실 소파에 앉아 초조한 마음으로 담배를 태웠다.

벌써 해가 꼴딱 넘어갔는데도 디아나를 달래러 갔던 백작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시우가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 예소드 백작의 딸 사랑은 무서울 정도다.

일상 회화에 스며든 듯 묻어나오는 팔불출의 모습은 기본이고 시도 때도 없는 딸 자랑도 바로 옆에서 관찰해왔으니 말이다.

그런 예소드 백작이 디아나가 위기에 처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디아나의 건의로 인해 실제 사건보다 어느 정도 순화 및 축소되었고 시우가 그 자리에 있었기에 큰 피해는 모면했지만, 따지고 보면 디아나를 보더 타운의 데리고 간 것이 사건의 시작이다.

예소드 백작이 그것을 빌미로 문책한다면 시우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담배나 태우며 쓰린 속을 달래던 중.

또각거리는 구두 굽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와는 달리 어여쁘게 올려묶은 머리카락이 조금 흐트러지긴 했지만 변함없는 맵시를 뽐내는 예소드 백작이었다.

“오셨습니까?”

시우는 재빠르게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끄고 일어나 백작을 맞았다.

대규모 외과수술이 끝난 집도의처럼 진이 빠져 보이는 백작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시우의 인사를 받았다.

솔직히 좀 쫄린다.

디아나 습격 사건을 알게 됐을 때 백작이 보였던 분노는 그야말로 등골이 섬뜩해지는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이야기 좀 할까요?”

“넵.”

백작은 별다른 말 없이 뒤돌아섰고 시우는 전전긍긍하는 마음으로 그 뒤를 따랐다.

역시 평소 같지 않다.

살가운 눈웃음도 없고 여유 넘치는 모습도 없다.

결국 디아나를 구해낸 것이 시우였던 만큼 분노의 직격탄은 피하더라도 ‘이제 가정교사 업무는 이걸로 끝이에요. 당연히 수업도 끝이고요’같은 부가 처분이 없으리라곤 장담할 수 없었다.

백작을 따라 도착한 곳은 개인 서고가 아니었다.

아마도 그녀의 방 라운지인 것 같다.

거실의 모습은 디아나의 방과 거의 흡사했다.

공통점은 역시나 딱 봐도 비싼 가구들이 즐비하다는 것과 거실 넓이만으로 4인 가구가 살 수 있을 만큼 넓다는 것.

다른 점이 있다면 찬장에 좀 더 화려한 술병들이 전시되어 있고, 가구와 카페트 같은 것이 성숙하고 엔틱한 느낌이 난다는 정도다.

이것저것 꽂혀 있는 책들도 한층 더 어려워 보였고 말이다.

“얘기 좀 나눌까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백작은 술 한 병과 잔 두 개를 꺼내와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반사적으로 일어나 술을 따르려던 시우를 제지하는 루시 백작은 제 술잔이 넘칠 정도로 술을 한껏 따랐다.

게다가 시우의 잔을 채워주지도 않고 원샷으로 해치워버린다.

“하아….”

눈치를 보던 시우는 슬며시 본론을 꺼냈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혹시 이 자리가 문책을 위한 자리라면 제 입으로 포문을 여는 것이 나았다.

“죄송합니다. 제 부주의 때문에 디아나 아가씨가 위험에 처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겠습니다.”

무릎에 손을 얹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다.

담배 피우는 동안 수십 번의 이미지 트레이닝을 거쳤기에 깍듯하기 그지없었다.

그저 가식이 아니고 어느 정도는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는 부분에서 진심도 담겼으리라.

“괜찮아요, 그런 걸로 시우 씨를 나무랄 정도로 바보는 아닌걸요. 무엇보다 시우 씨가 없었더라면 더 큰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르니까요.”

백작은 긴 한숨과 함께 시우의 사과를 받아주었다.

잠깐 피곤하다는 듯 머리에 손을 짚긴 했지만 가장 우려하던 문제는 피해간 것 같다.

“아가씨 상태는 어떠신가요?”

“생각보다 훨씬 멀쩡해요. 잠깐 지켜보고 왔는데 쿨쿨 편하게 자더라고요. 원래는 겁이 많고 저만 찾던 아이인데…. 그새 또 훌쩍 커버렸네요. 이럴 땐 참 마음이 심란하답니다.”

백작은 쓴웃음을 지으며 시우의 잔에도 술을 따라주었다.

“고마워요 시우 씨. 그 호문쿨루스는 눈이 열일곱 개나 있다고 들었는데. 보더 타운에 머무는 마녀보다도 훨씬 깔끔하게 일을 처리해 줬네요.”

“과찬이십니다. 상성이 좋았다고 할까요….”

“다친 곳은 없나요?”

“네, 괜찮습니다.”

“어디 봐요.”

백작은 술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연스럽게 시우의 옆에 앉았다.

그곳이 제자리라는 듯 말이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자 달콤한 크림 같은 살 내음과 사향을 베이스 노트로 사용한 향수의 향이 어우러져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

목덜미가 드러나는 옷차림 탓에 도드라져 보이는 가녀린 목선과 나긋한 목소리는 백작 특유의 뇌쇄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정말 괜찮습니다. 이러지 않으셔도….”

그때 잔을 내려놓은 백작의 하얀 손이 시우의 손을 붙잡았다.

따뜻하고 섬세한 손끝이 뱀처럼 깍지를 끼고 절대 풀어주지 않겠다는 듯 얽혀왔다.

“아니에요, 영체라는 것이 겉으로는 멀쩡해도 조율과 구성이 흐트러지면서 문제가 생기는 예도 있는걸요.”

“아니, 그게 아니라 정말 한 대도 맞지 않아서….”

진실이다.

일방적으로 패기만 하다 왔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백작의 행동은 당황스러웠다.

그간 백작이 장난을 치는 것처럼, 혹은 테스트를 하는 것처럼 가벼운 농담을 던지기는 했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오늘은 분위기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끈적하다는 것을 말이다.

“직접 눈으로 보지 않으면 믿지 못하겠어요.”

어느새 한 손으로 시우의 손을 붙잡고 한 손으로 허벅지를 쓰다듬은 백작이 바짝 붙어 귓가에 속삭였다.

그녀가 한 단어를 톡톡 뱉을 때마다 간지러운 바람이 귀밑을 스친다.

농밀한 향기가 감싸듯이 코끝을 어루만져 주었다.

바보라도 알 수 있다.

이건 예소드 백작이 던지는 추파였다.

지금까지처럼 은근한 추파가 아니라 진심 어린, 몸을 정면으로 부딪쳐오는 유혹 말이다.

원래부터 꿀이 뚝뚝 떨어지는 과실처럼 묘한 색기를 자랑하던 백작이다.

그런 그녀가 달콤한 목소리로 빨간 입술을 달싹이자 거부하기 힘든 마력이 흘러나왔다.

-사르륵

옷자락이 흐트러지는 소리와 함께 백작이 시우의 무릎 위에 살며시 다리를 벌리고 올라탔다.

만약 서로 옷이 벗겨진 상태였더라면 삽입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소위 말하는 대면좌위의 자세였다.

“백작님 이러시면 안 될 것 같습니….”

“저는 그저 시우 씨의 몸 상태를 점검해주고 싶을 뿐인걸요?”

아닌 것 같은데….

라고 생각은 하지만 시우라면 쉽게 밀쳐낼 수도 있지만 몸이 안 움직인다.

살면서 ‘입으로는 싫다 하지만 몸은 솔직한 걸?’ 이라는 대사에 이토록 공감하게 될 줄이야.

벌써 단단하게 변해버린 물건이 백작님의 푹신한 보두덩이 쿠션에 파묻혀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어머나….”

양복바지와 팬티의 장벽 따위 시우의 풀발 앞에서는 종잇장만도 못하다.

백작은 시선을 살짝 아래로 내렸다.

다 느껴진다는 말이겠지.

짓궂게 꾸짖는 듯한 시선에 저도 모르게 눈을 피하고 말았다.

사실 시우가 이 상황에 불편을 느끼는 것은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백작을 어머니라고 부르는 디아나의 호칭 탓일까?

아니면 디아나를 우리 딸이라고 부르는 예소드 백작의 호칭 탓일까.

그도 아니면 그녀가 유독 말투와 코디로 완숙한 여성미를 풍기는 탓일까.

뭔가 남편이 나가 있는 틈을 타서 불륜을 저지르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아무리 많이 쳐주어도 20대 후반도 안될 것 같은 백작이 정말 유부녀처럼 느껴졌다.

따라서 정말로 바람피우는 듯한 몹쓸 죄책감이 들었지만 백작을 밀쳐낼 수 없었다.

그녀의 오렌지색 눈동자와 마주치고 있자면 영혼까지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건 불가항력이다.

여기에 3대 성인을 앉혀 놓아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라는 생각 따위를 위안 삼을 뿐.

“어떤가요? 불편한 곳이 있나요?”

시우의 목덜미를 끌어안고 조금만 상체를 기울여도 입술이 맞닿을 거리에서 속닥거리는 백작.

조금 전보다 무게가 실리기 시작한 예소드 마망의 특제 보지 쿠션이 단단하게 발기한 자지 뒤편에 비벼졌다.

여러모로 불편한 곳이 많다.

백작은 뻣뻣하게 굳어있는 시우의 모습을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고 하나씩 단추를 풀었다.

“시우 씨가 말해주지 않으니 제가 직접 확인해 봐야겠네요.”

하나하나 단추가 풀어질 때마다 건강한 가슴판이 드러난다.

백작은 눈을 빛내며 시우의 가슴에 따뜻한 손을 얹었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요. 왜일까요?”

후후 웃음을 흘리는 백작의 얼굴에도 어느샌가 발그레한 홍조가 떠올라있다.

대놓고 만지는 것이 아닌 간질이는 듯한 터치로 살살 가슴을 쓰다듬는 백작.

당장이라도 그녀의 한 줌만 한 허리를 휘감고 키스를 박고 싶다.

그녀의 체취를 한껏 들여 마시었기 때문만은 아니겠지.

더 이상 참지 못한 시우가 그녀에게 입을 맞추려는 순간.

“아…!”

깜짝 놀란 듯 낮은 탄식을 내뱉은 백작이 시우에게서 도망치듯 물러났다.

“아….”

“이거 제가 실례했네요.”

아쉬운 마음이 반, 뭔가 다행스러운 마음이 반이다.

백작은 시우에게 휙 등을 돌려 머리를 정리하더니 쭈욱 기지개를 켰다.

“하암…. 영체에 이상은 없는 것 같아요. 이만 가 봐도 좋아요. 오늘 일은 정말 고마웠어요.”

“네, 알겠습니다.”

“디아나가 진정할 때까지 가정교사 업무는 보류해도 괜찮을까요?”

“네.”

아까까지의 관능적인 목소리는 조금도 없이 조금 서두르듯 말하는 백작.

역시 너무 뺐나 보다.

명색이 백작인 루시 예소드가 이렇게까지 들이대는데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은 것이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렸을지도 모른다.

“어머, 제가 깜빡했네요.”

아마도 침실로 들어가려는 듯 발걸음을 옮기던 백작이 힐끗 뒤를 바라보며 말했다.

“개인 교습은 정상적으로 운영하도록 할게요. 시간은…. 12시가 어떨까요? 제가 일정이 꽉 차 있어서요.”

먼저 유혹하고.

그에 흔들린 시우가 응하려 할 때 칼같이 자르고 일어나기에 착각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여지를 남기듯 갑자기 늦은 밤으로 옮겨진 과외 시간.

모든 것이 아리송하기 짝이 없었다.

2.

예소드 백작은 침실 문을 닫고 들어오자마자 침실에 딸린 건식 욕조에 물을 한가득 받았다.

드레스를 포장처럼 감싸던 허리띠를 풀어 벗고, 스타킹을 붙잡아 주던 가터벨트를 끌어낸다.

도자기 같이 반질거리는 다리를 따라 팬티까지 벗어 던진 백작.

손가락을 집게처럼 사용해 제 팬티를 바라보았다.

“어쩜…. 민망하기도 해라.”

하얀 레이스와 리본으로 만들어진 팬티의 몰골은 백작의 감상대로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그나마 외부에는 살짝 얼룩이 묻어나온 정도였지만 그 안쪽이 흥건할 정도로 축축해져 있다.

그 이유는 실로 낯 뜨겁기 그지없다.

그의 위에 올라타 아양을 떠는 동안 루시의 비처에서 끈끈한 꿀물이 흐른 탓이다.

팬티를 벗자마자 허벅지를 타고 주르륵 흐르는 양이었다.

백작은 발끝을 욕조에 담가 물 온도를 체크하고는 그대로 미끄러지듯 안으로 들어갔다.

“하아….”

그제야 참았던 한숨이 비실비실 흘렀다.

사실 백작은 오늘 그를 침소로 들일 생각이었다.

사심은 없었다.

디아나를 잘 놀아주고, 또 디아나를 구해준 착실한 청년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은혜를 갚으려던 것뿐이다.

한창때의 남자인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게 무엇이겠는가?

시우 역시 백작의 몸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은 명백했다.

지난번 개인 과외 때 불법주차 사건만 떠올려 보아도 자명해진다.

그 당시 해프닝을 기준으로 선물을 선정했을 뿐 그 외에 사적인 감정은 조금도.

조금도….

아마 조금밖에?

묻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딱 보기에도 숫총각이 분명한 시우에게는 연상 여성의 능숙한 리드가 필요해 보였고 백작은 그것을 선보였다.

실제로 거의 넘어왔다.

예소드가 갑자기 일어난 순간엔 그가 키스해오기 직전이었으니까.

순조롭게 진행되던 계획 속에 예소드 백작이 별안간 후퇴를 선언한 것은 단단한 그의 물건이 비벼지는 동안 백작의 비밀 정원이 소나기라도 지나간 것처럼 변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중간에 눈치채지 못했더라도 그의 바지 위에 부끄러운 얼룩을 남기고 말았을 것이다.

아무리 먼저 그를 유혹하려 했다 해도 첫 밀회에 그런 정숙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키스도 전에 흥건하게 젖어버리는 백작이라니.

이런 낯 뜨거운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지는 않은 것이 레이디의 마음인 것이다.

“쩝….”

하지만 오늘만이 날은 아니다.

앞으로도 이런 기회는 많은 것이다.

다음에는 꼭 은혜를 갚고야 말겠노라고 백작은 생각했다.

EP.372 #80_히어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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