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7
1.
“크하하하!”
잭은 환희를 느꼈다.
온몸에 가득 끓어오르는 힘.
근육 하나하나에 깃드는 활력과 에너지.
운동 따위로 도핑 따위로 얻을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이 솟구쳤기 때문이다.
뜻밖에 사악한 마녀 비앙카는 아주 쓸만한 선물을 마련해주었다.
비록 그것이 부하들의 목숨값이라 한들 잭은 아주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이것이 힘인가! 크하하하!”
전신에 휘몰아치는 전능감은 잭에게 잊고 있던 자신감을 되찾아준다.
지금이라면 두렵기 짝이 없던 마녀라도 죽여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인간 가축처럼 살아가던 때는 끝났다.
다시 과거의 영광을, 칼잡이 잭이라는 이름으로 위명을 떨쳤던 히트맨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
마약에 잔뜩 취한 듯한 도취와 끝없이 흘러넘치는 피에 대한 갈망은 강렬했다.
자기 피부가 거무죽죽하게 변해버린 것도.
어째서인지 팔 위로 오돌토돌한 눈이 생겨난 것도 하등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받았던 핍박을 마녀에게 되돌려준다.
그 고고한 년들을 강간하고, 죽이고, 낙인을 씹어먹는다.
그것만이 지상 과제인 듯 머릿속에서 맴돌 뿐.
“아, 거기 아직도 있었나?”
한참 동안 제자리에서 웃던 잭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며 눈앞의 적을 보았다.
조금 전 부하들을 삽시간에 반병신으로 만들었던 남자와 하얗게 질린 채 오돌오돌 떨고 있는 견습마녀.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남자의 몸에는 검은 갑주가 씌워져 있었지만 상관없다.
그 남자가 보여주었던 모습을 다시 떠올려도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금은 자신이 더 강할테니까.
그런 확신을 가지게 될 정도로 온몸에 정력적인 활기가 돈다.
“크크크, 별 같잖지도 않은 힘을 믿고 까부는군.”
“도, 도망쳐야 해요…. 저건 호문쿨루스에요….”
디아나는 벌벌 떠는 목소리로 시우를 불렀다.
시우는 디아나의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괴한들을 때려눕히는 그의 모습은 산책하는 것처럼 가뿐해 보였으니.
“괜찮습니다. 제 선에서 처리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저건 다르다.
도대체 멀쩡한 인간이 어떻게 호문쿨루스로 변이했는지는 조금도 짐작할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호문쿨루스인 것이다.
일반적인 마녀들도 15위계가 넘지 않으면 사냥을 시도하지도 않는 창조의 마녀의 괴수.
더군다나 저 괴수에게는 17개의 눈알이 있다.
인간 범죄자와 그저 그런 총기를 상대로는 무쌍을 찍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고작 1대의 마녀가 감당할 상대는 아니었다.
“아, 안 돼요! 절대로 안 돼요! 도망쳐서 도움을 요청해야 해요!”
디아나는 필사적으로 시우의 팔을 끌어당겨 이곳을 빠져나가려 했다.
아무리 당장 도망쳐야 해도 그를 혼자 두고 갈 수는 없다.
한 번 디아나를 위기에서 구해준 그가 죽을 길을 택하는 걸 두고 볼 수 없던 것이다.
“지랄들 하네.”
시답잖은 신파극에 잭은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손에 든 단도를 빙빙 돌렸다.
그 어느 때보다도 욕망에 찬 시선이 디아나를 향한다.
“잘 들어 견습마녀 아가씨, 지금부터 네년 이 보는 앞에서 저 개새끼의 사지를 꺾어줄 거야.”
“힉…!”
“도와줄 사람이 없어진 네년이 무슨 일을 겪게 될지 벌써 궁금하지 않아?”
노골적인 탐욕과 협박을 시우는 넓은 등으로 가로막았다.
“아니, 하나도 안 궁금해.”
잭은 광소를 지으며 시우를 바라보았다.
“아아, 너도 기대해라. 저승길 선물로 네가 지키려 들던 저 마녀 년이 난도질당하는 모습을 보여줄 테니까.”
복서가 몸을 풀듯 제자리에서 뜀박질하던 잭의 몸이 마치 고양이처럼 창고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뛰어다님’과는 조금 다르다.
새로 얻은 힘을 점검하는 것처럼 벽면과 천장까지 자유자재로 몸을 튕기며 시우와 디아나의 주위를 빙빙 도는 모습은 흡사 검은 바람과도 같다.
“크하하하하! 크하하하하!”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입체 기동을 펼치며 광소를 흘리던 잭이 순식간에 시우를 향해 쇄도했다.
제대로 눈을 쫓을 수도 없는 그림자를 포착한 디아나가 입을 벌린 그 순간.
“조심…!”
디아나의 상상은 잭의 협박대로 갈기갈기 난도질 당하는 시우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나.
-콰앙!
“크아악!!!”
철판을 내리치는 소리.
시우가 땅을 단단히 버티고 진각을 밟는 순간 주위에 깔려있던 썩은 지푸라기가 휘날렸다.
이후 무릎을 살짝 굽힌 채 잭이 달려드는 타이밍에 맞춰 엘보우를 찌르듯 내밀었고 카운터는 성공적으로 잭의 가슴팍에 꽂혀 들었다.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속도로 달려들던 잭이다.
거기에 마력으로 한껏 강화된 발경 카운터가 적중했으니 잭이 창고 벽으로 날아가 처박히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어….”
예상과는 한껏 다른 전개에 놀란 것은 비단 디아나뿐만이 아니었다.
상자 더미에 파묻힌 잭도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제 가슴을 내려보았다.
충격파로 인해 완전히 터져나간 상의.
그 안으로는 두꺼운 망치로 내려친 듯 움푹 들어가 있는 가슴뼈가 보인다.
하지만 호문쿨루스의 힘이 부여한 가공할만한 회복력은 마치 역재생하듯 그 상처를 회복시켰다.
잭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두려움은 없었다.
투지가 꺾이지도 않았다.
아직 새로 얻은 힘이 적응되지 않았을 뿐이다.
이만한 힘을 얻었는데 마녀도 아니라 마법 좀 부리는 남자 나부랭이에게 당할 리가 없지 않은가?
“크하하! 한 가닥은 한다 이 말이지! 그럼 이건 어떨까!”
녹아내리는 이성은 이미 인간 본연의 것이 아니었다.
잭은 자기 몸을 잠식당한 대가로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지닌 무기가 무엇이며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몸을 일으킨 잭은 단도를 쥐었다.
자연스레 인도된 마력은 날 끝을 붉게 물들인다.
그것은 단도의 절삭력과 내구성을 한계까지 끌어올릴 것이다.
저 일견 두터워 보이는 갑옷도 아무 소용 없다.
닿기만 한다면 종잇장처럼 찢겨나갈 것이 분명하니.
잭의 머리는 벌써 쾌락의 무지개를 펼쳐나가고 있었다.
자신을 무시하고 천대하던 마녀를 갈가리 찢어발기고 일신의 욕망을 해소하는 것으로 복수를 마무리한다.
“피어라.”
시우는 창을 들며 동시에 10가닥의 리본을 꺼내 들었다.
그림자를 직조해 길고 단단한 창을 만들어 냈다.
잭이 땅을 박차고 다시금 내달린다.
“후웁!”
두 다리는 단단히 지탱한 채로 숨을 들이마신 시우는 곧게 창을 내질렀다.
붉은가지를 완벽히 통제하게 되었을 때를 대비해 연습해 두었던 창술이다.
낙인 안에 내재한 만병지왕의 계약과 발경의 활용은 사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창술의 경지조차 일류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딴 걸로는 못 막지!”
입이 찢어지게 웃으며 내질러진 창을 가볍게 잘라내는 잭.
원소계통 마법을 그림자의 법칙에 응용해 경화시킨 창은 최첨단 신소재만큼의 강도를 자랑한다.
그러나 단도에 서린 붉은 기운은 수수깡처럼 창대를 잘라냈다.
견제하듯 사방에서 뻗어온 리본 역시 손쉽게 절단해버린다.
애초에 칼 한 자루 들고 무수히 많은 표적의 멱을 따온 잭인 것이다.
실력에 대한 자신감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잡았다…!”
긴 창의 안을 파고들면 그 뒤부터는 자유롭게 휘두를 수 있는 단도의 영역이 된다.
잭은 승리를 반쯤 확정 지은 채 투구와 갑주의 이음매로 칼을 뻗었다.
승리를 확신한 짧은 의식의 틈새를 시우의 투구 사이에서 나온 호흡음이 파고든다.
“후우….”
-콰아앙!
섣부른 착각을 바로 잡아주는 것은 눈앞에 터지는 섬광.
시우의 품 안에서 풍차처럼 회전한 창대가 옆통수를 강타하는 순간이었다.
“꺼어억…!”
인간이었다면 곧장 머리뼈가 으스러지고 목이 뽑혀 나갔을 힘이지만 호문쿨루스로 변한 잭이기에 간신히 버텨냈다.
몇 번이나 바닥을 구르며 형편없이 나뒹군 잭은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 이럴 리가…!”
견습마녀의 수행원이라면 마법을 아주 조금 다룰 수준은 될지도 모른다.
그런 안일한 마음가짐이었기에 ‘패배’ 따위는 상정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저 잡스러운 놈을 죽이고 어떤 즐거운 파티를 벌일지 고민하고 있었을 뿐.
“다 끝났어?”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인간의 힘을 초월한 완력과 동체시력.
지금이라면 기관총 세례조차 모조리 베어 넘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잭은 나가떨어지는 순간까지 자신이 무엇에 얻어맞았는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 씨발 새끼가….”
비틀거리며 일어난 잭은 그제야 시우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자세를 취하고 확실히 숨통을 끊기 위해 의식을 집중했으나.
“안 오면 내가 간다.”
온다.
라고 신경을 날카롭게 세웠을 땐 이미 코앞에서 창이 휘둘러지고 있었다.
워낙에 빠르기에 창대가 중간에 휘는 듯한 착시.
도저히 창을 휘두르며 나는 소리라곤 믿기지 않는 묵직한 파공음이 공기를 찣는다.
-부우우웅!
잭은 이를 악물고 허리를 젖혀 피해냈다.
하지만 반격의 여유 따위는 없었다.
휘두른 창격이 빗나가자마자 시우의 발이 호를 그리며 회전한다.
-부우웅!
“끄악!”
물밀 틈도 없는 제 2격은 정확하게 잭의 옆구리에 파고들었다.
사실 마법 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시우는 그다지 강하지 않다.
마법적 능력만으로는 아마 17 ~18 위계 마녀와 동수를 겨루는 수준이겠지.
그러나 일신의 무력만을 따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신이라 추앙받는 엘로아 티페레트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또한 어떤 병기든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만병지왕의 계약을 보유하고 있다.
차라리 잭의 몸을 잠식한 호문쿨루스가 익사한 마녀처럼 특수한 자성마법을 뿌려대는 부류였더라면 상대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잭이 육탄전을 전략으로 삼은 이상, 기본기에서부터 까마득한 격차가 발생해버리는 것이다.
이후 싸움의 흐름은 일방적이었다.
잭은 압도적인 회복력과 맷집을 앞세워 마구잡이로 단도를 휘둘렀지만 시우는 철저하게 거리를 내주지 않았다.
창의 긴 사거리를 이용해 쉴새 없이 몸을 두드리면서 잭이 무리하게 앞으로 치고 나오면 맨몸으로 때려눕힌다.
-퍽! 퍽! 퍼억! 퍽! 퍼억!
초당 10번이 넘게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창대의 진심 후리기.
“꺼억! 컥! 커억! 컥!”
사운드 버그가 일어난 격겜 속 캐릭터처럼 연신 비명을 쏟아내는 잭.
일격 일격에 뼈가 부서지고 내장이 뒤틀리는 빠따질이 전신을 구타한 지 3분 만에 잭은 투지를 잃었다.
악과 깡으로 세상을 살아온 잭에게조차 시우의 매서운 일격은 버거웠던 것이다.
“컥…커걱…!”
“후우….”
얼마지나지 않아 잭은 사지가 뒤틀린 채 검은 피바다 위에서 허우적거렸다.
보통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면 일말의 가책이라도 있겠지만 이번에는 전혀 없었다.
살인 미수, 납치, 집단 강간 미수 사형수를 애도하는데 쓰기엔 양심이 아깝다.
도리어 스트레스를 푼 것처럼 후련하기 짝이 없다.
검었던 피부는 다시 원래의 색으로 돌아가고 팔에 돋았던 눈알도 사라졌겠다.
바닥에 엎드려 꿈틀거리는 잭을 보고 시우는 갑옷을 해제했다.
“이제 가실까요? 빨리 신고해버리죠.”
디아나는 아직 현실이 인지되지 않는 듯한 멍한 눈빛으로 그런 시우를 바라보았다.
떡하니 벌어진 작은 입은 덤이었다.
EP.370 #80_히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