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6
1.
견습마녀를 완전히 망쳐놓아 마녀에게 쌓인 분노를 풀어내는 것.
겸사겸사 욕정도 해소하는 것.
이번 계획의 취지를 관통하는 작전명을 붙이자면.
그것은 물귀신 작전이 될 것이다.
잭은 이 작전의 성공률을 높게 책정하지 않았다.
아무리 보더타운이 약소 마녀가 모이는 곳이라도 그들은 마녀이다.
게다가 견습마녀가 어느 정도로 저항할지, 계획대로 움직여 줄 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따라서 목표로 선정된 견습마녀가 저 혼자 인적이 드문 아지트 근처로 어슬렁어슬렁 찾아갔을 때 잭은 바로 지금이 적기임을 느꼈다.
이 계획을 오늘 성공시키는 것을 하늘이 돕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기껏 견습마녀를 눌러놓고 장대한 복수극의 첫 페이지를 써 내려갈 무렵 갑자기 열린 창고 문.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갔다 탄식한 순간 들려온 목소리에….
“니들 뭐하냐?”
잭은 쾌재를 불렀다.
저 머저리가 제대로 문을 잠갔다면 어지간한 장비를 쓰지 않고서야 부술 수 없는 자물쇠이다.
그걸 쉽게 부수고 혼자서는 열기도 힘든 창고문을 뚫고 들어왔기에 당연히 마녀라고 생각했는데.
남자다.
그리고 이쪽은 쪽수가 아홉.
어슬렁어슬렁 멋모르고 들어온 병신이라면 죽여버리면 된다.
“읍…! 으읍…!”
“이거 누구야. 그때 그 눈깔 병신이네?”
뒤를 돌아본 잭은 문득 익숙함을 느꼈다.
반반하게 생긴 얼굴이야 기억할 가치도 없지만 저 안대는 확실히 기억났다.
일전에 어깨를 부딪치고 시비가 붙은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혼자 영화라도 찍으려고 왔어?”
잭은 즉시 주위 부하에게 눈짓했다.
전에 시비가 걸렸을 때 조금도 쫄지 않았던 것을 보면 싸움에는 자신이 있는 모양이다.
여느 때 같았으면 주제 파악을 할 수 있도록 자근자근 밟아줬겠지만 지금은 최대한 변수를 없애야 하는 상황.
이런 돌발상황에 대한 메뉴얼도 이미 정해져 있었다.
눈짓을 받은 노예 셋은 각기 품에서 소음기를 장착한 베레타 M9 세 정을 꺼내 들었다.
본래 중간책 관리자들이 사용한 것을 어렵사리 구해 온 것이다.
마녀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무기이지만 인간에겐 더 없이 효과적인 살인 병기이다.
“잘 가라. 병신아.”
-탕! 탕! 탕! 탕! 탕!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발사된 9mm 파라벨럼 탄이 음속보다 빠르게 날아가 연약한 피부와 장기를 꿰뚫어 버릴 것이다.
이미 충분히 교전 거리 안.
서너 발씩 연달아 쏜다면 아무리 머저리 놈들이라도 한발은 맞추겠지.
소음기가 전부 죽이지 못한 총성이 창고에 울려 퍼질 때마다 디아나의 몸도 움찔움찔 떨린다.
“어떡하냐? 너 구하러온 기사님 뒤져버렸는데.”
잭이 이죽거리자 디아나의 안색이 더욱 죽어들어갔다.
아무리 남자 마녀라고 해도 갑자기 뽑아 든 총알을 모두 막을 수 있을까?
그는 갓 마녀가 된, 그것도 낙인도 물려받지 않은 풋내기이다.
“아…아아…!”
디아나가 절망에 가까운 비명을 내질렀을 때.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뭐야?”
“쐈는데?”
“빗나갔나…?”
피 분수를 뿜으며 쓰러졌어야 할 남자가 그대로 서 있다.
현란한 움직임으로 총구를 읽고 몸을 돌린다거나 아니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총기를 뺏는 등 액션영화 같은 장면이 있던 것은 아니다.
그 자리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서 있었는데 총알이 통과하기라도 한 듯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다.
“이 병신새끼들 그 거리에서 그것도 못 맞춰?”
“다시 쏴!”
-탕! 탕탕! 탕! 타다탕!
세 사람이 황급히 탄창에 남은 총알을 다 쏟아부었지만, 결과는 같았다.
마치 여우에게 홀리기라도 한 모습.
오직 잭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어렴풋이 보았다.
어느샌가 그의 허리춤에서 돋아난 리본.
수면 아래 너훌거리는 해초처럼 주변을 떠도는 리본이 총알을 쳐 내는 것을.
뒤늦게 리본을 발견한 노예들이 허둥댔다.
“저, 저거 마법 아니야?”
“씨발 뭔데? 남자가 어떻게 마법을…!”
한없이 살랑살랑 흔들리던 검은 리본이 독이 바싹 오른 독사처럼 뻣뻣하게 변했을 때.
잭이 소리쳤다.
“피해!”
“뭐, 뭐… 끄악…!”
총을 꺼내 들었던 한 명에게 쇄도하는 리본.
동시에 와이어를 단 스턴트맨처럼 공중으로 붕 떠서 날아간 노예는.
-콰직!
단단한 철제 기둥에 허리가 뒤로 접히며 힘없이 떨어졌다.
“끄, 끄윽…끄윽….”
입에서 피가 섞인 채 흘러나오는 게거품과 경련하는 사지를 보면 운 좋게 살아남아도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것은 버거워 보였다.
-붕! 퍽!
-붕! 퍽!
그와 비슷한 일이 또 한 번 펼쳐졌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도 없는 속도로 휘둘러지는 검은 리본과 그것에 얻어맞고 날아가는 노예 둘.
“너희는 좀 맞자.”
그들이 종이 인형처럼 내팽개쳐지는 순간 이번에는 남자 쪽에서 먼저 달려들었다.
“어? 어?”
바람과 같은 속도로 돌진해온 남자와 엉겁결에 칼을 꺼내 드는 돼지남에게 매서운 로우킥이 작렬했다.
“꾸웨엑!”
무릎 관절이 옆으로 꺾이면서 140kg이 넘을 거구가 반 회전한 채 머리부터 곤두박질치고.
“끄악!”
손등으로 대충 후린 일격에 건장한 근육질 대머리의 턱뼈가 바스러지며 부러진 이빨들이 흩날린다.
잭은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어렸을 적부터 밥 먹은 뒤 하는 것이 싸움박질이었다.
으레 맨손으로 티격태격하는 것이 아니라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느낌으로 벌이는 살벌한 칼부림이 대다수였다.
격투기를 배웠다는 둥, 마피아 행동대장이라는 둥 꺼드럭거리는 새끼들도 잭의 칼침 앞에는 아무런 소용없었다.
하지만 이런 싸움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일개 인간이 어떻게 저런 힘을 낼 수 있다는 말인가?
하긴 총알을 튕겨내는 순간부터 예사 인간이 아닌 것 같긴 했다만, 눈앞에서 번쩍 사라졌다가 이제 좀 보인다 싶으면 여지없이 부하 한 명이 불구가 되어있다.
정확히 8번의 비명과 함께 창고 안에서 들려오는 건 나지막한 앓는 소리 뿐이었다.
“놔 줘.”
호흡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떨거지를 정리한 시우는 잭을 노려보았다.
잭은 그의 말에 정신을 차리자 어느새 자신이 견습마녀의 목에 나이프를 가져다 대고 있음을 깨달았다.
본능적으로 그가 이 견습마녀를 구하려 한다는 것을 깨닫고 인질로 삼은 것이다.
동시에 까마득한 막막함을 느낀다.
상대가 내놓은 결과물이 하다못해 무장을 통한 것이었더라면.
총이나 칼을 들고 한 짓이었다면 협박을 빌미로 무기를 내려놓게 했을 것이다.
그리곤 칼로 배를 쑤셔버렸겠지.
하지만 저 남자는 맨손으로 이와 같은 결과를 내놓았다.
인질극은 상황을 지연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그대로 후벼버릴 줄 알아.”
“힉…히익….”
“디아나 아가씨, 괜찮아요. 절대 아무런 일도 없을 겁니다. 절 믿어주세요.”
침착한 그의 목소리에 감화된 듯 발버둥을 멈추고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는 디아나.
잭은 그 모습에 분노를 느꼈다.
이제 겨우 복수할 수 있었는데.
이 거지 같은 게헨나에 끌려와 개처럼 부림 당하던 일을 이제야 되돌려 줄 수 있었는데.
고작 한 발짝을 남겨두고 거지 같은 놈에게 발목을 잡히다니.
“이, 씨발….”
“칼 내려놓고 놔 줘.”
“좆까 병신 새끼야.”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다.
최후의 발악.
비록 철저하게 되갚아 줄 수는 없을지언정 견습마녀를 죽인다면 절반이나마 복수가 완성된다.
잭은 망설이지 않고 디아나의 목에 대고 있던 칼을 쑤셨다.
이제껏 수십 번이나 해왔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정확히 경동맥을 지나는 위치.
기도와 식도를 동시에 헤집으면서 경추까지 박살 낼 수 있는 인간의 급소다.
하지만.
그녀를 단단히 붙잡은 팔 위로 뜨거운 선혈이 흐르는 일은 없었다.
피거품이 섞인 애잔한 비명도 들려오지 않았다.
칼날과 디아나의 목 사이를 얇은 먹지 같은 것이 가로막고 있었다.
잭은 당황해 시우를 보았다.
분노로 일그러진 표정을.
“고맙다. 내가 생각한 것 정도로 쓰레기여 줘서.”
그리고.
순식간에 뻗은 검은 리본이 디아나를 피해 휘어들어 가 잭의 가슴을 가뿐하게 관통했다.
2.
“욱…! 우욱…! 우욱…!”
“괜찮으세요? 죄송합니다…. 제가 한눈을 팔아버린 바람에….”
잭이 날아간 순간부터 시우는 디아나에게 달려가 그녀의 몸을 감싸 안았다.
디아나는 마치 젖을 찾는 새끼 양처럼 시우에게 매달려 정신없이 품속으로 안기려 들었다.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리는 몸.
더러운 바닥을 뒹구느라 생긴 얼룩들.
시우는 다시 한번 이가 갈리는 것을 느꼈다.
디아나가 뛰쳐나갈 때 몰래 리본을 구성하는 실 한 올을 매달아 두었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늦었더라도 큰일이 날 뻔했다.
“흑… 흐흑…흑…흑….”
디아나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시우의 옷깃을 잡고 늘어지며 세상 서럽게 눈물을 떨구었다.
“이제 괜찮습니다. 저 개새끼들은 제가 다 족쳤어요.”
벌벌 떨며 시우에게 안기던 디아나는 자상한 목소리와 온기에 어느 정도 이성을 되찾았다.
이제 안전하다는 확신이 생긴 것이다.
“죄송합니다, 전부 제 탓이에요….”
“우우… 우우….”
디아나는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저었다.
상상도 못 했던 일이 벌어질 뻔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바람처럼 등장해 그녀를 구해준 것도 시우다.
머리에 성에가 낀 것처럼 불투명한 사고이지만 그를 원망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한참이나 디아나를 달래주던 시우의 앞에서 꿈틀거리며 일어난 잭.
입에서는 한 사발 넘는 피를 흘리고 있는데도 움직이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이, 이 씨발… 새끼….”
아무리 물러터진 시우지만 견습마녀를 납치해서 강간하려 했던 사형수에게 손속을 둘 정도로 자비롭진 않다.
가담했던 놈들은 어디 한 곳을 불구로 만들어주었고, 이 일을 주동했음이 분명한 스킨헤드 놈은 가슴에 리본을 박아주었다.
하지만 잭은 절체절명의 순간 몸을 비트는 것으로 치명상을 피했다.
겨드랑이 쪽으로 흘리며 잠깐 의식을 잃은 것에 그친 것이다.
이제 이곳을 나가 시청에 알린다면 모두 목이 매달리거나 마법 실험의 재료로 사용되겠지.
그러나 시우는 조금의 자비도 없는 눈으로 잭을 보았다.
한 푼의 동정심도 섞이지 않은 모멸의 눈빛이었다.
“더러운 마녀 앞잡이 같은 새끼….”
따라서 중얼거리듯 말하는 그의 말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신경 쓸 가치도 없는 놈이다.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잭을 등진 채 디아나에게 말했다.
“우선 밖으로 모시겠습니다. 상황은 제가 정리할게요.”
“…….”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디아나를 공주님 안기로 번쩍 들었다.
“쿨럭…!”
잭은 핏발 선 눈으로 그 뒷모습을 쫓았다.
그리고 조금 전 주머니에서 꺼낸 동그란 구슬을 움켜쥐었다.
이것은 저 머리띠와 더불어 욕망의 마녀가 주고 간 아티펙트.
최후에 수단으로 깨뜨리라며 그 어떤 용례도 알려주지 않은 물건이다.
잭은 바보가 아니다.
공적이 아무런 대가도 없이 일개 노예들에게 대단한 마법 물품을 주고 갔을 리 없다.
이 꺼림칙한 검은 구슬을 깨뜨리는 순간 벌어질 일이 잭에게 이로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혼자 죽을 바에는 마지막 발악을 해주는 거다.
“다 같이… 뒤지는 거야….”
테러하는 테러리스트의 심정으로 잭은 있는 힘을 다해 검은 유리구슬을 바닥에 던졌다.
-슈와아아악!
사정없이 나동그라진 유리 파편 사이로 검은 먹구름이 피어났다.
그것은 마치 유령처럼 순식간에 창고 곳곳을 튀어 다니며 불구가 된 부하들을 덮쳤다.
가장 먼저 죽은 척을 하고 있던 돼지남의 코와 입으로 스며든 연기.
“뭐, 뭐야…! 저리 가!”
그것이 그가 남길 수 있던 유일한 단말마였다.
마치 사린가스를 들이마신 듯 구토와 사지 경련을 일으키던 돼지남의 입에서 다시 연기가 새어 나온다.
이후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수하의 목숨을 거둬간 연기가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잭이었다.
매연을 마시는 듯한 메케한 느낌과 동시에.
잭의 몸이 바르르 떨린다.
이것이 죽음인가.
아니다.
잭은 시간이 지나도 살아있음을 깨달았다.
상처가 치유된다.
불타오르는 것 같은 투쟁심이 심장에 한가득 담기고, 인간의 것이 아닌 압도적인 힘이 전신을 감싼다.
붉게 변한 양아치의 눈과 팔에 새로이 돋아난 눈의 총합계는 17개.
공교롭게도 과거 시우를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었던 ‘익사한 마녀’와 같은 눈의 개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호, 호문쿨루스….”
“물러나 계세요, 아가씨.”
시우는 디아나를 등 뒤로 숨겼다.
“피어라.”
영창과 함께 그림자를 엮어 만들어낸 검은 갑주가 시우의 전신을 감쌌다.
EP.369 #79_시궁쥐(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