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365화 (365/917)

#365

1.

디아나는 씩씩거리면서 나아갔다.

부조리한 분노라는 것은 알고 있다.

왜 그가 그렇게 얄밉게 보이는지 스스로에게 설명하지도 못한 채 우선 화를 내고 온 꼴이다.

가증스럽다는 둥, 짜증이 난다는 둥, 아무것도 아니라는 매도 역시 욱하고 치밀어 오른 분노를 내지른 것에 불과했다.

“누가 사과라도 할 줄 알고….”

정확히 30초 뒤에 조금 과한 행동을 했다는 것을 자각했지만.

디아나는 그것을 애써 무시하며 도리질을 쳤다.

먼저 사과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황급히 쫓아와 붙잡는다면 말이 심했었다고 슬쩍 미안하다고 할 의향은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디아나가 아무리 걸어 나와도 뒤에서 ‘아가씨!’라는 외침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 점이 더더욱 부아가 치미는 디아나.

선착장을 지나 웬 창고가 주르륵 늘어선 한적한 곳에 왔을 무렵.

“후욱, 후욱… 안녕하세요?”

디아나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살이 뒤룩뒤룩 찐 못생긴 남자가 골목에서 튀어나와 말을 걸었기 때문이다.

곧장 정체를 짐작할 수 있다.

허름한 옷과 조금 전까지 일을 하고 온 듯 뻘뻘 흐르는 땀.

거기에 눈빛에서 느껴지는 꺼림칙한 기운.

밀수꾼이 매입한 사노예일 것이다.

이 항구에서 부려 먹히는 노예들은 죄다 사형수라는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들었던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가뜩이나 기분이 좋지 않은데 인간쓰레기나 다름없는 사형수가 말을 걸다니.

디아나의 미간이 좁아지며 평소 나른해 보이는 눈꼬리까지 바짝 올라갔다.

“뭐죠?”

지금 디아나가 입고 있는 옷은 보더타운의 마녀들이 입고 다니는 그저 그런 드레스가 아니다.

구두가 좀 더럽혀지긴 했지만 괜찮은 별장 하나를 거뜬히 살 수 있는 실크 드레스인 것이다.

딱 보면 고귀한 마녀라는 티가 날 텐데 말을 거는 의도부터 뭔가 수상쩍다 할 수 있겠다.

“저, 그… 죄송한데…. 마녀님 물 한 잔 줄 수 있나요?”

그리고 하는 말이 물 한 잔 달란다.

디아나는 더더욱 어이가 없었다.

“제가 물이 있어 보여요? 썩 꺼져요.”

뾰족하게 거절 의사를 내비친 디아나.

보통 이쯤이 되면 알아서 도망칠 법도 한데 저 뚱뚱한 남자는 어쩐지 거리를 슬금슬금 좁혀오고 있었다.

주제도 모르는 놈.

디아나의 입꼬리가 비틀린다.

좋게 말로 하려 했건만 알아듣질 못한다면 실력행사에 나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디아나가 마력을 끌어올릴 일은 없었다.

“꺄…읍…!”

별안간 뒤에서 튀어나온 담배 찌든 냄새 가득한 손이 입을 막는다.

끌어안듯 포획당한 디아나가 황급히 위를 올려보았을 땐 얼굴에 무시무시한 칼자국이 난 남자가 그녀를 뒤에서 잡고 있었다.

“안녕 아가씨, 우리랑 좀 놀까?”

“읍…우웁…! 우웁…!”

“가만히 있어.”

너무 당황한 나머지 마법을 사용하지도 못한 채 몸부림을 쳐서 벗어나려던 디아나는 목 바로 끝에 자리한 날카로운 칼날을 발견하고 뻣뻣하게 굳었다.

“마녀는 마법을 쓰면 눈이 빛난다지? 발버둥 치고 싶으면 해 봐. 돼지처럼 비명 지르기도 전에 멱을 따줄 테니까.”

그와 동시에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던 것인지 비열한 웃음과 조소를 흘리며 어슬렁어슬렁 다가오는 남자들.

그 모습이 마치 하수구를 들쑤시자 튀어나오는 시궁쥐 같다.

“킬킬, 난 따뜻할 때면 시체도 상관없거든.”

“와, 시발 이렇게 쉬운 거였어?”

“크크, 꼴에 마녀라고 앙칼지게 구는 것도 귀엽네.”

디아나 역시 명문가의 마녀.

제대로 마법만 발현할 수 있다면 이런 피라미들은 그녀의 몸에 조금의 상처도 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마력 반사광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다.

더군다나 디아나의 목 끝에는 한눈에 봐도 장난감이 아닌 칼날이 들이밀어져 있다.

2초의 여유만 주어진다면 충분하지만, 칼날이 부드러운 목을 헤집는 것은 그것보다 빠를 것이다.

게다가 세상의 악의에 조금도 물들지 않았던 온실 속의 화초.

그런 디아나가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패닉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머리가 하얗게 변하고 다리엔 힘이 풀린다.

아무런 생각도 떠올릴 수 없었다.

“염병 떨지 말고 빨리 그거 씌워.”

“왜 욕을 하고 그래. 됐지?”

그리고 디아나의 선택지는 순식간에 지워졌다.

그들이 지니고 있던 카추샤가 머리에 씌워지자마자 마치 올가미에 몸이 칭칭 감긴 것처럼 그 어떤 마력도 행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누가 보기 전에 빨리 옮겨!”

“내, 내가 주의 끈 거니까 내가 두 번째로 하는 거 맞지?”

디아나를 뒤에서 굳세게 붙잡고 있던 험악한 남자가 거친 말투로 말했다.

“소리 지르지 말고, 반항하지 말고, 순순히 따라 와.”

그리고 틀어막고 있던 입을 놓아준다.

지나친 충격에 굳어있던 디아나였지만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소리를 지르건 주위의 물건을 이용해 최대한 반항을 하건 조금만 시간을 끌어준다면….

잘 돌아가지 않고 얼어붙은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리려던 디아나.

“…아.”

힘껏 소리를 지르며 도움을 요청하려던 디아나.

하지만 목에서 나온 건 한숨을 쉬듯 바람 빠지는 소리뿐.

게다가 두 다리는 달음박질을 치기는커녕 더러운 남자를 따라 타박타박 걸을 뿐이다.

몸에 실이라도 연결되어 누군가 조정하는 것 같았다.

노예들은 디아나가 보이지 않게 그녀 주위를 빙 둘러싼 채.

그들이 아지트로 삼는 허름한 창고로 들어섰다.

2.

언제나 아지트로 삼는 허름한 창고.

노예들은 포획한 디아나를 끌고 들어서자마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일반인들과는 전혀 다른 사고구조.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혹은 이득을 위해서 서슴없이 같은 인간을 죽일 수 있는 짐승들조차 침을 삼키게 하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지금까지 품어왔던 싸구려 창녀들과 격이 다르다.

근처에 다가가는 것만으로 살포시 풍기는 치자꽃의 향기.

현세에 있었을 때도 본 적 없는 드레스에 포장된 육신은 고귀한 흰빛으로 반짝인다.

“와, 머릿결 고운 거 봐라.”

“피부가 눈보다 더 하얗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생겼지?”

아름다운 예술품 앞에 경건한 마음을 품게 되는 것처럼.

온갖 욕망으로 득실거리던 밀수꾼들조차 잠시간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를 구경했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이 두려움에 꽁꽁 언 디아나의 표정과 후들거리는 다리를 포착했을 때.

그들은 동시에 떠올렸다.

저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찢어발기는 것도.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되는 아름다움을 더럽히는 것도.

창창한 미래가 보장되었을 견습마녀를 구정물 안으로 끌어 내리는 것도.

오롯이 그들의 권리라는 사실을.

그들은 이미 중대한 선을 넘었다.

견습마녀를 건드리는 것은 마녀 사회에서 금기 중의 금기.

하물며 납치까지 한 마당에 이제 와 뒷짐 지고 서 있는다고 살아남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대장 격인 잭이 두려워 어영부영 빠져나가지 못하고 동조했던 자들도 이렇게 되면 이판사판인 것이다.

더욱이 그들의 앞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한 떨기 꽃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맛볼 가치가 있다.

그들은 슬금슬금 디아나에게 다가섰다.

한편 디아나는 전혀 지금 상황을 머리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를 둘러싼 희번덕거리는 눈길.

마치 몸을 휘감는 것처럼 불쾌하기 짝이 없다.

한 눈으로 봐도 부풀어 있는 것이 보이는 바지춤과 히죽이는 입꼬리에서는 탁한 욕정의 냄새가 났다.

마법 영창 한 번이면 쓸어버릴 수 있는 버러지들이지만.

아마도 아티펙트임이 분명한 카츄샤가 머리에 씌워지는 순간 디아나는 견습마녀가 아닌 평범한 존재가 되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엄포를 놓는 것뿐.

“다, 다, 당신들… 이, 이런 짓을 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소드 백작가의 영애의 프라이드.

두려움 속에 쪼그라들어 있는 그것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 낸 협박이었다.

떨리는 목소리에 돌아온 답변은 비열한 웃음소리와 욕정이 섞인 조소였다.

성큼성큼 다가온 잭이 디아나의 머리카락을 움켜쥐며 이를 드러냈다.

“상관없어.”

“힉…!”

누군가 이렇게 거칠게 다루기는 커녕 윽박조차 들어본 적 없는 디아나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격한 통증과 진득하게 악의 섞인 폭력성은 숨을 집어삼키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그 잘난 마녀로 살면서 행복했었지? 누구는 돼지 같은 우리에서 개처럼 일하는 동안 우아하게 찻잔이나 들어 올리면서 말이야.”

디아나는 이를 악물고 잭을 쏘아 보았다.

“그, 그건 당신들의 죄를… 갚고 있을 뿐이잖아요….”

“그건 모르겠고.”

잭은 또다시 거친 손길로 디아나의 뺨을 우악스럽게 잡았다.

“우리도 당한 게 많으니까 분풀이가 좀 필요하거든. 이제부터 니가 죽을 때까지 돌려먹을 거야. 견습마녀는 아다가 뚫리면 마녀가 되지 못한다지? 네 스승도 참 슬퍼하겠어. 이렇게 예쁜 견습마녀가 돌림빵 당한 끝에 마녀도 되지 못하는 폐기품이 된다면 말이지.’

돌려먹는다.

아다가 뚫린다.

돌림빵.

디아나가 알지 못하는 천박한 표현이었다.

그러나 디아나는 본능적으로 그가 의미한 바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들은 지금 디아나를 강간하려 드는 것이다.

“시…싫어요…!”

“난 좋은데? 야, 잡아서 눕혀.”

“대장이 먼저 할 거야? 나머지 놈들 모여서 제비 뽑자.”

“내, 내가 두 번째하기로 했잖아!”

디아나는 짚 더미가 쌓여 있는 진흙 위로 사정없이 내던져진 채 손과 발이 순식간에 고정 당했다.

뒤늦게 발버둥을 치려 했지만, 잡일로 단련된 남성과 마력을 운용할 수 없게 된 견습마녀의 완력 차이는 현격했다.

“명령은 안 내리게?”

“우리 대장이 꼴잘알인거지. 이편이 더 강간하는 느낌이잖아.”

“오.”

팔을 위로 들어 올려 진 채 억눌리고 두 다리 역시 간단히 붙잡힌다.

“하, 하지 마요…! 그만…! 그만 해요…!”

디아나의 애절한 비명이 들렸지만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은 그 십인장을 제외하면 누구도 발길을 들이지 않는 으슥한 창고.

운 좋게 비명이 창고 밖으로 새어 나가도 질러도 하역장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전부 파묻힐 것이 분명하다.

“한 바퀴 돌릴 때까지는 옷 입히고 해줄게. 그냥 벗기기도 너무 아깝네.”

“읍…! 우웁…! 웁…!”

잭이 벌어진 디아나의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고 드레스 자락을 찢으려 들던 무렵.

-쿵!

모두의 심장을 떨어지게 하는 소리가 들렸다.

슬레이트로 만들어진 창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잭이 순식간에 디아나의 입을 틀어막고 십인장 중 한 명을 부릅뜬 눈으로 쏘아본다.

“병신아, 문단속 안 해?”

“아, 아냐! 대장! 분명히 제대로 잠갔어! 그 엄청나게 큰 자물쇠로.”

“근데 사람이 어떻게 들어와 병신 새끼야.”

허둥지둥거리는 한심한 부하를 쏘아본 잭.

혼란과 어수선함이 내려앉은 허름한 창고를 가로질러 누군가 걸어 들어 왔다.

“니들 뭐하냐?”

건장한 체격을 지닌, 안대를 쓴 남자는.

차갑게 치솟는 분노를 억누르며 물었다.

EP.368 #79_시궁쥐(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