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360화 (360/917)

#360

1.

시우의 과외 경험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었다.

과학고 조기 졸업을 앞둔 겨울 방학.

동갑내기 중학생 친구에게 수학 과외를 한 적이 있었다.

용돈이나 벌어보자고 할 심산으로 시작한 과외는 예정보다 훨씬 빨리 끝났다.

친구는 미적분을 이해하지 못했고 시우는 미적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를 이해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이해시킬 자신도 없었고.

하도 오래전이었고 까마득히 옛날 일이라 잊고 지냈었는데.

케케묵은 기억이 느닷없이 떠오르는 이유는 그때 과외생의 어머니가 지금의 예소드 백작처럼 시우를 기특해하며 이뻐했기 때문이다.

그때 친구의 어머니와 지금 백작의 의도가 같은 것인지는….

솔직히 시우도 잘 모르겠다.

간식을 잘 챙겨주셨던 친구 어머니도 느닷없이 밤낚시를 제안하진 않았으니 말이다.

두 사람은 포탈을 타고 래빗 강의 하류로 향했다.

단풍나무가 드문드문 나 있는 구릉을 지나자 굳이 장식 불을 만들 필요가 없어졌다.

다이아몬드를 한 움큼 집어 하늘에 흩뿌려 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별빛이 불빛을 대신했기 때문이다.

“와아….”

“조심하세요!”

예소드 백작은 마치 어린아이 같은 탄성을 지르며 가파른 구릉 면을 뛰어 내려갔다.

저런 험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뛰는 것을 보면 루시 백작도 마녀이구나 싶긴 하다.

어찌 보면 백작이 더 딸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녀의 반응 자체는 이해가 갔다.

바로 낮에 이곳을 찾았던 시우조차 밤 풍경으로 옷을 갈아입은 래빗 강의 모습에는 감탄이 튀어나왔다.

“좋은 곳이네요. 정말 예뻐요.”

“그런가요?”

어렵사리 꼽은 로케이션이었는데 심드렁한 디아나의 반응에 내심 섭섭했던 모양이다.

신이 나서 돌을 밟고 다니는 백작의 모습에 괜스레 뿌듯했다.

“저는 간단하게 준비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주변의 돌을 모아 쌓고 숲을 지나오는 김에 주운 잔가지로 불을 피우고 물 주전자를 올린다.

캠핑용 간이 의자까지 갖춘다면 만점은 못돼도 천 점짜리 연어 낚시터가 됐다.

루시 백작은 신기하다는 듯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시우 씨는 참 다재다능하네요. 이런 장소도 알고, 척척 준비하는 것도 그렇고.”

“감사합니다. 낚시 준비도 금방 끝내겠습니다.”

사실 친구들이 하던 것을 어설프게 따라 했을 뿐이지만….

한눈에 봐도 고귀해 보이는 예소드 백작이 이런 와일드한 캠핑을 언제 해봤겠는가?

밑준비를 끝낸 시우는 낚싯대를 조절했다.

오늘 짧은 경험으로 배운 것인데 가장 중요한 건 추의 무게이다.

너무 무거우면 빨리 가라앉아 버리며 돌에 걸릴 위험이 있고 그렇다고 너무 가벼우면 낚을 수 없게 된다.

“저게 다 물고기인가요?”

먼발치에서 슬며시 수면을 들여보는 예소드 백작.

그곳을 보자 어두컴컴한 수류를 거슬러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원체 야행성인 연어라 그런지 오히려 낮보다 훨씬 많아 보였다.

“네, 그런 것 같습니다.”

백작은 별안간 몸을 돌려 시우를 바라보았다.

디아나와 같은 자홍색 눈동자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본다.

“시우 씨는 말버릇이 있어요.”

갑자기 말버릇?

“네?”

“어떤 의견이나 생각을 말할 때 ‘입니다’로 확정 짓는 것이 아니라 ‘같습니다’라고 추정하듯 말하잖아요.”

“그런가요?”

“네, 수업할 때도 그렇고, 디아나에 대해 보고할 때도 그렇고 언제나 그렇네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잘 감이 잡히지 않아 가만히 있었다.

“제 추정이지만, 어쩐지 ‘제 의견을 틀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달까? 실수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보이네요.”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일리 있다.

5년의 노예 생활도 있었고, 그가 상대해 온 마녀들은 대부분 시우보다 까마득히 높은 사람들이었기에 저도 모르게 그런 말버릇이 붙어버린 모양이다.

“예소드 백작님께선 사회적 배분이나 마녀로서의 지위나 훨씬 높으신 분인걸요.”

“어머? 당신이 틀린 말을 자신 있게 한다면 제 심기를 거스를 수 있다는 건가요?”

“그런 함의는 없었습니다만….”

“누구나 틀릴 수 있고, 잘못할 수 있죠. 그건 잘못이 아니에요.”

“저기 그….”

“제가 그렇게 오만하고 아집에 사로잡힌 마녀로 보였다면 아주 바로 보셨네요.”

백작은 팔짱을 끼고 짐짓 화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정말로 화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던 이유는 달빛이 걸린 그녀의 입꼬리가 살살 흔들렸기 때문이다.

그제야 시우는 이것이 굉장히 고상하고 점잖은 예소드 백작 식 농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뭔가 종잡을 수 없는 섬세하고 까다로운 이유로 화났나 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시정하겠습니다.”

“시정(是正)하겠습니다. 말 그대로 옳은 일로 바로잡는다는 뜻인데, 보통은 굉장히 빡빡한 상하 관계에서 실수를 저질렀을 때 사과와 함께 개선 의사를 밝히는 사무적인 언어죠.”

문제는 여전히 그녀의 농담을 종잡을 수 없다는 것에 있었다.

놀리는 것 같기도 하고 장난을 치는 것 같기도 한데 사실 시우는 아직도 백작이 어려웠다.

제법 오래 알고 지낸 제머나이 백작도 대하기 힘든데 만난 지 이제 나흘 지난 예소드 백작이야 말할 것도 없다.

“제가 지적하는 상황에서 그런 말투를 계속 고집한다면…. 절 앞뒤 꽉 막힌 고리타분한 귀족으로 여긴다고 간주하겠어요.”

“음….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조금 편안한 사이에 있는 마녀가 앞서 한 말을 늘어놓는다면 뭐라고 하실 건가요.”

“솔직하게요?”

“네, 솔직하게.”

시우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음…. 저녁에 먹은 술이 덜 깼냐고 물어봤을 것 같습니다. 아니 물어봤을 겁니다.”

살짝 무례한 답변은 아닌가 생각했다.

예상외로 백작의 취향에 쏙 들어맞는 답변이었던 모양이다.

루시는 새하얀 얼굴이 새빨개질 때까지 웃더니 시우를 치켜세워 주었다.

“생각보다 훨씬 잘하네요! 신랄한데요?”

“무례하게 느껴지셨다면 죄송합니다.”

“지금보다는 조금 더 편하게 대해도 좋아요.”

백작은 그 뒤에도 한참이나 웃고 나서야 웃음을 거두었다.

그녀의 마지막 말에 의문이 생긴 시우가 물었다.

“그러니까 제가 시우 씨에게 잘 대해주는 이유요?”

“네.”

시우가 알기로 예소드 백작은 정통파 마녀이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위세 높은 마녀는 자연스럽게 시우를 눈 아래 놓고 본다.

그런 그녀가 고작 며칠 가정교사 노릇을 했다고 친근하게 구는 이유는 쉽게 떠올릴 수 없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어떻게 놀려먹을지 눈동자에 다 쓰여 있는 가운데.

그녀는 마음을 고쳐먹은 것인지 고개를 휘휘 젓고 말했다.

“오늘 디아나가 잡은 연어. 실은 시우 씨가 잡은 거죠?”

“어….”

“어떻게 알았냐고요? 디아나는 칭찬받을 일이 생기면 무조건 과자를 사달라고 하거든요.”

“그, 그렇군요.”

오늘 저녁 자리에서 디아나는 묘하게 조용했다.

백작은 그 순간부터 눈치채고 있던 것이다.

가정교사 계약을 이어가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으로 의심을 사기 충분한 상황이었다.

조금 난처했다.

“죄송합니다. 백작님을 기만하려거나 하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알아요. 만약 그런 의도가 낌새라도 있었다면 저희 딸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테니까요. 얘가 정말 똑 부러지거든요.”

숨 쉬듯 나오는 디아나 칭찬 이후 별안간 시우의 칭찬이 이어졌다.

“절 제외하면 디아나가 이만큼이나 잘 따르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신기할 정도로요.”

“그게 잘 따르는 건가요…?”

편하게 대하라는 말을 듣자 입이 가벼워져 버렸다.

저도 모르게 흘러나온 본심.

“디아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다는 것부터가 대단한 거죠.”

“그렇군요….”

평소 디아나의 모습이 백작의 말에 설득력을 더해주었다.

이어 자연스럽게 낚시 시간이 되었다.

시우는 백작에게 간단히 낚시 방법을 설명하고 시범도 보여주었다.

어차피 별다른 요령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드랙의 상태도 추의 무게도 오늘 오전과 똑같았으니 말이다.

“이게 끝입니다.”

“재밌어 보이네요.”

백작은 선뜻 신발을 벗고 드레스가 젖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얕은 강물로 걸어 들어갔다.

시우가 알려주었던 대로 너무 멀리도 아니고 너무 가까이도 아닌 수면에 찌를 던졌다.

하지만 저렇게 연어가 많은데도 디아나처럼 한 마리의 물고기도 낚지 못했다.

거의 10번 넘게 반복했음에도 말이다.

“시우 씨,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운 것 같네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낚싯대를 바꿔 오겠습니다.”

백작은 강가로 나서려는 시우의 옷깃을 붙잡았다.

“아니에요, 시우 씨는 이걸로도 잡았잖아요. 아마 요령이 부족한가 봐요.”

그리고는 별빛보다도 빛나는 눈을 한 채 물었다.

“좀 더 자세히 알려주실래요?”

그래서 루시 백작이 알려달라던 ‘요령’이 어떤 것이냐.

“외람된 말씀이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그럼요, 저는 시우 씨를 위해 제 등까지 내어드렸는걸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할 말이 없네요.”

어쩐지 우스꽝스러운 포즈였다.

스텝 원, 낚싯대를 던진 예소드 백작과 뒤에 그림자처럼 나란히 선다.

스텝 투, 마치 뒤에서 껴안는 자세가 된 상태에서 낚싯대를 함께 쥔다.

마지막 스텝 쓰리.

“뭔가 문제 있나요?”

낚싯대를 함께 쥘 때 손을 포개어 쥔다.

다 곤란한 와중에 시우를 가장 곤란하게 만든 마지막 스텝이었다.

시우도 슬슬 감이 올 것 같았다.

정황상 암만 봐도 유혹인 것 같은데 아직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는 두 가지.

첫째는 그녀는 지체 높은 백작이고, 정통파 마녀이고 심지어 시우와 알게 된 지는 일주일도 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둘째가 가장 중요한 사실인데.

그녀는 첫 만남부터 알비레오 백작처럼 시우의 절제력을 시험하려 들었다.

일련의 과정.

그러니까 셔츠를 풀어 맨살을 손끝으로 훑거나, 심상을 보여준답시고 맨 등을 맞대거나, 가슴이 푹 파인 옷을 입고 보여주려고 한다거나 90년대 로맨스 소설에 나오는 오글거리는 행위를 유도하는 것이 모두 다 가정교사 시험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기껏 디아나를 구워삶아서 가정교사 직을 유지 중인데 섣부르게 판단했다가 백작의 테스트에서 걸러진다면 그만큼 억울한 것도 없다.

아니 근데 그런 거라면 이미 백작의 엉덩이골에 불기둥을 세웠을 때부터 아웃이 아닌가?

사실 짧은 시간이나마 그녀가 보여준 모습을 생각하면 그렇게 계산적인 인물은 아닌 듯싶기도 하고….

또 그렇다기엔 같은 백작이자 사업가인 알비레오가 보여주었던 연기가 엄청 뛰어났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에 종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어서요.”

이 난잡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백작은 천연덕스러운 목소리로 재촉했다.

시우는 작게 한숨을 쉬고 백작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이번에야말로 불법주차 같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게 허리 위치를 신경 쓰며 조심스레 그녀의 손 위에 손을 포갠다.

평상시 보이는 위세에 비해 작은 손이었다.

전에 맨살끼리 닿았을 때 느꼈던 것이지만 보드랍고 따뜻했다.

“이게 되네요. 저는 꽤 키가 큰 편이라 자세가 편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휙하고 던져지는 찌.

한 손으로는 릴을 한 손으로는 낚싯대 손잡이를 잡고 유유히 낚싯바늘을 흘려보냈다.

두 사람은 그날 거의 10마리나 되는 연어를 낚았다.

EP.363 #78_야외활동(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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