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
1.
딱 그 짝이었다.
싫다는 딸을 낚시에 데려온 아빠.
도착해서도 재미 없다고 투정을 부리는 딸.
그건 아랑곳하지 않을 정도로 신나버린 아빠.
게헨나의 자연경관은 본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이런 무인지대는 사람의 손을 전혀 타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인지 강가에 고기도 많았다.
농담이 아니라 서툰 시우의 낚시질에도 거의 5분마다 입질이 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시우가 행복한 이유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때마침 호재가 있었다.
원래는 민물고기나 잡은 생각으로 온 것인데 때마침 회귀성 어류인 연어가 상류에 알을 낳기 위해 강을 거슬러 오르는 시즌이었던 것이다.
그 덕에 아직 몸이 붉게 물들지 않은 씨알 굵은 홍연어들이 번번이 눈먼 루어를 덥석 물었다.
낚싯대가 묵직하게 휘어지는 탱탱한 손맛.
릴을 감을 때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강인한 생명력.
물수제비를 뜨듯 수면 위로 퍼덕이는 50cm의 연어를 보자 와 시발 이게 낚시지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전에 했을 땐 온종일 몇 마리 잡을까 말까 하던 낚시였는데 벌써 두 마리나 잡아버렸다.
두 마리 모두 인생 월척 갱신이었다.
“와, 미쳤네. 정말 안 하시나요?”
“전 됐다니까요.”
“디아나 아가씨! 이거 보세요. 진짜 커요!”
시우는 묵직하게 퍼덕이는 연어를 디아나에게 들어 보이며 자랑했다.
꼬리를 퍼덕이며 뺨에 강물이 튀어도 마냥 즐겁다.
멀찍이 떨어져 불만스레 앉아있던 디아나는 살짝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시우를 바라보았다.
연어.
먹어 본 적은 많지만 저렇게 살아서 펄떡이는 것을 보는 건 처음이다.
게다가 잔뜩 구부러지는 낚싯대를 감아올리는 그의 표정이 어찌나 신나 보이는지 괜스레 디아나도 호기심이 들 정도였다.
낚시가 도대체 뭐길래 저 정도로 좋아하지?
싶은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시점에서 효율적인 에너지 관리는 글렀다.
멀뚱히 앉아있는 거보다는 한번쯤 직접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진짜 딱 한 번만 해보세요.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재밌을 거예요.”
“한 번만이에요.”
디아나는 옆에 낚싯대를 챙겨 들고 신발을 벗었다.
예쁜 빛깔로 빛나는 물살에 발을 담그자 얼음장 같은 차가움과 함께 피부에 닭살이 오도도 돋는다.
“어떻게 한다고 했죠?”
“어렵지 않습니다. 너무 멀리 던지실 필요도 없고, 너무 가까이 던져서도 안 돼요. 여기 이 부분 있죠? 이걸 잡고 휙 던진 다음에 물살에 낚싯바늘을 흘려보낸다는 감각으로 하시면 됩니다.”
설명을 듣기로나 그가 하는 모습을 보나 별로 어렵지 않아 보인다.
“이렇게요?”
디아나는 시우가 적당히 맞춰준 낚싯대를 들고 휙 줄을 던졌다.
수심이 얕은지라 꽤 거센 물살을 타고 빠르게 흘러가는 낚싯줄.
“네, 그런 식으로요. 너무 멀리 간다 싶으면 다시 줄을 감고 반복해주시면 됩니다.”
“별거 없네요.”
“그렇죠.”
보던 것처럼 쉬웠다.
금방이라도 그가 했던 것처럼 커다란 물고기를 쑥쑥 낚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포인트가 겹치면 곤란하니 저는 좀 떨어져 있겠습니다. 재수 없으면 줄끼리 꼬일 수도 있거든요.”
그렇게 말한 시우는 15M 간격을 둔 채 낚시를 계속했다.
디아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다가 다시 줄을 던졌다.
유유히 흘러가는 낚싯바늘.
저만치 떠내려갔는데도 아무런 감각이 오지 않아서 다시 줄을 감는다.
던진다.
흘러간다.
다시 줄을 감는다.
던진다.
흘러간다.
다시 줄을 감는다. 던진다. 흘러간다. 다시 줄을 감는다. 던진다. 흘러간다….
“…….”
몇 번이나 도전해봤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는 디아나의 낚싯대.
한편 옆에서는.
“오! 왔다! 왔어!”
“이야~ 이게 도대체 몇 센티야?”
“이 녀석 보통 연어가 아니구나! 하지만 어림없지! 바로 발경!”
디아나는 시우 옆에 수북이 쌓여가는 연어를 보고 다시 앞을 보았다.
-졸졸졸졸
“…….”
하릴없이 흐르는 강물을 타고 떠내려가는 낚싯줄이 보인다.
디아나는 조용히 줄을 휘감아 낚싯바늘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상한 낚싯대를 준 건 아닌가?
하지만 루어도, 추도, 낚싯바늘도 그가 시범을 보일 때 보여줬던 것과 똑같다.
“옳지! 왔구나!”
“크하하하!”
“물보다 고기가 많네!”
잔뜩 신나 보이는 시우와 묘하게 삔또 상한 디아나.
그냥 혼자서 낚시에 나섰더라면 ‘에이 뭐야, 재미없고 귀찮기만 하네’라고 그만뒀을 것이다.
하지만 옆에서 연신 물고기를 낚아 올리는 와중에 텅 빈 어망을 보고 있자니 은근히 승부욕이 생겼다.
디아나는 고민하다가 시우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네? 네. 아, 많이 낚으셨어요?”
“…아니요, 자리 바꿔요. 그쪽이 자리가 좋아서 잘 잡히는 것 같으니까.”
“그럴까요?”
시우는 순순히 자리를 바꿔주었다.
다시 시작된 낚시.
이 자리에 서 있던 그가 쉴 새 없이 고기를 낚아 올렸으니 명당임이 틀림없다.
낚싯대도 같겠다.
별다른 요령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이제 실컷 연어를 낚아 올릴 생각에 내심 들뜬 디아나.
“이야, 여기도 잘 잡히네!”
“오늘 저녁은 연어다!”
“이건 또 뭔 생선이야?”
그리고 또다시 반복되는 상황이다.
정작 자리를 바꾸자 시우는 디아나가 입질도 못 받았던 장소에서 쉴 새 없이 고기를 낚아 올렸다.
반면 디아나는 낚시가 아니라 루어에 물 묻히기 운동만 계속할 뿐이다.
“…….”
디아나는 잠잠한 표정으로 부아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부글부글 속이 끓는다.
본의는 아니겠지만 그가 즐거워하는 모습이 옆에서 깐족대는 것으로 느껴졌다.
“저기요!”
디아나는 방금도 막 팔뚝만 한 연어를 낚은 시우를 소환했다.
“제가 외부 활동하기로 해서 나온 거잖아요. 저도 신경 써 주세요.”
“아, 그랬죠. 죄송합니다. 너무 신을 내다보니.”
“요령 좀 알려주세요.”
“넵, 자 보세요.”
다시 한번 조금 더 세밀한 설명을 해주는 시우였지만 디아나로선 그게 그거인 것 같았다.
단순히 운이 아닐까 싶어 시우의 낚싯대까지 빌려 봤지다.
그래도 결과는 여전하다.
놀라울 정도로 허탕만치는 디아나를 보고 ‘어? 왜 이러지?’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시우의 모습에 심통만 잔뜩 났다.
“이제 30분은 충분히 지났어요. 한 번만 더 던져보고 안 잡히면 돌아갈 거에요.”
“그러시죠.”
디아나는 아쉬운 듯 미적지근하게 대답하는 시우를 보고는 휙 줄을 던졌다.
유유히 흘러가는 찌.
여전히 입질은 없다.
이번이라고 다를 것 없구나 싶어 한숨을 내쉬려는 순간.
“어?”
왔다.
강렬한 입질.
누가 봐도 물고기가 물었다고 생각할 법한 강렬한 힘이 느껴졌다.
디아나는 순간 놓칠 뻔한 낚싯대를 꽉 잡았다.
“물었어요!”
“이, 이제 어떡하죠? 어떡하죠?”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갑작스러운 상황에 눈을 동그랗게 뜬 디아나.
한눈에 봐도 장대한 입질에 대신 들뜬 시우가 옆에서 훈수를 두려는 순간….
그야말로 만화 같은 장면이 펼쳐졌다.
“흐걋!!”
팽팽히 휘어진 낚싯대를 붙잡던 디아나가 외마디 비명과 함께 쑥 끌려간 것이다.
가뜩이나 물살이 세서 얕은 물이라도 균형을 잡기 힘든 강가.
낚싯대를 부러뜨릴 기세로 끌어당기는 강렬한 힘에 디아나는 다이빙하는 것처럼 수면 위로 철퍼덕 엎어졌다.
-첨벙!
강렬한 스플래시.
시우는 뒤늦게 몸을 날려 리본으로는 디아나의 몸을 안아 들고 한 손으로는 낚싯대를 잡았다.
2.
간이 의자 옆에 모닥불에 앉아 모포를 뒤집어쓴 디아나.
옷과 머리카락을 적신 물기는 마법으로 한꺼번에 날려버렸다지만 체온 유지는 중요하다.
“…….”
“저기, 괜찮으신가요?”
한 시간도 안되는 시간에 연어에게 연이어 억까 당한 디아나는 저기압 그 자체였다.
머리 위로 폭풍의 핵이 떠돌기라도 하듯 표정이 어둡다.
오늘 거의 30마리 넘는 연어를 잡았기에 저녁으로 먹을 한 마리만 빼고 전부 방생하고 온 시우는 슬쩍 그녀의 눈치를 보았다.
사실 이건 예상치 못했던 트러블 2였다.
지금까지 팔뚝만 한 홍연어와 드문드문 무지개송어만 잡히길래 두 종류만 있겠거니 했다.
하지만 디아나에게 물귀신을 시전한 연어는 최대 길이 1.5M, 최대 무게 60kg에 육박하는 킹 새먼이었던 것이다.
자기 몸만큼이나 무거운 연어가 낚싯대를 끌어당기니 방심하고 있던 디아나가 도리어 낚여 간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
“그래도 디아나 님이 잡으신 게 가장 크네요.”
엄밀히 말하면 연어가 디아나를 잡았고 시우가 디아나와 연어를 모두 잡은 것이지만….
그녀의 기분을 생각해 최대한 포장해 말해준다.
“이거 보세요! 이렇게 커다랗습니다.”
대강 봐도 1M가 넘어가는 크기.
진이 다 빠져 힘없이 퍼덕이는 오늘의 저녁 메뉴를 디아나 앞에 들어 보였다.
“크네요.”
여전히 칙칙한 얼굴로 연어를 바라보던 디아나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제 돌아가요. 두 시간 넘게 지났어요.”
생각 이상으로 낚시가 재밌었고 기왕이면 디아나를 꼬셔서 오늘 저녁까지 즐기고 싶었지만 일이 이렇게 꼬여버렸으니 별수 없었다.
다음에 또 오면 되겠지.
바리바리 풀었던 짐을 싸고 다시 배낭을 메고 연어는 리본으로 칭칭 감아서 대충 어깨에 걸쳤다.
좌표이동식으로 돌아가는 것도 좋지만 이 예쁜 자연풍경을 보여주는 것도 야외 활동의 일환이다.
함께 구릉을 거닐며 아직도 저기압으로 보이는 디아나에게 물었다.
“아가씨.”
“왜요.”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여쭤도 될까요?”
“하세요.”
전부터 궁금하긴 했다.
사람 성향이 귀찮은 거 싫어하고 나다니는 걸 꺼릴 수도 있다지만 디아나는 정도가 심하다.
그렇다고 ‘왜 그렇게 게으르세요?’ 라고 물을 수는 없어 적당히 돌려 묻자 디아나는 답했다.
“제가 하는 건 게으름이 아니에요.”
“네?”
“좀 더 고차원적인…. 이를테면 현상 유지 편향이죠.”
뭔 소린가 싶어 슬며시 옆얼굴을 보다가 여느 때처럼 무표정한 디아나의 눈과 힐끗 마주쳤다.
“저희 어머니도 그렇고 사람들도 그렇고. 게으름을 나태란 이름의 죄악으로 낙인찍었지만, 이 경향성은 인류 발전을 통틀어서도 아주 중요해요.”
“…….”
“편의를 위한 과학과 마법의 발전도 결국엔 ‘아 귀찮다’라는 마음에서 나온 것 아닌가요?”
제대로 대답은 해주려나 싶었건만 뭔가 본격적인 대답이 들려왔다.
“그러니까 괜히 절 부추겨서 돌아다니지 말고 위치보드나 해요. 엄마한텐 제가 잘 말할게요.”
“그건 곤란합니다. 백작님과 약속된 것이 있어서요.”
“쳇.”
어쨌든 오늘 하루 수업도 끝.
디아나를 데리고 저택으로 귀환했다.
정문을 지나 저택에 들어서자 저 멀리 예소드 백작이 보였기에 시우는 슬며시 디아나에게 연어를 들려주었다.
“잠시만 들어주실래요?”
“이, 이걸 갑자기 왜…! 무, 무거워요…!”
엄청 무거운 연어의 중량이 실리자 휘청하며 시우를 쏘아보던 디아나.
그때 저만치서 디아나를 발견한 백작이 빠른 발걸음으로 달려왔다.
“우리 딸…! 잘 다녀왔니?”
그제야 디아나는 시우의 의도를 알아차린 모양이다.
시우는 씩 웃으며 그녀의 등을 밀어주었다.
“가서 자랑하셔야죠.”
짜증을 내던 표정은 쏙 들어가고 휙 시선을 돌린 디아나.
작게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커다란 연어를 질질 끌고 예소드 백작에게 걸어갔다.
“다녀왔어요.”
“어머 어머! 이거 우리 딸이 잡은 거야?”
“…네.”
“대단하네~ 당장 사진 찍자 엄마가 사진기 가져올게!”
디아나의 머리를 쓰다듬고, 껴안고, 폭풍 칭찬하는 예소드 백작의 모습을 보며 시우는 오늘 하루도 보람찼다고 생각했다.
EP.361 #78_야외활동(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