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6
1.
디아나는 귀축배달부 제3권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앞에서 뒤까지 휘리릭 훑어봤을 때 집필자가 어머니라는 사실은 명백했다.
고아한 필체는 물론이고 테이블 위에는 잉크와 깃펜이 놓여있었으니 말이다.
제1장.
죄와 벌.
사랑에 빠진 마녀는 더욱 아름답게 변모했다
재투성이라고 놀림당하던 머리칼은 윤기를 머금어 늑대의 모피처럼 반짝였고 고혹적인 빛깔의 입술과 꿈에 젖은 눈동자는 길거리의 마녀들이 돌아보게 할 정도였다
처음부터 펼친 책.
처음에는 그저 소위 로맨스 소설인 줄 알았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적과 흑처럼 남성과 여성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 말이다.
“머리카락이 회색….”
더불어 주인공으로 보이는 마녀의 가장 큰 특징으로 묘사되는 부분이 잿빛의 머리카락인 것을 보면….
어머니인 루시 백작이 본인을 투영하거나 한 것 같긴 했다.
그래도 디아나는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줄 수 있었다.
초반부의 내용은 별거 없었다.
1, 2권에서 평범하지만 잘생긴 우유 배달부에게 푹 빠진 마녀에 대한 묘사가 대충 3~4페이지.
그리고 정황상 마녀는 이 우유 배달부에게 만남을 거절당한 것으로 보였다.
달빛이 휘황찬란한 2층 테라스에서 그의 얼굴을 떠올리며 한숨짓는 묘사가 있었으니 말이다.
‘아아, 왜 나를 만나주지 않을까요? 야속한 사람. 한밤의 어둠보다도 이 고독이 더 짙고 무수한 창날보다도 상사의 괴로움이 날카롭네요….’
“…마녀를 거절한다고요?”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는 생각해도 극적인 상황을 위한 작위적인 연출이겠거니 했다.
현실에서 절대로 하지 않을 것 같은 저 연극체의 대사처럼 말이다.
아직까진 고작 그것뿐이긴 했지만 이에 대한 짤막한 평가를 내리자면….
“흐음….”
흥미진진했다.
흔히 ‘교양있는 책’이라고 불리는, 즉 루시 백작이 중앙 서고에 입고를 허가한 서적에는 이런 내용이 없다.
남녀 간의 사람에 대해서 두루뭉술하게 다루는 경우가 있다고 해도 얼버무리는 듯한 애매한 표현으로 끝날 뿐이다.
그에 비해 이 책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뭔가 혀에 촥촥 감기는 싸구려 감칠맛이라고 해야 하나?
가끔 엄마가 사주는 현세의 과자와 같은 말초적인 자극이 찌르르 울린달까.
아직 백작이 돌아오기까지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기에 디아나는 아예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마녀는 오랜 고민 끝에 배달부를 찾았다. 냉담한 목소리와 조소가 아플 정도로 귀를 울린다.
‘다시는 찾지 않기로 했던 것 아니었나요?’
‘그렇게 말했었죠.’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을 혐오한다고 말씀하지 않았던가요?’
‘그렇게도 말했었죠.’
‘그런데 이곳을 왜 찾아오셨나요? 인간과의 약속이 마녀와의 것보다 가벼웠던가요?’
“아하….”
마녀가 먼저 뭔가 불만 사항을 가지고 남자에게 다시 만나지 않겠다고 선언한 모양이다.
그러면서 남자 측에서 다시 와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결국 참지 못하고 남자를 보러 왔다.
여기까지는 오케이.
굳이 제1권 2권을 보지 않아도 충분히 유추가 가능한 줄거리였다.
이후 마녀와 배달부는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눈다.
‘거짓은 큰 죄입니다. 아름다운 입술로 달싹였다 하여 용서받을 수 없는 죄죠.’
‘알고 있어요. 그 어떤 벌이라도 감당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곳에 왔답니다.’
마녀의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서렸다.
고귀한 마녀인 주제에 낮은 자를 자처함에서 오는 난처함과 모멸감이오, 또한 그 이상으로 기대감이 어린 낯빛이었다.
시선을 내리깔며 눈을 마주치지 못하던 마녀가 입을 열었다.
‘어떤 벌이 저를 기다리고 있나요?’
‘마녀님은 마치 벌을 기대하고 오신 것 같습니다.’
‘그럴 리 없어요.’
‘이번에도 거짓을 고하시는 건가요?’
‘…….’
“벌?”
디아나의 고개가 갸우뚱 돌아갔다.
지금까지 큰 어려움 없이 쫓아왔는데 갑자기 황망한 기분이 들었다.
남자가 마녀에게 벌을 내린다?
여기까지만 해도 기가 차는 느낌이다.
그런데 마녀는 남자가 내리는 벌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것을 부정하지도 못하고 있다?
슬슬 이해가 곤란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손바닥이라도 때리려나요…? 아니면 산책?”
별 생각 없이 유려한 문체로 쓰인 줄글을 읽어나가던 디아나는 갑자기 방치 턱 같은 덜컹거림을 느꼈다.
동시에 디아나의 눈이 좌우로 흔들렸다.
배달부는 마녀에게 키스를 요구했다.
건강한 수컷의 육신 앞에 무릎을 꿇고 육욕에 달아오른 홍조를 띤 채 입술을 내밀었으니 구걸과도 같은 요구였다.
키스.
요 며칠간 디아나의 밤잠을 설치게 했던 남녀 간의 애정행각.
하지만 뭐든 최초의 충격을 따라잡기엔 어려운 것이다.
디아나는 끝없이 그때의 장면을 곱씹었고 고작 글자로 묘사된 키스에는 크게 동요하지 않을 정도로 성장했다 자부했다.
하지만 이것은 일반적인 키스가 아니었다.
마녀가!
남자 앞에!
무릎을 꿇고!
키스를 요구하다니!
디아나의 눈가에 잔 경련이 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건 마녀의 명예와 권위를 실추시키는 불온서적이다.
이것이 어머니가 쓴 것만 아니었더라도 당장 마녀 회의에 회부하여 마땅히 땅에 파묻고 불살라야 옳다고 주창했을 것이다.
“…….”
‘벌을 받기도 전에 키스를 원하는군요.’
‘매일 밤 당신의 품에 안겨 입 맞추던 것을 떠올렸어요.’
‘저는 아닙니다. 마녀님의 대한 것은 조금도 떠올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저, 저 발칙한 녀석….”
경악과 거부감을 느끼는 한편.
어디까지가나 보자 하는 막장 드라마 시청자의 심정으로 책장을 넘기는 디아나.
그리고 잠시 후.
조금 전 키스 요구에 대한 문장이 방지턱 정도였다면 이번에는 거대한 크레이터 급의 충격이 디아나에게 쇄도했다.
무릎을 꿇던 마녀는 조신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허물을 벗듯 제 고귀한 육신을 휘감은 옷가지를 벗어 던졌다.
더러운 흙바닥 위로 부드러운 옷이 쌓여갈 때마다 마녀는 태어날 때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제철 과실처럼 도담하게 부푼 가슴은 마치 남성의 손에 쥐이기 위함이라….
-탁!
디아나는 마치 금지된 마도서라도 훑은 양 책을 덮었다.
“오, 오, 오, 오, 옷을 버…버버….”
전혀 예상치도 상상치도 못했던 새로운 진실.
그것은 가히 선악을 알려준다는 전설 속 과실에 맞먹는 충격을 디아나에게 안겨주었다.
남성의 앞에서 무릎 꿇고 키스를 애걸복걸하는 것도 모자라 옷을 벗는다.
“이…이런 건,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에요! 아무럼요!”
보는 사람도 없는데 혼자 김을 씩씩 뿜으며 흥분한 디아나.
작은 주먹을 꽉 쥐고 어금니를 잘근잘근 물던 그녀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정말로 이 책의 저자가 어머니라는 말인가?
가끔 디아나 앞에서 푼수 짓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고결하고 흐트러짐 없는 어머니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음란한 서적을?
읽는 것도 아니라 직접 썼다고?
“…….”
하지만 게거품을 물 기세로 날뛰던 디아나의 시선은 어느새 또르르 붉은 가죽커버 위를 향해 있었다.
숨이 가쁘다.
불쾌하고 기분 나쁘다.
하지만 그러는 한편 요상한 호기심이 자꾸 자꾸만 머리를 쿡쿡 찔러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벌’이 뭔데? 라고 끝없이 읊조리듯 말이다.
“크흠….”
불쾌함과 호기심의 첨예한 대결.
그 승자는 결국엔 호기심이었다.
디아나는 주위를 휙휙 둘러보고는 폭발물을 다루는 것처럼 조심스레 책장을 펼쳤다.
온갖 천박함과 노골적인 여체에 대한 묘사들이 관능적인 어구로 지나가고.
그 부분을 꾸역꾸역 씹어 삼키자 드디어 배달부가 언급했던 ‘벌’의 정체가 나타났다.
백작은 두 손을 구속당하여 박제 당한 나비처럼 침대 위에 묶인 채 애절한 눈초리로 배달부를 바라보았다.
애절하고 비굴하고 추잡한 눈초리.
사랑이라는 멍에에 이끌려다니는 볼썽사나운 스스로의 모습은 비참함을 가중한다.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배덕의 달콤함과 두근거림을 동반한다.
꽃사과나무의 꽃처럼 수줍은 연분홍빛의 유실.
아직 숨결조차 닿지 않았거늘 수치심도 잊고 딱딱하게 변한 첨단을 부드러운 깃펜의 끝이 다정히 쓰다듬었다.
디아나는 잠시 책에서 시선을 뗐다.
“이게 도대체….”
배달부의 벌은 디아나의 생각보다 추잡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갑자기 알몸이 된 마녀보다는 충격이 덜했다는 것이다.
배달부는 마녀를 알몸으로 침대에 묶었다.
그리고는 몸 곳곳을 깃펜의 깃털로 살살 간질이는 내용이었다.
잠깐 머릿속에서 그 장면을 그려보자 확실히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일단 더 봐야 알 것 같은데요….”
디아나는 머리에 잔뜩 오르는 열을 느끼며 탐독을 시작했다.
마녀의 몸 구석구석, 본인이 아니라면 결코 만져서는 안 될 은밀한 비처까지 살랑살랑 간질이는 깃털.
‘더는 참을 수 없어요. 절 안아주세요…. 제발 부탁드릴게요….’
‘아직 벌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제발…. 거칠게 절 범해주세요. 이대로는…. 너무 괴로워요….’
“…….”
처음으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나왔다.
확실히 깃털로 몸을 간지럽히면 숨넘어갈 정도로 괴롭기는 할 것이다.
물론 디아나는 그 누구도 자신의 몸을 깃털로 간질이게 할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 뒤로는 대체로 알기 쉬운 내용이었다.
배달부가 간질이는 부위가 끈적하게 묘사되곤 했지만 ‘마녀가 야릇한 비음을 내었다’ 이런 것을 제외하면 그냥 간질간질 형벌이 끝이었다.
애처롭게 몸을 떨던 마녀의 몸은 어느새 땀방울이 밤이슬처럼 맺혀 있었다.
뜨거운 날숨에서는 열대 과일처럼 달콤한 색기가 풍기고 이제는 살갗을 가볍게 스치는 깃털조차 진득한 애무로 느껴버릴 만큼 몸이 달아 있었다.
‘마녀님 젖으셨네요.’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이 깃털이 그렇게나 기분 좋던가요?’
‘아… 아… 아….’
배달부를 깃털 끝을 세워 칼로 도려내듯 마녀의 가장 민감한 돌기를 휘저었다.
마녀는 한껏 몸을 들썩이며 발정기의 짐승처럼 야릇한 신음성을 내뱉었다.
스치는 것만으로 깃털을 흠뻑 적실 지경이 된 가랑이는 몹시도 천박한 암컷의 향기로 가득했다.
“…….”
처음에는 진부한 로맨스로 시작했던 소설은 뒤로 갈수록 수위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졌다.
슬슬 디아나가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 등장하는 빈도도 잦아졌다.
하지만.
뭔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확실히 짐작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정말, 정말, 정말로 음란한 소설이라는 것을.
문자대로 상황을 상상하고 떠올리는 것만으로 가슴이 괜히 답답하고 숨이 막힐 정도로 노골적이라는 것도.
이윽고 배달부가 옷을 벗고 침대 위로 올라서는 장면이 등장했다.
한 번도 직접 본 적 없는 남성의 알몸이 그리듯 묘사된다.
궂은일로 몸 곳곳에 박힌 근육이라든지, 여체의 부드러움과는 완연히 다른 구릿빛 건장한 피부라든지.
하지만 그중에 가장 예상치도 못했던 것은 남성기에 대한 묘사였다.
단단하게 솟아오른 고기의 창.
동그란 귀두는 어린아이의 주먹만큼이나 커다랗고 핏줄이 선 채 조금의 시듦도 없이 꼿꼿하게 선 그 물건이 마녀의 아랫배를 꾹꾹 누른다.
‘이걸 원하시나요?’
‘네, 당신의 물건을 원해요….’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해주시죠.’
‘당신의 자지를…. 그 뜨겁고 단단한 황홀함의 창을…. 마음속 깊이 원하고 있어요….’
숨을 쉬는 것조차 잊고 핏발 선 눈으로 한 글자 한 글자 탐독하던 디아나는 막아선 마지막 문장은.
‘이제 넣어 드리겠습니다.’
무려 그 남성의 성기를.
여성의 성기에 삽입하는 장면이었다.
“으…!”
디아나는 뜨거운 솥에 손을 댄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라며 책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연신 고개를 좌우로 거세게 젓는다.
게헨나가 만약 마녀의 도시가 아니라 평범한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이었더라면.
디아나가 만약 마녀가 아니라 평범한 백작가의 영애였더라면 2~3년 전에 사교계에 데뷔하고 약혼을 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대며 외모이다.
하지만 예소드 백작의 철저한 금남(禁男) 교육 속에서 살아온 디아나에게 이 이상의 자극은 너무나도 강렬했다.
“더러워요!!!!”
디아나는 재빨리 책을 덮고 모든 물건을 원위치시킨 뒤 도망치듯 백작의 서고를 뛰쳐나갔다.
EP.349 #76_마녀의 관능소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