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344화 (344/917)

#344

1.

“몸 많이 안 좋니?”

“아니요, 엄마. 저 정말 괜찮아요. 그냥 누워서 조금만 더 쉴게요….”

“엄마 진짜 일 나가봐도 되겠어? 오늘 하루 우리 딸이랑 같이 있을까?”

“아니요, 혼자 있고 싶어요….”

“어휴 그래…. 오늘 저녁에 맛있는 거 사 올 테니까 기운 차려. 사랑해 우리 딸.”

“네, 저도요.”

-탈칵

예소드 백작이 출근하고 문이 닫히자 디아나는 다시 베개 사이로 얼굴을 파묻었다.

벌써 이틀째 고뇌와 번뇌로 끙끙거리고 있었다.

왜냐하면 눈앞에서 말도 안 되는 광경을 목격했고, 그로 인해 지금껏 신봉해왔던 믿음 하나가 처참히 부서졌기 때문이다.

“말도 안 돼요… 어떻게 그런 짓을….”

발라당까진 쌍둥이의 만행을 떠올린 디아나는 정신적 충격과 더불어 막대한 혼란에 입술을 깨물었다.

분명 입술끼리 부딪쳤다.

남자랑 견습마녀랑 키스를 했다.

그런데도 쌍둥이의 그릇은 멀쩡했다.

“으…웩….”

다시 그때의 장면을 떠올린 디아나는 매스꺼움을 느꼈다.

불결하다.

불쾌하다.

마치 사자가 가젤을 잡아먹는 것을 본 것처럼 설명 못 할 거부감이 가슴에 휘몰아쳤다.

“그렇다고 이대로 있을 수 없죠….”

디아나는 몸을 일으켰다.

잔뜩 헝클어진 머리를 빗으로 빗으며 옷을 차려입었다.

벌써 칩거한 지도 꽉 채운 이틀이 되어간다.

이 세상은 무언가 잘못되어있다.

디아나는 그것을 느꼈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둘.

이미 알고 있던 행복한 거짓에 안주하느냐.

설령 그것이 끔찍하고 잔혹할지라도 진실을 마주하느냐.

디아나는 예소드 가의 견습마녀.

그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덮어놓고 모른 척하는 것은 범인(凡人)의 선택이다.

마도를 탐구하고 미지의 길을 개척하는 마녀라면 분명 범인과는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그 일그러짐을 탐색하기 위해 디아나는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 나갔다.

2.

처음 조사 대상으로 선정된 것은 가문에 상주하는 고용인들이었다.

여담이지만 예소드 백작가에는 남자 고용인이 없다.

따라서 디아나가 이런 민망한 주제를 탐문조사 하기에도 훨씬 편했다.

“좋은 오후에요.”

빨랫감을 들고 저택 복도에서 재잘거리던 두 메이드는 디아나를 보자마자 황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디, 디아나 아가씨.”

“안녕하세요. 그, 금방 일하러 갈 생각이었습니다….”

일반 고용인이 디아나와 만나게 되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희귀한 일이었다.

우선 디아나는 자기 방 문지방을 넘어 저택 외부로 잘 돌아다니지 않을뿐더러, 시간 대부분을 방과 곧장 연결된 유수풀에서 보내니 말이다.

또 어린 시절부터 대부분의 시간을 예소드 백작과 함께한 만큼 우연히 마주쳐 대화를 나누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인지 갑자기 말을 걸어온 디아나의 모습에 하녀들은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한 가지 묻고 싶은 점이 있어요.”

“넵!”

“무엇이든지 물어봐 주세요!”

군기가 바짝 든 신병처럼 반듯이 선 메이드에게 디아나는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이상하게 듣지 말아 주세요. 그리고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줘요. 순전히 학술적인 호기심이니까요.”

온갖 고급 교육을 받는 견습마녀가 메이드에 학술적인 호기심을 묻는다라….

영 이상한 말이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이는 하녀들.

“넵!”

“절대 비밀을 누설하지 않겠습니다.”

디아나는 잠시 망설였다.

사실 이게 정상적인 질문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꽤 낯 뜨겁고 부끄러운 질문인 것이다.

“큼,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지 아시나요?”

“…….”

“…….”

디아나의 질문이 들려오자마자 메이드들의 표정이 바짝 굳었다.

저들끼리 얼굴을 바라보고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아, 저, 그… 저희가… 지금 당장 일을 하러 가야 해서….”

“죄송합니다, 가보겠습니다….”

“아….”

그리고는 굉장히 빠른 걸음을 이용해 슝하고 사라져 버렸다.

마치 금기의 마법에 대한 질문이라도 받은 듯한 모습이어서 디아나의 눈이 동그랗게 변한다.

고민 끝에 물어본 것이긴 한데.

그렇게 못 물어볼 질문이었던가?

하긴 백작가의 영애가 입에 담기에는 정숙지 못한 질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의 호환마마 급으로 두려워하며 자리를 뜬 것을 보면 마냥 거부감 때문이라고 여기기도 기이하다.

왜냐하면 분명 메이드들이 보인 반응은 ‘두려움’이었으니 말이다.

“…….”

그리고 그 반응은 오히려 디아나의 호기심을 끌어냈다.

본디 인간이란 존재는 하지 말라는 금기에서 더 하고 싶음을 느끼는 법이다.

게으름마저 이겨내고 의지를 다잡은 디아나는 수사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빨래터에서 빨랫감을 세탁하는 하녀도.

주방에서 저녁을 만들던 요리사도.

저택을 장식할 꽃꽂이를 만드는 고용인도.

모두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못 들을 것을 들었다는 양.

디아나의 질문에 대해 함구령이 붙여진 양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자리를 피하기 급급했다.

그쯤에서 디아나는 확신했다.

이것은 단순히 디아나의 질문이 이상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다.

“엄마가…?”

백작이 직접 관여한 것이라는 직감이 뇌리를 스쳤다.

이유는 모른다.

만들던 꽃꽂이까지 내팽개치며 도망치던 고용인의 모습으로 미루어봤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도 비슷한 반응이 나올 것은 자명했다.

“그렇다면 도서관이죠.”

원래 책에는 과거에서 부터 전승된 온갖 지식이 담겨 있기 마련이다.

디아나는 저택 내부의 서고로 씩씩하게 나아갔다.

3.

예소드 백작가의 서고 규모는 어지간한 서점의 규모보다 컸다.

3층 책꽂이에 빼곡히 꽂혀있는 책 한 권 한 권이 모두 마법에 대한 학술 책이었으니 말이다.

‘비서고’처럼 마법적 색인 시스템이 구축되어있지 않은 이상 이 안에서 디아나가 원하는 정보를 찾는 것은 그야말로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단서라면 이미 있다.

‘그리고 입술에 뽀뽀한다고 그릇이 손상 간다는 건 누가 그랬어?’

‘그 정도라면 섹스를 해야죠. 섹스를.’

바로 쌍둥이의 발언.

기존 디아나가 ‘잘못 알고 있던 진실’은 입술이 맞부딪치면, 즉 키스를 하면 아기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

그렇다면 이를 지적한 쌍둥이의 반박에는 자연스럽게 ‘진짜 진실’이 섞여 있다는 의미다.

즉, 키워드는 정해졌다.

“섹스… 섹스… 섹스…. 섹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디아나는 맨 윗 책장부터 섹스라는 제목이 적힌 책을 찾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대충 아래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뽑아가던 디아나.

새삼스럽게 서고의 책을 보자 감탄이 나왔다.

역대 예소드가 역장 이론에 관해 저술한 책은 물론이오 각종 비공개 논문 서평 모음집.

심지어 이미 소실된 문자로 쓰인 고문서를 번역해 놓은 희귀 양장본도 존재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남녀 관계에 관해 저술된 듯한 책이 없었다.

“이상해요….”

역시 수상하다.

물론 남자는 낙인을 지닐 수 없다.

태생적으로 마력을 품을 수조차 없다.

자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마법과 완전히 분리할 수 있는 존재는 또 아니다.

엄연히 세계의 절반을 차지하는 구성원인 만큼 그에 따른 연구자료도 존재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마녀들이 남자를 실험체로 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장에는 단 한권도 남자와 마법에 관련된 항목이 존재하지 않았다.

즉, 아주 엄격하게 검열된 서적들만 들어와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누구에 의해?

말할 것도 없다.

디아나가 그토록 믿고 사랑하는 어머니이자 스승, 예소드 백작이다.

“엄마가… 왜….”

디아나는 눈쌀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똑똑한 디아나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하고 있었다.

꼼꼼한 엄마가 검열을 주도하고 정보를 통제했다면 이 서고에서 디아나가 원하는 책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방법은 따로 있다.

지금 어머니는 현세의 사업으로 외출 중.

어머니의 방에는 전용 서고가 따로 있는 것이다.

책들을 전부 버렸을 리도 팔았을 리도 없으니 거길 뒤져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디아나는 사다리에서 내려와 어머니의 서고로 향했다.

4.

저택 중앙에 있는 서고가 시립 도서관 크기에 맞먹는다면 루시 백작의 개인 서고는 꽤 아담했다.

작은 동네 책방 정도의 수준이라고 보면 편할 것이다.

항상 관리마법으로 최적의 습도와 온도가 유지되기에 수백 년이 지난 책들도 잉크도 마르지 않은 책처럼 빳빳하다.

기분 좋게 창틀을 기어들어 오는 햇살과 종이 내음은 괜히 마음의 평안을 안겨주었다.

‘ㄷ’자 형태로 배치된 책들과 가운데 놓인 테이블.

책상 위로는 마법 구상을 위해 이것저것 계산을 해놓은 종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사실 이 서고 자체는 디아나도 자주 드나들었다.

예소드 백작이 디아나의 방문을 마다할 리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몰래 잠입한 것은 처음인 만큼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후우….”

하지만 책장을 뒤져보길 30여 분.

디아나는 금세 낙담했다.

여기에도 없다.

중앙 서고와 다른 점이 있다면 훨씬 고등하고 지엽적인 마법 정보에 관한 책이 놓여있다는 것뿐이었다.

“제가 잘못 생각했을까요…?”

실은 정말로 남성에 대한 책이 그렇게 적은 것은 아닐까?

순전히 엄마를 오해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괜한 죄책감.

디아나는 작게 한숨을 쥐며 뽑았던 책들은 다시 돌려놓으려 했다.

-달칵!

실수였다.

그냥 책꽂이에 두꺼운 책을 꽂아놓고 방을 나서려 했을 뿐이다.

그러나 책장 한 쪽에 올려져 있던 작은 조각상.

예소드를 상징하는 초승달 모양의 은 세공품을 건드리자 마치 태엽이 돌아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

디아나는 책을 내려놓고 눈높이에 있는 조각상을 다시 보았다.

보통 이런 장식품이 책장에 고정되어 있던가?

“이건….”

무언가 퍼득 깨달은 디아나가 초승달 세공품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그러자 쇳조각이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책장이 점점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일종의 기관 장치였던 것이다.

책장이 완전히 밀려나가자 벽 뒤의 빈공간이 입구처럼 입을 벌리고 있었다.

평소에는 이 책장이 문 역할을 하고 있는 듯 했다.

“비밀의 방….”

디아나는 숨을 죽인 채 문이 전부 열리기를 기다렸다가 조심스레 발을 들였다.

비밀의 방치고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외관이었다.

책장의 위치와 테이블 배치까지 어머니의 서고와 딱히 다른 점이 없었다.

그러나 책이 달랐다.

비밀 서고에 꽂힌 책들은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다시피 죄다 소설책이다.

디아나는 총총 걸어가 조심스레 제목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심심한 마녀의 위험한 장난…. 빚투성이 마녀의 탕감 생활…. 나비꽃이 지는 법…. 말쿠트 갤러리의 재단사…. 코코아보다 달콤한 것….”

제목만 말했는데 뭔가 찝찌름한 기분이 잔뜩 몰려온다.

뱀이 득실거리는 구덩이에 발이 빠지게 되면 비슷한 느낌이 들까?

괜스레 오한이 번져서 등골이 저릿저릿했다.

뭔 제목이 이렇단 말인가?

“이게 다 무슨….”

모든 책의 제목이 저렇다.

알록달록한 책갈피가 책마다 몇 개씩 꽂혀있는 것을 보면 단순히 보관용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소설(小說)이란 문자 그대로 작은 이야기.

기품있는 것은 못 된다는 것이 마녀 사이의 중론이다.

무엇보다도 마법을 중시하는 정통파 마녀 사이에서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조차 하류 문화로 분류되니 말이다.

예소드 백작은 정통파 마녀 중에서도 권위와 전통을 중시하는 극우에 속했고 완벽한 귀족 그 자체인 어머니가 이런 은밀한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다는 게 놀랍긴 했지만.

뭐, 그렇다고 딱히 실망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디아나만 해도 마녀가 되면 띵가띵가 놀 생각으로 가득했으니 말이다.

누구든 비밀스러운 부분 정도는 감추고 있는 것이겠지.

이대로 더 어머니의 비밀을 들추는 것은 실례겠다 싶어 조용히 빠져나오려던 디아나.

그녀의 눈을 붙잡는 것이 있었다.

테이블에 올려진 새빨간 가죽 표지.

고풍스러운 필체로 적혀진 제목은.

‘귀축배달부 제 3권’.

디아나는 슬며시 테이블 위의 책으로 팔을 뻗었다.

“이건….”

왜냐하면 표지를 장식한 저 필체가 어머니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디아나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책을 펼쳐 들었다.

첫 장부터 끝장까지.

모두 루시 예소드 백작의 필체로 적힌 그 책을.

EP.347 #75_오만과 편견(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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