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342화 (342/917)

#342

1.

그리하여 다소 뜬금없이 벌어진 디아나와 쌍둥이의 매치.

갑작스러운 경기였으나 디아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견습마녀로서 마법을 배워 온 햇수도 앞서고 위치보드 실력에 대한 자신감도 있다.

“우리한테 게임을 건 용기는 가상하지만.”

“울면서 뛰쳐나갈 모습이 벌써 눈에 선하네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도발하는 쌍둥이를 무시한 채 디아나는 첫수를 두었다.

저런 정신 공격에 마음 쓸 것 없다.

빨리 쌍둥이를 쫓아내고 평온한 상태에서 게임을 진행하고 싶었으니까.

-탁!

무난하게 전장의 중앙을 점하는 오딜의 한 수.

디아나는 아직 쌍둥이의 실력을 모른다.

탐색전을 겸해 옆에 바짝 붙여 교전을 걸 생각이던 디아나는 의외의 사건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탁!

오딜에 이어 디아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오데트가 수를 두었기 때문이다.

“지금 뭐 하자는 거에요?”

디아나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묻자 천연덕스러운 대답이 들려왔다.

“뭐긴? 게임 중인데?”

“룰 위반이잖아요. 한 번에 두 개를 두는 게 어딨어요?”

“우리는 둘이서 하나인 제머나이니까요. 당연히 둘이서 하는 거죠.”

“…….”

쌍둥이의 표정은 뻔뻔하기 짝이 없었다.

반칙이나 꼼수를 저질렀다는 기색은 전혀 없고 ‘뭘 그런 걸 물어보고 그래?’ 같은 능청스러운 반응이다.

“아니, 위치보드는 한 수씩 두는 게임이잖아요.”

“응? 설마 자신 없는 거야?”

“자신이고 뭐고, 반칙이라니까요?

“위치보드는 마법적 사고력을 평가하는 게임이잖아요? 만약 디아나 양과 우리가 훗날 마법으로 싸우게 된다면 그때도 저희 둘이서 편먹고 싸울 텐데. 그때도 ‘반칙이야!’라고 하실 생각인가요?”

굳이 부연할 필요도 없지만 궤변이다.

물론 위치보드가 마법 전투를 추상 전략화한 게임인 것은 맞다.

그러나 위계 차이가 나는 마녀끼리도, 설령 견습마녀라 해도 공평하게 즐길 수 있게 하는 규칙은 ‘각 플레이어는 서로 한 수 씩 나눈다’이다.

이 게임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룰인 것이다.

그걸 정면으로 부정하다니.

만약 쌍둥이가 말하는대로 붙는다면 전 세계 어느 마녀를 가져다 놓고 붙여도 제머나이 가문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뭐, 정 무서우면 도망쳐도 상관없긴 해.”

“맞아요, 아까 보니까 게임도 이상하게 하던데.”

“지금 갑자기 급한 일이 생각나서 돌아가야 한다고 해도.”

“저흰 이해해 줄게요.”

디아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아직 게임을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진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저 신경을 긁는 도발만 아니었어도, 그 뒤에 남자 마녀와 싸울 이유만 없었어도.

집으로 돌아가서 발 닦고 잤을 것이다.

“그럼 나도 두 수씩 두면 되겠죠? 나중에 마녀가 되어 전투할 때는 둘이 합쳐서 연산하는 양이 저와 같을 테니까. 마침 위계도 같고 말이죠.”

“그건 상관없겠네.”

그렇게 갑작스럽게 변칙룰이 적용된 위치보드.

게임 속도가 두 배이고 생각할 것도 훨씬 많아진다.

디아나는 미간을 바짝 조인 채 쌍둥이의 수에 집중했다.

정석으로 마법을 배운 백작가의 딸들 양자의 마력원 배치는 거의 흡사했다.

자신이 있다고 호언장담한 것이 완전 거짓은 아니었는지 중앙에서 벌어진 소규모 난전도 제법 튼튼했다.

단, 블록을 쌓듯 차곡차곡 이득을 쌓아가는 디아나의 기풍과는 반대로 쌍둥이의 스타일은 말 그대로 날뛰는 말 그 자체였다.

전장을 넓게 사용하며 각을 벌리고, 럭비공처럼 이리저리 튀는 플레이에 ‘한 번에 두수’라는 룰이 더해지자 그야말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더군다나….

“흐음, 여기서는… 이렇게?”

“아냐, 언니 이것 봐. (속닥속닥속닥) 이게 더 낫지 않겠어?”

“오데트 근데 그렇게 되면 (속닥속닥속닥)이 되는데?”

“아니라니까! 내 말 믿어봐!”

“오데트! 네가 잘못 본 거라니까!”

틈틈이 가해지는 정신 공격.

대국 상대는 분명 디아나 일텐데 어쩐지 서로 열심히 싸워댄다.

안 그래도 심기가 불편해져 있는 디아나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방해 공작에 휘말리고 있었다.

“좀 조용히 해주시면 안 될까요? 둘이서 하나라면서 왜 그렇게 이야기할게 많아요?”

그런 비열한 전술에도 고상한 모습을 지키려던 디아나는 참다못해 한 마디를 꺼냈다.

서로 귀를 잡고 속닥이다 빤히 디아나를 바라보는 쌍둥이.

그 모습이 어쩐지 섬뜩한 감이 있어 잠깐 움찔한 디아나.

무표정하던 쌍둥이의 입가에 나란히 미소가 아로새겨진다.

“아하~ 우리의 전략 검토 회의가 신경 쓰이는구나?”

“그럴 수도 있어요. 게임도 맘대로 안 풀리는 것 같고.”

“상대의 강함을 아는 건 중요한 일이지.”

“마냥 바보는 아니었네요.”

“후우….”

괜히 말했다.

저 바보들에게 시비 걸 구실을 주는 게 아니었다.

“됐으니까, 뭐라 하지 않을 테니까. 게임이나 해요.”

2.

30분 경과.

“아, 진짜 언니. 그러니까 다른 곳에 두자니까….”

“조금 전에 룬 먹기 싸움에서 너가 이상한 고집부리다가 진 거잖아!”

“훗.”

디아나는 조금은 속이 후련해진 표정으로 슬며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까부터 쫑알쫑알 시끄럽던 쌍둥이의 콧대를 바싹 눌러주었기 때문이다.

급속 변경된 룰을 고려해도 어려운 상대가 아니었다.

명문가의 견습마녀답게 탄탄한 기본기와 안정적인 플레이를 보여주었으나….

거기 까지다.

쌍둥이의 플레이는 지극히 감정적이었다.

사소한 도발에 넘어와 손해를 보고 조금 유리하다 싶으면 우쭐해서 달려들다가 제풀에 넘어진다.

가뜩이나 그런 차이가 나는데 둘이서 티격태격하며 여기 두겠냐느니 저기 두겠냐느니 하고 있으니 어떻게 디아나를 이길 수 있겠는가?

디아나는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퇴장을 요구했다.

“그럼, 패배자들은 얌전히 나가주세요. 약속을 잊진 않았겠죠?”

“으, 말투 엄청 짜증 나네.”

“잘난척쟁이.”

패배자들의 도발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

불평 어린 투덜거림이 도리어 가슴에 청량한 바람처럼 살랑일 정도다.

시우는 입이 삐죽 튀어나온 쌍둥이를 살살 달랬다.

“내일부터는 호스트바 일도 끝나서 시간도 여유가 있어요. 그때 많이 놀죠.”

“알겠어, 조수님. 오늘 저녁 약속도 잊지 마. 피아노 연주 들려줄게.”

“조수님 말 잘 듣고 기다리고 있을게요.”

쌍둥이는 당연하다는 듯이 시우의 양 뺨에 쪽 뽀뽀를 했다.

동시에 디아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승리의 기쁨에 취해 은은하게 웃고 있던 입도 덩달아 O자 모양이 된다.

“지, 지, 지, 지금…. 뭘 한 거죠?”

잘못 봤나?

“뭐가? 작별 키스 한 거잖아.”

“그, 그, 그, 그러니까…. 키스를 했다고요?”

“뻔히 보고 있었으면서 무슨 말이에요?”

물론 뺨에 가볍게 하는 키스는 친애의 표식이다.

디아나도 잠자기 전에 항상 백작이 뽀뽀를 해주곤 했었고 친한 마녀끼리 오랜만에 만나면 가볍게 양 뺨에 키스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상대는 남자다.

그리고 오딜과 오데트는 백작가의 견습마녀이다.

아무리 마녀라고 해도 손끝만 잘못 스쳐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남자에게 뺨에 키스를 한다고?

디아나의 상식이 와장창 나동그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처, 처, 천, 천박해요…. 귀, 귀, 귀족의 몸가짐은….”

갑자기 고장 난 라디오처럼 버퍼링이 걸리기 시작한 디아나.

그녀의 격렬한 반응에 도리어 쌍둥이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음흉한 미소가 서렸다.

마치 아저씨 같은 미소였다.

디아나가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파악했기 때문이다.

오딜도 오데트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으니 새삼스러울 리 없다.

“아하~ 실컷 어른인 척 하더니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그럴 수 있어 언니, 원래 우물 안 개구리는 하늘이 네모난 줄 안대!”

“혹시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지도 모르는 건 아니지?”

디아나도 계속되는 쌍둥이의 도발에 정신을 차렸다.

“누굴 바보로 알고…! 마녀는 아기를 못 만들잖아요!”

“아니, 그거 말고.”

“진짜 모르나 본데…?”

어이없어하는 쌍둥이의 표정에 디아나는 황당해했다.

제머나이가의 견습마녀는 방금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 전혀 자각이 없어 보였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멀쩡한 견습마녀가 인생을 망치는 것까지 바라는 것은 아니다.

무지로 인해 큰일 날 짓을 하고 있다면 상식을 바로잡아 주어야 했다.

“잘 들어요.”

디아나는 진중한 눈빛으로 쌍둥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견습마녀는 남자와 함부로 접촉하면 안 돼요.”

“우리도 알지.”

“아는데요?”

“아는 사람이 어떻게 그래요! 뺨에 키스하다가 잘못해서 입, 입술끼리 부딪친다면…. 그릇을 잃을 수도 있어요.”

쌍둥이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하나씩 떠올랐다.

“저게 무슨 말이지?”

“입술끼리 키스하는 게 어때서?”

“…입술끼리 키스하면 아기가 생길 수도 있고…. 애, 애초에 남자와 벌이는 음란한 행위 때문에 그릇이 망가지는 거잖아요…. 바본가요?”

디아나는 이 남사스러운 말을 굳이 입에 올리며 설명해야겠냐는 듯이 쌍둥이를 노려보았다.

쌍둥이는 그제야 깨달았다.

쌍둥이 역시 남녀의 성에 관해 무지한 온실 속 화초였던 시절이 있다.

아무래도 견습마녀에게 있어 남녀 관계는 터부시되니 말이다.

하지만 저기에 저 디아나 예소드는 무지를 넘어 기초적인 지식도 없는 인큐베이터속 화초였던 것이다.

“야, 이거 봐봐.”

“꺄악!!! 무슨 짓인가요!”

오딜은 보란 듯이 시우의 뺨을 잡더니 입술에 쪽 뽀뽀를 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비명을 지르는 디아나.

외설스러운 장면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눈앞에서 사람이 마차로 뛰어든다면 당연히 같은 반응이 나올 것이다.

차마 볼 수 없어 눈을 질끈 감고 바들바들 떨던 디아나.

실눈을 뜰자 어깨를 으쓱하고 있는 오딜이 보인다.

“아무렇지 않잖아?”

“언니 비겁해! 은근슬쩍 혼자 뽀뽀하는 게 어딨어!”

연이어 오데트도 시우에게 쪽 뽀뽀를 날렸다.

하얗게 질리다 못해 호흡 곤란이 올 뻔했던 디아나.

“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는다.

그릇이 손상된다면 자연스럽게 마력 반응 같은 것이 있어야 하는데 주위는 잠잠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입술에 뽀뽀한다고 그릇이 손상 간다는 건 누가 그랬어?”

“그 정도라면 섹스를 해야죠. 섹스를.”

디아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은 지구가 평평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커다란 충격은 둘째치고 눈앞에서 펼쳐진 외설스러운 행위는 굉장한 울렁거림을 동반했다.

“다, 다, 당신들은 전부 다 변태에요…! 어떻게 남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디아나는 비틀비틀 일어나 도망치듯이 호스트바 밖으로 튀어 나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오딜도 오데트도 그저 망연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EP.345 #75_오만과 편견(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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