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
1.
3일간의 폐관 수련.
디아나는 설욕전을 위해 마법 공부 및 위치보드 탐구에 열중했다.
그다지 길지 않은 견습마녀의 생이지만 무엇 하나를 이렇게 파고 들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아무리 위치보드를 재밌어서 한다고 해도 결국엔 게임.
따로 시간을 내어 공부할만할 필요성을 느껴본 적 없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깨달았다.
복수심이란 태생적인 귀차니즘을 이겨낼 정도로 강렬한 동기부여가 된다는 것을.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방에 틀어박혀 공부에 열중하는 디아나를 보고 예소드 백작이 눈물을 훔친 손수건이 어언 100장을 넘어가니 그 열정을 가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유명 마녀들의 기보를 분석하고 개인적으로 공부가 부족했다고 여겼던 디스펠에 관해서도 마법 책을 뒤적이며 학습했다.
그리고 시우의 기풍과 결부시켜 분석해본 결과 디아나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뻔뻔하게 거짓말이나 하긴….”
그 남자마녀는 절대로.
절대로 초심자가 아니었다.
미리 포석을 깔아놓고 디스펠 각을 수시로 잡아내는 방식.
이건 19세기경 한 마녀가 주특기로 사용했던 전술이었다는 사실을 기보 집을 훑어보며 알아내었다.
물론 제 나름대로 어레인지를 가한 것 같았지만 포석의 위치나 방식이 거의 흡사하다.
심지어 마력원 3개를 한 점에 뭉쳐 일점돌파력을 강화한 것까지 유사하다.
일개 남자 마녀가 할 수 없었던 까다로운 디스펠 방식은 사실 그의 오리지널이 아닌 카피캣에 불과했다.
그러면서 아주 처음 해보는 척.
듣지도 보지도 못한 척.
디아나를 방심시키고 당당하게 승리를 훔쳐 간 것이다.
물론 그것을 책 잡을 생각은 없다.
아주 더럽고 비열한 짓이긴 했지만 마지막 판은 디스펠이 아니라 난전에서 져버린 것이니 새삼 그걸 따진다고 뭐 바뀔 게 없다.
“하지만… 필승책은 이미 준비되어 있어요…!”
하지만 본격적으로 공부에 매진한 디아나의 성장세는 매서웠다.
체감 1.5배 정도의 전력 강화를 끝낸 상황.
유일한 변수 디스펠 핀에 대한 대책이 마련된 이상 패배는 없다.
디아나는 자리를 박차고 위풍당당한 걸음새로 호스트바를 향했다.
2.
“저… 지금 시우는 이미 손님과 함께 있습니다.”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릴 만큼 가슴 가득 복수심을 품은 디아나.
넉넉한 듀얼 시간을 갖기 위해 아침 7시에 도착했건만 시우는 마중 나오지 않았다.
대신 전에 봤던 문지기가 난처한 얼굴로 디아나를 바라보았다.
“제가 더 비싼 술 시키면 될 것 아닌가요?”
“하, 하지만…! 자,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기다릴 시간 없어요. 안내하세요. 당장.”
예전에 디아나였다면 기다리거나 내일 다시 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다.
당장이라도 그 남자를 때려눕히지 않고서야 직성이 풀리지 않을 정도로 맹훈련을 해 왔던 것이다.
디아나는 당황하는 문지기를 지나쳐 시우가 항상 앉아있는 1번 테이블로 직행했다.
쿵쾅거리는 발걸음엔 감정이 실리고, 임시 블라인드를 확하고 젖힌 순간.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란 세 쌍의 시선이 디아나를 향한다.
“…어, 안녕하세요?”
“…….”
“…….”
전혀 의외의 인물이 시우와 함께 있었다.
얼굴보다 커다란 하프 보닛과 디아나의 옷만큼이나 값비싸 보이는 드레스.
컬이 치렁치렁하게 들어간 고운 흑발과 자색 눈동자를 지닌, 인형처럼 귀여운 인상이 쏙 빼닮은 견습마녀였다.
“어? 너는?”
루시가 디아나를 혼낼 때면 항상 조연으로 등장하는 엄마 친구의 딸.
둘이서 하나인 유일한 쌍둥이 마녀, 제머나이 백작가의 견습마녀가 여기 있다.
“그 게으름뱅이?”
“그 엄마 말 안 듣는 견습마녀?”
디아나를 알아본 쌍둥이의 기묘한 평가에 발끈한 디아나.
“이상하게 부르지 마세요.”
제머나이 가와 예소드 가가 교류가 있는 만큼 쌍둥이와는 면식이 있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면식이 있는 정도이지 친분이라곤 요만큼도 없다.
따라서 쌍둥이가 왜 여기 있는지도 알 도리가 없었다.
갑자기 쌍둥이가 이곳에 있는 것은 둘째치고 디아나를 놀라게 한 또 한 가지 장면.
그건 바로 쌍둥이가 좌우로 시우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다는 것이었다.
양자 간 거리로 친밀감을 판별할 수 있다면 저건 애인끼리나 취할 수 있는 거리감이다.
심지어 둘 중 한 명은 과일 안주를 포크로 찍어 남자의 입에 넣어주고 있었다.
“소개해 드리려 했는데 서로 아시는 사이셨군요.”
“아냐, 별로 안 친해.”
“그냥 얼굴만 아는 사이에요.”
당연하다는 듯이 그 과일을 받아먹고 인사를 받는 시우에게 벙찐 디아나.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남의 가문 견습마녀가 왜 이 남자 마녀와 이렇게 가까워 보이는지는 알 바 아니다.
지금 디아나에게 중요한 건 오직 복수와 설욕뿐이었다.
따라서 당당하게 고한다.
“재경기하러 왔어요.”
“재경기요?”
“다른 사람이 있으면 방해되니까 비켜요.”
디아나는 허리에 손을 얹은 채 엄숙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같은 백작가의 견습마녀라고 해도 격차가 있다.
상대는 아직 낙인을 물려받기 위한 교육이 다 끝나지 않은 견습마녀.
반면 디아나는 3년이나 계승 의식 교육을 앞당긴 견습마녀.
나이도 연상일뿐더러 마법 실력으로도 앞선다.
당당히 이런 요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넌 뭐야? 왜 끼어들어? 우리 조수님이랑 친해?”
그때 쌍심지를 치켜세우며 디아나를 휙 쏘아보는 쌍둥이 중 하나.
“조수님, 오늘은 저희랑 놀아주신다고 하셨잖아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시우의 손을 꼭 잡는 쌍둥이 중 다른 하나.
사뭇 다른 반응에 공통점이 있다면 디아나의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는 점이다.
“어차피 노닥거리기나 할 거잖아요. 제가 찾아온 목적은 그것보단 훨씬 중요하니까 자리를 비켜달라는….”
“어? 위치보드네. 조수님 위치보드 할 줄 알아?”
“저희 이거 꽤 잘하는데 한번 같이해보실래요?”
“무시하지 마세요!”
하지만 쌍둥이는 갑자기 난입한 디아나에게 흥미를 잃은 듯이 다시 시우에게 신경을 집중했다.
디아나는 시우에게 시선을 옮기고 열변을 토했다.
어차피 쌍둥이에게 말해봐야 별 효용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저랑 먼저 게임해요! 다시 와달라고 해서 다시 온 거잖아요!”
“며칠동안 안보이시기에 앞으로도 안 오시겠거니 했습니다만….”
닦달하는 디아나와 난처한 표정을 짓는 시우.
그 모습을 본 오딜이 뾰족한 목소리로 못마땅함을 표했다.
“야, 우리가 먼저 예약했는데 왜 새치기야? 너가 우리보다 조수님이랑 친해?
“지금 야라고 했어요?”
“할 말 없는 사람 특. 말꼬리 잡음.”
“말꼬리를 잡은 게 아니라…! 제 쪽이 더 중요해 보이는 일이니까 먼저 볼일 보겠다는 거잖아요…!”
“중요한 문제건 뭐건 우리가 먼저 왔다니까? 왜 이렇게 억지를 부려.”
“조수님, 그런데 쟤는 왜 여기 온 거에요?”
“우선 싸우지들 마시죠. 제가 설명해 드릴게요.”
시우는 쌍둥이에게 시간을 들여 사정을 설명했다.
그걸 전해 들은 쌍둥이는 묘한 눈빛으로 디아나를 바라본다.
적의는 조금 가라앉고 오히려 안도와 승리감이 서린 눈빛이었다.
“아하, 아무 관계도 아니라는 거구나? 그냥 게임 몇 판 한 사이잖아?”
“그럼 자리를 비켜야 하는 건 저 쪽이겠네요. 고작 그 정도로 우리 관계를 갈라놓으려고 했다니. 턱도 없네요.”
“디아나 님, 다시 찾아주신 건 정말 기쁜 일이지만 보시다시피 오딜 님과 오데트 님이 먼저 약속을 잡아주신 것이라서요. 말씀 주신대로 쫓아내기엔 면목이 서지 않을 것 같습니다.”
셋이서 편을 먹은 듯한 모습에 어쩐지 더 열이 받는 디아나.
입술을 꾹 깨물고는 시우 앞에 털썩 앉는다.
“그럼 따로 나가라고는 안 할 테니까, 게임해요.”
“오딜 님 오데트 님. 일도 오늘까지고 오늘 저녁에 따로 시간 낼 테니 합석 괜찮으신가요?”
잠깐 눈빛으로 상의하는 쌍둥이.
“조수님만 괜찮다면 뭐. 우린 상관없어!”
“저두요! 조수님은 어떤 식으로 하시는지 보고 싶기도 하구요!”
“감사해요.”
상상 이상으로 친근해 보이는 셋의 관계를 묘한 눈으로 훑어보는 한편.
디아나는 위치보드를 기동하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사실 이것저것 할 말도 있고 물을 말도 있었지만 저기 쌍둥이가 지켜보고 있기에 말을 꺼내기 궁색하다.
남자에게 위치보드를 졌다는 사실을, 그게 분해서 공부하고 왔다는 사실을 어떻게 밝히라는 말인가?
“먼저 해요. 그리고….”
“네.”
“…제대로 해요. 이제 안 속으니까.”
결국 빙 돌려 말한 디아나의 경고와 함께 게임이 시작되었다.
디아나는 작게 심호흡을 하고 차분히 수를 두었다.
고지식한 정석만 추구하던 예전과는 다르다.
확실한 이지선다를 걸기 위해선 다양한 빌드를 준비해 상대가 의식하게 만들어야 한다.
디아나는 평소처럼 차근차근 룬을 장악하는 한편 언제든지 상대에게 달려들어 싸움을 걸겠다는 압박을 주었다.
무작정 안정적인 게임을 추구하거나 초반에 몰아붙이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서 밸런스를 잡고 게임을 진행하는 것이다.
“흐음….”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전보다 게임 흐름이 보인다.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는 디아나의 합리적인 전술은 작게 작게 이득을 보며 적립해 나가고 있었다.
시우가 디스펠 포석을 깐다 싶으면 냅다 쫓아가 훼방을 놓았으니 변수도 착실히 차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놀랍다.
시우의 마력원 집결 배치는 중반전만 가도 뒷심이 부족한 초반 전략 원툴형 배치이다.
하지만 중반전도 슬슬 끝에 치달아가는데 게임이 여전히 팽팽하다.
유불리는 따지자면 5.5 대 4.5 정도.
끝없이 압박당하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일점돌파로 활로를 찾고 싸움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위치보드의 칸수가 넓다 해도 서로의 수는 한정되어있다.
독사처럼 몸부림친다 한들 꾹꾹 누르다 보면 언젠가는 터져 죽는다.
디아나는 침착한 마음가짐으로 판을 읽으며 끝까지 디스펠을 경계했다.
-탁!
디아나가 수를 뒀을 때.
심심해진 쌍둥이의 재잘거림이 들려왔다.
더 정확게 말하자면 훈수도 무엇도 아닌,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는 지방 방송이었다.
“어,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왜 저기에 두지?”
무시했다.
겜알못들이니까 저렇게 말하는 거다.
굳이 대응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
“저기에 두면 대마 잡는 건데.”
“게임 진짜 이상하게 하네….”
“근데 조수님 진짜 잘하신다.”
“역시 대단해, 조수님!”
귀를 닫고 무시하면 될 일이다.
조금 전에 눈앞에 아른거리던 대마는 매복이었다.
수를 두는 순간 그대로 빨려 들어가는 위험한 함정이다.
그것도 모르면서, 심지어 판세가 디아나 쪽으로 흐르고 있음에도 멋모르고 저런 말이나 해대다니.
참다못한 디아나가 입을 열었다.
“저기, 입 좀 닫으면 안 될까요?”
“우리가 먼저 와서 너한테 양보해주는 건데? 우리끼리 떠드는 것도 못 해?”
“심보가 진짜 못 됐네요.”
“하아, 진짜… 됐어요…. 맘대로 떠들어요.”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 더 열 받는다.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결과로 보이면 될 일.
하지만 쌍둥이의 간헐적인 정신공격은 디아나의 멘탈에 흠집을 냈다.
평소라면 절대로 두지 않을 멍청한 한 수, 소위 말해 ‘삑사리’가 났으니 말이다.
“앗….”
뒤늦게 실수를 깨달은 디아나는 아차 싶었다.
그리고 못 본 척 넘어가는 기도가 무색하게 시우는 날카롭게 그 실수를 파고들었다.
팽팽하게 유지되던 줄다리기에서 다리를 저는 꼴이다.
“크윽…!”
디아나는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연거푸 시도해보았다.
시우는 끈질기게 추격하며 결국 디아나가 그토록 대비하던 디스펠까지 성공시켜 버렸다.
딱 한 번의 실수로 판이 뒤집혀 버린 것이다.
“역시, 조수님을 이길 수 있을 리 없지.”
“조수님! 역시 대단하세요!”
고개를 푹 숙이고 부들부들 어깨를 떠는 디아나.
시우는 쌍둥이를 말렸다.
괜히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을 필요는 없지.
“오딜 님, 오데트 님 그만하셔요. 디아나 님 정말 팽팽한 승부였습니다. 중간에 한 번 실수만 하지 않으셨다면….”
“알아요!”
디아나는 이를 빠드득 갈며 쌍둥이를 바라보았다.
“너희들이 위치보드를 그렇게 잘해요? 그럼 나랑 붙어요.”
분명 이 자리에 앉기까진 시우가 분노의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옆에서 깐족거리며 경기를 방해한 쌍둥이가 더 열받는다.
“호오? 우리한테 덤비겠다고?”
“우린 게임이 특기인데 자신있나봐요?”
갑작스러운 도전장을 받아든 오딜이 한쪽 눈썹을 치켜뜨며 코웃음을 쳤다.
오데트 역시 팔짱을 끼고 디아나의 도발에 맞선다.
“자신 있으니까 하자고 했죠. 대신 내기를 걸어요. 지는 쪽이 비키는 거로.”
저 방해꾼들을 치워버리고 다시 한번 제대로 된 진검승부를 벌이기 위해 디아나는 멋지게 장갑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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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camission님이 3d버전으로 만들어주신 아멜리아입니다
이거 도대체 어떻게 하신건가요…?
너무 예쁘게 잘나온 것 같습니다 ㄸ
EP.344 #75_오만과 편견(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