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337화 (337/917)

#337

1.

예소드 백작가의 식사 시간은 항상 두 명이 함께한다.

루시 백작은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자신의 딸과 저녁 식사를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아침부터 저녁까지 디아나가 강제 외출하게 된 뒤로는 약속도 거르고 식사에 참여 중인 백작.

“딸, 오늘도 고생 많았어. 엄마는 우리 딸이 너무 자랑스럽단다.”

백작의 표정은 퍽 밝았다.

사실 디아나를 내쫓을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성실히 기대에 부응해 주리라곤 예상 못 했다.

적당히 하는 시늉만 하다 대충 집에 돌아오리라 생각했는데….

무려 일주일이나 연속 외출에 성공하다니.

거기에 다양한 경험을 하고 돌아와 이야기를 늘어놓다니.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오늘은 우리 딸이 좋아하는 양갈비도 잔뜩 있단다. 많이 먹으렴! 오호호호!”

“…….”

하지만 디아나는 백작이 덜어준 양갈비를 멀뚱히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겨 있을 뿐이다.

백작은 평소와 다른 디아나의 모습에 당황했다.

게으름을 피우다가도 양갈비 소리만 들리면 뭔가 하는 척을 하는 디아나다.

원래대로라면 열심히 나이프와 포크를 움직이며 양갈비를 먹어치워야 했는데….

“왜 그러니? 밖에서 무슨 일 있었니?”

“아니에요, 엄마. 맛있게 먹을게요.”

“그래그래, 보더 타운에 가서 현세의 과자도 많이 사 왔어.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을 했니?”

당연하다는 듯이 식사 중 보고 시간이다.

디아나가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백작에게 말하면 백작이 흐뭇해 죽을 것 같은 얼굴로 히죽거리는 시간이었다.

“호스트바에 갔어요.”

벌써 웃을 준비를 하던 백작의 표정이 옥상에서 던진 접시처럼 깨졌다.

양 갈비를 썰던 나이프에 힘이 들어가는 바람에 손이 미끄러져 고기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뭐, 뭐, 뭐, 뭔 바?”

“호스트바요.”

“그런 곳 가면 못 써! 엄마가 말했잖니! 남자들은 죄다 네 예쁜 얼굴에 혹해서 어떻게 해보려고 수작이나 부리는 변태들 뿐이라고! 왜 그런 곳을 갔어? 지금 엄마한테 반항하는 거야?”

견습마녀는 남성을 멀리해야 한다.

이건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서도 필수적이다.

하지만 루시 백작의 주입식 교육과 틈만 나면 늘어놓는 험담은 그런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눈에 한 다발을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디아나를 행여 놈팡이가 채 갈까.

너무너무 속이 쓰리고 슬퍼서 자꾸만 반복 강조하게 되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마녀가 된 디아나가 어떤 남자랑 침대 위에서 나뒹구는 미래의 일을 상상만 해도 우울증에 걸려버릴 것 같았다.

또 시간이 지나면 어쩔 수 없이 찾아오게 될 이별이 디아나의 고운 눈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할지….

홀로 나이가 들고, 늙고, 병들어 끝내는 외로이 떠나는 걸 지켜봐야만 하는 그 슬픔을 사랑하는 딸이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아프다.

“아니요, 반항하는 건 아니에요. 거기에 남자 마녀가 있다고 말을 들어서요. 한번 보고 싶었어요.”

“아.”

디아나의 태연한 반응에 백작은 자신이 너무 앞서서 걱정했음을 깨달았다.

예소드는 사업가라는 특성상 소문에 매우 민첩하게 반응했다.

호스트바가 생기고 거기에 남자 마녀가 호스트로 있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던 것이었다.

마법적 탐구심에 한번 찾아갈 만 한 것이다.

“커흠, 엄마가 너무 흥분했네. 미안해 우리딸.”

“괜찮아요.”

“그래서 가서 뭘 했니? 직접 보니까 어땠어?”

“…그냥, 별거 없었어요.”

선보인 마법은 실제로 별 볼 일 없었다.

자성마법이긴했지만 굳이 굳이 찾아가서 볼 수준은 아닌 정도.

만약 전투를 벌인다고 해도 견습마녀인 자신이 이길 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한다.

겨우 1대에 불과한 세월을 보낸 ‘남자 마녀’라면 그 정도 수준이 한계 아니겠는가?

“그래? 소문이 믿을 게 못 되는 구나. 하긴! 그 어떤 남자가 우리 예쁜 딸 눈에 차겠니!”

하지만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기엔 마음에 계속 걸리는 것이 있다.

두 번째 게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디아나를 궁지로 몰고 갈 뻔했던 한 수.

정말 노린 걸까?

그렇다면 디아나가 차근차근 쌓아가던 마법을 모조리 해석하고 대응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엄마.”

“왜 우리 딸?”

“저 위치보드, 잘하는 편인가요?”

백작은 디아나의 질문에 새삼스럽다는 듯이 답했다.

“또 왜 그런 걸 물어보니?”

“갑자기 궁금해져서요.”

“우리 디아나는 엄마 닮아 똑똑해서 그런지 실력이 대단하지! 오랜만에 자기 전에 엄마랑 목욕하고 같이 게임 할까?”

“목욕은 됐어요. 조금 더 객관적으로 실력을 말하자면요?”

동반 목욕 신청이 거절당하고 실망하던 백작은 디아나의 질문에 답했다.

“견습마녀 중에는 견줄 아이가 없을 거고…. 엄마랑 맞수를 놓을 수준이면 어지간한 마녀들이랑도 꿀리진 않겠지?”

“그쵸?”

“그럼그럼~ 우리딸이 어어어얼마나 똑똑한데.”

“저 봐주시거나 한 적은 없어요?”

“아주 어렸을 때나 봐줬지~ 지금 그러면 당장 눈치채고 화낼 거잖니.”

사실 아주아주 조금 봐주고 있기는 하다.

아무리 견습마녀와 마녀가 동등하게 겨룰 수 있는 게임이라지만 경험의 격차에서 나오는 갭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걸 고려해도 디아나의 실력은 훌륭했다.

게다가 앉아서 할 수 있는 취미인 만큼 혼자 기보를 보거나 그것을 토대로 복기를 해보는 등 나름 고인물인 것이다.

오늘 오전에 준비했던 그 공격도 나름 눈치채지 못하게 위장을 하고 했던 것인데.

남자가 그걸 간파했다라….

그게 정말 가능할까?

디아나의 고민은 점점 깊어져 갔다.

2.

다음 날 아침.

시우는 한적한 호스트바의 소파에 드러누워 책을 보고 있었다.

다름 아닌 어제 처음 디아나와 벌이게 된 ‘위치보드’의 기보였다.

체스만큼은 아니지만 역사가 제법 오래된 게임인만큼 유명한 마녀들의 기보가 많이 남아 있었다.

그 기보를 훑어본 시우의 감상은…

“생각보다 재밌네?”

였다.

뭐랄까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게임이다.

룬이 랜덤하게 배치되기에 변수도 많고, 2차원 평면에서 이뤄지는 여타 보드게임에 비해 게임판 자체가 입체적인 형상을 그리고 있으므로 경우의 수도 대단히 많다.

친숙한 게임에 비유하자면 오목처럼 돌을 연결해 마법을 완성하는 중에, 체스처럼 그렇게 완성한 마법으로 싸움을 하고, 그 와중에 바둑처럼 땅따먹기를 해야 하는 느낌?

복합적인 연산력과 사고력을 요구하는 와중에 심리전까지 첨가됐으니 재미없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일이 끝나자마자 근처 갤러리의 서점을 들러 기보 모음집을 사 왔다.

기초 포석이니 정석적인 전략이니 게임 공략집 비스름한 것도 있었지만 몇 번 훑어보고 질려서 관뒀다.

이상한 용어들이 마구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그 뒤로는 밤새 혼자 기보를 읽으며 전체적인 게임 흐름을 관찰하는 중이다.

집중을 하다 보니 시간의 흐름도 잊게 되어 어느새 해가 떠 있었다.

-쾅쾅쾅!

아직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시각.

아침 7시.

벌써 노크 소리가 들렸다.

정문으로 나가 문을 열어보니 예상했던 손님이 그림으로 그린 듯 다소곳한 자세로 서 있었다.

“또 왔어요.”

“좋은 아침입니다. 디아나 님. 일찍 오셨네요.”

시우는 그간 몸에 익은 예법으로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디아나를 실내로 들였다.

아직 영업 시작까지는 제법 시간이 남아 있지만 상관없다.

나름 승부욕이 강한 시우다.

어제의 굴욕을 만회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다.

뭐, 가능할지는 직접 해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오늘도 술을 시킬게요. 일찍 왔으니까 어제랑 같은 것으로 세 병. 됐죠?”

“한 병만 시키셔도 충분합니다.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이니까요.”

자리에 앉자마자 위치보드를 세팅했다.

어제 마력수도 충분히 충전해 두었으니 오늘 온종일 게임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득 궁금한 점이 생겨 물었다.

“그런데 백작님은 이런 곳에 출입하시는 거 알고 계신가요? 제 입으로 할 말은 아니지만… 견습마녀님이 발을 들이시기엔….”

“알고 계셔요. 됐어요. 빨리 준비해주세요.”

“넵.”

디아나도 묘하게 승부욕에 불탄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묘하게 쌍둥이가 떠올라 친근하게 느껴졌다.

3.

게임 세팅이 끝난 디아나는 자연스럽게 운을 뗐다.

어젯밤부터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아침을 먹자마자 아무 곳에도 들르지 않고 직행했으니 말이다.

“오늘도 아홉 수를 양보할게요. 먼저 두세요.”

당연하다는 듯 아홉 수를 양보한다.

어제의 결과가 의외였다 한들 결국 9점이나 양보하고도 승리를 거머쥔 것은 그녀였으니 디아나로선 지극히 타당한 패널티였다.

“아, 오늘은 괜찮습니다. 어제 나름대로 공부를 좀 했거든요.”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웬걸?

양보가 필요 없다는 호기로운 답변이었다.

디아나는 와락 일그러지려는 표정을 애써 관리해야 했다.

어제 좀 비등비등했다고 기세가 오른 모양이다.

한 수 한 수의 행마에 사활이 걸리는 이 위치보드에서 그만큼이나 양보를 받아두고도 졌으면서 뭐?

하루 공부했으니까 필요 없다고?

그 방만함에 기가 차다 못해 한탄스럽다.

“…좋아요.”

하지만 여기서 얼굴을 붉히며 하나하나 설명하는 것은 오히려 격이 떨어지는 행동.

압도적인 실력 차를 보여준다면 자연스럽게 상대도 주제를 깨달을 것이다.

디아나는 우매함의 봉우리에 선 상대를 절망의 계곡으로 뻥 차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렇게 시작된 제 일국(一局).

디아나와 시우는 번갈아 마력원을 점했다.

디아나는 지극히 정석적으로 2칸씩 띄어 3개를 점했다.

시우는 전과 같이 3개를 똘똘 뭉쳐두었다.

“…….”

그걸 확인하자마자 안절부절못하던 디아나.

불안한 마음에 전전긍긍하던 것이 아니었다.

다만 워낙 어이가 없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도저히 말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었다.

디아나는 오랜 고민 끝에 툭 말을 던졌다.

당연히 좋게 들리는 소리는 아니었다.

“공부했다면서요.”

“네, 하루 종일 기보를 봤거든요.”

“그 기보에도 이렇게 두던가요?”

“아니요, 이게 더 제 타입에 맞는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신종 인내심 테스트?

물론 저런 방식의 마력원 배치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건 어제 그가 사용했던 전략처럼 허를 찌르는 깜짝 전략에 가깝다.

중반전만 가도 힘이 빠지고 후반전에서는 사실상 정면 싸움에서 이길 수 없는 한계가 명확한 전략이다.

어제 날로 먹으려던 전략이 먹혀든 듯하자 또 써먹으려는 걸까?

디아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을 느꼈다.

안 그래도 존재 자체가 껄끄러운 마당에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안 드는 행동만 해대니.

아무리 태평한 디아나도 더는 용납할 수가 없었다.

“봐줄 거로 생각하지 마세요.”

마음 같아서는 초반부터 후반까지 탈탈 털어주고 싶지만 우선은 수비와 룬의 선점을 공고히 해야 할 때이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가라앉힌 디아나의 안정적인 포석.

한편 시우의 포석은 애매하기 짝이 없었다.

한 곳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 흩뿌리듯 한 행마.

뭘 노리는지 짐작조차 힘들었다.

역시 시간 낭비다.

상대는 남자 최초의 마녀라는 유명세에 취해 겉멋이 잔뜩 든 나르시시스트에 불과하다.

당연하지만 어제의 게임도 요행수였겠지.

이 재미 없는 게임을 빨리 끝내 버리고 차라리 연극을 보자.

그렇게 결론을 내린 디아나는 여느 때처럼 안정적인 수를 통해 마법을 완성하려 했다.

그리고 그때.

“…….”

아무렇게나 놓여있던 시우의 포석 사이에 한 수가 놓였다.

그것은 처음부터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디아나가 구축하던 삼각뿔 형태의 마력 포대를 관통한다.

고작 한 수로 안정화 장치를 고장 내고 마력원으로부터 마력을 연결하는 회로를 꿰뚫었다.

시우가 준비하던 것은 직선 형태로 짜인 마법식으로 마법의 발생 자체를 원천차단하는 것.

해당 마법의 원리와 구조를 파악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

디스펠 핀이었다.

EP.340 #74_게으름의 마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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