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
1.
마녀는 여가 시간에 무엇을 할까?
이 질문은 ‘취미가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취향과 기호에 따라 선택지가 나뉘고 저마다 다른 답변이 들려올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누군가는 책을 읽고, 누군가는 말을 타고 구릉을 달리고, 누군가는 연극을 관람하고, 누군가는 욕장에서 반신욕을 하겠지.
하지만 마녀 두 명이 함께 여가 시간을 보낸다면 무엇을 할까? 라는 질문이 된다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놀거리가 다소 부족한 게헨나, 심심한 마녀들 사이에서 단연 최고의 인기를 끄는 민속놀이가 하나 있으니 그 이름은 위치보드(Witch board) 이다.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마력을 저장한 수정구 위로 반투명한 정십이면체의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이렇게 떠오른 큰 정십이면체의 형상 안이 작은 정십이면체로 꽉꽉 채워져 있는 형태다.
이 홀로그램이 바로 게임이 벌어지는 보드, 이를테면 체스판이다.
규칙은 다음과 같다.
1) 주어진 보드에서 하나의 모서리는 하나의 ‘패스’를 의미하며, 꼭짓점에는 마법식을 그리는데 필수적인 ‘룬’이 수정구 내의 난수 알고리즘을 이용해 랜덤하게 배치된다.
2) 패스와 룬만으로는 마법을 완성할 수 없다.
따라서 각 플레이어에게는 3개의 ‘마력원(魔力源)’이 주어지며 이것을 원하는 자리에 배치하며 게임을 시작한다.
3) 이후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되면 플레이어는 바둑을 두는 것처럼 번갈아 수를 이행해 꼭짓점의 룬과 모서리의 패스를 활용해 마법을 만들어낸다.
4) 만들어낸 마법으로 상대방의 마력원을 공격, 혹은 상대의 공격을 방어한다.
5) 상대의 마력원 3개를 먼저 탈취하거나 항복을 받아내는 측이 승리.
디아나는 최대한 빠르고 간결한 설명을 끝냈다.
“뭔가 어려워 보이네요….”
디아나는 시우와 위치보드로 겨뤄보고 싶다는 의사를 보였다.
위치보드 자체가 인기가 많은 게임인 만큼 3층 카페에 몇 개나 비치되어 있던 것을 가져오면 됐지만….
뭔가 난잡하다.
시우는 설명을 듣고 솔직한 심정을 표했다.
“해보면 알아요. 처음이니까 많이 봐 드릴게요.”
그러니까 요컨대 이 안에 있는 선을 연결하고 룬도 적당히 배치해 마법을 만들어라.
그걸로 상대 동력원을 깨고, 공격을 수비해라.
체스나 바둑처럼 일종의 시뮬레이션 게임인 것 같은데….
눈대중으로 몇 개 정도 선을 이어 마법을 만들어 보았다.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이렇게 경직된 보드와 무작위로 뿌려진 룬을 이용하기엔 구현할 수 있는 마법도 한정되어 있으니 말이다.
“공정한 게임이죠. 실제 마법 전투와는 달리 한 턴에 한 움직임만 취할 수 있으니까요.”
“확실히 그렇네요.”
그것이 이 게임이 인기가 좋은 이유다.
실제 마법 전투는 워낙 선천적인 요소들이 많이 개입한다.
아무리 마법적인 사고능력이 출중하다 한들 위계와 마력 양에서 차이가 나버리면 전투가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 이 위치 보드에선 견습마녀나 대마녀나 똑같이 한 수만을 번갈아 취할 수 있다.
더군다나 일정 수준이 넘어가는 수준 높은 마법은 사용이 제한된다.
복잡한 자성 마법을 구현하기 위해선 수 백턴 가까이 되는 턴을 써야 하는데 그동안 상대가 기다려주고 있을 리 없으니 말이다.
즉, 순수하게 마법적인 사고능력과 유연성을 판가름하기 좋은 게임이라는 의미다.
“처음인가요?”
“네, 직접 해보는 건 처음입니다.”
“아홉 턴을 양보할게요. 자유롭게 해주세요.”
참고로 디아나는 이 게임에 매우 자신이 있었다.
위치보드는 디아나의 몇 안 되는 취미.
빛나는 재능을 지닌 만큼 예소드 백작과도 박빙의 반반 대결을 벌이는 디아나이다.
모든 조건이 동등하게 맞춰진 이 게임판 위에서라면 어떤 마녀라도 상대할 자신이 있는 것이다.
“그냥 하면 되나요?”
“제일 먼저 마력원을 어디에 둘지부터 정해야죠. 커다란 정십이면체의 꼭짓점에 3개씩 둘 수 있어요.”
“흐음, 알겠습니다.”
선수이므로 시우가 흑점을 잡았다.
별로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빠르게 세 곳을 점했다.
그것을 보자마자 디아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냐하면 그가 동력원으로 선택한 꼭짓점이 다닥다닥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저건 정석에서 아주 벗어났을뿐더러 조금만 마법적으로 생각해봐도 비효율적인 플레이였다.
꼭짓점의 마력원이 최대한 많은 모서리와 만나게 해야 판을 더 넓게 쓸 수 있다.
저렇게 같은 정오각형 안에 붙여버리면 활용할 공간이 좁아지며 마법의 종류가 제한된다.
역시 기대가 너무 컸던 모양이다.
“아홉 수, 끝났습니다.”
“…….”
디아나의 이런 생각은 시우가 양보받은 9수를 마저 행사하는 것을 보고 확고해졌다.
최초 양보받은 9수를 효율적으로 배치하면 디아나의 마력원 하나를 괴멸 상태에 몰아넣고 게임에 임할 수도 있다.
자연 활용할 수 있는 마력양에서 차이가 나게 되니 격차가 벌어진다.
아무리 처음이라도 마법에 소양이 있다면 그 정도 각은 봐야 할 텐데.
그마저도 못하다니.
확실히 소문은 소문일 뿐 거품이 너무 많이 꼈구나 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이제 제 차례네요.”
그 뒤로는 번갈아 가며 플레이.
디아나의 수는 거의 정석에 가까웠다.
결국 다채로운 마법을 활용하는 데 필요한 것은 군데군데 랜덤으로 배치된 룬이다.
이 룬을 효과적으로 점유하고 상대가 사용하려는 마법의 의도를 읽어 필수적인 룬을 통제하며 유리하게 끌어갔다.
그렇게 다수 보유한 룬으로 다양한 빌드를 짜며 상대에게 쉼 없는 이지선다를 걸며 이득을 챙긴다.
같은 수를 둔다고 해도 룬을 많이 보유한 측이 높은 효율의 공격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방어 역시 마찬가지다.
이걸로 마지막 한 수.
초장부터 휘둘린 시우는 자연스럽게 힘 싸움에서 밀리게 되었다.
결국 공격 마법은 모조리 방어 당했고, 방어 마법은 모조리 디아나의 공격에 격침된 채 3개의 마력원을 모두 잃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10분도 걸리지 않은 참패였다.
“쉽네요.”
디아나는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승리를 선언했다.
사실 승리 자체는 예정된 것이었다.
초심자와 숙련자 사이에는 아홉 수로 메꿀 수 없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니까.
중요한 건 과정이다.
중간부터 발악하려는 공세를 완벽하게 차단하고 승리를 거머쥐었으니, 체스로 비유하자면 기물을 4개도 잃지 않고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다.
시우는 가만히 게임이 끝난 보드를 바라보았다.
게임이 끝난 뒤 복기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 분위기가 사뭇 진지하다.
“흠…. 조금 아쉽네요.”
설마 정말 저런 얼토당토않은 수로 이기려고 했단 말인가?
디아나는 살짝 어이가 없었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임해도 모자랄 판국에 아쉽다니.
괜히 손대중을 뒀다고 생각한 디아나는 수정구가 고정된 보드의 버튼을 눌러 게임판을 초기화했다.
“그럼 다시 해볼까요?”
“네, 다시 해보고 싶습니다.”
초보자를 줘패는 것은 고인물의 도리가 아니지만, 엄밀히 말하면 상대는 완전 초심자가 아니다.
엄연히 마법이라는 법칙을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남자 마녀’라고 광고를 때리며 고객을 모으는 천박한 상술을 구사할 정도라면 어느 정도 분전하는 모습은 보여줘야 마땅하다.
그렇게 뇌까리던 디아나는 자신이 은연중 그의 존재를 불편해하던 이유를 추가로 더 확인할 수 있었다.
마도의 길을 걷는다고 말한 주제에 그것을 상업적인 홍보로 악용한 것.
생각해보니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었다.
“이번에도 아홉 수 먼저 두세요.”
“네, 감사합니다. 한 수 배우겠습니다.”
순식간에 3개의 마력원을 마크하는 시우.
이번에도 조금 전과 완전히 같다.
협소한 공간에 마력원을 몰아넣어 확장성을 스스로 방해하는 자충수.
이후 이어진 아홉수도 전혀 나아진 것이 없는 플레이였다.
“후우….”
이걸 말해 말아?
고민하던 디아나는 입을 열었다.
“저기요, 그렇게 마력원을 가까이해 놓으면 이후 플레이가 제한돼요. 경로가 너무 많이 겹치잖아요. 기회 줄 테니까 다시 하세요. 각기 다른 오각형의 꼭짓점을 잡고 배치하면 돼요. 조금 떨어뜨려서 시작하면 확실히 편할 거예요.”
사실 게임에 이미 들었는데 상대에게 충고하는 것도, 수를 물려주는 것도 디아나의 성향에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다시 할 기회를 주는 것은 방금처럼 허망하게 이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대답은 영 생뚱맞은 것이었다.
“아, 괜찮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해보려고요. 슬슬 감도 잡은 것 같고.”
다른 방식?
감을 잡아?
모처럼의 호의까지 무시당한 디아나는 더더욱 어처구니가 없었다.
다른 방식이고 뭐고 그건 정석에서 완전히 어긋난 플레이라니까….
정석이란 게 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정석이란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 끝에 고도로 일반화된 원칙.
즉, 검증된 플레이인 것이다.
“됐어요. 알아서 하세요.”
게다가 아부를 떨듯이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아니라 진지해진 목소리와 눈빛이라니.
꼴에 진짜 마녀라도 되는 양 유세를 떠는 것 같아서 더 기분 나쁘다.
디아나는 판결을 내렸다.
이 남자 마녀는 더 볼 것도 없다.
소문과 겉모양만 번지르르한 멍청이다.
후딱 끝내버리고 집으로 돌아가 버려야지.
그렇게 아홉수를 기다렸다가 차근차근 한 수씩 주고받은 디아나와 시우.
이번에도 쉬웠다.
디아나는 방금과는 조금 다른 방식의 정석을 밟아 차근차근 승리로의 발판을 깔았다.
순조롭다.
공격을 위해 15개의 패스를 확보했고 최적의 룬을 점거해 두었다.
불시에 기습적인 공격이 가해지더라도 원활한 수비가 가능하게끔 대책도 잊지 않았다.
저렇게 마력원을 똘똘 뭉쳐두면 어떻게 되는지 이 기회에 보여줄 것이다.
마력포를 발사하는 마법을 구성해 마력원을 한 번에 날려버릴 계획을 짜던 디아나.
앞으로 다섯 수만 더 있다면 승리는 자신의 것이 될 터였다.
“…어?”
디아나가 입을 연 것은 지금까지 자신의 플레이에만 집중하느라 전혀 보지 못했던 것을 뒤늦게 포착했기 때문이다.
“아, 눈치채셨네요. 나름대로 숨기고 있었는데.”
복잡하게 얽힌 점과 선 그리고 룬들 사이에서 흉흉하게 이빨을 벌린.
전혀 눈치채지 못한 덫이 놓여 있었다.
만약 디아나가 앞서 생각해두었던 다섯 수 중 딱 한 수만 더 두었다면 발동될 함정이.
“…….”
디아나가 만든 마법은 증폭에 증폭을 거듭한 마력포.
반면 지금 시우가 만들어낸 것은 그런 마력포를 역방향으로 유도하는 하나의 커다란 터널 링이었다.
이대로 공세에 나섰더라면 공을 들여 만든 필살의 일격이 되려 디아나의 마력원을 휩쓸었을 것이다.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방심 때문?
그렇지 않다.
시우의 비책은 실로 교묘하게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하죠.”
디아나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며 전략을 수정했다.
시우가 구성하던 링 터널 형태의 마법식을 먼저 파훼하고 20 턴 가량을 더 소모해 항복을 받아냈다.
조금 충격이었다.
상대의 플레이는 말할 것도 없이 정석에서 어긋난다.
실패하는 순간 뒤가 없는 조커 카드 같은 전략이었다.
완전히 애송이 녀석이라고 얕보고 있었는데.
그런 조커 카드에 일발역전을 허용할 뻔한 것이다.
“이걸 눈치채시다니 역시 저는 못 당해내겠네요. 디아나 님의 승리입니다. 제가 졌어요.”
“…….”
이기긴 이겼지만 찜찜한 승리.
디아나는 재빨리 위치보드의 리셋 버튼을 눌렀다.
“한 판 더 하죠. 이번에도 아홉 수 양보해 드릴 테니.”
조금 더 확인해 볼 것이 있다.
만약 저 플레이가 의도된 것이라면.
또 비슷한 일을 다음에도 할 수 있다면 그에 대한 평가를 수정해야 할 테니 말이다.
모처럼 의욕에 불탄 디아나를 상대로 시우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모래시계를 들어 보였다.
“죄송하지만 약속된 시간이 다 되어서요. 이제 슬슬 예약이 잡힌 마녀님들이 들어오실 시간입니다.”
집중이 조금 흐트러지자 어느새 부산스러워지기 시작한 주위 소리가 들렸다.
“돈은 더 낼 테니. 시간 연장해 주세요.”
“분명 디아나 님은 위대한 예소드 백작가의 견습마녀시지요. 약속의 중요함은 이해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고집을 부리려던 디아나는 찡그려지려던 표정을 관리하며 도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도 영업 전에 올게요. 준비해 둬요.”
“알겠습니다. 앞까지 모셔다드릴 테니 살펴 가시길.”
시우의 배웅을 받으며 호스트바 앞으로 나선 디아나는 결심했다.
반드시 내일도 이곳을 찾아오기로.
EP.339 #74_게으름의 마녀(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