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335화 (335/917)

#335

1.

게헨나의 호스트바 로즈 글래스의 홍보대사를 맡은 지도 일주일이 흘렀다.

그다지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다.

기껏해야 샤론이 놀러 오고 쌍둥이가 종종 얼굴을 비치러 찾아온 정도.

말하자면 타카쇼의 호스트바 사업이 순조롭게 성장 중이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트러블 이 없다는 것은 별다른 큰 문제 없이 단골손님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니 말이다.

실제로 첫날부터 매출은 점진적인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었으며 재방문 의사를 밝힌 마녀들의 명함도 한가득하다.

“벌써 기 빨리네.”

오픈 시간 약 1시간 전.

정장을 빼입은 시우는 휴게실 소파에 몸을 기댄 채 머리를 매만졌다.

우스꽝스럽게만 여겨졌던 이 올백 머리도 이젠 어느 정도 적응이 됐다.

담배나 한 대 태우면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려던 때.

창밖을 내다보자 문지기 폴과 실랑이를 벌이는 한 마녀가 보였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잿빛 머리를 허리 끝에서 묶고 턱을 치켜든 채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견습마녀네.”

마녀라기엔 앳된 용모로 한눈에 짐작이 가능했다.

그리고 아마 어지간한 중형세단 가격에 버금갈 저 양산을 보아하니 꽤 저명한 마녀님의 딸내미인 모양이다.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은 아닌지 대화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잠시 이후 고개를 꾸벅꾸벅 숙이더니 호스트바 안으로 들어오는 폴.

얼마 기다리지도 않아서 덜컥 휴게실 문이 열렸다.

“시우 형님. 도와주십쇼.”

불쌍하게도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폴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시우에게 하소연했다.

“아직 영업 시작도 안 했다는데 한사코 형님을 만나뵙고 싶으시답니다. 예약이 밀려있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설명해 드려도 도저히 이해해 주시질 않으셔서…. ‘오픈 시간 전이라면 오히려 잘됐네요. 돈은 얼마든지 낼 테니 남자 마녀를 불러주세요’라는 답변만 반복하십니다.”

“대충 짐작이야 간다. 누군데?”

“그, 예소드 백작님의 견습마녀 디아나 예소드님이라고….”

“예소드?”

어이쿠야, 거물이다.

나름 불만 어린 마녀들을 잘 돌려보내던 폴이 쩔쩔매며 구조 요청을 할 법했다.

게헨나의 칠백작 중 하나인 예소드 백작.

그 견습마녀라면 지금까지 찾아온 고객 중에서도 꽤 거물일테니 말이다.

지금껏 무수히 많은 마녀가 호스트바를 들렀다 갔지만 아무래도 대마녀나 귀족들은 찾아오지 않았다.

백화점 세일 행사는 눈길도 두지 않는 마나님들의 자존심 같은 것일까? 라고 추측 중이다.

이렇게 사람이 바글바글 몰려있는 장소에 고작 15분 만나려고 줄을 선다는 것은 내키지 않을테니 말이다.

“어쩌겠어. 만나봐야지 안으로 모셔.”

“괜찮으십니까?”

“안 그래도 온종일 접대 중인데 한 명 더 는다고 별일이야 있겠어?”

“넵! 감사합니다!”

폴을 화색이 되어 다시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시우도 마지막으로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테이블로 걸음을 옮겼다.

나름대로 다 계산이 선 행동이었다.

타카쇼가 호스트바 경영하는 모습을 어깨 너머로 지켜보며 느낀 것인데 이 사업에서 ‘마녀 접대’란 사업의 시작부에 불과하다.

더 중요한 것은 인맥이다.

마녀를 접대하고, 단골 마녀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맥은 고작 금화 따위와 비교할 수도 없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지닌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도, 마녀 사이에서만 떠도는 정보를 모아 새로운 투자 계획을 설립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백작의 견습마녀는 우수한 고객이었다.

만약 새로운 단골로 확보할 수만 있다면 다른 마녀들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타카쇼에게 도움이 되겠지.

“이건 둘째고.”

사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번에 찾아온 견습마녀가 다름 아닌 ‘예소드 가(家)’의 견습마녀라는 점이다.

예소드의 자성마법은 다름 아닌 역장을 활용한 마법.

실제로 시우가 도서관에서 참고했던 자료도 대부분이 예소드 백작의 논문을 참고하고 있었다.

이걸 기회로 견습마녀와 친해질 수 있다면 붉은가지의 해석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사심이 가장 크게 섞여 있었다.

해당 분야의 최고 권위자에게 첨삭을 받을 수 있게 되니 말이다.

“어서 오세요,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디아나 예소드 마녀 님의 접대를 맡게 된 신시우라고 합니다.”

시우는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디아나를 반겼다.

가까이서 보니까 굉장히 독특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우선 온통 하얀색 의상이다.

프릴이 한껏 달린 드레스부터 장갑, 구두 심지어 무릎 위로 오는 타이즈까지 순백의 빛을 자랑했다.

푸석푸석한 애쉬 톤이 아닌 깔끔한 윤기가 흐르는 잿빛 장발.

전체 색감과 대비되는 주홍색의 눈동자가 강렬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외견일 뿐, 분위기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다만 당장이라도 하품을 해버릴 것 같은 나른한 눈초리와 슬며시 내려간 눈꼬리.

의욕이 없어 보이는 초탈한 느낌이 일반적인 견습마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왜 쌍둥이만 해도 세상 온갖 것들이 신기하다는 초롱초롱한 눈빛을 지니지 않았던가?

그에 비해 이쪽은 인생 N회차 같다.

“반가워요.”

디아나는 에스코트하려는 시우의 손을 무시한 채 자리에 앉았다.

이런 경우는 꽤 자주 있는 경우였으므로 자연스럽게 동석하는 시우.

다만 상대가 견습마녀인 만큼 바로 옆에 붙어있지 않고 앞자리에 앉았다.

“예소드 가의 견습마녀님을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어떤 일로 찾아오셨나요?”

이 시점까지만 해도 시우는 디아나를 상대하는 것이 어려우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껏 시우가 상대해왔던 유일한 견습마녀는 오딜과 오데트.

고집은 세지만 마녀보다도 어리숙한 면모가 확실하다.

게다가 이제 시우는 노예도 아니지 않은가?

비교적 대응이 쉬울 것이라 생각했다.

“마법 쓸 줄 안다면서요?”

하지만 저 예쁜 입술이 벌어지며 고집 세고 자존심 강한 마녀들의 상투적인 대사가 튀어나오자마자 마음가짐을 다시 잡았다.

게다가 저 눈빛.

잔뜩 의심하고 있으면서도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듯한 눈빛이 샅샅이 몸을 훑음에야 마냥 편하게 있을 수도 없다.

“일단은 그렇습니다.”

“아무튼 약속은 약속이니까 술 먼저 시킬게요. 여기서 제일 비싼 거로 가져다주세요.”

제일 비싼 술?

여기를 일반적인 술집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마녀들을 위해 준비된 고급술이 잔뜩 있는 만큼 로즈 글래스의 제일 비싼 술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가성비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저희 호스트바에서는 마녀님들의 입맛에 맞는 여러 가지 술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카탈로그를 보시고 마음에 드는 술을 고르시는 것이 어떨까요?”

하지만 다짜고짜 ‘우리 집 술은 비싼데. 너가 낼 수 있겠어?’라고 말하는 것은 하책.

견습마녀라고는 해도 엄연히 백작가의 마녀다.

자존심을 긁을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

“됐어요, 제일 비싼 걸로. 저기 앞에 문지기랑 약속했어요.”

그렇게 테이블 위로 딸깍 얇은 금속카드를 꺼내놓는 디아나.

시우도 가지고 있는 신용증서였다.

영수증에 술 이름과 가격을 쓱쓱 써서 보여준다.

“그럼, 이 정도인데 술은 마음에 드시나요?”

“좋아요.”

눈치 없이 제일 비싼 걸 주문하지는 않았다.

제머나이 역시 예소드도 부자 가문으로 이름이 높기는 하지만 게헨나의 관세와 호스트바 프리미엄이 붙은 술은 N 억을 호가한다.

따라서 디아나에게 보여준 술은 미들급 라인에서도 최상위 클래스.

로즈 글래스가 견습마녀 등쳐먹는다는 소문이 도는 것은 원치 않았다.

이것도 너무 비싼 건 아닌가 싶었지만 디아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 상품에는 샴페인 타워 이벤트가 끼어있으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아니요, 됐어요. 전 당신이랑 이야기하고 싶어서 왔으니까. 여기 앉아요.”

“원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목적이 확실한 손님이다.

‘남자 마녀라고? 믿을 수 없어. 내가 눈으로 보고 검증해 봐야겠어!’라는 생각을 갖고 온 고객.

여러 번 상대해 왔기에 이 이후의 전개도 대충 예상이 갔다.

“지금까지 게헨나에 자성마법을 완성했다고 자랑하던 사기꾼은 3명이었어요.”

놀랍게도 이것 역시 다른 마녀의 입으로 들어본 적 있는 에피소드다.

“그렇군요, 저 역시 다른 사람의 소문이었더라면 믿지 못했을 겁니다. 천운이 따라주었죠.”

“저는 눈으로 본 것만 믿어요.”

“마법 시연을 하면 될까요?”

“하세요.”

존대이지만 결코 존대로 느껴지지 않는 고압적인 분위기.

예소드 백작이 자식 교육은 참 잘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아직 견습마녀에 불과한데 이렇게나 마녀다운 모습을 보여주다니 말이다.

하지만 시우의 영업용 미소는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속으로 쓴웃음을 삼킨 뒤 항상 하듯 검은 그림자를 손안에서 피워올렸다.

“피어라.”

일렁이는 흑색의 입자들.

주변의 빛을 모조리 흡수해 버릴 것 같은 어둠이 손아귀 안에서 넘실거렸다.

짙은 쌍꺼풀 때문인지 아니면 슬며시 귀엽게 내려간 눈꼬리 때문인지.

어쩐지 졸린 듯이 보이는 디아나의 눈이 조금 커졌다.

“…….”

“살펴보셔도 괜찮습니다.”

그림자의 법칙은 시우가 다루는 대부분의 마법의 원재료다.

갑옷도, 무구도, 리본도 이 그림자의 입자를 사용해 만드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우가 이렇게 다른 마녀 앞에서 손쉽게 선보일 수 있는 것은, 이미 그림자의 개량이 끝났기 때문이다.

갑주나 무구를 만들 때는 샤론에게 배운 원소 마법을 활용해 재배합한 그림자를 사용한다.

리본을 짜낼 때는 처녀의 베틀이라는 별개의 자성마법을 활용함으로써 실의 형태로 짜내어 직조한다.

따라서 시우가 마법 시연으로 선보이는 마법은 ‘그노시스의 알’에서 얻은 원전의 모습이자 그다지 수준이 높지 않은 형태였다.

물론, 대부분의 마녀는 남자가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에 놀라워했지만 말이다.

“…….”

디아나는 찬찬히 시우의 손 위에서 넘실거리는 그림자를 살폈다.

공용 마법과는 명백히 궤를 달리하는 차별성을 둔 마법.

자성마법임은 확실하다.

이런 형태의 마법이 있다는 것은 들어본 적도, 직접 본 적도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뭐랄까.

호 불면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이 초라함.

-팟!

디아나는 손에서 역장을 자아냈다.

다양한 종류의 마법을 관찰할 수 있도록 시금석 역할을 하는 원판 형태의 얇은 마법진이었다.

손끝으로 그림자를 찍어 펴 바르자 어렵지 않게 분류할 수 있었다.

갈고리 형태의 미세 마법진.

특징은 다른 마법에 달라붙어 마법 전개를 방해.

압도적인 마력 앞에서는 별다른 저항을 할 수 없는 뚜렷한 약점까지.

순식간에 파악하는 데 성공한다.

고작 이 정도라….

디아나는 실망감과 동시에 내심 고소함을 느꼈다.

이 먼 거리를 귀찮게 오가며 확인한 마법이 디아나도 조금만 연습하면 흉내 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성마법이었다는 점에서는 실망이.

예상대로 남자 마녀를 자칭하는 것치고는 꽤 허접한 마법이라는 점에서 통쾌함이 느껴진다.

디아나가 세워두었던 가설이 맞아떨어졌다는 것이 아닌가?

“재밌네요. 제법 괜찮은 수준이라는 건 알겠어요. 정말 자성마법인 것도 맞아요.”

하지만 남자는 저 정도의 마법을 피워 놓고는 뿌듯하다는 듯 싱긋싱긋 웃고 있다.

겨우 1대에 저 정도의 성취라면 대단하긴 하지만, 주제를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나쁜 심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으나 디아나로서는 굉장히 드물게 솟은 의욕이었다.

요새 강제로 밖을 나돌게 다니며 조금은 부지런해 진 걸까?

디아나는 자화자찬과 함께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수준을 짐작할 수 없어요.”

“얼마든지 분부만 주세요. 약속대로라면 앞으로 40분은 디아나 님을 위한 시간이니까요.”

40분이라면 적당하다.

디아나가 아직 견습마녀라고는 해도 졸속으로 만들어진 남자 마녀 정도는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물론 마법을 써서 싸우는 교양 없는 짓을 할 생각은 없다.

당연하지만 압도적으로 귀찮기 때문이다.

앉은 자리에서 누구의 마법적 소양이 더 뛰어난가를 판가름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 있었다.

“그럼, 위치보드 있나요?”

바로 마법을 이용한 게임이다.

EP.338 #74_게으름의 마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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