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
1.
“후음….”
“코오오….”
폭풍 같던 섹스의 향연이 흘렀다.
개구리 뜀뛰기 자세로 시우의 위에서 폴짝폴짝 허리를 흔들던 오딜도.
언니와 뜨거운 키스를 나누며 뒤치기 자세로 받아들이던 오데트도.
지금은 우애 좋게 서로를 껴안고 곤히 잠이 들어 있었다.
아마 저렇게 꼭 달라 붙어 자는 것이 잠버릇인 모양이다.
“잘 자네.”
천사같이 잠든 쌍둥이의 머리를 한 번씩 쓸어준 시우.
뭐 중간부터는 주인님 컨셉이고 뭐고 정신을 반쯤 놓고 뜨거운 성교를 즐겼지만, 정말이지 황홀한 시간이었다.
“흐먀…. 그런…거, 안 들어가….”
“조수니이임….’
꿈에서도 한바탕 사랑을 나누는 중인지 잠꼬대를 하는 쌍둥이에게 이불을 다시 제대로 덮어주고 잠시 밖으로 나왔다.
섹스 이후에 니코틴 보충은 정석 중의 정석.
테라스로 나와 담배를 입에 물었을 때.
“더럽게 예쁜 밤이네요.”
“그어어어….”
담배를 떨어뜨리며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쌍둥이 외엔 아무도 없어야 할 전초기지의 테라스에 선객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슴골이 훤히 드러나는 칠흑 같은 드레스, 흑발의 자색 눈.
오딜이 훨씬 성숙하게 된다면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절로 떠올리게 하는 알비레오 제머나이 백작이 먼저 테라스를 차지하고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어….”
오직 한 생각뿐이다.
좆됐다.
밀회의 증거는 명백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유리문 하나 사이를 두고 알몸의 쌍둥이가 자고 있다.
게다가 조금 전까지 뒷구멍을 번갈아 찔러가며 뜨거운 시간을 보낸 것이다.
항문 성교는 그릇에는 무리가 가지 않는 행위이다.
여러 차례 검증된 바가 있다.
하지만 견습마녀와의 섹스 장면을 어머니나 다름없는 백작에게 걸렸다는 것 자체만으로 심적 부담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전전긍긍하고 있을 무렵.
알비레오는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시우를 안심시켰다.
“괜찮아요, 이미 짐작이야 하고 있었으니까…. 갑자기 외박한다고 조르기에 따라와 봤는데 역시나네요.”
“죄, 죄송합니다…. 그, 사실은 제가 먼저….”
일단은 쌍둥이를 변호하기 위해 입을 열었는데 알비레오는 손을 내저으며 변명을 끊어냈다.
“딸자식 키워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더니…. 그릇에는 문제가 없겠죠?”
“네? 네, 그렇긴 합니다만…. 정말 죄송하지만, 언제부터 여기 계셨나요?”
“한 시간 전쯤부터요.”
한 시간 전이면 한참 오딜과 오데트로 엉덩이 탑을 쌓아놓고 번갈아 찌르던 때로군.
시발.
중요한 장면은 다 봤다는 소리다.
뭔가 겸연쩍음과 쪽팔림 그리고 민망함과 두려움 속에 슬쩍 알비레오의 눈치를 살폈다.
“잠깐 대화나 좀 할까요?”
“넵.”
겉으로는 괜찮다고 해도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엄청 신경 쓰이는 와중에도 그녀의 지시대로 재빨리 테라스 의자에 앉았다.
살인죄로 취조를 당해도 이보다는 덜 부담스러울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 시우는 ‘저 방금 질펀하게 하고 왔어요’라고 말하듯 가운만 걸쳐 입은 차림새.
“그렇게 긴장할 것 없다니까요. 이미 말했잖아요. 짐작은 하고 있었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묘하게 두통이 오는 듯 머리를 짚고 있는 게 신경 쓰인다는 건데….
가시방석에 앉은 듯 엉덩이가 따끔거렸다.
“아마 일전부터 계속된 거겠죠? 전에 걸렸을 때도 이렇게 했나요?”
“이렇게라 말씀하심은….”
“뒤로, 성교를 했냐는 말이에요.”
“…….”
첫 경험부터 당연하다는 듯이 즐기게 되어 다소 감이 무뎌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시우가 쌍둥이와 갖는 행위는 명백히 애브노멀이다.
아무리 둘이서 하나를 강조하는 쌍둥이라지만 명백히 자매를 한 침대에서, 그것도 정상적인 성교가 아닌 매니악한 방법으로 사랑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조금 전 그 장면을 목격한 알비레오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렇습니다.”
“쌍둥이가 혹시 다른 걸 요구한 적은 있나요? 예를 들어 음, 앞으로 성교를 요구했다던가. 아니면 삽입을 잘못할 뻔했다던가….”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설령 있다고 한들 제가 조심해야겠죠.”
“그렇군요….”
진땀 나는 대화를 하고 있다 보니 술이 좀 절실했다.
슬쩍 알비레오를 보니 그쪽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오만가지 복잡한 생각이 듬뿍 묻어나오는 표정을 짓고 멍하니 담배를 물고 있었으니.
그 얼굴을 두 글자로 묘사하자면…
심란(心亂).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 있을 수 없다.
“바람이 찹니다. 안쪽으로 모셔서 술을 올려도 좋을까요?”
용기를 내서 말했다.
반쯤은 호스트바에서 배운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
알비레오는 갑작스러운 시우의 제안에 살짝 눈을 치켜뜨더니 피식 웃었다.
“쌍둥이도 모자라 저까지 꼬시려고요?”
“아,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당치 않는 오해에 식겁한 시우가 손을 내저으며 말한다.
알비레오는 웃음을 지으며 당황하는 시우에게 답했다.
“알아요, 그냥 좀 괘씸해서 당황하는 표정 좀 보고 싶었어요.”
“…유구무언입니다….”
소소한 한담을 나누고 백작을 에스코트해 1층 응접실까지 내려왔다.
오늘 쌍둥이에게 선물하려고 사두었던 술이 절반가량 남아 있었기에 그것을 잔에 올렸다.
“좋은 술이네요.”
“제가 백작님께 받은 것에 비하면 부족한 술입니다.”
“그렇죠, 시우 군은 애지중지 키운 쌍둥이의 마음까지 가져가 버렸으니 세상 어떤 미주(美酒)를 가져와도 모자랄 거에요.”
여봐라.
괜찮다고 말하는 것치고는 아까부터 말에 뼈가 숨어있지 않은가?
이성은 납득했다 해도 마음이 그렇지 않겠지.
조금만 역지사지로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쩌면 아까 말한 대로 이쪽이 당황하는 모습을 계속 보고 싶을지도 모르고.
차라리 타카쇼처럼 오체투지를 박을지 말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
알비레오는 거칠게 술잔을 내려놓으며 시우를 찌릿 흘겨보았다.
마치 가면을 벗기라도 한 것처럼 극적인 변화였다.
“아아, 짜증 나요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화가 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뭐라고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백작은 와다다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목숨을 구해준 건 고맙죠. 당연히 쌍둥이가 시우 군을 좋아하는 것도 이해가 가요! 하지만! 막상 저 장면을 보니까 머리도 복잡하고! 괜히 시우 군에게 화가 나고 뺨 때리고 싶어요! 때려도 되나요? 살살 칠게요. 아니다, 조금만 쎄게 때릴게요!”
언제나 정숙하고 기품있던 알비레오의 말투가 아니다.
허영과 가식을 벗은, 마치 오딜이 투정을 부릴 때의 말투였다.
“뭐, 좋아요. 다 이해한다고 쳐요! 그런데 왜 하필 쌍둥이만 옆에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있냐고요! 남녀간 사랑이 어쩔 수 없는 거라지만 조금만 기다리라고 쌍둥이한테도 시우 군에게도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숨이 차는지 중간중간 술을 들이켜며 짜증인지 화인지 뭔지 모를 감정을 토해내는 알비레오.
필터링 없이 생각나는 대로 내뱉는 듯 대사도 점차 중구난방이다.
“차라리 당신이 못돼 먹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네요. 그럼 고민도 안 하고 원자 단위로 분해해 버렸을 텐데! 두 번이나 쌍둥이 목숨을 살려준 은인이라 그럴 수도 없고! 아주 미치겠어요!”
쌍둥이의 어머니라는 인식이 박혀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알비레오가 진하게 화장하고 항상 우아하게 꾸미고 다녔기 때문일까.
처음으로 보는 듯한 알비레오의 민낯은 굉장히 앳되고 어려 보였다.
겉모습만으로 따지자면 20대 초반, 아마 시우가 영체가 되기 전보다 훨씬 어린 나이일 것이다.
하긴 마녀니까 이상한 것도 없다.
“뺨이라면 얼마든지 치셔도 됩니다. 분이 풀리실 때까지요.”
나는 죄인 이오.
사실 시우도 할 말이 없었다.
만약 시우에게도 쌍둥이 딸이 있고 그 딸이 한 남자와, 그것도 이상한 방법으로 놀아나는 모습을 보이는 와중에 그 남자에게 다른 여자까지 있다?
바로 샷건 세례다.
오히려 알비레오의 반응이 굉장히 점잖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짝!
“컥!”
알비레오는 아무런 주저 없이 술잔을 놓고 힘껏 시우의 뺨을 후려쳤다.
마녀님 손은 생각보다 매웠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반대 뺨을 내미는 시우를 보고 멈칫한 알비레오.
“꿀꺽 꿀꺽 꿀꺽!”
턱에 술이 흐를 정도로 격하게 술을 마시더니 몇 차례나 심호흡한다.
“후우, 갑자기 때려서 미안해요. 못 볼 꼴을 보였네요. 조금 진정됐어요.”
“아닙니다. 다 제가 잘못한 일인데요….”
한 대 맞고 억하심정이 생길 리 없다.
마법으로 얻어맞지 않은 것만 해도 관대한 선처를 받았다고 생각 중이다.
알비레오는 맥이 탁 풀린 듯이 느슨한 자세로 소파에 기대었다.
“오늘은 좀 서로 진솔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이미 서로 밑바닥까지 보여준 것 같으니까요.”
“백작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습관처럼 빈 잔에 술을 따르자 알비레오는 뭔가 시무룩한 모습으로 무릎을 껴안고 앉았다.
쌍둥이와 시우의 관계가 머릿속에 아른거리기 때문일지, 점잖지 못하고 방방 날뛰는 추태를 보인 게 뒤늦게 부끄러운 것인지는 본인만이 알겠지.
“시우 군, 하나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잠깐 고민하던 알비레오가 입을 연다.
상담을 요청하며 고민을 털어놓는 말투였다.
“얼마든지요.”
“섹스라는 게 그렇게 좋나요?”
“…이게 진솔한 대화의 일종인가요?”
“쌍둥이가 왜 그렇게 집착하는지 알 수 없어서요. 의외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해본 적이 없거든요.”
“어, 음…. 남자 입장에서 말씀드려야겠죠?”
“하긴, 시우 군도 여자 입장은 모르겠네요.”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의 질문이 얼토당토않았는지 웃음을 터뜨리는 알비레오.
카리스마 넘치는 회장님 아우라만 풍기던 알비레오였는데 지금은 좀 달랐다.
어쩐지 친근하다.
“…앞으로도 쌍둥이랑 이런 일이 많이 생기겠죠?”
“최대한 자제해보겠습니다.”
“아니요, 괜찮아요. 쌍둥이만 위험하지 않는다면 좋을 대로 하게 해줘야죠. 아 참, 데네브에게 들키지만 마세요. 데네브는 뺨 때리기 정도로 안 끝날 테니까요.”
“그건 참 섬찟한 이야기네요.”
한번 하소연을 끝낸 뒤 한결 차분한 분위기에 시우도 조금은 진정이 됐다.
뭔지 모르겠지만 위기는 넘겼다는 심정이다.
“가능한… 하지 않아 줬으면 하는 게 제 솔직한 심정이긴 하지만, 남자는 또 유혹에 약하단 말이죠. 특히나 시우 군은 엄청 엄청 약한 것 같고. 쌍둥이가 그만 둘리도 없고….”
“…….”
반박을 할 수 없는 게 슬프다.
“그렇다면 쌍둥이가 자랄 때까지 제 몸으로 만족해 줄 수는 없나요? 쌍둥이와 달리 저는 어엿한 마녀니까요. 혹시 모를 위험도 없고, 솔직히 저 정도면 꽤 예쁘잖아요?”
수줍은 듯 붉어진 얼굴, 흘낏흘낏 시우를 바라보는 순결한 눈빛과 함께 떨어진 알비레오의 폭탄선언.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던 초강수였다.
저도 모르게 아연하게 입을 벌린 시우.
“시우 군이 원할 때마다 시간을 낼게요. 모든 게 처음이라 조금 어색하겠지만… 금방 잘해질 자신도 있고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저 이야기를 끝낸 알비레오는 아름다운 자색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슬며시 다리를 꼬는 순간 알비레오의 드레스 자락이 들춰지며 팬티가 얼핏 보였다.
검은색.
충격과는 별개로 혹하는 제안이었다.
그 정숙한 제머나이 백작 중 하나를 침대에서 마음껏 즐길 수 있다?
그것도 궁디팡팡 뒤치기를 하면서?
남자라면 저런 얘기를 들었을 때 누구라도 끌릴 것이다.
시우조차 ‘네! 백작님! 3층에도 침대 있는데 거기로 갈까요?’ 라고 힘차게 대답해 버릴 뻔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을 해보니 ‘이건 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조금 도의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백작님은 쌍둥이의 어머니나 다름없는 분이시고…. 또 제가 쌍둥이와 육체적 관계를 맺기 위해서 만나려는 것도 아니니까요.”
“…….”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정말 어려울 것 같습니다. 죄송해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충분히 주의를 기울일게요.”
흐트러지게 앉았던 알비레오는 자세를 바로잡고 씩 웃었다.
“미안할 것 없어요. 당연히 농담이었으니까.”
조금 전의 풋풋한 느낌이 어디 갔는지 알비레오는 의젓하게 술을 마셨다.
돌변한 태도에서 느껴지는 의아함 잠시 후 또렷한 직감과 함께 식은땀이 흘렀다.
“농담이 아니라… 부비트랩 같다는 건 기분 탓인가요?”
“맞아요, 만약 옳다구나 달려들었으면 정말 정말 큰 실망과 함께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할 예정이었어요.”
“…살벌한 농담을 좋아하시네요.”
“100년 넘게 팍팍한 세상을 살다 보면 유머 감각이 고약해지기 마련이죠. 시우 군도 아마 그럴걸요?”
알비레오는 어딘가 흡족한 듯, 혹은 안심한 듯이 미소를 지었다.
자애로운 웃음이 뺨을 때릴 때 표정보다도 무서웠다.
“아무튼, 제가 여기에 왔던 건 쌍둥이에게 비밀로 해주세요. 내일 아침도 수업이니 적당히 돌려보내 주시고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럼 이만, 실례 많았어요.”
마지막 인사와 함께 알비레오는 너울너울 드레스 자락을 흔들며 전초기지를 나섰다.
EP.336 #74_게으름의 마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