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9
1.
모처럼 게헨나로 돌아온 시우지만 쌍둥이와 놀 시간은 현저히 부족했다.
끽해야 다 같이 저녁을 먹고 1박 2일로 해변에 다녀온 것이 전부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오딜과 오데트가 매일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노는 것 같아 보이기는 하나 명색이 견습마녀.
주어진 일정대로 성실히 하루를 보내고 과제까지 하고 나면, 대치동 판검사 부모 둔 고3 못지 않게 자유시간 결핍에 시달리게 된다.
매일 보고 싶어 하면서도 올 수 없는 쌍둥이가 딱하기도 하고.
오늘 모처럼 찾아와줬는데 제대로 놀아주지 못 한 게 미안하기도 해서 술까지 사 왔는데.
이런 귀여운 이벤트로 반겨주다니.
고마움과는 별개로 슬그머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주인님, 이쪽이야.”
시우의 손목을 한 쪽씩 끌고 도착한 곳은 응접실.
예전에 오딜과의 밤 산책을 들키고 제머나이 백작과 면담했던 장소였다.
“주인님, 여기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 오데트!”
“응, 언니 가져올게!”
시우를 소파에 앉히더니 오데트가 먼저 어디론가 사라졌다.
“오늘은 제가 접대해드리려고 했는데. 이거 참 뭔가 죄송스럽네요. 모처럼 술도 사 왔는데.”
“조수님이 죄송할 게 뭐가 있어? 신경 쓰지 마. 오늘은 피곤했을 조수님을 위한 테라피가 있을 예정이니까.”
뻐기는 표정을 지으며 시원시원하게 머리를 넘긴 오딜.
아직 ‘주인님’이라는 호칭이 입에 붙지 않았는지 자꾸만 말실수가 나온다.
하긴 저렇게 고압적이고 콧대 높은 하녀가 있을 리 없지.
그러면서도 꾸역꾸역 메이드 컨셉을 지키려는 것이 퍽 귀여웠다.
“언니! 왔어!”
잠시 사라졌던 오데트는 제 몸뚱이의 절반을 될 듯한 커다란 대야를 들고 왔다.
안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면 따뜻한 물이 담긴 모양이다.
“자, 주인님 재킷은 나한테 주고.”
“뭔가 본격적인데요?”
“우리 사냥 다녀오면 시녀들이 항상 이렇게 해주거든. 피로가 싹 풀릴 거야.”
아무래도 호스트바라는 특성상 시우의 옷차림은 멋지지만 불편한 정장 차림이었다.
정장 재킷을 벗긴 오딜은 능숙하게 그것을 옷걸이에 걸어놓고는 시우의 뒤에 서서 어깨를 조물조물 주무르기 시작했다.
오데트는 낑낑거리며 들고 온 대야를 시우 발밑에 놓고 구두와 양말을 벗겨주었다.
그리고 바지를 접어 올려 시우의 발을 대야에 담갔다.
“몸의 피로는 발에 많이 모인대요. 그래서 외출 이후에 족욕을 하면 피로 해소에 도움이 돼요! 어때요? 물 온도 괜찮으세요?”
“오딜 님, 오데트 님.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안마까지는 그러려니 하겠다.
그런데 발까지 씻겨준다니.
그전까지는 살짝 미안하고 고마운 정도였는데 이젠 송구스럽기 짝이 없다.
“저희가 해드리고 싶어서 하는 건 걸요?”
하지만 오데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도리어 쪼그려 앉은 채 진지한 표정을 짓은 채 발을 씻겨주었다.
발등이나 발바닥은 물론 발가락 사이사이까지 작은 손가락을 끼워가며 뽀득뽀득 씻겨준다.
간지러운 감촉은 둘째치고 몸이 축 이완되는 느낌이 들었다.
“미안해하는 건 내키지 않지만 자랑스러워하는 건 환영이야. 세상 어떤 남자가 대 제머나이 가의 견습마녀를 하녀로 부려봤겠어?”
“저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됐다니까~ 손가락질하나만 꿈질하면 눈에 샴페인 부어줄 거야.”
“넵.”
살벌한 협박과 함께 꼬물꼬물 손가락에 힘을 주며 어깨를 주물러주는 오딜.
작은 손아귀에 비해 제법 손이 매웠다.
“시원하지? 큰 스승님도 칭찬 많이 해주셨어.”
“네, 아주 극락 갈 것 같습니다.”
과장이 아니라 진짜 편안하다.
손 하나 까딱 안 해도 시원한 목덜미와 어깨.
게다가 퇴근 직후 구두를 벗자마자 다리를 쭉 뻗은 채 하는 족욕이라….
어버이날 야근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된 기분.
흠뻑 고인 흐뭇함 위로 솔솔 잠이 올 것 같은 안락함이 두둥실 떠다닌다.
“주인님, 피곤해도 좀만 참아. 아직 제머나이 테라피 코스는 끝나지 않았거든.”
“맞아요! 이제 시작인데 벌써 주무시면 안 돼요!”
“네네, 정신 줄 잘 잡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약 15분 정도 안마와 족욕 서비스를 받자 오딜과 오데트가 나란히 발을 닦고 슬리퍼를 주었다.
“이제 이걸로 갈아신고 따라오면 돼!”
“저희가 잡아드릴 테니 눈 꼭 감으세요!”
“오,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하는 건가요?”
“곧 알게 될 거야. 눈부터 감아!”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싱글벙글한 미소를 지으며 쌍둥이의 이끌림은 받은 시우.
-삐걱!
문을 여는 순간 눈을 뜨지 않아도 이곳이 어디인 줄 알 수 있었다.
자욱하고 뜨거운 수증기가 얼굴에 와닿았기 때문이다.
“이제 눈 떠 봐.”
“와우.”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실내에 버금갈 정도로 호화로움을 자랑하는 욕실이었다.
물론 전초기지는 타운하우스에 가까운 만큼 제머나이 저택의 욕실이나, 레바나 대욕장처럼 압도적인 스케일은 아니다.
하지만 게헨나의 갑부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시우로서는 이 정도의 고급스러움과 안락함이 마음에 편했다.
전자는 유네스코 문화재에서 목욕하는 듯한 기분이 드니 말이다.
“욕실이네요?”
이미 예상대로였지만 짐짓 놀란 듯이 적절한 리액션을 취해주었다.
“…….”
“…….”
그러나 잠잠한 쌍둥이.
지금까지 친근했던 태도가 어디 갔는지 한껏 긴장한 태도로 뻣뻣하게 굳어있다.
“커흠.”
오딜은 헛기침을 하고는 조심스럽게 운을 띄웠다.
“지금부터 우리가 주인님의… 목욕 시중을 들 거야.”
“메이드가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쌍둥이와 오래 알고 지내면서 여러 모습을 봐왔는데 이런 반응은 처음이었다.
뭐랄까.
언제나 거침없고 독단적으로 이벤트를 주최하던 쌍둥이가 이렇게 주춤주춤하다니.
“그래도 괜찮아?”
“아….”
눈치를 보는 것 같은 오딜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시우는 감을 잡았다.
일전 시우는 쌍둥이에게 은근히 선을 그으려 했던 적이 있다.
해변에 가서 오일을 발라주었을 때의 일이다.
그 당시에는 죄책감이 들었었다.
번듯이 샤론처럼 가까이 지내는 여성이 있는데 다른 곳에 한눈을 판다는 것이 몹시 잘못된 일처럼 느껴졌다.
샤론은 시우를 살리기 위해 익사한 마녀에게 당해 중태에 빠졌던 과거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쌍둥이는 샤론 이상으로 많은 것을 주었다.
첫 단추는 순전히 쌍둥이의 천진하고 위험한 호기심에 휘말렸을 뿐이라지만.
타카쇼 말고는 의지할 곳이 없던 시우에게 두 번째 친구가 되어주었다.
하반신에 있는 여성의 구멍에 남성기를 삽입하는 것을 동정 뗀다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첫 경험도 엄연히 쌍둥이가 가져갔다.
그뿐이랴?
힘들고 피폐해졌을 때 보듬어 주었던 것도, 이 안락하고 편안한 생활을 지원해 준 것도 쌍둥이다.
단순히 목숨값 두 번으로 없는 것으로 하기에는 양심이 쿡쿡 찔렸다.
하지만 말로 꺼내지 않았다해도 의외로 눈치 빠른 쌍둥이는 분위기를 짐작했으리라.
그때의 일을 기억하고 시우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것이다.
혹시나 또 선이 그어질까 봐.
이렇게 잘해주면서 눈치까지 보는 것이다.
“우리도 알아. 조수님한테는… 이미 샤론 언니가 있으니까….”
“그래도 조수님을 생각하는 마음은 누구한테도 지지 않아요!”
오딜과 오데트는 입술을 다부지게 다물고 선언했다.
하지만 씩씩한 목소리와는 다르게 두 눈은 불안함과 걱정으로 가득했다.
슬며시 시우의 소매를 잡은 고사리 같은 손에도 꾸욱 힘이 들어가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샤론이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할지.
오딜과 오데트가 유유부단한 시우의 행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솔직히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오딜과 오데트다.
언제나 시우를 생각해주는 둘을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오딜 님 오데트 님.”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채 바닥만 바라보던 쌍둥이의 어깨가 동시에 움찔 떨렸다.
중요한 시험 성적을 듣게 된 아이처럼 말이다.
“고마워요. 정말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응, 아니, 나야말로 고마운 게 많은걸.”
“맞아요, 저희가 훨씬 고마운걸요….”
시우는 팔을 뻗어 둘을 안아주었다.
향긋한 라일락 향기와 풋풋한 체취가 섞여 코끝을 간질인다.
“저도 이게 염치없는 말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두 분은 제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에요.”
“…그럼?”
“절대로 두 분을 밀어내지 않을게요. 지금처럼 편하게 대해주세요. 저도 좀 더 노력해볼게요. 그러니까 여러모로 완만하게 해결될 수 있게 끔요.”
쌍둥이의 눈이 확 커졌다.
그리고 동시에 시우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펄쩍펄쩍 뛰기 시작했다.
와와 소리를 지르며 기뻐하는 모습이 꼭 커다란 사냥감을 포획한 원주민 같았다.
“조수님! 그래! 잘 생각했어! 아참 이럴 때가 아니지! 오데트 준비 다 됐지?”
“응! 언니! 조수님 여기 팔 벌리고 서 계시면 저희가 옷 갈아입혀 드릴게요!”
“넵! 잘부탁드립니다!”
미끄러운 욕실 바닥에 거의 미끄러질 뻔한 오딜과 오데트는 그렇게 한참이나 날뛰다 시우의 옷에 손을 댔다.
“옷을 입고 목욕을 할 수는 없으니까.”
“이, 일단 벗어야지요!”
이미 서로 볼 장 다 본 사이긴 하다.
예전부터 엉덩이며, 가슴이며 은밀한 구멍까지 모자이크 없이 오픈한 사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오랜만이기 때문인지 시우의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한 오딜의 손끝은 살살 떨리고 있었다.
뭔가 첫 경험 때처럼 낯설고 설렌달까.
하나씩 하나씩 단추가 풀어지고.
영체가 된 이후 몇 개월간의 초인적인 단련으로 근육질이 된 시우의 맨살이 드러났다.
뺨에도 발그레한 홍조가 서린다.
“…….”
“…….”
아까까지는 그렇게 흥분하더니 이제는 얼굴만 벌겋게 익은 채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쌍둥이.
셔츠를 벗고, 벨트를 풀고, 바지를 벗고, 팬티에도 손이 닿았다.
“여기는 제가 벗을 수 있는데요.”
“안 돼! 우리가 해주기로 했단 말이야!”
뭔가 남사스러워 팬티를 내리려는 시우의 손등을 찰싹 오딜의 손이 때리고 갔다.
어쩔 수 없이 주도권을 넘기고 알몸이 되자 쌍둥이는 벗긴 옷을 곱게 개서 욕실 구석 바구니에 놓았다.
“자, 이쪽이야 주인님.”
“여기에 편하게 누우시면 돼요.”
그렇게 알몸이 된 시우가 안내받은 곳은 욕조 가장자리에 있는 마사지 침대.
성인 남성 하나가 엎드릴 수 있는 나무 책상 위에 몇 겹이고 큰 수건을 깔아둔 형태였다.
아마 쌍둥이 둘이 머리를 맞대고 졸속으로 만든 것으로 보였다.
“그냥 엎드리면 되나요?”
“응, 내가 누워봤는데 푹신했으니까 괜찮을 거야.”
“네, 그럼 염치 불고하고.”
아.
좋다.
뭘 준비했을지 은근히 기대도 되고 무엇보다 몸도 마음도 편하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언니, 이거 근데 너무 야한 것 같아…. 조수님 등 멋지다.”
“쉿, 조용히 하고 준비하자.”
뒤에서 다 들리게끔 속닥거리는 쌍둥이.
오딜과 오데트는 각기 좌우에 서서 소매를 걷어붙였다.
“자, 그럼 마사지 시작할게요!”
그렇게 2차 서비스 타임이 시작되었다.
EP.332 #73_트윈테라피(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