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8
1.
“언니.”
“왜 오데트. 쓸데없는 말이면 관둬. 속 쓰리니까.”
쌍둥이가 안내받은 곳은 1번 테이블 바로 옆에 있는 2번 테이블.
비록 가게 전체가 조금 소란스럽기는 했지만 고작 간이 칸막이 하나만 있는지라 쌍둥이는 다양한 마녀를 접대하는 시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접대부’라길래 무슨 일을 하나 싶어 참관을 요청했다.
조수님이 하는 일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 듣던 대로였다.
마녀들의 비위를 맞춰주고 딱 듣기에도 사탕발림이 분명한 말로 살살 꼬는 그런 짓.
“으으으으으으으으….”
그저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저 작업멘트도, 정중한 말씨도 모두 친구를 위해 하는 것은 알겠다.
그래도 오딜은 그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심심한걸? 근데 조수님이 저렇게 말을 잘했던가? 완전 다른 사람 같아.”
그에 비해 오데트는 별로 아무렇지도 않아 보인다.
처음에는 귀를 쫑긋 세우고 대화를 엿듣더니 이윽고 소파에 편하게 누워 샴페인이나 홀짝이고 있다.
가끔 오글거리는 멘트가 나오면 키득거리기까지 하니 아주 팔자가 좋아 보였다.
“넌 아무렇지도 않아? 조수님이 저렇게 다른 여자한테 헬렐레하고 있는 게?”
오딜은 쌍심지를 치켜세우며 애꿎은 여동생을 닦달했다.
멀리 앞서간 샤론 언니를 추월하기 위한 유일한 조력자가 오데트라니.
갑자기 못미덥기 그지없다.
어쩜 이리 속이 없는지.
“에이, 언니가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거잖아.”
“뭐가 심각한데? 방금 못 들었어?”
오딜은 옆 테이블에 소리가 넘어가지 않게 오르골을 켜놓고 목소리까지 낮춰 속삭였다.
“마녀님의 눈동자에 건배래, 눈동자에 건배! 콱! 눈에다가 샴페인 뿌려버리고 싶네!”
씩씩거리는 오딜을 보고 자지러지게 웃는 오데트.
“언니, 봐봐.”
“뭘 봐, 이미 보고 있어.”
“조수님이 저렇게 느글거리게 말하는 거 들어본 적 있어?”
“그게 뭐.”
오데트는 폭발 일보 직전인 언니를 위해 여유로운 마음가짐의 비결을 알려주었다.
“없지?”
오딜은 오데트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없다.
애초에 오딜이 놀란 것도 조수님이 저런 낯간지러운 말을 한다는 사실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그게 어쨌다는 거야? 우리한테도 안 한 말을 다른 마녀한테는 한다는 거잖아.”
“아이참, 언니. 반대로 생각해 보면, 진심이 요만큼도 담겨있지 않다는 말이잖아. 요만~큼도.”
오데트의 말에 끔뻑끔뻑 눈을 깜빡이는 오딜.
듣고 보니 그럴싸하다.
그 어떤 로맨틱한 분위기 속에서도, 심지어 샤론 언니와 뜨거운 시간을 보낼 때도.
조수님은 저런 듣기만 해도 아랫배가 근질근질해지는 느끼한 말을 한 적이 없다.
임시라고는 하지만 여기는 ‘직장’.
“요리사가 주방에서 칼질하는 거랑 비슷한 거지! 배우가 영화에서 연기를 하는 것과 비슷한 거고.”
“그런가?”
“그렇다니까? 일종의 직업윤리로 봐야 하는 거야. 저기에 앉은 마녀도 엄연히 돈을 지불 했을 테니까.”
“다른 말로 하면… 우리랑 있을 때 조수님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준다는 게 되는 건가…?”
“바로 그거야.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걸 우리가 받는다는 거지.”
팔짱을 끼고 엣헴 코웃음을 짓는 오데트.
오딜은 탄복했다.
가만 듣고 보니 오데트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질투나 시샘이 나기는커녕 괜스레 어깨가 으쓱거리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언니도 너무 걱정 마. 그리고 조수님 하는 말 잘 들어봐. 되게 웃겨.”
“그러게, 이번엔 너 말이 맞는 것 같아.”
그리하여 오데트와 마찬가지로 여유로운 방관자 시점으로 조수님의 일을 지켜보니….
이게 또 보통일이 아니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야하고, 까탈스럽게 구는 마녀들 앞에서도 싫은 소리 없이 웃음을 지어야 한다니.
그때부터는 당장 조수님한테 버릇없게 두는 건방진 마녀에게 뛰쳐들고 싶은 마음을 참아야 했다.
“…조수님도 고생이 많으시다. 돈을 번다는 건 힘든 일이구나.”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저렇게까지 해야 하다니….”
쌍둥이의 시선이 또르르 테이블로 떨어졌다.
거기에는 지갑 대용으로 사용하는 가죽 주머니가 있었다.
오늘 조수님의 시간을 사겠다고 챙겨온 금화가 안에 빵빵하게 차 있었다.
“흐음….”
쌍둥이는 지금까지 돈이 부족해 일을 해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쌍둥이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모두가 편의를 봐주었다.
그래서인지 조수님께 무언가를 해줄 때도 거의, 항상, 대부분 제머나이 가문의 힘을 빌렸다.
“나도 뭔가 언니랑 같은 생각하는 기분이야.”
“그렇지? 그럼 지금부터 움직일까?”
“그러자!”
눈이 마주친 오딜과 오데트는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2.
“혓바닥 헐겠네.”
오늘도 부지런히 접대를 끝낸 시우는 온몸을 덮치는 찌든 피로를 느꼈다.
거의 무슨 디펜스하는 기분.
괜히 서비스직 종사자들이 정신병 걸려서 약 먹는 게 아니구나 싶다.
“오늘도 고생 많았어, 친구.”
“영혼이 깎여나가는 기분이야. 넌 이런 걸 어떻게 몇 년이나 한 거냐?”
“나는 보지가 정말 좋으니까. 너는?”
“…나도 좋지.”
어찌나 힘이 없는지 타카쇼의 헛소리에도 제대로 응답할 여유가 없을 정도다.
“그러냐? 이건 여담이지만 난 처음에 너가 보지 알레르기 있는 줄 알았다. 게이거나.”
“헛소리 그만하고. 오늘 매출은 잘 나왔어?”
“당연하지. 우리 가게에는 신시우 에이스가 있다고. 다른 애들도 개인 지명 들어온 거 몇몇 있고 순항중이다 순항.”
시우는 끙차 몸을 일으켰다.
약속대로 쌍둥이를 만나러 갈 시간이다.
늦는다고 말은 했지만 이 시간쯤이면 쿨쿨 자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잘됐네.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가본다. 마저 고생해라.”
“아! 시우. 깜빡한 게 있네.”
“뭔데?”
“오늘 점심에 잠깐 들렀던 제머나이 견습마녀 아가씨들 있잖아. 이거 너한테 건네주라고 하더라.”
타카쇼의 손에 들린 것은 쪽지였다.
펼쳐보니 보더 타운에 있는 쌍둥이 전초기지의 주소였다.
‘이쪽으로 오세요’라는 둥글둥글한 손글씨가 쓰여 있었다.
그러고 보니 워낙에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인사도 못 했네.
“그리고 이건 오늘 너 앞으로 달린 매상.”
“아 술값?”
“넣어 둬. 어제도 줘야 했는데 워낙 정신 없어서 깜빡했다.”
호스트바에서 고객이 호스트를 위해 주문한 술은 매상 일부가 호스트에게 돌아간다.
시우와 동석했을 때 술을 시킨 고객은 아주 많았고 그에 따른 콩가루가 떨어진 것이다.
자루를 펼쳐보자 금화가 있었다.
참 눈부신 빛깔이다.
짤랑짤랑하는 소리도 좋고.
이쯤 되면 콩가루라고 하기에도 죄스럽다.
시우가 일 년 내내 주급을 모아야 만들 수 있던 금화가 두 자릿수 단위로 담겨있었으니까.
다 타카쇼 좋으라고 돕는 일이다.
게다가 시우는 이미 제머나이 백작으로부터 엄청난 보상을 받고 있으므로 딱히 필요한 돈은 아니었다만.
“혹시 이거 대신 술로 줄 수 있냐? 선물 좀 사 가려고.”
모처럼 찾아왔는데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오랫동안 기다렸을 쌍둥이를 위해 술을 들고 갈 생각이다.
오딜도 오데트도 술을 무척 좋아하니 말이다.
그런데 선물을 제머나이 백작의 돈으로 해결하는 건 뭔가 구색이 맞지 않는다.
차라리 오늘 열심히 벌어들인 돈으로 사가는 것이다.
시우는 떳떳하게 선물할 수 있어서 좋고, 타카쇼는 영업 끝나고도 술을 추가로 팔아 좋고.
모두가 윈윈인 거래라고 생각했다.
“선물? 아, 혹시 약속이라는 게 오 자매랑 데이트?”
“그런 셈인데.”
타카쇼는 손뼉을 치며 감탄했다.
“이야, 나한테 견습마녀는 멀리서 바라봐야 하는 꽃이라더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좋아! 내가 어떻게 친구한테 돈을 받냐. 제일 좋은 술 내줄 테니까 받아가.”
여기가 그냥 그런 술집이었으면 받아 갔겠지만 이곳은 마녀를 대상으로 한 고급 지향형 바이다.
제일 좋은 술은 억 소리가 절로 튀어나오는 금액이었다.
“돈은 너 받고, 이 정도로만 줘. 그리고 앞으로 내 정산금 안 떼줘도 돼. 이 술값으로 대신할게.”
결국 상위 라인업 중에서 가장 저렴한 술(그래도 게헨나 싯가 수천이 넘는다)을 받고 한사코 금화를 넘겼다.
패키지에 어여쁘게 포장된 술을 품에 안은 시우는 좌표 이동식을 사용해 타로 타운의 전초기지로 텔레포트 했다.
3.
야심한 시각이다.
상대적으로 하루가 빨리 시작되고 빨리 끝나는 타로타운.
그런 만큼 전초기지 주변은 한산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이 조용한 풍경이 낯설지 않다.
오히려 기시감이 느껴졌다.
시우가 술독에 절어 폐인 생활을 했을 때 오딜과 함께 이 거리에서 밤 산책을 한 적이 있었다.
또 오딜 오데트 자매와 본격적으로 엮이기 시작한 것도 이 타로타운에서 함정에 빠진 이후였으니 쌍둥이와의 추억이 꽤 진하게 묻어있는 곳이라 할 수 있겠다.
층이 낮고 다소 허름한 주위 건물에 비해 번쩍번쩍하게 광이 나는 5층짜리 전초기지.
제머나이 저택이 말 그대로 널따란 부지를 기반으로 한 트리 하우스에 가깝다면 이쪽은 타운 하우스에 더 가깝다.
-똑똑
“자나?”
쌍둥이가 이 시간에 여기에 있다는 것은 외박을 허락받았거나 몰래 나왔다는 얘긴데.
아무래도 시간이 너무 늦기는 했다.
혹시 자고 있다면 쌍둥이를 포장해 저택으로 돌아갈 생각이던 시우.
다시 노크하기 위해 문고리를 잡았을 때.
호두나무 원목으로 만들어진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제가 너무 늦었… 엥?”
기억과 변함이 없는 풍경이다.
금박으로 장식된 촛대와 그 위에서 춤을 추는 촛불.
속바지를 안 입으면 치마 아래 팬티가 고스란히 비칠 것 같은 대리석 바닥과 현관 우측 계단까지.
묘하게 정겹고 그리운 풍경 속에 정말로 이질적인 것이 있었다.
“다녀왔어? 조수님? 아니, 주인님.”
“다녀오셨어요, 주인님.”
현관 복도 좌우에 나란히 서서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쌍둥이였다.
거기까지라면 그리 이상한 것이 없겠다.
여긴 쌍둥이의 전초기지니까.
근데 메이드복을 입고 있다.
호칭도 이상하다.
평소에 애용하는 하프 보닛 대신 착용한 카츄샤.
풍성한 치마에 둘러진 앞치마.
성적 판타지를 자극하는 왜곡된 메이드 차림이 아니라, 당장 입고 일을 해도 될 것처럼 생활감이 넘치는 복장이었다.
그럼에도 실로 품격이 넘쳐나는 것은 오딜과 오데트가 귀족 아가씨이기 때문이겠지.
“이게 뭐죠?”
“뭐긴~ 조수님 오늘 종일 힘들었을 테니까. 우리가 깍듯이 모셔주려는 거지. 감사하게 여겨도 좋아.”
“언니, 주인님 주인님.”
“아 맞다, 주인님.”
수줍게 웃으면서 당연하다는 듯이 선언하는 오딜과.
언니의 말실수를 바로잡아주는 오데트.
“맞아요, 오늘 하루 일하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가만히 서 있던 시우의 얼굴에 웃음이 피었다.
무엇보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쭈뼛쭈뼛 주인님 주인님 거리는 쌍둥이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기 때문이다.
“뭐, 뭐야? 왜 웃어? 이상해?”
“저희 뭔가 실수했어요?”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 느낌.
종일 받았던 피로가 개운하게 사라지는 이 느낌.
정말 고맙다.
누군가 자신을 이렇게 생각하고 위해준다는 것이 이렇게 기쁜 일일 줄이야.
뭔가 감동이라 눈물도 찔끔 날 것 같았다.
“좋습니다! 마침 피곤했는데 잘됐네요. 두 분 모두 정말 잘 어울리셔요.”
“그래?”
“정말요?”
“네.”
시우는 쌍둥이를 꼭 끌어 안아주고 선물로 가져온 술까지 보여 주었다.
“제가 오늘 두 분이랑 마시려고 좋은 술까지 사 왔어요. 고마워요.”
“훗, 이 조수님이 좋아할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고! 메이드 복은 남자에게 로망이라고 페챠가 그랬거든.”
“언니, 주인님 주인님.”
“아, 맞다. 주인님.”
어색하게 시우의 눈치를 살피다가 성공한 듯하자 콧대가 높아진 오딜은 우쭐해졌다.
발꿈치를 저도 모르게 들었는지 키도 조금 자란 기분이다.
“아무튼! 오늘은 저희가 준비한 극진한 대접을 받으면서 쉬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술상부터 펼까요? 안주도 챙겨주길래 받아왔는데.”
“아냐, 이쪽으로 와 봐. 우리가 준비한 게 이게 다가 아니거든.”
또 무슨 서프라이즈를 준비했을지.
하루동안 쌓인 피로도 잊은 시우는 쌍둥이에게 이끌려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EP.331 #73_트윈 테라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