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327화 (327/917)

#327

1.

타카쇼에게 부탁해 쌍둥이에게 바로 옆 테이블을 앉혀주고 간단한 먹을거리를 세팅해주었다.

워낙에 사이가 좋은 쌍둥이니 둘이서도 잘 놀다 갈 것이다.

온종일 손님을 받던 1번 테이블로 돌아가자 이미 마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

“찾아주셔서, 영광입니다. 제가 먼저 마중했어야 하는데 면목이 없네요.”

“괜찮아, 난 딱히 신경 안 쓰니까.”

“앉아도 될까요?”

“얼마든지.”

앉은자세 그대로 빤히 시우를 바라보며 말하는 마녀.

컬이 잔뜩 들어간 치렁치렁한 흑발과 비취색 눈동자가 눈에 띠었다.

호스트바에서 일하는 건 처음이었지만 꽤 많은 마녀를 상대해왔기 때문인지 대충 분위기나 옷차림만 봐도 사이즈가 나왔다.

돈이 많은 마녀인가.

위계가 높은 마녀인가.

시우의 마법에 관심이 많아 찾아온 마녀인가.

아니면 최초의 남자 마녀가 궁금해서 들러본 마녀인가.

그런 의미에서 시우는 약간의 긴장을 느꼈다.

첫 대면부터 강렬하게 촉이 왔다.

여러 겹의 능라(綾羅)로 이뤄진 드레스.

저런 옷은 더럽게 비싼 주제에 더러워지면 세탁도 불가능해 버려야 한다.

상아로 만들어진데다가 끝에 커다란 다이아몬드를 박아 만든 긴 곰방대.

주어진 15분을 어떻게든 알차게 써서 본전을 뽑으려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여유로운 태도.

무조건 대마녀다.

그리고 부자다.

돈이 쌓이다 못해 썩어가고 있는 고객이다.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신시우라고 합니다.”

“후우, 알고 있어. 유명하잖아.”

느긋하게 연기를 뿜으며 얼굴을 조목조목 뜯어보는 부자 고객님.

시우는 샴페인을 개봉해 두 사람의 잔에 따랐다.

마녀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 동작을 찬찬히 지켜보았다.

“…….”

뭔지 모르겠지만 피로가 쌓였기 때문일까?

고작 시선을 받고 있을 뿐인데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은 위압감이 느껴진다.

“마녀님의 존함을 여쭈어도 될까요?”

“내 이름?”

마녀는 잔을 슬쩍 들며 입술을 적시더니 말했다.

새빨간 입술 자국이 잔 테두리에 남았다.

“알면 위험할 텐데 괜찮아?”

“어떤 의미로 위험하다는 건가요?”

“여러 가지 의미로?”

이런 부류의 고객은 처음이었다.

보통 시우를 찾아온 마녀는 남자 마녀라는 희귀한 존재를 대면한다는 사실 자체에 적잖이 흥분한다.

그 길고 긴 대기 줄을 기다렸다 온 것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름 모를 이 마녀, 아까부터 어쩐지 위험한 기색을 풀풀 풍기는 이 마녀는 아주 조금의 서두름도 없다.

“비밀스러운 관계를 좋아하시나 보네요. 그렇다면 마녀님이란 호칭으로 괜찮을까요?”

시우는 침을 꿀꺽 삼키되 당황한 모습을 내비치지 않고 말했다.

만약 게헨나에 또 다른 호스트바가 있었더라면 ‘옆 가게에서 보낸 자객인가?’ 싶을 정도로 대하기 어려운 손님이다.

“글쎄? 어떨까?”

“…….”

그녀는 고개를 갸웃한 채 시우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최대한 태연한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마주했을 때 시우는 느낄 수 있었다.

깊다.

끝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깊고 검다.

분명 찬연한 비취색의 눈동자일 텐데 어떠한 빛도 반사하지 않는 듯 보였다.

이 마녀는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살아온 걸까? 라는 의문이 절로 떠올랐다.

“아무튼, 듣던 대로 잘생겼네. 마음에 들어.”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원래는 이 타이밍에 ‘마녀님과 어울릴만한가요?’ 같은 호스트스러운 멘트가 나갔어야 했는데.

늪에 잠긴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애드립은 쉽지 않았다.

마녀는 재떨이에 담뱃재를 툭툭 털더니 일어날 채비를 취했다.

“얼굴도 봤으니, 슬슬 가볼까?”

“예?”

이 역시 시우가 처음 보는 유형이었다.

내심 이 불편한 손님이 떠나주는 것이 기뻤지만 아무리 그래도 여긴 타카쇼의 가게고 시우는 돕는 처지다.

일단은 이유를 물었다.

“벌써 가시나요? 혹시 제가 부족했던 부분이 있으셨다면….”

“아니, 충분해. 그냥 호기심에 들렀을 뿐이라서. 여기 팁.”

마녀는 금화 몇 개를 테이블에 올려놓았고는 자리를 나섰다.

“다음에 또 보자.”

말릴 새도 배웅할 새도 없이 힐을 또각또각 울리며 사라진 마녀의 뒷모습을 시우는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물론 곧장 다음 손님을 받아야 했기에 그리 깊게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2.

지금은 휴한기로 사람의 발걸음이 닿지 않는 라티푼디움을 태연하게 한 마녀가 거닐었다.

마녀가 한 발짝을 내디딜 때마다 그녀의 모습이 변해갔다.

칠흑 같던 흑발은 뽀얀 상앗빛으로 넘실거리는 화려한 백금발로, 160 정도 되었던 키가 170으로.

얼굴도 골격도 모두 변해간다.

사실 변했다기 보다는 원래대로 되돌아오고 있다는 것이 더 적합한 표현일 것이다.

지금 취하고 있는 모습은 게헨나에서 돌아다니기 위해 ‘페르소나’라는 아티펙트를 사용했던 것 뿐이니 말이다.

“게헨나는 여전하네. 여전히, 한가롭고 따분해.”

클리포트의 공적.

마법의 발전이란 명목하에 무수히 많은 마녀와 인간의 목숨을 앗아간 탐욕의 마녀.

비앙카 벨릴리였다.

공적에게 있어 게헨나는 적진 한가운데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전혀 주눅 든 기색이나 긴장한 기색이 없는 것은 그녀가 그만큼 자신의 실력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설령 여기서 우연히 마녀를 마주한다 해도 소리소문없이 묻어버릴 자신감이 있었으니까.

“가만 보자, 개집이 어디였더라?”

비앙카는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마치 열대우림처럼 빽빽한 나무는 햇볕을 차단했다.

게다가 무화시킨 마력수 탓에 최악에 가까운 시계(視界)는 비앙카가 한참동안 헤매게 만들었다.

“아, 저기 있겠네.”

이정표로 눈여겨 두었건 거목을 돌아가자 ‘개집’이 나타난다.

문자 그대로의 개집은 아니고 커다란 바위 하나가 나무뿌리에 의해 갈라져 생긴 작은 동굴이었다.

-브브브브브

비앙카가 동굴에 가까이 다가서자 마치 벌떼의 날갯짓 같은 소리가 스며 나왔다.

조금 더 귀를 기울여 본다면 연신 침을 삼키는 소리와 꿀이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상처 입은 짐승의 헐떡거림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에아 집 잘 지키고 있었니? 무사해서 다행이야.”

“…후욱 … 훙…. 후훅….”

비앙카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마치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에아를 내려보았다.

에아의 눈을 감싼 새카만 안대와 재갈.

팔과 다리를 묶어 오므리지 못하게 만든 속박을 제외한다면 새하얀 나신이었다.

전신에 끈끈하게 배어 나온 땀과 가랑이 아래 작은 웅덩이를 이룬 애액.

강요된 성감에 애절하게 몸을 비트는 에아의 두 구멍에는 어른의 장난감이 깊숙하게 삽입되어 있었다.

“하루 동안 잘 있었어? 걱정했다니까? 나쁜 사람이 와서 우리 에아한테 해코지 할까 봐.”

“후욱…! 훅! 후욱…!”

비앙카는 능청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구두 굽으로 딜도를 툭툭 발로 찼다.

그때마다 에아의 몸이 소스라치게 떨린다.

이미 침을 듬뿍 머금은 동그란 재갈 사이로 공포로 가빠진 숨이 흘러나왔다.

비앙카는 몸을 수그려 에아의 재갈을 제거해주었다.

그와 동시에 덜덜 떨며 더듬더듬 말을 잇는 에아 사달멜리크.

“누, 누구야…? 거기 누구야…? 사, 살려줘….”

“아, 맞다. 깜빡했네.”

비앙카가 손을 튕기자 에아의 몸을 구속하던 모든 것이 사라진다.

팔과 다리는 풀려나고, 안대는 벗겨지고, 에아의 청각을 차단하던 마법적 조치까지 말끔하게 제거되었다.

“아…아아….”

공포와 두려움으로 일그러졌던 에아는 비앙카를 발견하고는 방울방울 눈물을 떨어뜨렸다.

비앙카는 에아가 과거 만들어 두었던 백도어로 게헨나에 침투하는 한편.

라티푼디움에 도착하자마자 에아를 이 동굴에 던져두었다.

청각과 시각을 차단한 뒤 마약으로 감각을 몇 배나 증폭시킨 채로.

고상한 표현을 빗대어 표현하자면 ‘방치 플레이’라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에아 역시 공적이다.

게다가 과거에 워낙 패악질을 부려왔던 탓에 얼굴이 널리 알려진 공적 중 하나이다.

13 위계로 추락한 채로, 게다가 종속의 고리로 모든 능력을 잃어버린 채 게헨나의 마녀와 맞닥뜨리면 이후의 결과는 자명하다.

따라서 비앙카가 편안하게 레노먼드 타운의 여관에서 머물며 볼일을 보는 동안 에아는 이곳에서 홀로 열심히 자신만의 싸움을 해야 했던 셈이다.

신음이 흘러나오면 누군가 올까 꾹 억누르고, 아주 작은 기척에도 벌벌 떨며 쾌락과 죽음 사이에서 열심히 오갔겠지.

그렇게 시간 감각까지 부서진 채로 끔찍한 쾌락에 절여지던 에아에게 비앙카의 존재는 구원이나 다름없었다.

“가엾게도…. 많이 무서웠구나? 이리 와.”

“주인…님… 흐흑.. 주인님….”

에아는 교주를 만난 광신도처럼 어기적어기적 기어와 비앙카의 발치에 매달렸다.

필사적으로 애교를 부리는 모습이 꼭 버려지는 것을 직감한 강아지 같다.

“후후, 진짜 귀여워졌다.”

“네… 에아 앞으로도 노력할게요…. 더 귀여워질게요…. 그러니까 주인님 버리지 말아 주세요…. 무서웠어요…. 말 잘 들을게요…. 제발 버리지 말아 주세요….”

아무리 이 이색방치 플레이가 그녀를 내몰았다 한들 눈물 콧물을 쏟으며 매달리는 에아의 반응은 기형적이었다.

원래였더라면 앙칼진 눈빛으로 비앙카를 노려보며 이를 드러냈겠지.

하지만 에아는 이미 과거의 물병자리의 마녀가 아니었다.

그녀를 손에 넣은 이후 몇 개월 동안 비앙카는 마음껏 에아를 주무르며 그녀의 프라이드를 기반부터 차근차근 박살 냈다.

온갖 음습하고 비틀린 가학심을 여과 없이 풀어냈다.

온종일 가해지는 쾌락과 고통.

기분 따라 주어지는 처벌과 보상.

쉴 새 없이 주사된 마약의 힘은 에아의 저항 의지를 뿌리째 뽑아버렸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정말로 말 잘 듣는 애완견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알겠으니까 조금 떨어져 줄래?”

“주인님… 주인님…. 제발, 제발 버리지 말아 주세요….”

“하아….”

비앙카는 한숨을 내쉬고는 끈덕지게 달라붙는 에아를 슬쩍 밀쳐냈다.

그리고는 사정없이 에아의 배를 걷어찼다.

“끄윽!”

입에서 침을 튀기며 콩 벌레처럼 몸을 둥글게 마는 에아.

어찌나 충격이 큰 것인지 입술이 새파랗게 변하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죄, 케흑,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 결과물이 이거다.

에아 사달멜리크는 이제 이유 없이 뺨을 때리거나 걷어차도 곧장 사과하는 착한 마녀가 되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비앙카는 미소를 지으며 몸을 웅크린다.

그리고 고통스러워하는 에아를 포근하게 안아주었다.

“에아, 걱정하지 마. 내가 너를 왜 버리겠어? 이렇게 말을 잘 듣는데.”

“흑… 흐윽… 흐흐흑….”

“울음 뚝! 네 덕분에 게헨나도 편하게 들어왔는 걸? 나는 절대로 널 버리지 않을 거야. 내가 가끔 엄하게 구는 것도 다 널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인 거 알지?”

“네…네헤… 알아요…. 알고 있어요….”

오직 비앙카의 품만이 안식을 안겨다 줄 수 있는 보금자리인 것처럼.

에아는 안도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거듭 비앙카의 품을 파고들었다.

“내가 얼마나 널 생각하냐면…. 오늘은 네 원수를 갚아주려고 사전 조사도 하고 왔어.”

“…네?”

“남자 마녀랬나? 가증스럽기도 하지. 고작 몇 년도 되지 않은 세월로 쌓아 올린 마법으로 마녀 운운하다니. 게다가 널 강간하고 마법을 뺏어가기까지 했다면서.”

“…….”

“우리 에아는 벌레보다 무력하고, 쓰레기보다 볼품 없으니까. 주인님이 특별히 따끔하게 혼을 내주려고. 기쁘지?”

“저, 저는… 이제 복수 같은 거… 상관없어요…. 주인님 옆에만 있을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아요….”

“아휴, 기특해라.”

과거의 영광과 위엄은 편린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된 에아.

잔뜩 헝클어진 그녀의 머릿속은 아무리 비앙카라도 알 도리가 없었다.

복수는 상관없다는 말이 정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막상 눈앞에 원수를 가져다 놓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 남자 마녀라는 녀석을 데려다 놓고 에아를 강간하게 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토록 절치부심 이를 갈던 상대에게 또 한 번 끔찍한 짓을 당하게 된다면.

과연 그때도 지금처럼 순종적일지 호기심이 생겼다.

“세상은 너무 재밌는 일투성이야.”

“맞아요, 맞아요. 주인님….”

“앞으로 더 재밌는 일이 생겼으면 좋겠네.”

비앙카는 아주아주 상냥한 손길로 에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EP.330 #72_지명할게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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