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
1.
호스트바의 가장 중앙.
1번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시우는 열띤 질문 공세에 시달리고 있었다.
“마법 보여주면 안 돼?”
새벽부터 줄을 서 가장 먼저 들어오게 된 1번 고객이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으로 시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전의 시우였더라면 반쯤 질겁했을 것이다.
아니 사실 지금도 썩 탐탁지는 않다.
저 눈빛은 정말 받아봐야 알 것이다.
뭔가 시험대에 오른 개구리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니 말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마인드 세팅을 바로 했다.
모처럼 미끼를 자처했는데 먹고 탈이 난 고객이 다시는 업장을 찾지 않는다면 타카쇼를 볼 면목이 없다.
“그럼요, 저 때문에 먼 걸음 하신 건데 보여드려야죠.”
“진짜? 진짜 보여 줄 거야?”
“피어라.”
사실 이 정도의 마법이라면 굳이 영창까지 할 필요가 없지만 서비스 차원에서 그림자 한 뭉치를 피워낸 시우.
마녀는 침이 질질 흐르는 광기 어린 표정으로 시우의 손바닥에 떠 있는 마법에 슬라이드 글라스를 가져다 대었다.
“우…앗! 우우…앗! 그림자네?”
참고로 저건 석영으로 만든 마력패턴 채집기이다.
석영의 특징인 망상구조(Framework Silicates)는 마력의 패턴을 저장하기 용이할 뿐더러 유리보다 내구성이 월등히 높기에 채집기로 애용된다.
“네, 기본적으로 갈고리 형태를 가지고 있어서 마법의 발현을 방해해요. 요즘엔 한참 원소계통 마법과 결합해서 구조적 안정성을 도모하는 중입니다.”
“진짜? 심지어 원소계통 마법까지? 서로 다른 영역의 마법은 결합이 쉽지 않을 텐데…. 너 대단하다!”
첫 손님으로 적격인, 굉장히 매너있고 착한 마녀였다.
그냥 자리를 차지하기 미안하다고 미들급이지만 술도 시켜주었고 말이다.
“부정형의 입자인데 어떤 식으로 체결하는 거야?”
“선형결합을 이용해서 가상의 공간을 설정하면 어렵지 않아요. 윤곽만 그렇게 잡고 나머지는 갈고리끼리 연결하는 거죠.”
“아하! 상당히 베이직하게 가는구나?”
그렇게 시작된 마법 토론.
이게 과연 ‘호스트의 접객인가?’라는 의문은 들었지만 차라리 이편이 마음이 편하긴 하다.
“그 밖에 더 여쭈고 싶은 게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봐 주세요.”
키가 작고 애교상인 마녀는 잠깐 우물쭈물하다가 시우에게 물었다.
“그럼 우리 집 와줄래?”
“정말 감사한 제안이지만 그건 조금 어려울 것 같네요. 죄송해요.”
“아니야, 내가 좀 무리한 부탁하는 거일 텐데. 나는 돈도 많이 없어서 이런데 잘 못 오거든. 오늘 샘플 취득한 걸로 만족할게.”
여기서 물러날 줄이야.
미친듯한 집착을 예상했던 시우의 예상과는 정 반대라서 뭔가 챙겨주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그 밖에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15분을 재는 모래시계의 모래가 동났다.
“세상에! 내가 살면서 남자 마녀랑 대화해보다니 신기하다 신기해. 친구들한테 자랑해야겠다.”
시우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준 첫 번째 마녀는 즐거운 듯한 발걸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나 배웅을 해주고 다시 앉는다.
“생각보다 별거 아닌가?”
약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든다.
기본적으로 남자를 아래로 보는 마녀지만 시우의 위치는 조금 특별했다.
남자이면서도 마법을 부릴 줄 아는 것이다.
한층 더 대등한 관계로 접객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호스트들이 지닐 수 없는 압도적인 메리트였다.
“어서오세요.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물론.
모든 마녀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음에 들어온 마녀는 키가 175는 되고, 힐을 신으면 시우와 눈높이가 비슷해지는 장신의 금발 마녀였다.
슈퍼모델 같은 비율과 사나운 눈초리를 마주하자마자 속으로 ‘좆됐구나’를 되뇌었다.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고 조심스레 앉던 전 고객과는 달리.
이 마녀는 익숙한 듯이 다리를 꼬고 앉는다.
“게헨나에도 호스트바가 생기다니. 잘됐네.”
“안녕하십니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15분간 마녀님의 접객을 담당할 신시우라고 합니다.”
선 자세에서 타카쇼에게 배운 예법에 맞춰 정중하게 자기소개를 했지만 돌아오는 건 콧방귀 소리였다.
“네가 남자이면서도 마녀가 됐다는 녀석이구나?”
모든 마녀가 시우의 존재를 신기하게, 혹은 좋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몇몇 마녀에게 있어 마법은 성역.
시우는 자신들에게만 허용된 성역을 침범한 불순분자이다.
그것도 어깨너머로 배운 마법으로 마녀를 참칭하는 고약한 불순분자 말이다.
아무래도 두 번째 고객은 시우의 존재 자체가 썩 달갑지 않은 모양이었다.
“과분하게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네 일천한 재주에는 별다른 관심 없어. 다만 영체라면 얼굴은 반지르르 할 테니 구경 왔을 뿐이지.”
시우는 신기한 감정을 경험했다.
지난 하루 타카쇼에게 호스트 감정 모듈을 인스톨 당했기 때문일까?
대놓고 거는 시비가 딱히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러신가요? 직접 보니까 어떠세요?”
“…….”
시우는 은은한 접객용 미소를 유지한 채 코르크 마개를 개봉하고 샴페인을 잔에 따랐다.
마녀는 그쪽을 바라보지도 않은 채 시우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뭔가 말하려고 입술만 달싹이다가 침묵하던 마녀는 술을 따르고 자리에 앉는 시우를 보고는 옳다구나 뾰족한 목소리를 내었다.
“너 이런 일은 처음이지?”
“역시 어색해 보이시나요? 제가 잘 긴장하는 성격은 아닌데. 마녀님 곁에 있으니 괜히 긴장되네요.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이건 타카쇼가 잡아준 컨셉이다.
잘생긴 모솔아다 순둥이.
자신이 잘생긴 것도 모르는 내성적인 너드 컨셉.
솔직히 처음 컨셉에 대해 들었을 때 ‘이게 무슨 짓거리냐’ 싶은 현타가 왔었다.
그래도 모솔아다 기간이 길었던 것은 사실인 만큼 매소드 연기 가능이다.
태연하게 지적을 흘리는 시우의 반응에 콧잔등을 찡그리는 마녀.
아마 이쪽이 당황하거나 화내는 모습을 보고 싶은 모양인데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아멜리아가 진심텐션으로 갈구던 때와 비교하면 이 정도는 애교다.
뭐랄까 아멜리아는 화나면 조곤조곤한 말투로 푹푹 방무딜을 선사하는 느낌인데.
이 마녀는 앞에서 고양이가 하악질하는 느낌이다.
노예 시절과는 달리 비위를 거스른다고 생명에 위협이 오는 것도 아닐 테니 말이다.
마치 S 난이도의 리듬 게임만 뒤지도록 하다가 B+ 정도 난이도의 게임을 하는 느낌?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야. 호스트라면 기본적으로 고객의 이름부터 물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실례했습니다. 존함을 여쭈어도 되겠는지요?”
“너무 늦어 기본이 덜 되어있어. 게다가 너 가명도 안 쓰는구나?”
아.
생각해보니 그런 게 있었다.
지배인인 타카쇼를 빼고 바에서 일하는 모든 호스트는 나름대로 가명을 만들어 사용했다.
물론 시우는 낯간지러워서 관뒀지만 이 마녀는 하나하나 전부 꼬투리를 잡기로 결심한 것 같았다.
“기본적인 자세가 부족한데 무슨 접객을 하겠다는 건지….”
여기서 타카쇼가 전수해 준 스킬 하나를 사용할 때가 되었다.
지금까지 부드러운 시선 처리로 눈동자가 맞닿는 걸 피하던 시우는 똑똑히 마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타카쇼 가라사대.
아첨과 거짓을 말하려거든 명경지수의 마음으로 여성의 눈을 쳐다봐라.
여자는 눈이 마주친 채 하는 거짓말을 의심하지 않는다.
라나.
“갑자기 정색하네? 화나지? 이 정도로 화낸다는 건 호스트로서 자격도 없다는 거야. 난 즐거워지기 위해서 네 시간을 산 거라고?”
“제가 중요한 걸 깜빡했네요.”
도를 넘은 도발에 화가 난 듯하더니 그와는 정반대의 부드러운 말투.
마녀는 그 부조화에 당황하는 듯 눈을 치켜떴다.
“그렇다면 마녀님이 이름을 지어주시겠어요?”
“뭐? 내, 내가 왜?”
“마녀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라면 앞으로 호스트 활동을 하면서 뜻깊게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작 2주지만.
이라는 말은 속으로 숨겼다.
그 대사가 끝남과 동시에 시종일관 표독스럽던 마녀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이 포착되었다.
작게 침을 삼키는 모습도 보인다.
그에 비해 시우는 잔잔한 머금을 머금고 어디까지나 생불의 마음으로 접대에 응했다.
“…….”
아무리 화를 유도해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상대.
거기까지라면 오히려 승부욕과 함께 부아가 치밀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한데다가 이름을 지어달라는 ‘특별한 역할’을 넘기고 있다.
마녀 사회에서 이름이 가지는 의미는 생각보다 깊다.
설령 그것이 한낱 호스트용 가명에 불과할 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무작정 화를 내며 밀어붙이기엔… 가까이서 보면 볼수록 잘생긴 것 같다.
“내 이름은… 세레스 시코낙스야.”
“여신님의 이름이네요. 잘 어울리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 딱히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는데.”
“그럼 제 이름은 뭐가 좋을까요? 아직 10분 정도 남았으니 같이 생각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네요.”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이 남자.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공략당한 세레스는 눈을 끔뻑이다가 팔짱을 꼈다.
어느새 남자 마녀라는 건방진 호칭에 대한 거부감은 희석되고, 대신 어떤 이름을 지어주어야 좀 느낌 있게 될지를 고민하게 됐다.
“흐음, 뭐가 좋을까?”
그 대화를 옆에서 귀 기울여 듣던 타카쇼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초장부터 까탈스러운 고객이라 조마조마하는 심정으로 있었는데.
역시 괜한 걱정이었다.
마녀를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셋을 꼬신데다가 견습마녀까지 후린 신시우라면 과거의 신시우가 아닐 것이다.
지금도 봐라.
딱히 의도한 것 같지도 않은데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작업.
경험상 저 다듬어지지 않은 매력 어필은 여심에 치명적이다.
꾸민 듯 안꾸민 화장이 여자 사이에서 각광받는 것은, 그만큼 인위적이지 않은 것이 먹히기 때문이다.
타카쇼가 톱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 바싹 추적했던 후배들은 죄다 저런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죄다 마음이 여린 건지 대체로 고객 관리에 실패하거나 찐 사랑으로 번지면서 얼마 못 가 은퇴하지만 말이다.
만약 여기가 가부키초였더라면.
시우가 충분히 경험치를 쌓고 타카쇼와 경쟁했더라면 누가 승자가 되었을까?
이런 실없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우의 접객은 여러 의미에서 훌륭했다.
이후로도 별다른 트러블은 없었다.
타카쇼는 호스트바에서 구르고 구르며 생긴 빠른 눈치로 고객이 필요한 부분을 요청이 나오기 전에 보충해 주었다.
거의 3개월 동안 접객만 훈련한 30명의 호스트도 큰 문제 없이 마녀들을 만족시켰다.
당분간 몰릴 고객을 생각해 한동안 2차 지명은 금지했지만 이미 2차를 생각 중인 마녀도 많아 보인다.
그렇게 호화롭게 끝난 글래스 로즈의 게헨나 데뷔식.
마녀들이 떠나고 한적해진 새벽 2시.
바 중앙에 피곤한 기색이 가득한 호스트들이 청소를 끝내고 모였다.
“주목!”
하루 영업이 끝났으니 정산을 하려는 것이다.
“오늘 다들 고생 많았다. 그동안 너희의 노력이 열매를 맺었다고 생각한다.”
타카쇼는 계단 위에 서서 하루 동안 고군분투해준 동료들을 독려했다.
계단 위에 서서 차분한 눈빛으로 몇 달 간 동고동락한 호스트의 면면을 살핀다.
잔뜩 긴장한 상태에서 접객하랴, 술 마시랴.
12시간이 넘는 근무에 청소까지 끝낸 통에 죄다 파김치가 되었지만 표정들이 밝다.
더러는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그럼, 오늘 매출액을 발표하겠다.”
모두가 긴장한 그 순간.
“당일 매출 금화 2,112파운드.”
“네…?”
“엥?”
“이, 이천 파운드?”
정신이 아득해지는 액수에 술렁술렁 동요가 흘러나오는 호스트들.
100명이 넘어가는 마녀를 연속으로 상대하느라 쓰러져 계단에 기대있던 시우조차 입을 떡 벌렸다.
하루 만에 대충 17억 하고도 7408만 원.
돈 계산이라 그런지 암산이 빠딱빠딱 된다.
“술값을 빼면…. 1,267파운드.”
“…….”
“…….”
술렁임도 잦아들고 침묵이 일었다.
물론 월마다 나가는 빚과 이자, 안주류, 인건비, 기본 술상 등등의 관리비를 제외한다면 절반으로 뚝 떨어지겠지만.
술값만 계산해본다면 10억 하고도 6444만 원의 순이익을 가져가게 되었다.
고작.
하루 만에.
모두들 어안이 벙벙한지 차분한 목소리로 발표를 이어가는 타카쇼를 바라보고 있다.
“첫날이라 특수가 있을 거다. 매일 오늘 같지는 않을 거다. 그리고 내일도, 모레도 한동안 쭈욱 바쁠 예정이니까.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상태에서 휴식을 취해라.”
“…….”
“…….”
“그래도….”
타카쇼는 고개를 숙였다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우리 됐다! 애들아! 고생 많았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아아아!!!!”
“흐어어어엉!!! 타카쇼 형니이이임!”
“이게 모두 여기 계신 신시우 님 덕분이다! 찬양해 짜식들아! 이게 내 친구야!”
“시우! 시우! 시우!”
“타카쇼! 타카쇼! 타카쇼!”
이후에는 청소를 다시 해야 할 것 같은 광란의 도가니였다.
서로를 얼싸안고 방방 뛰는 한편, 타카쇼에게 무등을 태우며 정신없이 업장을 돌아다녔고, 시우는 몇 번이 헹가래를 받았다.
매일 같이 적자를 줄이기 위해 허드렛일을 나섰던,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직장에서 전전긍긍하던, 과연 쓸모는 있을지 모르는 접객 기술들을 필사적으로 갈고 닦던 보상이 너무나도 달콤했기 때문이다.
시우와 타카쇼는 직원들과 어깨동무를 한 채 한참이나 춤을 추며 미친 듯이 환호성을 질렀다..
사나이의 꿈이 이뤄진 멋진 밤이었다.
EP.325 #72_지명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