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
1.
때 늦은 바캉스 이후 게헨나에 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때가 왔다.
시우는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도서관을 뒤적이고 있었다.
원래는 외부인이 마음대로 들어올 수 없지만 행정실 직원의 전폭적인 협조로 통행권을 발급받고 제집 드나들 듯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붉은가지 해석을 위해 필수적인 역장 마법 지식.
그에 관련된 책을 죄다 긁어모았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애초에 시우가 노예 시절에 배속되었던 정식 업무는 도서관 유지와 관리였으니 어떤 책이 어디에 있는지 정도는 손금보듯 알 수 있다.
“대충만 모아도 많네….”
역장 마법과 관련된 책만 대충 모아보자 테이블에 한가득 쌓인 책들.
한 권 한 권이 전화번호부에 가까운 분량인데 그 권수만 100권이 훌쩍 넘어간다.
물론 이것들이 모두 고급 자료는 아니었다.
그런 책들은 레노먼드 타운의 ‘비서고(秘書庫)’나 진리진명 학술회 같은 곳을 가야 찾아볼 수 있다.
경매를 통해 마녀들 개인끼리 거래가 일어나기도 하고 말이다.
아무튼 아카데미의 도서관은 굉장히 오래된 고서들로 가득했고, 세월이 흐를수록 나아가는 마법의 특성상 ‘오래되었다’라는 것은 다소 뒤처진 자료임을 의미한다.
“근데 그런 거 봐봤자 이해도 못 하고…. 오히려 잘됐지.”
역장 마법 관련 지식이 미천한 시우가 덜컥 그런 고급 자료를 봐도 이해할 수 없다.
차라리 기초개념 위주로 서술된 책으로 공부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수아 지부장의 말에 따르면 붉은가지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적어도 10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는 말을 들었으니까.
어차피 남는 건 시간이다.
급하게 갈 거 없다.
“흐음… 이거부터 볼까?”
오랜만에 책을 쭉 펼쳐놓고 펜을 놀리기 시작했다.
역장 마법은 다른 마법과는 상당히 궤를 달리한다.
예를 들어 시우가 지금까지 연구해온 마법이 밑그림을 그리고 채색해 차근차근 완성해나가는 방식이라면.
역장 마법은 ‘전체를 한 번에 완성하는 방식’이다.
마력이란 상당히 모호한 힘이다.
실체가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고, 물리법칙을 따르면서도 따르지 않는다.
마력을 넓게 펼쳐 특정한 효과를 유도한다는 ‘역장 마법’은 마력이 보유한 모호성과 불규칙성을 얼마나 잘 통제하느냐의 싸움인 셈이다.
그러므로 역설적이게도 역장 마법은 마력의 특성을 부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처음부터 모든 변수를 일일이 고려하며 역장을 펼치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까닭이다.
‘마력은 술자의 통제하에 규칙적이며, 통상적인 물리법칙을 따른다’.
이렇게 임의의 역장(力場)에서 술자가 원하는 이미지를 자유롭게 구축하는 것.
이것이 ‘상상계’에서 펼쳐지는 역장 마법의 1단계이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설정한 역장에서 벌어지는 일은 엄밀히 말하면 ‘마법’이라고 일컫기 힘들다.
모든 원칙과 개념을 배제한 어린아이의 무궁무진한 상상과 다를 바가 없다.
그 상상을 개념화하고 법과 규칙에 입각하여 구체화하는 것.
벌어질 수 없는 상상에 대해서는 제한하고 실세계로의 표출을 이끄는 것.
이것이 ‘상징계’에서 펼쳐지는 역장 마법의 2단계이다.
여기까지 오게 된다면 문제에 봉착한다.
상상계에서 이미지한 마법은 세계의 이치와 법칙에 합당하지 않으므로 실존할 수 없다.
상징계에서 이미지한 마법은 세계의 이치와 법칙에 따라 상상과 동떨어지게 굴절된다.
그 중간지점을 찾아 ‘실재계’에 구현하는 것이 역장 마법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현실에서 이치와 법칙을 따르되 상상 속의 이미지를 따르도록 하는 것이다.
“… 말이 쉽지.”
완벽하게 구현하기 전까지는 과정도 결과물도 확인할 수 없는 마법이라….
쉽게 말하자면 불 꺼놓고 간도 안 보고 요리를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시우 혼자 붉은가지의 왜곡장을 ‘어느 정도 차폐’하는 연구를 성공한 것도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그 어떤 마법보다도 이처럼 감각의 영역에 치달은 마법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혼자 끙끙 앓기를 반복하고 있자니 어느덧 점심때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그래도 혼자 하는 것보다는 훨 낫네.”
목도 뻐근하고 아직 가야 할 길이 첩첩산중이긴 했지만 아예 재료도 없던 상태에서 그나마 감을 잡은 듯한 느낌은 들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위험물질이나 다름없는 가지를 아카데미에 들고 올 수는 없었기에 제머나이가의 별채에 잘 모셔두었다.
집으로 돌아가서 마력 표본을 추출해 역장을 분석한 뒤 오늘 새로이 습득한 개념을 적용해 볼 생각이다.
“타카쇼나 만나러 갈까?”
어차피 쌍둥이와 샤론도 한창 공부 중이겠다.
전에 못다 푼 회포를 풀기 위해 좌표이동식을 사용해 레노먼드 타운의 말쿠트 갤러리까지 이동했다.
“윽.”
역시 시간이 시간인지라 저번에 왔을 때보다 사람이 많다.
행여 마녀의 눈길에 닿을까 몸을 잔뜩 웅크린 시우는 빠른 걸음으로 타카쇼의 호스트바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동시에 좌우로 6명씩 도열한 12명의 꽃미남이 환한 웃음과 함께 반겨준다.
말쑥한 정장을 차려입은 각기 다른 미남의 환대는 실로 닭살이 돋는 광경이었다.
아무래도 문을 열고 들어오기만 한다면 이런 식으로 환영해주는 모양인데….
“어? 신시우 씨.”
시우가 당황하고 있는 사이 그중에서도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맨 처음 호스트바를 찾아왔을 때 타카쇼에게 안내해주었던 폴이라는 금발남이었다.
“손님이 아니라 미안해요. 타카쇼 만나러 왔는데 지금 시간 되나요?”
게헨나는 확실히 이런 것이 불편하다.
현세였더라면 문자 하나 전화 한 통 날리고 물어보면 됐을 텐데.
한참 영업 중인걸 보니 아마 헛걸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게 된다면 영업이 끝날 때까지 조금 기다릴 생각이다.
달리 약속도 없고 말이지.
“네, 괜찮습니다. 지금 마침 사무실에 계시거든요.”
예상과는 달리 폴은 시원하게 시우를 안에 들여주었다.
정문을 거치고 중문을 거치자 살롱처럼 꾸며진 바 내부가 보였다.
오픈타임이 아니라 그런지 어질러져 있지도 않고 나뒹굴던 나무 상자 따위도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있다.
한결 정돈된 듯한 가게와 마치 밤이라도 된 것 같은 낭만적인 분위기는 ‘진짜 잘 만들었네’라는 생각을 절로 들게 했다.
그러나 가장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으니….
고개를 갸웃거리는 시우를 보고 눈치를 챘는지 폴이 먼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건넸다.
“손님이 없죠?”
그렇다.
시우가 의아하게 생각했던 이유는 이 넓은 영업장, 게다가 입구에만 사람 12명을 세워두는 호스트바에 손님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시각은 3시.
뭐, 술집을 운영하기에는 부적절한 시간이긴 하다.
근데 그건 일반적인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장사 얘기고 여긴 게헨나다. 이 호스트바의 주 고객은 마녀고.
대부분의 마녀는 제대로 된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출퇴근 시간을 엄수해야하는 입장도 아니다.
이렇게 좋은 날씨의 오후는 인근의 카페나 술집이 마녀로 가득 차는 나름대로 골든타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 명 두 명 앉아있는 것도 아니고 아예 텅텅 비어 있다니….
“오늘 유독 없는 건가요?”
“사실 거의 항상 이렇습니다. 임시개장한 지 한 달이 훌쩍 넘었는데도요.”
“네?”
시우는 깜짝 놀랐다.
저번에 타카쇼를 봤을 때는 마냥 성공했다고만 생각했다.
그 좋은 재주와 적응력을 살려서 자수성가에 성공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자세한 정황을 물은 결과 타카쇼 아도나이 백작의 돈을 빌려 사업을 벌인 것이었고 흑자를 내기 위해 노력하는 상태였다.
그런데 신규 오픈한 업장이 한 달 넘게 이 모양이라고?
“자세히 좀 말해주세요.”
가벼이 여길 사안이 아님을 짐작했다.
단순히 사업의 성패가 아니라 타카쇼의 목숨이 걸린 일이다.
왜 진작에 사실대로 말하고 부탁하지 않았던 걸까?
폴은 잠깐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 저희는 모두 타카쇼 형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공노예라고는 하지만 이런 곳에 잡혀와 인생 낭비할 뻔했던 생활을 청산해 주셨으니까요. 교육도 손수 해주시고… 적어도 따뜻한 밥과 숙소, 그리고 어느 정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습니까?”
“그렇겠네요.”
“그런데… 사실 매장의 매출이 전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매주 적자만 늘고 있어요. 손님이 없으니까 술을 팔 수가 없는데 유지비는 유지비대로 나오는 판국에, 매주 정량 매입을 약속한 술값까지 쌓이고 있습니다요.
저희도 밤에는 아케이드로 나서서 잡일하고 봉급도 받지 않으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수 있을지….”
시우는 다시 한번 바 내부를 눈으로 훑었다.
쇼케이스에 진열된 술, 가구부터 융단까지.
마녀를 대상으로 장사를 예정했기 때문인지 하나 같이 호화품이다.
호스트바의 직원들이 잡일을 하며 벌어들이는 수익을 전부 모아도 저 그림 한 장 감당하기 어려울 성싶었다.
“여어, 시우. 왔냐?”
미리 얘기를 들었는지 마중을 나온 타카쇼가 해맑은 얼굴로 손을 흔들고 있다.
하지만 심각한 표정을 짓는 시우를 보고 곧장 웃음이 가셨다.
한숨을 푸욱 쉬더니 내려온다.
“에이씨, 얌마 폴. 너 이 친구한테 쓸데없는 소리했지?”
“죄송합니다. 형님… 이분이 마녀님들과 가깝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저희야 사업이 망하면 원래 근무지로 복귀하면 된다지만… 형님은 아니지 않습니까.”
“됐어 짜식아, 돌아가서 일 봐.”
타카쇼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걱정하는 폴의 뒤통수를 툭 치고 입맛을 다셨다.
씁쓸한 표정으로 수염을 매만지며 시우를 바라본다.
“하아, 너한테는 이런 꼬락서니 보여주긴 싫었는데 말이지.”
“정말이냐?”
“뭐가.”
“영업 많이 어렵다면서?”
한참을 고민하던 타카쇼는 소파에 털썩 앉으며 시인했다.
입맛이 쓴지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쓰읍, 후우….”
앞에 마주 앉은 시우를 두고 담배 한 대를 필터까지 피우며 침묵을 지키던 타카쇼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 뭐냐. 사실 그렇게 상황이 좋진 않다. 어렵다고까지는 못하겠는데, 아니다. 어려워 그것도 상당히.”
제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해도 솔직하게 힘든 일을 털어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겉으로는 번지르르한 모습을 보이면서 고충을 털어놓아야 하는 것은 괜스레 꺼려지는 것이다.
“아직 가오픈 단계라고 생각하고 나름대로 잘 꾸려나가려고 해봤는데….”
“…….”
“세상일이라는 게 마냥 잘 풀리지는 않더라고.”
타카쇼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웃었지만 시우는 마음이 불편했다.
5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친구다.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당연한 것이다.
“정확히 뭐가 문젠데.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거야.”
“일단 자리를 좀 옮길까? 여기는 애들이 들을 수도 있으니까.”
“알겠어.”
시우는 화려한 양복을 걸친 타카쇼의 뒤를 따라 사장실로 향했다.
EP.320 #71_게헨나의 호스트바(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