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310화 (310/917)

#310

1.

시우는 엘로아의 손목을 교차시켜 머리 위로 올려 버렸다.

그의 손길을 막아서던 엘로아의 두 손목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가볍게 제압당했다.

둘 다 서 있음에도 두 사람 간에 공간이 거의 없는 밀착감.

부드러운 입술이 겹치며 알코올의 향취와 탁한 담배 연기가 체취에 섞여 엘로아의 들숨을 한껏 채웠다.

“흐읍… 읍….”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두 입술은 분명 굳게 다물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엘로아의 윗입술을 애무하던 시우가 슬며시 고개를 틀자 그 안으로 말캉하고 부드러운 혀가 밀고 들어왔다.

더욱 놀라운 점은 어금니를 깨지도록 물고 있던 엘로아의 잇새가 마술처럼 벌어졌다는 것이었다.

조그마한 입을 가득 채울 기세로 들이닥친 혀가 뱀처럼 끈끈하게 얽혀 왔다.

“츄웁…웁…후음…”

끈적하고도 관능적인 음색 속에 섞이는 타액.

거칠어진 두 사람의 콧바람이 색색 얼굴을 간질인다.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 사이에서, 그의 무릎의 존재감이 점점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손은 결박당하고, 함부로 손대선 안 될 은밀한 곳까지 그의 신체가 들이밀어 지고, 그의 입이 사탕처럼 엘로아의 혀를 빨아대자.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엘로아가 처음으로 시우에게 안겼던 날.

그 뜨거운 기억을.

시간이 지나도 전혀 빛바래지 않는 경험, 마녀 이전에 한 명의 ‘여자’로서의 본능은 엘로아의 몸을 달아오르게 만들고 있었다.

온종일 달려도 지치지 않는 심폐기가 오작동한 것처럼 가빠진다.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간 나머지 엘로아는 체중의 절반은 벽에, 나머지 절반은 시우의 무릎에 기대고 있었다.

박제 당한 나비처럼 꼼짝도 할 수 없다.

“푸하… 하아…하아….”

영겁과도 같았던 키스가 끝났다.

엘로아의 입안을 제 것처럼 침입하던, 그녀의 작은 혀를 사탕처럼 빨아들이던 시우의 입술이 멀어진다.

더 하고 싶다.

모든 사유를 제치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짙은 아쉬움.

그리고 시우와 거리가 벌어졌다는 안타까움.

그 뒤를 이어 엘로아의 상식과 의식이 죄악감과 배덕감을 자극한다.

“이러면… 안 되네….”

거짓말.

말로만 안 된다고 하면서 정작 시우에게 어떠한 제지도 가하지 않고 있다.

“이러고 싶지 않네…. 부디 놔주게….”

이것도 거짓말.

실은 계속 잡아주었으면 한다.

놓지 않고 껴안아 주었으면 한다.

엘로아는 가까스로 시우에게 잡혀있던 손목을 빼냈다.

눈도 똑바로 마주치지 못한 상태로 도망칠 곳을 찾는다.

모르는 척 넘어가 버리기엔, 마음속 외침을 고스란히 따르기엔, 엘로아는 너무도 혼란스러웠다.

엘로아는 완전히 힘이 풀린 다리에 간신히 힘을 줘 몸을 지탱하고 시우의 그림자 안에서 빠져나왔다.

흐트러진 옷을 정리하며 되뇐다.

잘했다 티페레트.

잘 거절했다.

나약해지려는, 타협하려는 내면의 외침을 무시하고 엄격한 목소리로 돌아온 엘로아.

“…만약 그대가 나의 도움을 원한다면 기꺼이 그대의 힘이 될 것이야.”

절망과 비탄에 빠졌던 엘로아를 어둠 속에서 구해주고 힘이 되어 준 시우.

“그대가 나의 생명을 원할지라도 아낌없이 줄 것이야.”

그를 위해서라면 남을 삶을 초개처럼 던질 수 있을 정도로 엘로아는 시우를 사랑했다.

“그러나 아무리 그대라도 허락할 수 없는 것이 있네.”

“스승님….”

“시우, 다시는 내게 이러지 말아 주게나….”

하지만 그를 진정 사랑한다면 잘못된 길로 빠졌을 때 바로 잡아주어야 할 사람도 필요한 법이다.

이 거절은 엘로아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사랑하는 제자 시우가 천륜을 져버리지 않게끔 취한 행동이었다.

“스승님.”

시우는 조심스레 다가왔다.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더니 엘로아의 눈가를 훔쳐주었다.

“울지 마세요.”

“어…?”

엘로아는 그제야 자신이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꽉 깨문 입술에서 얼얼한 통증이 뒤늦게 피어오른다.

엘로아는 괘종시계 옆에 있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매끈한 거울에 비친 자화상.

마치 다시는 얻을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을 제 손으로 팽개친 것처럼.

한없이 슬프고 나약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럴 리 없다.

오늘 밤이 지나면 다시 엘로아는 스승으로, 시우는 소중한 제자로 돌아갈 것이다.

올바른 관계를 형성했다.

엘로아는 바라마지 않는 것을 이루었다.

자화자찬을 해도 모자랄 판국에 저 볼품 없고 초라한 몰골은 무엇인가?

“스승님도 아시잖아요.”

그런 엘로아를 다시금 덮는 넓은 시우의 품.

시우가 엘로아를 껴안은 것이다.

“모른척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요.”

황량하게까지 느껴졌던 허탈함과 상실감이 고작 포옹만으로 채워지는 것 같다.

간신히 갈아 닦은 의지와 마음도 힘없이 허물어진다.

“욱…훌쩍…. 그대는 비겁하네….”

그것이 너무 비겁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열심히 버티고 물러서려고 하는데 고작 한 번의 포옹만으로 모래성처럼 의지가 꺾인다.

“제가 너무 배려가 부족했었나 봐요. 죄송해요.”

“아니라네, 그대가… 죄송할 일은… 훌쩍… 아니네….”

빗물 터널에서의 성교 이후 깔끔하게 선을 긋고 시우를 제자로서만 대했다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건 모두 엘로아 자신이 나약한 탓이다.

스스로 심지가 굳세었더라면 애초에 이런 난감한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시우에게 여지를 남겼다.

따라서 시우는 제 스승인 엘로아를 여자로 인식하고 오늘 일이 벌어지게 됐다.

자기 자신에게도 여지를 남겼다.

그녀 역시 시우를 제자가 아닌 남성으로 인식했고, 그에게 고백하기도 힘든 여러 과오를 저질렀다.

둘 중 누구의 과실이 더 크냐고 묻는다면 스스럼없이 자신의 실수를 들 것이다.

스승이란 제자보다 한 발 더 앞서서 이끄는 사람.

엘로아가 그 책임을 망각한 시점부터 시우를 탓할 권리가 없다.

지금, 이 순간조차도 모든 책임과 의무를 내던지고 싶었으니.

“시우, 술을 가져다주겠나?”

엘로아는 자리에 앉았다.

시우는 엘로아의 눈물을 마저 꼼꼼하게 닦아주고는 미니 바에서 새로운 술을 꺼내와 잔에 따르려 했다.

“아니, 따로 따를 필요 없네.”

“네?”

엘로아는 시우의 손에 들린 병을 잡았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그것을 벌컥벌컥 마신다.

시우가 가져온 술은 독하디독한 위스키였다.

상온에 보관되어 서늘한 목 넘김과 함께 배 안에서는 타닥타닥 불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스승님? 뭐 하시는 건가요!”

시우는 식겁하며 42도짜리 위스키로 병나발을 부는 엘로아의 술병을 빼앗았다.

그러나 벌써 절반가량이 엘로아의 뱃속으로 사라졌다.

엘로아는 휘청하며 입가에 흐른 술을 닦았다.

걱정스러운 표정과 함께 부축하려 드는 시우의 팔을 쳐낸다.

“시우.”

실은 알고 있다.

자신이 원하고 바라왔던 것.

애써 눈 돌려 외면하려 했던 것.

아니라고 부정하고 거부했던 것.

모두 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네, 스승님.”

알고 있다.

내일 동이 트면 이 선택을 후회하리라는 것을.

어쩌면 다시는 예전의 관계로 돌아가지 못하리라는 것도.

제대로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것은 충동이 아니다.

한순간의 욕망에 져버린 것도 아니다.

엘로아 티페레트가 오랫동안 품어왔던 소중하고 위험한, 달콤한 독과 같은 진심이다.

“나는, 지금 몹시 취하여. 제정신이 아니라네.”

엘로아는 그리 말하며 마차의 소파 위에 앉았다.

손을 뒤로 넘겨 허리의 매듭을 풀고 양어깨의 끈을 풀었다.

하얀 드레스가 흘러내리며 엘로아의 백도 같은 가슴이 드러났다.

잘 익은 과실의 그림자가 드리운 매끈하고 군살 하나 없는 복부도 드러났다.

“그대가 옆에 와서 나를 안아 준다 한들, 분명 꿈이라 착각하고 받아 들일 테지.”

그것은 모든 것을 허락한다는 의미였다.

“날이 밝으면 모조리 잊어버릴 걸세. 잊어버렸다는 기억마저 잊어버릴 것이 분명하다네.”

동시에 오늘 일어난 모든 일을 오늘 밤에 묻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시우는 침을 삼켰다.

주홍빛 조명 아래서 빛나는 엘로아의 굴곡.

톡 건드리면 와르르 눈물을 쏟을 것 같은 눈망울이 이성을 마비시키는 것 같았다.

엘로아는 조용히 반쯤 벗겨진 드레스를 발밑으로 빼냈다.

팬티 한 장만 걸치게 된 엘로아가 시우를 바라보았다.

옷을 벗어 던지자 시우의 시선이 순식간에 몸 곳곳을 휘감는다.

“그대라면….”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는 부끄러움.

드디어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해방감.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버렸다는 죄악감.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두려움.

내일이면 이 모든 일을 없던 것으로 해야 한다는 슬픔.

형형색색의 감정이 블렌딩 되어 머리를 떠돌았다.

춤추듯 일렁이는 불꽃처럼 문장으로 묘사하기에는 복잡한 감정이지만, 무척이나 정열적이고 또 몽환적이었다.

“그대라면, 이런 나를 어떻게 할 것인가?”

엘로아는 눈을 감았다.

시우의 인기척이, 발소리가 가까워질 때마다 엘로아의 어깨는 흠칫흠칫 떨렸다.

무섭다.

두렵다.

지금이라도 도망치고 싶다.

그런 엘로아의 등 뒤를 시우의 손이 파고든다.

그것이 기쁘면서도 또다시 두렵다.

“저라면 침대로 먼저 모실 것 같네요. 그리고…”

시우의 다정한 음색과 함께.

엘로아는 자신의 몸이 붕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시우는 엘로아의 오금과 등에 팔을 대고 번쩍 들어 올린 것이다.

침실 문을 열고 침대 위로 엘로아를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손가락을 튕기자 곳곳에 있던 장식불 랜턴이 마력 패턴에 화답해 화르륵 피어난다.

어두운 곳으로 이동하며 작게 안심했던 엘로아는 갑자기 밟아진 조명에 가슴과 얼굴을 가렸다.

“부끄러워하시는 스승님의 몸에 키스할 것 같습니다.”

시우의 몸이 엘로아의 위를 덮는다.

그녀의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가느다란 목덜미에 입술을 박았다.

“하앗…!”

엘로아는 전기충격을 당한 것처럼 펄떡 뛰었다.

술기운과는 별개로 아찔한 관능이 전신을 휘감았기 때문이다.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사라졌다.

시우는 천천히 엘로아의 목선을 타고 내려오며 전신에 키스를 퍼부었다.

곧게 뻗은 쇄골과 가슴골을 거쳐 아까부터 꿈틀거리는 복부, 앙증맞은 배꼽.

“하앙…흐읏…읏…!”

분명 성감대는 아니다.

시우는 의도적으로 성감대를 피해 키스하고 있었다.

다른 순간, 다른 방법으로 자극했다면 그저 간지러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을 그런 부위일 뿐인데.

시우는 자지러지듯 몸을 꿈틀거리는 엘로아를 찍어 누른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키스를 퍼부었다.

옆구리, 하얀 팬티를 마치 대교처럼 떠받드는 치골, 허벅지 위, 무릎, 정강이, 발등.

그리고 엘로아의 앙증맞은 발가락까지 혀로 천천히 기어 내려온다.

“시, 시우… 거긴… 거긴 더럽네… 하앙….”

시우가 발가락 하나하나를 청소하듯 입에 넣고 빨아들이자 참다못한 엘로아가 그를 만류했다.

부끄럽다.

따로 씻지도 않은 곳이다.

냄새가 날까 두렵고, 또 그런 하찮은 부위까지 애무받고 있다는 것에서 정말 사랑받고 있다는 실감이 피어난다.

“스승님 몸에 더러운 부분 같은 건 없어요.”

이런 대사까지 들어버렸으니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긴 채 몸을 간헐적으로 움찔거릴 수밖에 없었다.

EP.313 #70_사랑보다 먼 제자보다는 가까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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