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307화 (307/917)

#307

1.

-치이이이익!

뜨거운 숯불을 품은 바비큐 그릴.

그 위로 2.5cm 황금비율로 벌집을 낸 두툼한 삼겹살이 얹어진다.

쌍둥이네서 챙겨 온 아이스박스에는 송아지 고기, 양고기 다 쳐내고 삼겹살만 든든하게 차 있었다.

그것도 거의 5kg 가까이.

게헨나에서 구하기 힘든 각종 쌈 채소와 쌈장 등의 양념장을 함께 넣어온 걸 보면 아무래도 현세에서 먹었던 것이 썩 입맛에 맞았던 모양이다.

“꿀꺽….”

“꿀꺽….”

“꿀꺽….”

오딜과 오데트 그리고 샤론은 포크와 나이프를 양손에 굳게 쥔 채 나란히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초롱초롱 빛나는 눈길은 시우가 굽는 중인 바비큐에 락온이 되어 한 시도 떨어지지 않고 있다.

원래 맛있는 음식이란 사람들의 관계에 부드러운 윤활제를 칠하는 법이다.

괜히 회담이나 맞선처럼 중요한 자리를 밥 먹으면서 하는 게 아니지.

은은한 신경전이 벌어지던 샤론과 쌍둥이도 지금만큼은 한마음으로 고기가 배급되길 기다리고 있다.

아까의 심각했던 분위기는 펄펄 뛰는 샤론의 등장으로 깨지고 네 사람은 함께 즐거운 해변의 여가를 만끽했다.

마법으로 모래를 쌓아서 어마어마한 규모의 모래성을 쌓기도 하고.

짠 바닷물을 잔뜩 마시며 함께 수영대결을 하기도 했다.

시우도 모처럼 휴가를 망치고 싶지 않아 신나게 분위기를 띄웠기에 이 자리에 모인 네 사람은 잔뜩 굶주린 상태였다.

그리하여 푸르디푸르던 수평선을 불태우는 석양을 바라보며 휴가의 꽃, 바비큐 파티를 시작한 것이다.

-치이이이익!

뭔가를 쑥덕거리며 대화하던 쌍둥이도 간간이 끼어들던 샤론도 모두 조용해진 채 오케스트라 연주보다 아름다운 비계가 익어가는 소리에 귀 기울였다.

“츄릅….”

감미로운 고기 냄새가 공복을 찡하게 울리자 살짝 벌어진 오데트의 입가에 침이 흐른다.

“이 정도면 됐나?”

“조수님 충분해. 이제 그만 구워도 될 것 같아. 내가 봐도 다 익었다.”

“원래 고기는 미디엄 레어로 먹는 게 제일 맛있는 거예요.”

쌍둥이의 재촉을 들으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삼겹살을 도마에 올려 썰었다.

뭔가 미인 셋이 보고 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먼저 고기를 굽겠다고 호언장담을 해둬서 그런가.

불 조절이 어려운 바비큐 임에도 기가 막힌 비주얼이 나왔다.

“이야, 잘 구워졌네요.”

노릇하고 바삭하게 변한 겉면.

익은 돼지고기 특유의 향과 허브 시즈닝 냄새가 섞여 벌써 입에 침이 고인다.

어찌나 잘 익었는지 칼을 대자 바사삭하고 쿠키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칼이 부드럽게 들어가자마자 촉촉하게 도마를 적시는 육즙.

뽀얗고 기름진 절단면이 요망하고 음탕하기 짝이 없다.

시우는 접시에 고기를 예쁘게 담아서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자, 대령입니다~”

“우아아아!”

“맛있어 보여요!”

손뼉을 치며 환호하는 쌍둥이.

그 사이 샤론은 함께 챙겨 온 상추에 쌈을 싸서 시우의 입에 쏙 넣어주었다.

“시우야, 굽느라 고생했으니까 먼저 한 입.”

“움, 고마워.”

오랜 기다림에 몸이 달아 신나게 삼겹살을 집어 먹던 쌍둥이가 그 광경을 보고는 그대로 우뚝 굳었다.

대선 탈락한 정치인의 표정이었다.

샤론이 자연스럽게 시우를 먼저 챙기는 동안 본인들은 제 입으로 고기를 넣기 바빴다니.

당연하다는 듯한 배려.

언제나 떠받들어지며 살아왔던 쌍둥이에게는 조금 미흡한 부분이었다.

쌍둥이는 입에 있는 고기를 우물우물 씹으면서 빛살 같은 속도로 쌈을 싸기 시작했다.

근데 한국 생활 10년을 경험했던 샤론에 비해 그 모양새가 뭔가 어설프다.

접시에 상추를 놓고 거의 종이접기 하듯 고기를 듬뿍, 아주 듬뿍 넣고 싸더니 제대로 모양이 살지 않자 아예 샌드위치처럼 상추 한 장을 더 덮어 버렸다.

“조수님 아~”

“조수님 저희도 만들었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쌈은 쌍둥이의 주먹보다도 컸다.

시우는 코밑 바짝 들이밀어 진 초대형 쌈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큰 건 안 들어갈 것 같은데요?”

“아냐, 나도 안 들어갈 줄 알았는데 다 들어갔었어.”

“맞아요! 겉보기엔 안될 것 같아도 어떻게 어떻게 하면 된다구요!”

뭔가 진땀 나는 드립인데 이거.

결국 턱이 빠지라 입을 벌려 쌍둥이의 쌈을 차례로 받아들인 시우는 우물거리면서 고기를 추가로 구우러 갔다.

그렇게 챙겨 온 술도 마시고 삼겹살도 먹고 같이 구운 버섯도 먹고 하다 보니 어느덧 해가 바다 너머로 완전히 넘어가 있었다.

완연한 바닷가의 밤이 되고 술도 적당히 들어가니 적당히 흥청망청하는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하나 둘 셋. 하낫 둘 셋!”

“둘 둘 셋, 둘 둘 셋!”

“오데트! 자꾸 발 밟지 마!”

“언니가 너무 세게 당기잖아!”

오딜과 오데트는 장기자랑을 하겠다고 나서더니 서로 손을 마주 잡은 채 왈츠를 추었다.

이 모래사장이 무도회장이 된 것 같은 너울너울한 춤사위였으나 아무래도 취했기 때문인지 오데트가 비틀거려 결국엔 이상한 댄스가 되었다.

샤론과 시우는 그 귀여운 모습을 보며 얼굴이 빨개질 때까지 웃었다.

“자, 이 병을 보세요. 분명 단단히 잠겨 있죠? 제가 손을 안 대고 열어볼게요.”

시우는 술자리에서 선보일 수 있는 간단한 마술로 쌍둥이의 눈이 휘둥그레지게 만들었다.

“세상에!”

“마력도 안 쓰고 마법이라니… 이건 혁신이에요!”

“조수님! 나도 가르쳐 줘! 어떻게 한 거야?”

쌍둥이는 입을 틀어막고 경악하다가 시우에게 매달려 비결을 물었다.

원래 마술의 재미는 비법을 공개하지 않는 것인 만큼 끝끝내 감추려던 시우였지만 결국 밑천까지 탈탈 털리고 말았다.

쌍둥이의 호기심은 역시 이길 것이 못 된다.

“이제 내 차례네? 큼큼, 못 불러도 놀리면 안 된다?”

샤론은 멋진 노래를 한 소절 뽑아내며 분위기를 돋웠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모닥불 옆에서 수저를 병에 꽂고 가요를 부르는 샤론은 요정처럼 빛나 보였다.

그렇게 제각기 장기를 뽐내고 난 뒤에는 잠깐 소강상태.

낮에는 물놀이하랴, 저녁에는 정신없이 먹고 마시고 오리엔테이션 시간을 가졌던지라 잠깐 숨 돌릴 시간이 필요했다.

네 사람은 자리를 옮겨 멋진 밤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별장 거실에 술자리를 폈다.

아무래도 밖은 벌레들이 너무 달려들더라고.

“난 잠깐 담배 좀 피우고 올게. 오딜 님 오데트 님 사고 안 치게 잘 돌봐 주세요.”

시우는 흥청거리는 분위기를 뒤로 하고 밖으로 나섰다.

조금은 쌀쌀한 바닷바람이 뺨을 간질이면서 머리에 열이 조금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즐겁네.”

크게 걱정할 것이 없는 일상.

생전 한번 묵을까 말까 했던 해변에 근사한 저택에서 보내는 휴가.

거기에 귀여움만으로 세상을 정복할 수 있는 쌍둥이와 현모양처 샤론까지 있다.

스승님도 오셨다면 한결 즐거웠을 텐데.

내심 엘로아의 수영복 차림이 보고 싶기도 하고 말이다.

이런 일상이 영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도 욕심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샤론과 쌍둥이 모두와 함께 즐겁게 지낼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시우의 물렁하고 애매한 행보를 전제로 성립하는 것이다.

만약 시우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면….

지금 같은 장면은 다시 보기 힘들지 않을까?

“후우….”

그렇다면 시우가 일부다처제라는 유고하고 좋은 풍습을 받아들이면 어떻게 될까?

세 여자를 모두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고 가정해도, 그것이 공리적으로 바르다고 최대한 합리화를 한다고 해도…

“내가 그럴 자격은 있는 건가?”

…이런 의문이 든다.

일단 넘겨두고 조금 더 망상을 해보자.

샤론은 돌아와만 준다면, 곁에만 있어 준다면 누굴 만나도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쌍둥이가 그것을 받아들일까?

이곳은 마녀의 도시, 게헨나.

마녀들 사이에서는 낙인을 받을 수도 품을 수도 없는 남성이 은근히 멸시되는 풍조가 있었다.

실제로 마녀 중에서도 레즈비언이나 양성애자가 압도적으로 많지 않은가?

그런데 오딜과 오데트는 무려 제머나이 백작가라는 정통 마녀 가문에서 게헨나의 풍조를 쑥쑥 빨아들이며 자란 온실 속 화초다.

실제로 시우가 조금 거부감을 느끼는 낙인 계승의 시스템을 쌍둥이는 아주 당연시하고 있다.

‘저희 그냥 4P 관계로 지낼까요?’라고 말을 꺼내기도 힘들고, 반응도 전혀 예상되지 않는 것이다.

현세에서 처음으로 대등한 관계로 만나 동고동락했던 샤론.

비록 목숨을 구해줬다고는 하지만 노예에겐 분에 넘칠 정도의 애정을 쏟아 준 쌍둥이.

모두 소중하다.

“하아….”

이럴 땐 타카쇼가 부럽다.

아주 잘 해결해 나갔을 것 같은데.

길고 긴 담배 연기가 잇새로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

그때.

시우는 등골이 저릿할 정도의 오한을 느꼈다.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느껴지는 것은 분위기다.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깊은 심해 그 한가운데로 던져져 한없이 찌그러져 버릴 것 같은 압도적인 마력의 자취.

아무런 적의도 악의도 감지되지 않지만 그저 옆에 있는 것만으로 위기감을 느끼게 하는 존재감.

시우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그것에는 한 여자가 있었다.

신관의 옷을 걸친 것처럼 노출이 전혀 없는 정숙한 마녀복.

첫눈처럼 새하얀 백발, 그 끝을 따라가다 보면 총천연색의 다양한 빛깔이 물들듯이 섞여 있다.

빽빽하고 성성한 속눈썹 아래에는 위엄 어린 금빛의 눈동자가 시우를 꿰뚫어 본다.

현묘한 눈동자는 현재를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와 동시에 미래와 과거마저 견지한다는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그저 아름답다.

하지만 그것은 미인을 보고 품는 감상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지구라는 행성조차도 작은 먼지로 만들어버리는 은하계를 볼 때처럼, 광활하고 거대한 것에 대한 예찬이자 경탄이다.

시우는 직감적으로 상대가 누구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모든 마녀 위에 군림하는 최고(最古)이자 최고(最高)의 마녀.

30 위계라는 마경(魔境)을 홀로 밟아선 케테르 공작.

그렇지 않고서야 설명할 수 없다.

한숨을 쉬는 것만으로 시우의 존재를 남김없이 지워버릴 것 같은 절대자의 기척을.

“오랜만이구나. 신시우.”

“…….”

눈을 깜빡일 수 없었다.

숨을 들이쉴 수도 내쉴 수도 없었다.

그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인 마녀들이 두려워하고 경배하는 이유를 단박에 깨닫는다.

“여(余)의 선물은 마음에 들었는가?”

케테르는 느릿한 걸음으로 시우의 옆에 다가왔다.

그것만으로 공간이 출렁이고 시간마저 부서지는 것 같다.

옆에 머무르는 것만으로 느껴지는 강렬한 마녀의 체취.

이성을 아득하게 만드는 강력한 충동이 심장을 폭발 직전 상태까지 몰아넣는다.

시우가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오직 본능에 내재한 공포감 덕이었다.

“일전에 두 명, 이후에 두 명. 총 넷인가?”

“…….”

“턱없이 부족하구나. 여의 ‘그릇’까지 하사해 주었거늘.”

케테르는 가느다란 손을 뻗어 시우의 안대 위를 더듬었다.

따뜻하고 부드럽다.

하지만 삼켜져 버릴 것 같은 공포심은 여전하다.

체취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은 성욕과 두려움 속에서 스스로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수밖에 없다.

“조금 더, 간섭해볼까?”

케테르는 싱긋 웃음을 짓고는 한 걸음 물러섰다.

금빛의 눈동자가 여명과 같은 빛을 품었다.

————!

시우의 시야 끄트머리에 걸려있는 어둠이 모서리부터 부서졌다.

조각난 밤하늘의 파편 사이로 눈이 멀 것만 같은 하얀 빛이 솟아나기 시작한다.

“경외(敬畏)하라.”

케테르가 원한다면 세계는.

기꺼이 부서지고.

또 창조된다.

눈이 멀 것 같은 백색의 어둠 앞에서 시우의 의식은 조각조각 부서지고 다시 재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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