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
1.
촉각을 한껏 곤두세운 엘로아가 고작 옆방의 소리를 엿듣는 것은 전혀 어려운 것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건 하나의 가정을 전제로 했다.
바로 시우가 오르골을 사용하지 않았을 때.
오딜에게서 받았다던 시우의 오르골은 훌륭한 차폐 성능을 지니고 있었다.
마력의 파장은 물론 인기척, 존재감, 소리마저 지워버리는 최첨단 스텔스 아티펙트.
게다가 조절도 어렵지 않아 그 범위와 강도도 손쉽게 설정할 수 있다.
‘흐음, 츄웁…’
‘이러려고 온 거야?’
‘아니야~ 그냥 이야기만 하러 온 건데…. 너가… 자꾸 음흉한 눈으로 쳐다보니까….’
어디서 대포가 터지는 것도 아니고 서로의 혀가 얽히는 소리.
옷자락과 침대의 시트가 비벼지는 소리.
대화하는 소리.
이 정도는 가리고자 하면 손쉽게 가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엘로아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오르골이 장벽을 만들어내 기척을 차단한다 한들 엘로아가 그 범위 안에 포함되어있다면 효과가 없다.
그러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엘로아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역장이 없다.
옆방의 티페레트가 있다며 걱정하던 샤론을 오르골이 작동중이라며 안심시키던 시우의 말과 달리.
애초에 오르골은 기동하고 있지 않다.
“…아.”
유리공예가 날카롭게 산산이 조각나는 소리가 마음속에서 들려온 것 같았다.
곧장 흩어져있던 잔해가 제 짝을 찾아 조립된다.
어제저녁부터 오늘까지 있던 일련의 단서가 퍼즐처럼 끼워 맞춰졌다.
엘로아가 엿보는 것을 알면서도 샤론과의 성교를 멈추지 않았던, 멈추기는커녕 더욱 격렬하게 몸을 섞던 시우.
오늘 아침 깜짝 발언.
그리고 오르골도 없이, 하필이면 바로 옆방에서 보란 듯이 시작된 섹스.
복선과 타이밍 둘 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시우는 엘로아에게 다시 한번 샤론과의 성교를 보여주려고 하고 있다.
엘로아는 아연해졌다.
설마 그 성실한 시우에게 이런 뒷면이 있었을 줄이야.
지나친 성적 흥분으로 본 행위에 들어갔을 때 거칠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자.
하지만 엿들은 대화로 유추해 볼 때 지금 시우는 분명 맨정신이었다.
“설마….”
엘로아가 신경을 쓰는 듯하자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다시 이런 짓을 벌이는 걸까?
설령 그렇대도 정말 불필요한 배려이다.
차라리 빗물 터널에서의 성교 이후처럼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넘어가 주는 것이 훨씬 고마웠을 것이다.
“설마….”
아니면 정말….
믿고 싶지 않지만 정말로.
저런 특이한 성벽을 지니고 있고 거기에 자신을 어울리게 한 것일까?
오만가지 잡생각에 갈피를 못 잡고 발을 동동 구르는 사이.
옆방에서는 본격적인 행위가 시작되었다.
벽 한 장 너머에서 들려오는 격한 숨소리와 물소리.
살이 부딪치고 침대가 삐걱이는 소리.
의도는 도저히 알 수 없지만 시우가 엘로아에게 보여주려는 것들이 엘로아의 두 귀를 한가득 채운다.
“후….”
나가자.
더 있어서 좋을 것 없다.
또 내일은 확실히 시우를 훈계해야 할 것이다.
그런 건 그릇된 생각이라고, 다시는 이런 배려 필요 없다고도 의사를 밝힐 예정이다.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일들이 겹치고 겹쳐 흔들리기만 했다.
이제는 바로잡을 때가 됐다.
그렇게 엘로아의 마음은 벌써 방문을 벌컥 열고 의연한 발걸음으로 나갔을 텐데….
“…….”
엘로아는 물끄러미 소리가 들려오는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녀관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엘로아가 아니다.
시우는 그녀에게 하나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여자가 되는 기쁨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었다.
은밀한 비소에 뜨거운 키스를 퍼부어질 때 어떤 감정과 감각을 느끼는지.
허리가 잡혀 단단히 붙들린 채로 짐승처럼 박히는 것이 어떤 쾌감을 자아내는지.
가녀린 속살을 뜨거운 살덩이로 속속들이 파헤치며 끝내는 뜨거운 씨앗을 뿌려지는 것이 얼마나 황홀한 일인지.
비록 30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엘로아가 모르던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뒤에서는.
그 짧은 30분조차 하루도 떨쳐내지 못했던 행위가 펼쳐지고 있다.
그 소리가 여과 없이 들려오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들고 있다.
“아….”
엘로아는 탄식을 내뱉었다.
직접 눈으로 볼 때보다 더욱 상상력을 자극하는 아찔한 교성.
음란한 음어가 벽 뒤에서 들려온다.
순간 시우의 거친 팔이 허리를 단단히 붙잡는 것을 느꼈다.
그의 거친 호흡이 귓바퀴를 간질이는 것을 느꼈다.
당연하지만 환각이다.
엘로아는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몰래 도둑질을 한 것처럼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내일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라면….
오늘 하루 정도는 조금 느슨해져도 괜찮지 않을까?
시우가 원하는 대로 정사 장면을 지켜보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이미 쾌락의 달콤함을 깨달은 엘로아가 오랫동안 숨기기만 했던 욕정.
연이은 사건으로 인해 해제되어버린 정신무장.
그리고 실시간으로 오감을 자극하는 야릇한 소리는 완고한 엘로아가 타협을 떠올리게 했다.
딱 하루만.
딱 하루만 이 두근거림에.
일탈에 자신을 맡겨보는 건 어떨까?
오히려 애매한 상황 속에서 금욕만을 고집했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닐까?
엘로아의 눈이 슬며시 거실 테이블을 향한다.
스스로 쾌감을 얻는 방법이라면 이미 알고 있다.
도덕적 도의적 결벽으로 이미 자각해버린 욕구를 꼭꼭 숨기는 것보다 훨씬 간편하고 단순한 일이다.
생각해보면 나쁜 일도 아니지 않은가?
자위행위는 마녀들 사이에서도 보편적인 행위이다.
그렇게 부끄러워할 것도 불결하게 여길 것도 없다.
그렇게 자신을 다독이며 꾹 감은 엘로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오늘… 하루만이네… 하루만….”
내일부터는 확실하게 선을 그을 것이다.
티페레트는 신시우의 스승님.
신시우는 티페레트의 제자로.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다.
거실 테이블의 높이는 엘로아의 허리보다 아주 살짝 높은 수준이다.
물푸레나무로 만든 원목 테이블, 그 모서리는 오가며 다치지 않게끔 부드러운 곡선으로 라운딩 처리가 되어있다.
엘로아는 귀까지 울려대는 심장박동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다리를 아주 살짝 벌려 테이블 가장 자리에 섰다.
그리고 슬며시 치맛자락을 양손으로 들어 올렸다.
수수하고 장식 없는 순백의 팬티가 슬며시 공기 중에 드러난다.
“하아….”
이래선 안 된다는 끊임없는 결벽의 외침.
엘로아는 간신히 그것을 무시하고 둥그런 모서리 부위에 갈라진 슬릿을 가져다 대었다.
자연스럽게 음핵과 표피를 팬티 위로 압박하는 테이블.
꼬리뼈와 아랫배가 동시에 저릿해지는 감각에 엘로아는 눈을 크게 치켜떴다.
“흣…!”
그 감각은 뭐랄까.
몇 달간 간지러워도 손이 닿지 않아 긁지 못하던 부분을 누군가 시원하게 긁어준 것 같다.
압도적인 해방감과 황홀함.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저도 모르게 깡충 까치발을 서게 하는 그런 감각이다.
뭐든 시작이 가장 어려운 법이다.
그간 잔뜩 항진된 성욕을 애써 모른 척하며 눈 돌리려 했던 엘로아도 그 순간 절제라는 단어가 뇌리에서 지워지는 것을 느꼈다.
애초에 엘로아는 너무 많이, 그리고 너무 오래 참아왔던 것이다.
엘로아는 다시 천천히 모서리에 체중을 실었다.
딱딱하고 단단한 테이블이 꾹 엘로아의 민감한 부위를 압박한다.
“하아….”
탁한 엘로아의 호흡이 뜨겁게 가라앉았다.
시우와 했을 때와 비교하자면 전혀 다른 종류의 감각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쾌감이라는 것에서는 부정할 여지가 없었다.
엘로아는 치맛자락을 넓게 펼친 채 살살 허리를 앞뒤로 움직이며 모서리에 클리를 비볐다.
-찌걱 찌걱 찌걱 찌걱!
‘하아…! 하아…! 하아앙…!’
‘헉! 헉! 헉!’
바로 옆방에서는 미칠 듯이 삐걱이는 침대 소리와 동성이 들어도 뺨이 발그레해지는 샤론의 관능적인 교성.
그리고 시우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응…흥…응….”
천천히 허리를 앞으로 움직이던 엘로아는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기분 좋다.
너무 너무 기분 좋다.
치맛자락을 들고 있는 손에 힘이 풀려버릴 정도로.
높이를 맞추기 위해 살포시 들어 올린 까치발이 덜덜 떨릴 정도로.
참고, 참고, 또 참아왔던 욕정이 일제히 해방되는 기쁨은 손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세포가 하나하나 살아나는 것 같은 쾌락을 전달해주었다.
엘로아가 살면서 느껴온 성적 쾌감과 경험은 모두 시우와 연결되어 있었다.
게다가 라이브로 생생하게 교접음이 들려오니 엘로아가 시우를 떠올리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 이곳에 시우와 함께 있는 듯하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명목하에 해선 안 되는 짓을 하는 듯한 아찔한 배덕감.
덜덜 떨리며 벌어진 엘로아의 분홍빛 입술 사이로 탄식처럼 한 사람의 이름이 새어 나온다.
“하아…하아… 시우….”
엘로아는 제 입으로 말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지만 경악은 넘실거리며 밀려오는 쾌락에 진압당한다.
이상할 것 없다.
시우의 목소리가 들려오니 자연스럽게 그를 떠올리게 되었을 뿐이라고.
그렇게 여기며 허리를 조금씩 더 빠르게 튕기기 시작했다.
아예 손으로 테이블 가장자리를 단단히 짚고 거치적거리는 드레스 자락은 입으로 물었다.
삼각형으로 드리운 치맛자락의 그림자 아래서 엘로아의 배가 쾌락으로 단단히 뭉쳤다 풀리는 것을 반복했다.
‘시우야! 시우야…! 시우야…!’
아무리 오르골이 있다 하더라도 처음에는 옆방의 티페레트가 있다는 것을 의식한 것인지 숨죽여 소리를 내던 샤론.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커다랗게 변했다.
그만큼 절정에 가까워진 것이다.
자연스럽게 천박하게 찌걱이는 효과음도 시우의 숨도 거칠어진다.
“음…흐음…음…흐응…!”
엘로아도 그에 맞춰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팬티를 축축하게 적시다 못해 달팽이가 지나간 것처럼 코팅된 원목 위를 적시는 끈끈한 액체.
그것이 무엇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섬유와 민감한 점막이 애액을 윤활제 삼아 비벼지고 엘로아의 허리 놀림도 점점 음탕하게 변한다.
제 몸을 다루는 것이 능숙한 엘로아가 쾌락을 찾기 위해 추는 아름다운 춤사위였다.
‘안에… 안에 싸줘… 시우야…!’
샤론이 정액을 조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곧 시우가 사정할 것이다.
자궁구에 찰싹 달라붙은 커다란 귀두가 뜨거운 속살 깊이 뿜어내고 끈적하고 뜨거운 정액은 좁디좁은 질내를 한가득 채울 것이 분명하다.
엘로아에게 그랬듯이.
“흥…하응…으응…!”
엘로아는 한껏 신음을 억누르며 허리 움직임에 박차를 가했다.
-터엉!
‘히이이이익…!’
시우가 사정 시 발생시키는 막대한 마력의 파동이 엘로아의 전신을 휘감음과 동시에.
엘로아의 허리가 뒤로 뻣뻣이 펴졌다.
망측하고 꼴사납게도 움찔움찔 몸을 떨며 평소의 위엄이라는 한치도 찾아볼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몸에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저릿저릿한 절정의 여운.
천 개의 깃털 베개 감싸이는 듯 두둥실 몸이 떠오르는 감각과 함께.
샤론과 시우 그리고 엘로아는 동시에 절정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