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
1.
아멜리아가 클라라의 호의를 빌어 공방에서 휴식을 취한 것도 제법 시간이 흘렀다.
클라라는 첫인상과 달리 굉장히 섬세하고 세심한 마녀였다.
특별히 말을 걸어오거나 자세한 내막을 캐묻지 않으면서도 아멜리아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기울였다.
너무 부담스럽지 않게.
혹은 너무 신경 쓰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언제나 적당한 거리를 두고 말없이 곁을 지켰다.
한껏 지쳐 너덜너덜해졌던 아멜리아는 그런 작은 배려를 깨달을 때마다 조금씩 통증을 잊을 수 있었다.
우습게도 누군가 옆에 있어 준다는 것만으로, 그 사람에게 배려받는다는 실감만으로 콱 막혔던 숨통이 트이는 것이다.
“좋은 아침이야. 아멜리아.”
클라라는 주방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사실 이 공방에서 ‘주방’은 달리 이름을 붙이기엔 애매한 곳이었다.
마땅히 생활 공간과 분리되어 있지도 않고 특별히 더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지도 않다.
그저 화덕처럼 보이는 구멍과 화구처럼 보이는 구덩이를 안으로 들여놓았을 뿐이다.
하지만 아멜리아가 잠깐 몸을 씻는 동안 그새 조처를 한 것인지 고운 모래 같은 것이 말끔히 사라진 상태이다.
“조금만 기다려 줄래? 밥 만들고 있거든. 오랜만이라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보이는 모습대로 아멜리아를 위해 요리를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다.
사실 아멜리아는 무언갈 먹고 싶지도 않았고 요리는 더더욱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호의를 받는 처지에 하나하나 툴툴거릴 만큼 염치없지는 않다.
“…저도 거들게요.”
“노우노우! 그럴 필요 없어. 저기 앉아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곧 끝나가니까.”
“그래도.”
“괜찮아! 됐다니까.”
거듭된 만류에 어쩔 수 없이 테이블에 앉은 아멜리아.
클라라는 제 입에서 불을 피워올리며 손수 화구와 화덕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곧장 능숙한 솜씨로 웍에 기름을 달구더니 퐁당퐁당 뭘 넣는다.
용의 마녀라고 불리는 마녀가 강철마저 녹이는 불길을 뿜으며 요리하는 모습은 제법 익살스러웠다.
하지만 그것이 아멜리아의 얼굴에 미소를 띄워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클라라의 호의에 고마움을 품는 것과는 별개로 그녀가 왜 이렇게까지 자신에게 잘해주는지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들어왔던 소문으로는 만인에게 친절한 마녀라고는 하나 그 호의가 자신에게 향하자 낯설고 어색하다.
이 손은 이미 피로 물들어 있을 텐데.
씻을 수 없는 죄악과 돌이킬 수 없는 후회로 점칠 되었을 뿐인데.
“자, 완성!”
부정적인 감정은 본디 독처럼 스스로를 좀먹는다.
먹구름처럼 피어오른 우울함에 잠식되려던 아멜리아의 앞에 근사한 요리 세 접시가 놓였다.
클라라는 셰프가 자신작을 소개하는 것처럼 요리를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그녀가 아멜리아를 위해 손수 준비한 음식은 이 근방의 전통 요리였다.
먼저 동그랑땡을 기름에 튀긴 것 같은 비쥬얼의 음식.
“이건 팔라펠(Falafel)! 병아리콩이랑 이것저것 다른 콩을 갈아서 튀긴 거야. 옆에 있는 토마토소스에 찍어 먹으면 돼.”
그리고 속을 파내고 쌀을 채워 화덕에서 구운 새 요리.
“이건 하맘(Hamam)! 식용 비둘기 안에 쌀을 넣고 노릇노릇 구운 거야. 마찬가지로 토마토소스에 찍어 먹으면 돼!”
뭔가 함박스테이크스러운 음식.
“이건 코푸타(Kofta)! 양고기를 다지고 향신료를 듬뿍 넣어 만든 햄버그라고 생각하면 좋아. 이것도 마찬가지로 토마토소스에 찍어 먹으면 돼!”
그렇게 소개하고는 자리에 앉지도 않고 팔짱을 낀 채 반짝거리는 눈으로 아멜리아를 본다.
마치 한껏 칭찬해달라는 듯이 우쭐해져 있는 콧대가 눈에 들어왔다.
“고마워요.”
“그 말 말고 다른 말로 해줘.”
“…대단해요.”
아멜리아의 칭찬에 잔망스럽게 입꼬리를 올린 클라라는 그제야 자리에 앉고 접시와 포크 그리고 나이프를 주었다.
이어 손수 아멜리아의 앞접시에 음식을 덜어준다.
“많이 만들었으니까 눈치 보지 말고 먹어. 혹시 부족하면 말하고.”
며칠 만에 보는 정성이 담긴 요리들.
아멜리아는 물끄러미 그 다정한 온기가 담긴 접시를 바라보았다.
“왜….”
“응?”
“왜 저한테 이렇게까지 해주는 건가요?”
이런 따뜻함을 원했다.
그러나 원치 않았다.
기껏 세워 놓은 마음이 약해지고 꺾여질 것이 두렵다.
살생부의 이행을 완수하지 못하고 최악의 결말을 초래하는 것이 두렵다.
“내일 떠날 생각이에요.”
따라서 아멜리아는 또다시 혼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제껏 해왔던 것처럼 해 나가기로, 다른 누구의 온기에도 기대지 않고 홀로서기로 다짐하며 차갑고 냉정한 어조로 말한다.
지금까지 실컷 도움을 받아온 것치고는 역력한 거부의 표현이었다.
놀란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클라라.
최소한 언짢아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아멜리아가 예상했던 그 어떤 경우의 수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클라라는 활짝 웃으며 말한다.
아무런 타산도, 불편함이나 어색함도 느껴지지 않는 올곧은 미소였다.
“그럼 마침 잘됐네. 여행 전에 든든하게 먹으면 기분도 좋으니까.”
“…….”
아멜리아는 말없이 나이프를 들었다.
겉은 바삭하고 살은 부드러운 비둘기 고기가 소리도 없이 잘려 나간다.
그녀가 일러주었던 대로 토마토소스를 찍어 입으로 옮겼다.
“어때? 최고지?”
“…맛있어요.”
“더 먹어 더 먹어.”
게헨나를 나온 뒤 처음으로 먹는 요리는 무척이나 따뜻했고 또 다정했다.
2.
“흐음, 흐으음, 흐으으음….”
샤론은 흥겨운 콧노래를 부르며 강의실로 들어섰다.
지난 밤 시우와 함께 보낸 뜨거운 오후는 실로 행복했다.
앞으로 어떻게 시우에게 다가가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시우가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선택하면 어떡하지?’라는 고민조차 깔끔하게 날려버릴 정도로 말이다.
차오르는 자신감의 갑옷을 입은 샤론은 강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거친 전쟁을 연상케 했던 강의 시간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어디보자~”
하지만 쌍둥이의 견제 수단은 여전히 유효하다.
만약 알비레오 백작에게 쪼르륵 달려간 쌍둥이가 ‘스승님! 스승님! 샤론 언니가 약속 어기고 조수님이랑 섹스했어요!’라는 사실을 알리는 순간 어떤 국면이 펼쳐질지 모른다.
즉, 여전히 주의 정도는 기울여야 한다는 것.
너무 히죽히죽 웃고 있는 것은 아닌지.
행복함이 티 나는 것은 아닌지 유리창에 얼굴을 비쳐 본 샤론.
입이 거의 귀에 걸릴 것 같아서 표정 관리를 하고 정숙한 마녀복 차림을 다시금 정돈한다.
자, 평소처럼 평소처럼.
너무 들뜨지 않고 태연하게 쌍둥이를 마주하는 거다.
치사한 수작은 그쪽에서 먼저 부렸으니 이쪽도 비겁하게 가주마!
이런 포부를 품은 샤론은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벌컥!
“다들 숙제는 잘했니?”
“…….”
“…….”
여느 때와 같은 아담한 강의실에는 싸늘한 적막이 흘렀다.
농담이 아니라 문지방을 넘는 그 순간부터 온도가 5도 정도는 내려간 듯하다.
명백히 이상 현상이었다.
쌍둥이 시점에서 모든 사건을 볼 때.
둘은 샤론보다 먼저 시우를 마중 나갔고 뻔뻔하게 앞에서 키스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즉, 강력한 선제공격을 성공한 상태.
히죽히죽 웃고 있어도 이상할 것이 하나 없었던 것이다.
그때 샤론의 머리에 떠오르는 한 가지 생각.
그렇다면 자신도 좀 더 화난 표정을 지어야 했던 게 아닐까?
이 칠칠치 못하게 올라가는 입꼬리도 좀 더 아래로 내려놓고 말이다.
-꿀꺽
샤론은 침을 삼켰다.
“안녕하세요. 샤론 언니.”
“안녕하세요.”
“어, 그, 그래….”
하지만 샤론의 기우와는 다르게 쌍둥이는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
그것도 살포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이다.
다행히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것 같지는 않았다.
“과제 제출하렴. 이번 건 채점이 좀 오래 걸릴 것 같으니까 진도부터 나가자.”
“네, 샤론이 언니.”
“네, 샤론이 언니.”
“응?”
방금 뭔가 잘못 들은 것 같은데.
평소랑은 호칭이 뭔가 다른 기분이다.
샤론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쌍둥이의 과제를 접수하고 수업을 이어나갔다.
그리하여 오늘도 펼쳐진 무간연강지옥.
자리에 앉으면 5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손에서 펜을 뗄 수 없는 극한의 고문이다.
샤론이 칠판에 필기 내용을 가득 채우고 지우길 여러 차례 반복하는 동안 거의 폐사 직전까지 몰렸던 쌍둥이는 해 질 무렵이 되어서야 해방될 수 있었다.
-탁탁
샤론이 수업자료를 정리하자 푹 늘어지는 오딜과 오데트.
“푸하아….”
“흐아아….”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은 휴일이니까 과제는 넉넉하게 내줘도 되겠지?”
“잠깐만요! 샤론 언니!”
무자비한 강의에 이어 무자비한 샤론의 과제 선고가 끝나기 전.
오딜이 황급하게 끼어들었다.
“왜 그러니?”
“저, 저희 조수님이랑 휴일에 1박 2일로 해수욕하러 가려고 했는데요….”
“샤론 언니도 함께 가요!”
“해수욕?”
샤론은 미심쩍은 눈빛으로 쌍둥이를 바라보았다.
당연히 샤론에게 말도 하지 않고 시우를 데리고 떠날 줄 알았는데 갑자기 합동 여행 제안을 한다니.
만약 쌍둥이가 제안하지 않는다면 겉으로나마 계약을 준수 중인 샤론은 시우를 따라갈 명분이 없을 것이다.
적에게 소금을 보내는 꼴이었다.
“네! 푸른 협해 쪽에 저희 별장이 있거든요!”
“함께 가서 놀면 좋잖아요? 그러니까 이번에만 과제 안 내 주시면 안될까요?”
“복습 꼼꼼히 할게요!”
샤론이 숙제를 강요하면 쌍둥이는 눈물을 머금고 놀러 가서도 숙제에 매달려야 할 것이다.
단, 이 경우 샤론은 시우와 함께 바다에 갈 수 없겠지.
반대로 샤론이 과제를 패스해준다면 쌍둥이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또한 샤론 역시 쌍둥이의 제안을 받아 함께 놀러 갈 수 있다.
전자를 택하면 모두가 손해를 감수해야 하고, 후자를 택하면 다소 경쟁이 생기긴 하겠지만 상호이익이 된다.
아무런 타산 없이 나온 계획은 아니었기에 도리어 신용이 갔다.
“그래?”
“제발요! 조수님이랑 처음으로 가는 바다란 말이에요!”
“저두 부탁드릴게요!”
푸른 협해는 보더 타운의 끄트머리와 타로타운 사이에 있는 그다지 넓지 않은 바다이다.
하지만 오염되지 않은 모래사장과 푸른 에메랄드 빛의 바다.
그리고 1년 내내 해수욕이 가능한 일품 휴양지 중 하나였다.
거기서 시우와 함께하는 물놀이.
그것도 어지간한 리조트 시설은 감히 견줄 수도 없는 제머나이의 별장에서?
상상만으로도 벌써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샤론은 긴장되는 표정을 짓고 있는 쌍둥이 앞에서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렇게 하자!”
“야호!”
펄쩍 공중제비를 뛸 기세로 날뛰는 쌍둥이.
그렇게 공생을 위한 적과의 동침이 성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