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301화 (301/917)

#301

1.

타카쇼는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된 시우의 팔목을 잡고 2층 사장실로 안내했다.

“이야! 내 소울 프렌드! 신시우! 좋아 보인다!”

문을 닫자마자 팔을 벌려 덥석 끌어안는 타카쇼.

진득한 향수 향기가 물씬 풍겨오면서 다소 당혹스러움이 가신다.

엄청 반가울 거라고 예상은 했는데 이렇게 변해 있는 모습을 보자 ‘오랜만에 봐서 좋다’보다는 ‘뭐가 어떻게 돼가는 거지?’ 싶은 당혹감이 앞섰다.

“너가 더 좋아 보이는데? 이게 뭐냐? 몰카 아니지?”

타카쇼는 쇼케이스에서 술과 술잔을 꺼내 들더니 시우와 자신의 잔에 나란히 따랐다.

와중에 번뜩이는 고급 시계는 덤이다.

“이 친구야, 내가 누구냐? 훗카이도의 남아, 쓰러지지 않는 육조칠층탑, 한때 카부키쵸를 주름 잡았던 NO.1 에이스 미마야 타카쇼다 이거야.”

소파에 털썩 앉아 경박한 웃음소리와 말투를 보면 이 남자가 타카쇼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항상 후줄근한 작업복을 걸치고 고추를 벅벅 긁고 있을 때와는 사람이 너무 달라 보인다.

솔직히 모르는 사람이 사진 보여주면서 직업이 뭐냐고 묻는다면 영앤리치 사업가라고 답했을 정도로 말이다.

“내가 요즘 자기 관리하느라 술은 안 하는데. 이렇게 친구가 왔으면 당연히 마셔야지. 한잔해. 이번에 새로 들여온 거야.”

짜식, 보기는 좋네.

내심 걱정하던 친구가 뭔가 잘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니 시우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흥겨운 분위기를 타 시우는 가방에서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좋네, 이거랑 같이 먹자.”

“이…이건…?”

성공한 사업자 포즈로 소파에 팔을 벌리고 앉아있던 타카쇼가 벌떡 일어난다.

시우가 준비한 비장의 무기 중 하나.

인스턴트 라면이다.

일반적인 라면은 아니다.

액상 스프를 활용해 현지의 돈코츠 육수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봉지에 6000원 가까이 하는 인스턴트 라멘인 것이다.

“너가 라멘 먹고 싶다, 라멘 먹고 싶다 노래를 부르던 게 생각나서 쟁여왔어. 한 50개 정도.”

“50개나…? 이…이치란 라멘…! 이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데…!”

타카쇼는 거의 바닥을 기어 다닐 기세로 우수수 떨어진 라멘을 끌어안았다.

꼭 비밀 마약 창고를 발견한 뽕쟁이 같다.

“시우야… 시우야… 타카쇼는 말이야… 시우가 친구라서 너무 좋아… 내가 옛날에 조센징이라고 불렀던 거 다 장난인 거 알지?”

눈물까지 글썽이며 도게자를 박는 타카쇼.

과연 본토의 도게자는 각부터 남다르다.

“어이 타카쇼, 일어나서 마저 보고 다시 절해라. 더 깍듯하게.”

“하잇! 고슈진사마! 왕왕!”

시우는 타카쇼 앞에서 가방 두 개를 와르르 비워 보였다.

거기서 떨어지는 물건은 감자칩, 타카쇼가 그립다고 했던 일본 담배, 착용감 좋은 속옷, 면도기와 교체용 칼날을 비롯해.

각종 일본산 인스턴트 식품, 즉석 사진기와 필름과 좋아한다던 배우의 화보 콜렉션까지.

시우도 게헨나에서 살았던 만큼 없으면 아쉬운 게 뭔지 잘 알았다.

필요하겠다 싶었던 건 죄다 리스트로 만들어 바리바리 싸 왔다.

“흐앙…하앙…너무 좋아…! 너무 좋아…! 타카쇼 가버릴 것 같아요옷…!”

아예 바닥을 굴러다니며 좋아하는 타카쇼를 보며 시우도 흐뭇한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2.

감자칩 두 봉을 오픈하고 뜨뜻한 라멘까지 앞에 둔 채 담소를 나누는 두 사람.

당최 어떻게 된 것이냐는 시우의 질문에 타카쇼는 답했다.

“나도 너 나가고 나서 좀 생각이 많았다. 넌 나랑 똑같이 노예생활 했는데 번듯하게 마법 배워서 성공했잖냐. 나는 그동안 무슨 허송세월을 했나 싶어서 허무하더라고.”

타카쇼는 면치기를 할 때마다 황홀한 표정을 짓더니 국물을 들이켜고 거의 절정을 맞이한 듯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선물을 준 입장에서 저렇게 좋아하는 것보다 뿌듯한 게 없다.

“그래서 나도 내 꿈을 좀 펼쳐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꿈?”

“이대로 마녀님들 기쁨조만 하면서 죽기에는 너무 허무하게 느껴지더라.

호스트바의 사장이 되는 거. 그게 진짜 밤의 제왕이라고 할 수 있는 거 아니겠냐? 사나이가 꿈을 크게 가져야지.”

타카쇼는 벌컥벌컥 술을 마시고는 제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서 아도나이 백작께 찾아갔지. 너도 알다시피 아도나이 상회가 게헨나 물류운송을 담당하잖냐. 돈을 빌려주시면 사업을 하나 해보겠다고 했어.”

“그걸 빌려줬다고?”

타카쇼가 꽤 많은 마녀에게 귀염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개 노예이다.

아무리 구석이라고 해도 레노먼드 타운의 알짜배기 땅에 이만한 가게를 차리려면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갈 텐데…

“충분히 설명했지. 너도 알겠지만 게헨나에는 오락이 부족해. 특히 마녀들이 욕정으로 찌뿌둥한 몸을 풀 곳은 딱 두 곳.

타로 타운의 벨로벳 창관, 레바나 대욕장의 ‘수국 정원’이 끝이야.

그러니까 우리 호스트바는 그사이의 공백을 절묘하게 파고드는 거지.

대욕장의 회원권을 끊을 만큼 부유하지 않은 마녀, 단순히 육체적 관계가 아니라 간질간질한 밀당과 대접받는 듯한 분위기, 유사 연애의 감정을 느끼고 싶은 마녀.”

“그럴듯한데?”

“그리고, 목숨을 걸었어. 만약 사업이 1년 안에 흑자로 전환되지 않고, 3년 안에 손익분기점을 못 넘기면 마법 실험체로 자원하겠다고.”

시우는 피식 웃었다.

당연히 무용담이 가미된 농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타카쇼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남자의 눈이다.

“너 미쳤냐?”

“인생 오십 년 하천의 세월에 비한다면 한낱 덧없는 꿈과 같구나. 한 번 태어나 죽지 않을 자 그 누구인가.”

“…….”

“신시우, 난 진심이야.”

어질어질하네.

친구가 웅대한 포부를 가지고 날개를 펼치는 건 칭찬할 만한 일이지만 목숨까지 걸었다는 건 좀 무모해 보인다.

시우는 내심 만약 일이 잘못된다면 스승님께 부탁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가 마법실험에 자원해서 모르모토가 되는 걸 앉아서 보고 있을 순 없다.

하지만 벌써부터 초칠 필요는 없기에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래서 운영은 잘 돼 가?”

“아직 가오픈 단계이긴 한데. 사업성이 보여.”

“운영 같은 건 어떻게 하는데?”

“호스트는 공노예로 들어온 노예 중에 외모 괜찮은 애 데려와서 교육하고, 술은 아도나이 상회를 통해서 직접 들여오지. 시청 쪽이랑 상회 쪽에 직접 줄이 닿는 사람이 아도나이 백작이라 찾아간 거고.”

무모해보이기도 하고 살짝 두루뭉술한 감이 있다.

그래도….

“너 이 새끼 멋있다.”

“그렇지? 나도 매일 거울 볼 때 그 생각해.”

솔직히 멋있어 보인다.

멀끔히 바뀐 겉모습이 아니라 꿈을 위해서 목숨까지 던질 수 있는 열정이.

“아무튼 간에 친구, 이렇게 오랜만에 만났는데 네 근황도 좀 들어보자고. 여자친구는 생기셨나?”

여자친구라….

엄청 거기에 가까운 사람이 생기긴 했다.

타카쇼에게도 언제 한 번 소개를 해줘야겠다.

“생겼구먼. 혹시 마녀분이냐?”

“귀신 같네 새끼.”

“사진 있음 좀 보여줘 봐. 성함이 어떻게 되셔?”

“샤론 에버그린.”

“이야 이름도 예쁘네. 어디보자~”

휴대폰 갤러리를 열어 몇 안 되는 샤론 사진을 보여주었다.

타카쇼는 쓱쓱 휴대폰을 넘기며 사진을 보았다.

각 잡고 찍은 건 없었다.

동거하면서 가끔 맛난 음식을 먹을 때나 어디 놀러 갔을 때 함께 찍은 셀카 정도?

게다가 시우의 사진 솜씨는 아무리 좋게 말해줘도 훌륭하다 말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어떤 각도에서도 굴욕 없는 샤론의 외모와 훌륭한 바스트는 대충 찍은 사진조차도 화보로 변신시켰다.

“조센징 새끼.”

사진을 훑어보던 타카쇼의 눈썹이 험상궂게 올라간다.

“너 이 언니랑 데이트도 하고, ‘오늘은 뭐 먹을래?’도 하고, 침대에선 무책임한 무차별 질싸폭격도 한다고? 실컷 섹스하다 늦잠 자고 아침에 졸린 눈 비비고 일어나서 달달한 모닝 키스 이후에 알콩달콩 커피도 나눠마시다가 눈맞으면 엉덩이 찰싹찰싹 때리는 그런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고?”

“와 시발, 너 뭐냐?”

다 맞추네.

좀 무섭다.

“이 기만자 새끼!”

“그… 너도 마녀랑 많이 해봤잖냐.”

“시우야… 내가 누누이 말했잖어…. 나한테 마녀는 여친이 아니라고…. 하아… 부럽다. 시발 나도 마법 공부나 열심히 할걸.”

거의 울상이 된 채 사진을 쓱쓱 넘기던 타카쇼의 눈에 들어온 것은.

또 다른 마녀의 사진.

이번엔 엘로아였다.

비교적 최근에 찍었던 사진으로 대련이 끝나고 석양을 찍는 시우 앞에 불쑥 모습을 드러내 장난을 치던 때였다.

타카쇼의 몸에 떨림이 커진다.

“어이, 조센징. 이분은 또 누구시냐?”

“어… 아는 마녀님. 지금은 이것저것 가르쳐주고 계시지.”

“이것저거어엇? 이거어엇저거어어엇? 이 새끼야! 너 지금 나랑 장난해? 이러려고 만나러 왔어?”

“니가 보자면서 폰 내놔 인마!”

격분하며 날뛰는 타카쇼가 사진을 넘기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한참 드문드문 찍혀 있던 스승님의 사진 이후에는 쌍둥이가 현세에 놀러 왔을 적 찍힌 사진이 있었다.

거기서 타카쇼의 손이 덜컥 멈춘다.

시우가 가운데 있고 쌍둥이가 말랑말랑한 뺨이 찌그러질 때까지 양 얼굴에 바짝 얼굴을 붙인 사진이다.

이때 오딜과 오데트가 서로 자기 얼굴이 더 많이 찍히게 하겠다고 투덕이던게 아직도 기억난다.

아무튼 수상할 정도로 사이가 좋아 보인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거 제머나이 쌍둥이잖아. 야, 신시우. 나보고 견습마녀는 보기만 하라며.”

“빨리 내놔.”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밤 까는 줄 모른다더니….”

시우는 식겁하며 휴대폰을 뺏어갔다.

이 사진은 완전히 잊고 있었다.

잠시 분을 삭이던 타카쇼는 득도한 표정이 되었다.

“그래, 생각해보면 내가 너 스승이니까. 모름지기 제자의 승승장구를 기뻐하는 것이 스승의 마음이렷다.”

“틀린 말이라고는 못하겠다.”

실제로 타카쇼의 조언 중 효율적이었던 비율이 굉장히 높기도 하니 말이다.

“그래서 말인데. 너 우리 가게에서 일할래?”

“됐어, 어차피 곧 돌아가야 해. 종종 놀러는 올게.”

“그러냐?”

질투인지 뭔지 모를 격분을 보여주던 타카쇼도 장난이었는지 금방 시원스레 미소를 지었다.

사실 원래 이런 놈이긴 하다.

잘되면 잘되는 대로 순수하게 격려해주는 친구.

“다음에 여자친구분 한 번 소개해 줘. 내가 너 자존심 제대로 세워줄 테니까.”

“안 그래도 너 얘기하니까 만나보고 싶다고는 하더라.”

그렇게 한담을 이어나가려던 때.

-똑똑

노크와 함께 아까 시우를 가게 안으로 이끌었던 금발남이 들어왔다.

“두 분 좋은 시간 보내는데 죄송합니다. 형님, 상회 쪽에서 사람이 와서요. 말씀 좀 나누셔야 할 것 같은데요?”

“어디 쪽인데?”

“주류 유통 담당자인 것 같습니다. 이번에 관세 문제로 트러블이 생겼다네요.”

“그래?”

타카쇼는 흐트러진 양복을 정돈하며 일어섰다.

시우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고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다시 일어선 그는 어엿한 사업가의 뒷모습이 되어 있었다.

“시우야 모처럼 찾아왔는데 미안하다. 오늘은 먼저 가봐야겠네.”

“미안할 필요가 있냐. 조만간 한 번 더 얼굴 비출게.”

“그래, 너도 잘 지내는 것 같아서 참 보기 좋다. 다음엔 꼭 술 진탕 마시면서 이야기 나누자고.”

그렇게 멀어지는 타카쇼.

시우도 막 나갈 채비를 하려던 차에 금발남이 시우를 보며 머뭇거린다.

“저기….”

“무슨 일 있나요?”

“마녀님들과 가까우신 분인가요?”

“일단은요.”

“이런 말씀 드려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사실 저희 형님이…”

뭔가 말하려던 차에 절묘하게 타카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해, 폴! 너도 따라와!”

“넵! 형님! …아무것도 아닙니다. 실례했습니다. 살펴 가십쇼.”

뭔가를 말하려던 금발남은 그렇게 말 걸 틈도 없이 훌쩍 떠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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