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
1.
시우보다 먼저 저택에 도착한 엘로아는 알비레오 백작과 짧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별 의미 있는 내용은 아니었고 제집처럼 편하게 지내달라는 환영 인사 정도였기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애초에 티페레트 공작과 제머나이 백작은 업무를 제외하고 사적으로 가까운 사이가 아니다.
특히 그나마 사람 냄새가 묻어나오는 데네브와 달리 알비레오는 실리주의적인 측면이 굉장히 강해 엘로아가 친하게 지낼 수 있는 타입도 아니었다.
하긴 그런 수완과 성향이 있으니 불과 백 년도 안되는 기간에 ‘제머나이 왕국’이라 불려도 좋을 규모의 사업체를 일궈냈겠지만 말이다.
“흐음, 흐으으음~ 으으으음~ ♪”
햇살이 좋다.
때마침 기분도 좋다.
아름다운 백작가의 정원을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엘로아는 어설픈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정원을 어슬렁거렸다.
저택의 아름다움을 평가하는 척도 중 하나에 정원이 포함되는 만큼 그 화려함을 굳이 입에 올릴 것도 없다.
총천연색의 꽃들이 계절도 잊은 채 제 모습을 뽐내고.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정원사의 손을 탄 듯 반듯이 손질되어 있다.
곳곳에 놓여 시원하게 물을 뿌리는 분수대에는 낙엽 한 장 떠다니지 않는다.
“술이라도 마시면서 걸으면 좋겠거늘….”
지금이라도 돌아가 진 한 병을 얻어올까 공연한 생각을 하며 풍류를 즐기는 엘로아.
융단처럼 가지런히 잘린 잔디 위를 걷던 중 근사한 별장 한 채가 보였다.
상시 수십 명의 사용인이 주거하는 본관에 비하면야 외관 관리 상태가 다소 미흡하다.
그렇다 해도 본래 엘로아가 라피와 함께 살던 집보다 넓고 커다란 별장이다.
아마 이런 별장이 커다란 저택 부지 안에 몇 개씩이나 있을 것이다.
평소라면 별 생각 없이 지나쳤을 엘로아지만 기분이 잔뜩 들뜬 탓일까?
별장을 한번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들뜬 발걸음으로 별장을 빙빙 둘러보는 엘로아.
크다.
비스듬히 천장이 내려앉아 있을 다락을 제외해도 3층은 족히 되어 보이는 데다가 울타리 안으로는 또 정원과 분수가 있다.
몸을 회복하는 동안만 이쪽에서 지낼 수 있게 부탁을 해볼까?
엘로아는 사냥한 호문쿨루스에서 나온 유산과 마도구를 제머나이 가문에 싸게 넘기며 귀빈 대접을 받아오던 차이니 이 정도 부탁은 백작 역시 흔쾌히 할 것이다.
아마 시우도 좋아하겠지.
별다른 의식 없이 시우와 함께 동거할 것을 떠올린 엘로아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흐음… 그렇다면, 좀 더 둘러봐야겠군.”
엘로아는 조용히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혼자 지낼 것이라면 몰라도 시우와 함께 지낼 예정이라면 룸 컨디션이라던가 관리 상태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주방.
시우에게 근사한 요리를 해주기 위해 필수적이다.
“오호?”
엘로아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별장의 관리 상태는 최상급이었다.
외관이 조금 노후한 기색이 있어 걱정했는데 로비부터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이는 대리석 타일이나 먼지 한 톨 없는 계단 손잡이를 보면 공연한 걱정이었다.
그럼 주방은 어디쯤이려나….
기웃기웃하며 시우와의 단란한 사제 생활을 꿈꾸던 엘로아의 귓가에 어떤 기척이 파고들었다.
계약의 대가로 기능이 저하된 부분이 있지만 모든 오감이 일반 마녀를 아득히 초월하는 티페레트다.
2층으로 올라가려 계단 난간을 잡고 선 엘로아는 인기척과 작은 대화 소리가 은으로 도금된 손잡이를 징징 울리고 있는 것을 감지했다.
허가받고 들어온 것도 아니고 안에 사람이 있다.
말하자면 무단침입이고 결례인 것이다.
본래라면 조용히 문을 닫고 나섰을 엘로아의 몸이 움찔 굳었다.
어쩐지 굉장히 익숙한 진동이었기 때문이다.
“아.”
시우가 안에 있다.
엘로아는 알아차렸다.
지금 손에서 느껴지는 이 진동.
그것은 밤늦게 담소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일 때, 그의 목소리가 소파의 스프링을 울리던 때와 진동 패턴이 유사했다.
엘로아 쯤 되는 초인이라면 이 정도의 일은 어렵지 않은 것이다.
쌍둥이를 만나 어디론가 가더니 아마 여기서 회포를 풀고 있던 모양이다.
“후훗.”
엘로아의 입가에 미소가 아로새겨진다.
방금 헤어졌는데도 얼굴을 다시 본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물론 오랜만의 재회에 불쑥 끼어들어 방해할 생각은 없으니 조용히 뭐 하고 노는지만 살펴볼 예정으로 조심조심 계단을 올랐다.
2층에 올라서니 환기를 겸해 죄다 활짝 열려있는 문 중 유일하게 닫힌 문이 보였다.
이 시점까지 그녀는 별다른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었다.
신발 소리가 나지 않게끔 살며시 까치발을 들고 걸어가는 엘로아.
그리고 거리가 가까워질 때마다 그녀의 귓가에 파고드는…
‘하아…하아…하아….’
‘헉…헉…헉….’
…탁한 숨소리.
그 순간 등골을 타고 오르는 전율과 직감에 엘로아의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버렸다.
일전의 엘로아라면 의아하게 여길지언정 그 안에서 어떤 행위가 벌어지는지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즉각 그 소리가 무엇인지 유추할 수 있었다.
하고 있다.
어제 밤새 모텔에서 엘로아를 뒤척이게 했던 소리의 근원.
어젯밤 페리윙클과 시우가 함께 했을지도 모르는,
엘로아를 아직도 죄책감과 번뇌 사이에서 괴롭게 만드는,
그 행위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엘로아는 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하앙…! 꺄흥…! 시, 시우… 시우야…!’
이렇게 가까이 오니 이제야 들린다.
철썩철썩 살이 부딪치는 소리, 달콤한 쾌락이 뚝뚝 떨어지는 신음소리, 발정 난 암고양이가 몸을 비틀며 내는 듯한 콧소리까지.
그 소리는 샤론과 시우가 만들어내는 이중주였다.
나가야 한다.
나가야 한다.
나가야 한다.
엘로아의 이성이 끊임없이 점멸하며 명령한다.
구태여 엘로아의 곧은 성품과 품성을 언급할 것도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당연히 자리를 비워주는 것이 옳다.
그러나 엘로아는 제자리에 못 박힌 것처럼 망연한 시선으로 소리가 넘어오는 문 너머를 바라본다.
-쿵쿵쿵쿵
심장이 엄청 빠르게 뛰고 있었다.
어느 순간 코가 아닌 입으로 호흡이 오가고 있고, 감기에 걸려 미열이 오르는 것처럼 몸이 화끈거린다.
이 너머에 시우가 있는 것이다.
짐승 같은 날 것의 모습 그대로, 잡아먹을 듯이 에버그린을 덮치고 있는 것이다.
‘좋아…! 좋아좋아좋아…! 거기…하아아앗…!’
그 뒤편에서 들려오는 샤론의 목소리가 공동처럼 텅 빈 머리를 울렸다.
시우와 빗물 터널에서 몸을 섞었던 장면이 빠르게 오버랩되었다.
그때 엘로아가 생전 처음으로 느꼈던 여자가 되는 기쁨이 환통처럼 몸을 간질였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엘로아는 숨을 꾹 참으며 조심조심 몸을 낮췄다.
몸을 낮추면 한 줄기 빛이 흘러나오는 열쇠 구멍이 있다.
몹시 작지만 그것을 통해 안을 본다면 방안의 풍경을 전부 직관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발상은 너무나 강렬한 나머지, 엘로아가 어젯밤 느꼈던 미약한 질투심마저 옅게 흩어지게 했다.
그래.
이건 엿보려는 게 아니다.
시우가 지나치게 흥분해 나쁜 짓을 하지 않는지 감시하는 것뿐이다.
좁디좁은 열쇠 구멍의 틈새로 마침내 엘로아는 방 안에서 펼쳐지는 모든 행위를 엿볼 수 있었다.
침대에 누운 여자는 샤론 에버그린.
독특한 진녹색 녹발을 침대 위에 잔뜩 흐트러뜨린 채, 마치 녹아내린 듯한 표정으로 시우와 하나가 되고 있다.
“흐극! 윽…! 하앙…!”
그 위로는 침대 위에 누워 다리를 활짝 벌린 샤론을 억지로 찍어 누르듯이.
엘로아의 애제자, 알몸이 된 시우가 불룩거리는 근육을 과시하며 허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마다 누워있는 상태에서도 예쁜 모양이 유지되는 샤론의 가슴이 위아래로 출렁였다.
벌어진 다리를 시우의 어깨에 올린 채 한 손으로 침대 시트를 쥐어뜯으며 황홀해한다.
틈새로 열기가 느껴질 정도의 광란의 현장.
실루엣만 보아도 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 거근이 애액을 듬뿍 머금은 채 샤론의 몸속으로 사라졌다가 빠져나오기를 반복했다.
“하아앙…안아줘…. 안아줘…. 하아아….”
열띤 음색으로 헉헉거리는 샤론은 시우의 어깨 위로 올려두었던 다리를 벌리고 대신 그의 허리를 휘감았다.
그리고 제 가슴을 진상하듯 받쳐 들고는 음란함이 뚝뚝 떨어지는 어조로 말한다.
“시우야… 빨아줘… 가슴 쪽쪽 빨아줘….”
시우는 삽입한 상태 그대로 상체를 기울여 샤론의 엑셀런트 맘마통, 그 첨단을 물었다.
그와 동시에 샤론의 허리가 침대에서 붕 뜨며 아치 형태를 만들었다.
-쮸웁! 쮸웁!
-찌걱! 찌걱!
“하아아…! 좋아…! 시우도… 샤론이 보지 기분 좋아…?”
“헉…헉…! 뒤질 것 같이 좋아.”
누덕누덕 늘어지는 애액 소리와 가슴을 쪽쪽 빨아당기는 침소리.
샤론은 베시시 웃음을 지으며 시우를 자극하는 대사를 늘어놓았다.
신음과 애교가 적당히 배합된 콧소리는 덤이었다..
“너… 너한테 맛있게… 하아아… 따먹히고 싶어서…. 자위도 안하고… 흐응… 기다리고 있었어…. 샤론이 보지… 완전 굶주린 보지야…. 하아아앙…!”
단순히 생리적인 작용을 넘어서 시우를 기쁘게 하려 드는 샤론의 자극적인 단어 선택.
유아 퇴행이라도 한 듯 자기 이름을 삼인칭으로 호칭하는 머리가 띵해지는 애교는 엘로아를 아연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
그와는 별개로 엘로아의 울대는 꿀꺽꿀꺽 움직이고 있었다.
입안은 바짝 마르고 있는데도 자꾸만 침을 삼키게 된다.
문 너머의 광경이 너무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빗물 터널에서 격렬하게 엘로아를 덮쳐오던 시우.
그때의 시우도 저런 눈빛과 표정으로 그녀의 몸을 탐했었겠지.
“그, 그렇게 가슴… 깨물면서 약한 곳만… 하아앙… 푹푹 박으면… 샤론이… 아무것도 못 해… 시, 시우야…하아앙…!”
샤론이 시우의 팔목을 가볍게 꼬집는다.
엘로아로서는 알 도리가 없지만 그건 난폭하게 해달라는 샤론의 은근한 사인이었다.
몇 달간 몸을 섞으며 자연스럽게 생긴 두 사람만의 암묵적인 약속이기도 했다.
가슴이 원뿔 형태가 될 때까지 젖꼭지를 빨던 시우도 즉각 그 사인을 알아차렸다.
곧장 거친 목소리로 샤론에게 대답한다.
“아무것도 못 하긴 뭘 못해? 이렇게 쪼이고 있으면서.”
“그건…하으읏… 그건… 시우가 샤론이 자꾸 깨무니까… 꺄항…!”
“닥치고, 넌 가만히 자지나 잘 조이면 돼….”
오랜만이라 그런지 수위가 감이 안 잡힌다.
너무 심했나 싶어 멈칫한 시우가 샤론을 바라보았다.
샤론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으니 계속하라는 의미다.
“…이 좆물받이년아.”
“하아아앙…!”
엘로아는 충격의 연속이었다.
페리윙클 때도 이 정도로 거칠지는 않았다.
항상 쑥스러운 듯한 말투와 단정한 몸가짐만 보이던 시우가 샤론을 물건 취급하면서 거칠게 성교에 몰입하는 광경은 손을 달달 떨리게 했다.
그렇게 거친 취급을 받으면서도 입을 반쯤 벌린 채 헐떡이는 샤론의 모습도 경악 그 자체였고 말이다.
하지만….
“웃…!”
엘로아는 소리를 내서는 안된다는 사실도 잊은 채 조그마한 경악성을 뱉고 말았다.
다행히 성교에 열중 중인 시우와 샤론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말이다.
오랫동안 같은 자세로 있다가 일어난 것처럼 손발에 찌릿찌릿 퍼지는 감각.
뜨거운 불길이 아랫배에서 피어오르면서 낙인이 징징거리는 듯한 감각.
엘로아의 비소를 착실하게 감싸고 있는 속옷이 슬며시 젖어 들어가는 감각을 동시에 깨달은 것이다.
설마.
엘로아는 조심스레 자신의 팬티 안으로 손을 넣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없다를 되뇌며 현실을 부정하던 엘로아의 손끝에 묻어나온 것.
그것은 투명하고 미끈거리는.
달콤한 사랑의 꿀물이었다.
2.
그리고 그 시각.
별장의 테라스, 커튼 뒤에서 샤론과 시우의 뜨거운 재회 섹스를 훔쳐보는 사람이 있었으니.
“…….”
“…….”
오르골을 최대 강도로 틀어 놓은 채 치맛자락을 잘근잘근 깨물고 있는 오딜.
그리고 오데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