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
1.
북아프리카 대부분을 덮은 사하라 사막은 그 면적이 1000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
계속된 기후변화와 그로인한 사막화로 해마다면적을 넓혀간다는 사실을 제외해도 이미 넓이가 미국 본토에 필적한다.
사회 및 환경적 인프라가 열악하기 짝이 없다만.
제 한 몸을 안전하게 챙기고 싶은 공적들에게 광활한 사막은 훌륭한 은신처가 되어주었다.
아마 아무런 방책이 없이 맨손으로 나섰더라면 아멜리아는 아직도 열사의 마녀를 찾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막대한 무력을 지닌 티페레트 공작이 공적 사냥에 애먹은 이유 중 하나가 이런 오지에 작정하고 숨어둔 적을 찾아내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니 말이다.
그러나 아멜리아의 손에는 살생부가 들려있다.
공적들의 은신처를 거의 오차 없이 표기한 살생부는 아멜리아의 ‘사냥’이 순조롭도록 도와주었다.
아멜리아는 열사의 마녀를 죽인 이후에도 사막을 떠돌며 3명의 공적을 연거푸 사냥했다.
‘내가 잘못한 건 알겠는데! 이럴 것까지는 없잖아…!’
끝까지 발악하며 아멜리아의 발꿈치를 물려들었던 공적이 있었다.
‘힉! 히이익! 사, 살려줘…!’
아멜리아의 실력을 보자마자 전의를 잃고 도망치려다 목숨을 잃은 공적이 있었다.
하지만 모두 죽였다.
아멜리아는 적어도 겉으로는 망설이지 않았다.
비탈길을 구르기 시작한 눈덩이는 멈추지 않는 것처럼.
자신이 그어놓았던 일선을 넘어선 아멜리아의 행보에는 더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행동이 불러오는 결과를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다.
타인의 생명을 앗아간다는 것.
그것은 비단 현재에 걸친 것이 아닌, 수백 수천 년 동안 이어진 ‘소망’을 완전히 박살 낸다는 것.
그 실감이 독극물처럼 아멜리아의 심장을 좀 먹었다.
그녀가 망설이지 않는 것은 아무런 감각이나 감정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괴사 직전까지 얼어붙은 신체 부위가 그렇듯 죄책감과 죄악감으로 마비되었기 때문이다.
아멜리아는 자신이 무감정해지는 것을, 혹은 그렇게 보이게 되는 것을 묵인했다.
“어떤 마녀가 호문쿨루스와 공적을 보이는 족족 사냥하고 있다더니… 그게 너였구나?”
그리고 지금 아멜리아의 앞에서 의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마녀가 있다.
자성 마법의 특성 탓에 잔뜩 시들어버린 허브처럼 누리끼리한 금발.
아멜리아와의 격전 이후 하반신이 꽃으로 흩어져버린 ‘독초의 마녀’는 모래 언덕에 기댄 채 쓴웃음을 지었다.
짧은 기간에 이어진 연이은 격전.
총 세 명의 공적을 상대하는 동안 별다른 상처를 입지 않았던 아멜리아였지만 오늘.
심리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궁지에 몰려있던 탓에 통한의 한 수를 허용하고 말았다.
“쿨럭!”
아멜리아는 한쪽 무릎이 풀썩 꺾인 채 심한 기침을 토해냈다.
모래 위로 검붉은 핏덩이가 번진다.
독초의 마녀가 사용하는 무형의 독기가 이미 신체를 파고든 까닭이다.
그러나 승패의 갈림은 확실했다.
독초의 마녀는 신체의 절반을 잃었다.
영체의 끈질긴 생명력 탓에 목숨을 부지하고는 있지만 별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10분이면 숨이 끊어질 것이다.
반면 아멜리아는 중독되었지만 치명상이라 일컫기엔 힘들다.
자율방어 탓에 심장, 뇌, 자궁 등 주요 장기로는 독기가 전혀 뻗치지 못하고 있었다.
아멜리아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
“소문으로는 티페레트처럼 살기등등한 아가씨일 줄 알았는데. 이거 원….”
독초의 마녀, 메이릴리는 황당하다 못해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여태 마법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다른 마녀의 목숨을 빼앗아 왔다.
동시에 언젠가는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각오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최후는 그녀가 생각해왔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자비 없는 적의 오연한 눈빛이.
정의를 실현했다는 확신에 가득 찬 모멸 어린 시선이 몸에 꽂힐 줄 알았거늘.
정작 마주하는 것이 울음을 참는 것 같은 한심한 낯짝이라니.
가장 한심스러운 것은 각오도 제대로 닦지 못한 애송이에게 무참하게 패배한 자기 자신이다.
어쩌면 저 똑 부러지지 못한 태도에 방심했던 것일지도 모르지.
싸우는 내내 그녀는 저런 표정이었으니까.
“이름이 뭐지?”
“…….”
“마지막 가는 길인데 너무 인색하게 굴지 않고 말동무나 해줘.”
그런 사실이 분노는커녕 허탈한 웃음을 불러오는 까닭일까?
메이릴리는 되려 맥이 탁 풀려 익살스러운 말투로 말을 건네고 말았다.
목숨을 살려줄 것이라는 안일한 기대는 않았다.
저런 몰골이 되어가면서까지 사냥을 다니는 것을 보면 분명 사연이 있을 터.
더군다나 이 사막에는 이 정도로 망가진 영체를 치유할 설비가 없다.
“…아멜리아 메리골드.”
“세상에… 그 메리골드? 그 향수의 마녀? 남작?”
아멜리아가 무언으로 긍정하자 메이릴리는 진심으로 깜짝 놀랐다.
메리골드 남작이라하면 게헨나 뒷방에서 앉아 느긋하게 향수나 만들던 속 편한 마녀였다.
현세에 나들이를 나오면 나왔지 적극적인 사냥에 동참할 호전적인 마녀는 절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요.”
한편 아멜리아는 메이릴리의 친근한 태도가 낯설고 어색했다.
목숨을 앗아가게 될 상대에게 저런 격의 없는 태도로 나온다니.
그렇게 하면 살려주리라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최후 정도는 의연한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걸까?
어느 쪽도 이해할 수 없고 알 수 없었기에 아멜리아는 그저 곤혹스러웠다.
“내가 틀어박혀 있는 동안 세상이 많이 바뀌었네… 그나저나 담배 있어? 내건 주머니에 있었는데 보시다시피.”
메이릴리는 뭉개지다 못해 형체도 없이 사라진 자신의 하반신을 가리키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멜리아는 그녀를 경계하는 한편 품에서 담배를 꺼내어 메이릴리의 입에 물려주고 마법으로 불을 붙여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표정이 되어 스읍 연기를 들이켜는 메이릴리.
“쓰읍… 하아… 이거 오랜만이네. 좋지. 현지 담배는 적당히 맛이 없어야지. 시가는 그럭저럭 좋은데 말이야.”
아멜리아는 당장 도망치고 싶었다.
끝까지 살아남은 것은 자신인데.
이긴 것은 자신인데도 압도당하고 눌리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더는 대화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부담스러움과 거부감을 느끼는 한편.
아멜리아는 타인과의 대화가 무척 오랜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에게 적의를 드러내지 않는 존재를 보는 것도.
무척 오랜만이다.
스승님을 잃고 무작정 오두막에 처박혔던 때와는 달랐다.
모든 것을 꾹꾹 눌러 담는 것으로 참아왔던 그때와 달리 지금의 아멜리아는 따스함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타인과의 대화가, 행복한 시간이, 함께라는 실감을 얻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소중한 일인지 알고 있다.
따라서 외로움이 무엇인지도.
더욱 사무치게 느끼고 있다.
이 불편한 대화에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아주 작은 기꺼움을 느낄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그 잘난 메리골드 남작이 왜 현세를 떠돌면서 공적이나 때려잡고 다니는 거야?”
“당신에게 알려줄 의무는 없어요.”
“너무한데? 내가 나쁜 짓을 하면서 살아온 건 맞지만… 왜 죽어야 하는지 정도는 알고 싶은데.”
순간 아멜리아는 차갑게 식혀진 칼날이 가슴에 푹 박히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그것은 생명을 앗아간다는 것에 대한 부채감이었고.
여태껏 외면하려 들었던 죄의식이었다.
역시 이런 대화.
빨리 끝내버릴걸.
아멜리아가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을 때.
“정말… 말주변 없는 아가씨네…”
졸린 듯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메이릴리를 보며 아멜리아는 입술을 달싹였다.
이 순간까지도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이 대화에서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다.
메이릴리라는 공적의 마지막 말동무가 되어줌으로써 그녀를 죽였다는 죄를 희석하려는 걸까?
“당신을 죽이지 않으면… 제 소중한 사람이… 죽어요.”
타들어가는 담배처럼 마지막 생명을 깜빡거리던 메이릴리의 눈이 웃음을 짓는다.
메이릴리의 입에서 툭 떨어진 꽁초가 발치에 흐드러지게 핀 꽃잎을 지졌다.
그녀는 누구에게라고 할 것 없이 웃었다.
한참을 웃던 메이릴리는 입을 열었다.
“뭐야? 너도 나랑 똑같잖아?”
톡 쏘는 듯한 비웃음에 아멜리아의 몸이 멈칫 굳는다.
그녀가 말하려고 하는 바가 무엇인지 직관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법을 위해 3명의 마녀와 결투를 벌여 죽인 메이릴리.
시우의 목숨값을 값기 위해 마녀를 죽이는 아멜리아.
둘 다 목적을 위해 타인의 생명을 앗아간다는 점이 메이릴리에게는 동일한 행동으로 비쳤는지도 모른다.
“그런…!”
반박하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시간을 들이고 차분하게 반박한다면 얼마든지 논파할 수 있는 얄팍한 자기연민이자 비난이었다.
아니, 어쩌면 아멜리아가 비난으로 받아들인 것 뿐이었지도 모른다.
메이릴리는 그저 느낀 바를 그대로 말한 것뿐인지도 모른다.
어떠한 비난이나 부정적인 감정도 지니지 않고 제 나름의 감상을 말한 것일지도 모른다.
“…….”
하지만 메이릴리는 이미 고개를 푹 꺾고 있었다.
아주 작은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반쯤 벌어진 입에서 뚝뚝 끈적한 핏방울만 떨어질 뿐.
필사의 반론을 한다 한들 대답이 들려올 리 만무했다.
싸움은 끝났다.
살아남은 것은 아멜리아다.
그러나 종국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음에도 후련하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죽어간 메이릴리와 그저 살아있을 뿐인 아멜리아.
이것을 과연 승리 내지는 성공이라고 일컬어도 좋은지에 대해 아멜리아는 답할 수 없었다.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반박은 꼬이고 꼬여 다시 아멜리아에게 질문을 던져온다.
그것은 한없이 약하고, 또 약해져 버린 아멜리아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버거운 것이었다.
이것은 살인이 아닌가?
결과만을 논한다면 과연 아멜리아가 죽여온 4명의 공적과 아멜리아가 다른 점은 무엇인가?
“차라리….”
차라리 여기서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다면.
메이릴리가 그랬듯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다면.
이 고통도 끝이 날까?
마력이 준동하기 시작했다.
일대를 점거했던 입자들이 경고등처럼 점멸하며 아멜리아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마녀가 15 위계를 넘어서게 되면 마법과 본능이 합일된다.
끝을 원하는 아멜리아의 의지에.
생존본능을 거스를 정도로 강렬한 자포자기에 그녀의 마력이 응하고 있는 것이다.
아멜리아는 그 흐름을 만류하지 않았다.
너무 지쳤다.
이제는 쉬고 싶을 뿐이다.
그 일념이 전부였다.
“잠깐만!!!!!”
그때 엄청난 성량의 목소리와 함께 회오리치는 입자의 분류를 뚫고 누군가 뛰어들었다.
옥상에서 자살하려는 사람을 전력 바다 태클로 저지하는 것처럼 허리를 감싼 누군가는 아멜리아와 함께 우당탕탕 모래밭을 굴렀다.
당연하지만 매우 위험한 행위였다.
정체도 모르는 마법 사이로, 그것도 명백히 살상 능력을 지닌 마법 사이로 몸을 던진다는 것은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행동이다.
아멜리아는 모래밭에 드러누운 채 멍하니 위를 올려보았다.
“뭐 하려는 거야?”
거기에는 앳된 얼굴의 마녀가 있었다.
짙고 푸른 눈동자는 염려 가득한 눈길로 아멜리아를 바라보고 있었고, 적갈색 머리카락은 뒤로 댕기 머리를 했음에도 발목까지 닿을 정도로 길었다.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을 거야. 힘내야지!”
견습마녀 중에서도 한참 마법 기초이론을 공부하고 있을 이제 막 사춘기가 끝나가는 모습.
하지만 일개 견습마녀가 아멜리아의 마법을 뚫고 들어올 순 없다.
“나쁜 생각은 하지 말고 내 둥지로 가자.”
아멜리아가 무엇인가 말을 하려 했지만 적갈색 머리의 마녀는 무작정 아멜리아의 팔을 잡아끌었다.
상대가 누구인지는 아직 정확하게 모른다.
어쩌면 살생부에 기재된 공적 중 하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좋았다.
아멜리아는 갑자기 등장한 마녀의 이끌림을 따라 그녀의 공방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