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285화 (285/917)

#284

1.

아멜리아 메리골드는 꿈속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먼지가 내려앉은 오래된 앨범처럼 흐릿했지만 정말로 소중한 기억이었다.

사실 그녀의 긴 삶에 비추어봤을 때, 단순히 시간을 따지자면 멀리 느껴질 기억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련의 단란한 풍경이 꿈속에서조차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것이 아멜리아에게 있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소중한 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날 김치찜이 먹고 싶다는 어린 시우의 말에 아멜리아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새로운 요리에 도전했다.

배추니 생강이니 고추가루니 젓갈이니….

서양 식단이 선호되는 게헨나에서 죄다 생소한 재료였기에 아멜리아는 보더 타운의 접선소까지 장을 보러 나서야 했다.

그러나 귀찮다거나 내키지 않는다는 생각따윈 들지 않았다.

안 그래도 아멜리아에겐 시우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도록 붙잡았던 이력이 있다.

그가 고향의 음식을 그리워한다면 하다못해 그것만이라도 제대로 해주고 싶었다.

모처럼 재료를 잔뜩 준비해 왔지만 정작 시우 역시 정확한 레시피를 알지 못했다.

결국 준비했던 재료를 거대한 솥에서 넣어 푹 끓이자 맛을 형용하기 힘든 정체불명의 무엇인가가 되어버렸다.

‘미안해요. 더 맛있게 해주고 싶었는데.’

첫술을 뜬 아멜리아는 곧장 식기를 내려놓고 시우에게 사과했다.

기분 나쁠 정도로 달짝지근하고 매운, 그러면서도 은은한 젓갈 비린내가 풍기는 기묘한 스프는 도저히 성공작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에요, 엄청 맛있는데요? 집에서 먹던 거랑 똑같아요.’

하지만 시우는 맛있다는 칭찬을 연발하며 3인분은 족히 될 음식을 깨끗이 비웠다.

아멜리아의 몫까지 전부 말이다.

‘그런…가요…?’

그때 아멜리아는 안도했다.

시우의 행동과 태도, 그리고 표정은 의외로 김치찜이 성공적이었음을 의미하는 듯했으니까.

단지 워낙에 토속적인 향이 짙은 탓에 제 입맛에만 맞지 않을 뿐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알 수 있었다.

몇번이고 들여다본 기억 속에서 그의 눈빛, 시선, 표정 따위를 통해서.

그 기괴한 맛은 문화적 차이에서 호불호가 갈릴 수준이 아니었다.

아마 시우의 입맛에도 차지 않았으리라.

그런데도 시우는 열심히 준비해 준 아멜리아를 위해 형편없는 요리를 깔끔하게 비워낸 것이다.

그것도 아주 맛있다는 칭찬까지 곁들이며 말이다.

2.

바람이 일었다.

사막의 밤은 차갑다.

낮 동안은 용광로처럼 달아올랐던 사막의 열사도 해가 저물면 차게 식는다.

고운 모래 알갱이는 바람에 섞여 눈을 감고 몸을 웅크리고 있던 아멜리아의 뺨을 스쳐 지나갔다.

“으음…음….”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시리도록 아름다운 하늘색의 눈동자가 살포시 모습을 드러낸다.

멍한 눈빛은 몇 번의 깜빡임 동안 이지를 되찾았다.

아멜리아는 헛되게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이 꿈은 꿈일 뿐.

주변에 보이는 것은 화목했던 오두막이 아닌 황량하게 펼쳐진 사막.

달빛을 반사하는 고운 백사는 밤하늘을 품은 것처럼 건조한 어둠 속에 덧 없이 빛났다.

아멜리아는 케테르 공작의 살생부를 들고 현세의 오지를 떠돌았다.

북극을 빠짐없이 돌아다니며 4기의 호문쿨루스를 사냥한 이후.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허허벌판의 사막으로 옮겨와 무서울 정도의 속도로 토벌을 이어나갔다.

뭔갈 먹거나 마시지도 않고.

쉬지도 않고.

마치 무엇인가에 몰두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오직 사냥 하나를 바라보며 직진했다.

그러다 지쳐 쓰러질 때쯤이 되면 노상에 쓰러져 새우잠을 청하기 일쑤인 생활을 반복하며 말이다.

그건 이미 ‘사냥’이라고 불릴 영역이 아니었다.

원죄를 씻기 위해 고행을 자처하던 수도사처럼 아멜리아 역시 스스로 가시밭길 위를 걷고 있는 것이다.

스승님이 돌아가셨을 때 두꺼운 마법 연구자료에 파묻히며 슬픔을 묻으려 했던 때의 추체험이었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다.

막 사하라 사막에 서식한다는 호문쿨루스를 결딴낸 아멜리아는 승부가 나자마자 쓰러지듯이 잠들었다.

영체의 내구도와 효율은 굉장히 뛰어나지만 무한은 아니다.

아멜리아의 몸에는 착실하게 부담과 피로가 쌓여가고 있었고 이번만큼은 그것이 커다란 악재로 작용했다.

거대한 전갈 형태의 호문쿨루스는 아멜리아의 몸에도 확실한 부상을 남겼다.

“욱…!”

아멜리아는 몸을 일으키다가 왼팔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미간을 찌푸렸다.

허무한 꿈에서 깨어난 이성이 느릿하게 현재 상황을 반추했다.

“…….”

아멜리아는 통증이 느껴지는 왼팔을 내려보았다.

그녀의 하얀 살갗이 박스칼로 북 그은 것처럼 찢어져 있었다.

처음 다쳐보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큰 상처를 입은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자율방어로 인한 지혈로 추가적인 출혈은 없었다.

그러나 워낙에 상처가 깊어 피부는 물론 성둥 잘려 나간 근육과 하얀 뼈가 얼핏 보일 정도였다.

“아파요….”

남의 것처럼만 보이는 상처를 빤히 바라보며 아멜리아는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사막의 바람보다도 까슬거리는 목소리였다.

그와 동시에 조금 전 꿈처럼 아무 의미 없는 상상이 떠오른다.

시우가 이 모습을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이렇게 힘들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본다면 조금은 불쌍하다고 생각해주지 않을까?

연민과 동정을 품은 눈으로 바라봐주지 않을까?

아멜리아는 생각을 그만두었다.

더 이상 떠올려봐야 괴로울 뿐이다.

대신 흙탕물처럼 어지럽게 변한 마음을 차분하게 침잠시켰다.

지금의 아멜리아에게 복잡한 생각 따위는 사치다.

아직 해야 할 일이 잔뜩 남아있다.

그렇게 습관처럼 또 한 번의 회피를 무의식적으로 되뇐 아멜리아는 마력을 피워 올렸다.

조금 전에는 탈진 상태에 달해 상처를 치료할 수 없었지만 이대로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느릿하게 역재생한 것처럼 끔찍했던 상처가 아물자 살생부를 꺼내 들었다.

아멜리아의 의무만큼 두꺼운 책.

기계적으로 사고를 유예한 채 ‘다음’을 준비한다.

-펄럭!

여태껏 상대했던 호문쿨루스는 하나하나가 강적이었고 까다로운 난적이었다.

실전경험이란 절대 무시할 것이 못되기에 일평생을 연구에만 매진해온 아멜리아에게는 더욱 큰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부상을 입는 것은 예사고 조금만 잘못되었다면 목숨이 날아가 버릴 뻔한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살생부를 펼쳤을 때 지금만큼이나 심장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던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 위에 적힌 것은 호문쿨루스가 아닌 ‘마녀’였기 때문이다.

3.

“그만! 내가 졌어…!”

사막에서 떠도는 ‘검은 전갈’을 죽이고 난 이후.

아멜리아는 어렵지 않게 첫 번째 공적을 찾을 수 있었다.

너무 강력한 마력을 전개하면 도리어 상대가 숨어버린다.

따라서 16~17 위계 정도의 파장을 유지하며 ‘먹기 쉬운 먹잇감’으로 위장해 적을 유인해낸다.

요 몇 번의 사냥 경험으로 아멜리아가 쌓아 올린 사냥꾼으로서의 지혜였다.

효과는 뛰어났다.

사막 한가운데서 마력의 농도를 위장한 채 어슬렁거리고 있자 하니 그녀의 사냥감이 선뜻 선공을 걸어온 것이다.

20 위계의 공적.

모래를 사용해 까다로운 마법을 구사하는 ‘열사의 마녀’.

그녀의 저항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사방 수 킬로미터 내에 모래를 수족처럼 부리는 그녀는, 단위를 헤아리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의 모래를 사용해 아멜리아를 집어삼키려 들었다.

최고 경도로 함축된 모래는 마치 촉수 가닥처럼 아멜리아를 향해 쇄도했다.

천공을 떠도는 전설 속 섬처럼 두둥실 떠오른 거대한 토사 더미는 살의를 지닌 채 그녀를 짓누르려 했다.

아멜리아는 만전의 상태가 아니었다.

여러 부상과 과로로 몸에는 여전히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고, 과도한 연전으로 낙인 속 마력 역시 완충된 상태가 아니었다.

그러나 3 위계의 차이는 그런 모든 핸디캡을 무마할 정도로 강력했다.

비록 아멜리아가 23 위계의 벽을 허문 뒤 그것을 완벽히 체화하지 못했다고 한들.

본격적으로 승부에 나서고 열사의 마녀를 무력화 시키기까지는 고작 3분의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 뒤로 남은 결과는 심각한 상처를 입고 모래더미 위를 구르는 공적과 그 모습을 내려보는 아멜리아.

주변에는 아멜리아의 의지에 응답한 마력 입자가 빛났다.

그 입자는 아멜리아와 열사의 마녀는 물론 반경 수백 미터를 아우르고 있었다.

“항복할게! 제발 한 번만 봐줘. 몰라봤어!”

“…….”

마침내 완전한 패배를 깨달은 열사의 마녀는 항복을 선언해왔다.

살생부에는 이 공적의 온갖 악행이 명시되어 있다.

과거 견습마녀를 살해한 전적이 있는 것은 물론, 인간을 습격하기도 하고 같은 마녀를 죽이기도 했던 악인이다.

“제발… 앞으로는 조용히 착하게 살게. 절대로 소란 같은 거 일으키지 않을게. 습격한 건도 제대로 보상할게!”

선공을 걸어온 주제에.

만약 아멜리아가 판단했던 것처럼 약한 마녀였더라면 뻔뻔하게 먹어 치웠을 주제에.

막상 자신의 눈앞에 죽음이 닥치자 열사의 마녀는 목숨을 구걸했다.

손가락 한 번만 튕기면 피가 흐르면서도 목숨을 구걸하는 저 입은 두 번 다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흰자위를 드러내며 눈치를 보는 눈동자에선 빛이 사라질 것이다.

기회만 된다면 아멜리아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늘어지려는 저 몸뚱이도 모래로 되돌아갈 것이다.

상대는 무고한 생명이 아니다.

더없이 사악하고 광기로 똘똘 뭉친 ‘공적’이다.

그러나 또 다른 지적 생명체를 해함에 있어 아무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동족상잔에 대한 부담과 도덕 및 윤리적 거부감은 대부분의 오만한 마녀들에게도 존재했다.

아멜리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발… 한 번만 살려 줘. 내가 죽으면 낙인도 사라져버린단 말이야… 하다못해 견습마녀를 들여서 마법을 완성하게 해줘… 그땐 정말 순순히 죽을게…”

갑자기 나타난 무시무시한 마녀가 망설이는 것을 눈치챈 열사의 마녀는 더욱 필사적으로 구걸을 시작했다.

아멜리아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입술을 깨물었다.

이미 아멜리아는 살인을 경험한 적이 있다.

에아 사달멜리크를 한 더미의 야생화로 만들어버렸던 일이다.

그러나 그때는 시우를 눈앞에서 잃은 탓에 감정이 극에 달해 있었다.

물병자리의 마녀에 대한 적개심은 넘치다 못해 충분했다.

양심의 가책 따위를 느긋하게 논할 시간도 여력도 없던 것이다.

하지만…

이 마녀는 다르다.

저항이 덧없음을 깨닫고 애원하는 상대.

아멜리아에게 아무런 피해를 끼칠 수도 없는 상대를 죽이는 것은 정의의 집행이라기보다는 처형에 가깝다 여겨졌다.

정말일까?

앞으로 조용히 살아간다면 굳이 죽일 필요가 있을까?

견습마녀에게 낙인을 물려준다면 죽인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게 아닐까?

어려운 결단에 앞서 한층 더 쉽고 부드러운 중도책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구태여 죽이고 싶지 않았다.

공적을 죽이는 것이 정의라면, 그런 정의의 집행 따위 타인의 손에 맡기고 싶었다.

갈등과 고뇌를 방심을 낳았다.

결코 거리를 허용할 생각이 없던 아멜리아의 발목에 열사의 마녀의 손이 휘감긴다.

-탁!

멍하니 굳어있던 아멜리아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끝을 튕겼다.

갑작스러운 접촉을 공격, 혹은 반격의 일환으로 받아들인 까닭이다.

“제바….”

그것으로 모든 상황은 종료되었다.

이미 몸속 구석구석 파고들었던 마력의 씨앗이 아멜리아가 내뿜은 파동에 공명하며 일제히 개화한 것이다.

순식간에 발아한 씨앗은 영체와 마력을 모조리 먹어 치우며 그것을 자양분으로 삼았다.

그렇게 단말마를 남길 시간조차 받지 못하고 열사의 마녀는 목숨을 잃었다.

“아….”

아멜리아는 자기 발목에 감긴 손을 보았다.

신체의 중앙에서 멀었던 것인지 전부 꽃으로 변해버린 다른 부위에 비하면 손목까지는 비교적 형태가 남아있다.

비록 살갗을 뚫고 올라온 꽃들이 한가득하여 잠시만 눈을 돌리면 흐트러질 것 같았지만 말이다.

그것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죽였다.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상대였다.

케테르 공작은 시우를 살려주는 대가로 살생부의 대리 집행을 요구했다.

만약 계약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녀는 다시 시우의 목숨을 거둬갈 것이다.

지금껏 보여진 케테르 공작의 행보는 냉정하고, 공정하며, 누구에게도 자비를 보이지 않는 절대자이니까.

애초에 애매한 타협의 여지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우…우욱…! 욱…!”

그럼에도.

아주 오래전에 잊었다고 생각한 눈물이 구역질과 함께 몸을 강타한다.

아멜리아는 발목을 잡은 손을.

아직도 그녀를 놓지 않는 손을 억지로 잡아 뜯었다.

발목에 남아있는 감각은 그녀를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심연으로 끌어당기고 있는 것 같아서.

아멜리아는 한동안 모래 위로 신물을 토해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