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3
1.
요리사들이 말끔하게 정리해놓고 간 주방은 대형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쥐가 파먹은 것 같은 커다란 치즈 덩이가 굴러다니고, 밟아서 부서진 굴 껍데기가 바닥을 나뒹군다.
“내용물이 레시피보다 많아졌으니까… 흐음… 한 이십 분 정도는 더 익히는 게 좋을 것 같네.”
마지막까지 멋대로 레시피를 조절한 오딜은 잡동사니를 염동으로 모아 쓰레기통에 넣으며 시계를 힐끗 보았다.
빨간 불길이 솟는 오븐 앞에 쪼그려 앉아있던 오데트도 탁탁 치맛자락을 치며 일어났다.
“요리는 즐겁구나.”
“그러게, 뭔가 연금술 수업을 하는 기분이었어.”
“맞아, 연금술보다 훨씬 재밌지! 연금술은 계량이 틀리면 폭발하거나 하지만 요리는 아니니까.”
오븐 앞에 의자를 끌어온 쌍둥이는 뿔닭이 노릇노릇 익어가는 장면을 보며 다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도 심심해서 와인을 꺼내왔다.
식전주라는 느낌으로 서로 잔을 나누는 쌍둥이.
“언니.”
“왜? 오데트.”
“있잖아. 나 신경 쓰이는 게 있어.”
“뭔데?”
“샤론 언니.”
“샤론 언니가 왜?”
오늘 밤 샤론이 의식을 되찾았다는 소식을 갈리나 시녀장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얼마 전부터 저택의 손님방에서 신세를 지고 있는 샤론 에버그린.
현세에 나갔을 적 그녀는 꽤 쌍둥이를 귀여워해 주었고, 쌍둥이 역시 그런 샤론이 싫지 않았다.
어딘가 맹한 게 뭔가 놀려먹는 맛도 있을 것 같고, 그와 별개로 마녀답지 않게 굉장히 상냥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심심한 쌍둥이는 일과가 끝날 때면 ‘오늘은 깨어났나?’ 싶어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찾아가곤 했었다.
만약 그녀가 깨어났다면 반갑다는 인사도 나눌 겸 조수님의 근황을 물어보면 좋겠다 싶어서 말이다.
“언니는 샤론 언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예쁘고 착한 마녀잖아. 심심했을 조수님이랑도 잘 놀아줬으니까.”
“그치? 가슴도 크구.”
“완전 크지. 우리 스승님보다 더 크잖아.”
시답잖은 말로 운을 띄우기 시작한 오데트는 본론을 꺼내었다.
“조수님이랑 샤론 언니랑… 연인이 된 건 아닐까 싶어서.”
“엥?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평소처럼 시답잖은 잡담이겠거니 했던 오딜의 눈도 화등잔처럼 동그랗게 변한다.
“그럴 리가 없어. 샤론 언니에게 우리가 직접 물어봤을 때 분명 친구라고 했잖아.”
“그치, 마법을 가르쳐주는 대신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고는 했지. 그런데 그때 기억 안 나?”
“그때라고 하면 내가 어떻게 아니?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봐.”
“조수님이 샤론 언니를 안아주면서 위로해주고 내가 끼어들려고 했을 때 언니가 말렸잖아.”
“…아!”
티페레트 공작이 모종의 이유로 오해를 품고 그를 공격했던 때.
둘이 껴안는 모습을 본 오딜은 얌전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솔직히 그사이에 끼어들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 조수님에게 필요한 사람이다’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그의 옆에서 친구가 되어 줄 수 있던 사람이었고, 또 의지가 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오딜은 샤론의 친구 선언 이후 둘의 관계가 앞으로도 친구일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치밀하고 복잡하기 그지없는 남녀 사이의 치정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쌍둥이는 연애에 관해 너무 무지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거기에 최초로 의문을 던진 것이 바로 오데트.
원인은 다름 아닌 오데트의 전속 시녀 2인 중 1인 페챠 였다.
“혹시… 같이 자지 않았을까?”
“얘는 못 하는 말이 없어! 그때 방도 침대도 따로인 거 봤잖아!”
예전이라면 몰라도 이제는 남녀가 동침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오데트의 대담하고 아찔한 발언에 오딜은 팔짝 뛰었다.
전혀 의외의 구석을 쿡 찔린 오딜은 그럴 리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언니! 진정하고 들어봐. 내가 페챠한테 물어봤거든? 그런데 남자랑 여자가 같이 사는 건 친구 사이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래.”
“뭐? 왜?”
오딜의 고운 눈썹이 심각하게 일그러진다.
어찌 보면 화가 잔뜩 난 채 추궁하는 모습이었던지라 오데트의 말꼬리가 괜히 기어들어 간다.
“생각해 봐. 언니가 조수님이랑 매일매일 같은 방에서 살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완전 좋은데?”
“아니, 그거 말고. 내 말은 왜 좋을 것 같냐는 거지.”
“왜?”
뭉게뭉게.
오딜의 머릿속으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옷을 홀딱 벗고 허리에 수건만 두른 조수님과 커다란 욕조에 입욕제를 한가득 풀어 넣고 목욕을 즐기는 오딜.
어째서인지 상상의 시작점부터 서로 알몸이다.
‘오딜 님, 목욕 시중을 들어드리겠습니다.’
‘좋아, 조수님이라면 내 몸을 꼼꼼히 구석구석 닦아도 좋아.’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시중을 드는 시우와 키득거리며 장난을 치는 오딜.
그녀의 부드러운 살결 위를 매끈한 비누 거품으로 덮어가던 시우는 별안간 수건을 벗어 던졌다.
‘…조수님, 지금 뭐 해?’
‘꼼꼼히 구석구석 닦으라는 명령을 받들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상상 속에서 봐도 커다랗기 그지없는 물건 위로 향유를 듬뿍 바르는 시우.
그 뒤로는…
‘조, 조수님…! 저기까지는 안 씻어도 되는데???’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저는 오딜 님의 종자 된 몸! 먼지보다 사소한 명령이라도 결코 허투루 할 수는 없습니다! 당장 그 요망한 엉덩이를 이쪽으로 내미십시오!’
‘여, 역시 조, 조수님… 사람을 곤란하게 하는 재주가… 하아앙…!’
포개지는 두 사람의 몸.
그야말로 가장 깊은 곳까지 더욱 깔끔하게 변해버리는 중인 오딜과…
뜨거운 행위 끝에 하얀 체액으로 다시 더럽혀지는….
“언니?”
오데트는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오딜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정수리에 찻주전자를 얹어 놓으면 장시간 보온이 될 것처럼 멀리서도 열기가 느껴진다.
“아, 아무튼! 그럼 혹시 조수님이 언니의 가장 깊은 곳까지 구석구석 씻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잖아!”
“무슨 소리야 그게?”
얼떨결의 망상의 편린이 끌려 나와 헛소리를 하게 된 오딜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붕붕 저었다.
쓸데없는 상상에 시간이 소요되긴 했지만, 오데트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것 같았다.
“…그럴듯해.”
항상 생활 공간이 겹치는 남녀는 잠깐의 방심이면 서로의 헐벗은 몸을 볼 수 있다.
게다가 오피스텔을 떠올렸을 때 다섯 걸음이면 침대를 넘나들 수 있는 간격이다.
온갖 청춘남녀의 화학작용이 발생하다 못해 폭발할 위험으로 가득한 실험실이었던 것이다!
“그렇지?”
오데트는 언니의 동의에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는 듯 손뼉을 치더니 이내 기뻐할 일이 아님을 깨닫고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건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겠네. 오늘 요리 연구회가 해산하면 방으로 가서 ‘신시우 조수 특별보호 대책본부’를 열어야겠어.”
“그래? 그럼 이건 내가 본부장 할래!”
“넌 요리 연구회 회장으로 임명됐잖아. 이번엔 내가 대표를 맡을 차례지.”
“왜 언니만 항상 알짜배기 모임의 대표만 맡는 거야? 나는 승마 동호회, 굴 연구회, 티 파티 관리장 이런 건데! 언니는 마법 묘약 실험소, 고서 관리실 심지어 이번에는 조수님 특별보호대책 본부장? 너무한 거 아니야? 심지어 이 위험을 가장 먼저 발견한 건 나잖아!”
사실 무슨 무슨 회니, 무슨 무슨 장이니 하는 것들이 쌍둥이 둘이 하는 역할극의 연장이라 아무런 권력도 없지만, 오데트는 아무튼 마음에 들지 않았다.
쌍심지를 치켜세우고 오딜에게 따지듯 물었다.
하지만 궤변이라면 오데트보다 한 수위인 오딜이다.
이번에도 여느 때처럼 오데트를 구워삶을 생각이던 오딜의 귓가에 별안간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퐁!
“응?”
“음?”
-퐁! 뽀곡! 퐁!
폭죽이 물속에서 터지며 기포를 이루는 듯한 소리.
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생경한 소리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쌍둥이는 소리의 음원지를 찾고 동시에 허리를 숙였다.
쌍둥이의 발치에서 정강이를 따뜻하게 덥혀주던 오븐이 그 시발점이었다.
불쌍하게도 한계치까지 뱃속을 채워 넣어진 뿔닭.
굴을 비롯해 온갖 잡다한 식자재의 수분이 열팽창을 시작하면서 실로 봉합한 틈새로 증기를 폭발시키고 있는 것이다.
어째 황천에서 들리는 뿔닭의 단말마 같기도 했다.
“어, 어쩌지?”
“오데트 시간 얼마나 남았어?”
“다행이다! 마침 딱 꺼낼 타이밍이야!”
오데트는 황급하게 오븐의 불을 빼고 소리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간헐적으로 뿜어져 나오던 폭발음이 잦아들고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어 결과를 확인한다.
“…….”
“…….”
쌍둥이의 창의력이 한껏 발휘된 뿔닭 요리는 용케도 형태를 보존하고 있었으나 꽤 참담한 자태로, 거짓말로도 먹음직스럽다고 보기 어려운 형태가 되었다.
분명 잘 봉합해 놓았을 터인 가랑이 사이에서 굴이 뿌지직 튀어나와 바닥에 눌어붙어 있는 모습은 ‘뒤틀린 황천의 굴을 싼 뿔닭’이라는 이름이 걸맞아 보였다.
게다가 사이사이에 섞여 있는 치즈와 채소 조각들이 그로테스크함을 더해준다.
그나마 냄새는 그다지 나쁘지 않은 것이 위안이 될까?
“그럼….”
“그럼….”
쌍둥이는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며 언니 먼저 아우 먼저를 시전했다.
“언니가 먼저 먹어볼 수 있게 해줄게.”
“네가 먼저 먹어볼 수 있게 해줄게.”
당연하지만 애틋한 자매애의 발로일 리 없다.
이 요리를 빙자한 무엇인가의 첫 실험자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냐, 언니. 언니가 고생 많이 했잖아. 이따 특별대책본부장으로서 회의를 이어나가는 것도 힘들 텐데 든든히 영양 챙겨야지.”
“아냐, 오데트. 내가 무슨 고생을 했겠어. 거기에 요리연구회의 회장이 가장 중대한 첫 시식을 도맡는 건 당연지사지.”
“아냐 아냐, 언니. 나 오늘부로 요리연구회 회장은 그만두기로 했어. 새삼 허울뿐인 명예의 무상함을 깨닫고 말았거든. 오늘 밤에 방에서 기자회견도 열 거야.”
“아냐 아냐, 오데트. 명예는 실속과 권위에서 비롯하는 게 아니야. 그 자체만으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기에 명예라고 부르는 거지.”
조금만 비껴가면 서로에게 치명타인 설전을 주고받는 중.
주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탁 탁 탁
발소리가 주방에 울리고.
다툼도 멈춘 채 뻣뻣이 굳어있던 쌍둥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림자 속에서 등장한 사람은 다행히 이 모든 일에 협력해준 레나였던 것이다.
“레나!”
“깜짝 놀랐잖아! 노크라도 좀 해주지! 난 갈리나 시녀장 님인 줄 알았…”
말을 이어가던 오딜의 얼굴이 시커멓게 죽었다.
왜냐하면 가장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 거기에 있었으니까.
“잘 알아보셨군요. 오딜 아가씨.”
환갑을 넘겼음에도 후덕한 덩치와 날카로운 눈빛을 자랑하는 갈리나 시녀장.
그녀는 레나를 앞세워 쌍둥이가 도망갈 틈을 없애는 노련함을 선보였다.
“죄, 죄송해요… 저도 숨기려고는 했는데…”
“집에 들고 갈 잼을 만들겠다고 해서 특별히 저택의 공공설비를 사용할 수 있게 해줬거늘… 레나 거짓말 했던 건가요?”
“죄송합니다… 갈리나 시녀장님…”
“이 일의 책임은 내일 묻도록 하겠어요. 먼저 올라가세요.”
“네…. 정말 죄송합니다.”
레나는 오딜과 오데트에게도 미안하다는 듯한 눈길을 보내고는 쪼르륵 위층으로 달려갔다.
팔짱을 낀 갈리나의 동그란 안경 위로 난장판이 된 주방이 비친다.
오딜이 대충 정리했다지만 여전히 혼돈 그 자체였다.
쌍둥이의 어깨가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린다.
“그럼, 하나하나 설명해 보실까요?”
““히끅!””
살모사 같은 살기 속에서 쌍둥이는 나란히 딸꾹질을 하고 말았다.